[🌤️시인이기23] 고요히 삶을 견디는 일

구독자님, 안녕하세요. [시인이기]의 연정모입니다. 

3월의 직전, 몹시도 따뜻해졌습니다. 그래도 아침엔 쌀쌀할 거라 생각하고 패딩 입고 나왔는데 놀랍도록 포근하더라고요. 이제 정말 봄인 것 같지요? 

저에게는 매년 기다리는 이벤트가 있습니다. 뭐냐면은요(꼭 이런 말투를 쓰고 싶었어요) 추위가 풀린 첫 오후에 자전거를 타고 휭 달리는 것입니다. 겨울을 싫어하는 큰 이유 중 하나가 자전거를 타지 못한다는 거거든요. 

몇 달 동안 방치되어 뻑뻑해진 페달이지만, 몇 번 굴러주면 이내 부드럽게 나아갑니다. 몸도 언제나 자전거 위에 있었던 것처럼 자연스럽고요. 그해의 첫 자전거 타기, 차분하게 쓰고는 있지만 정말 호들갑스럽게 사랑하는 일이거든요. (자전거 밟으면서 실실 웃어요) 매년 느끼는 건데 매년 놀라요. 이렇게까지 큰 흥분과 기쁨을 느낄 수 있다는 것에요.

이번 겨울이 짧긴 했는지, 2주 전에 '봄 자전거 개시'를 했습니다. 역시나 자동적으로 웃음이 나왔고요, 심장이 쿵쾅거리고 등 뒤로 땀이 뻘뻘 나는 것입니다. 

…왜 이렇게까지 자전거 얘기를 열심히 하고 있는지 모르겠네요. 봄이 온다니 다행이라는 이야기를 적고 싶었던 것뿐인데요. 구독자님, 굳은 몸 깨우는 삼월 되시기를, 그리고 편안하시기를!

차재신

시의 제목을 아직 정하지 못했다. 종로를 제목으로 쓴 건데 쓰다 보니 종로로부터 멀어졌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가 많다. 착상으로부터 멀어지는 시. 그래서 쓰는 사람도 시가 어디로 가게 되는지 모른다. 가끔 시가 생물 같다는 느낌을 받는 이유도 여기에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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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편의 시를 쓰는 동안에도 쓰는 감각은 계속 바뀐다. 시는 문장을 쓰는 것으로 시작하지만 시가 완성되려면 문장을 만져야 한다. 틀 없이 자유롭게 부유하던 문장들을 데려와 시에 앉히는 단계. 똑같은 문장이어도 행과 연, 위치에 따라 의미가 달라지므로, 배치와 여백을 다루는 것이 마지막 단계라고도 볼 수 있다. (모든 시 쓰기에 해당하는 얘기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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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이나 단어의 만듦새를 따져 보는 것. 한 단어를 오래 보다 보면 단어의 의미보다 모양이 눈에 밟히기 시작한다. 잿물, 기러기, 사탕··· 미시감이 들면 생뚱맞게 전혀 다른 이미지가 끼어든다. 잿물이 진드기 같고 기러기는 전선처럼 보인다. 이미지를 통해 의미가 빠져나가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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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미가 이미지로 빠져나간다는 게 언어의 이상한 부분이다. 잿물을 잿물로 기억하려면 잿물을 알아야 하는데, 잿물이라고 할 수 있는 근원은 어디에도 없기 때문이다. 인간이 사고(혹은 사유)하는 수단이 언어인데, 하필 언어가 이 모양이니 사람들의 머릿속이 뒤죽박죽인 걸지도. 희망(혹은 비극)이 있다면, 그나마 시를 통해 잿물을 가늠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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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가 너무 가까운 것들은 시로 쓸 수가 없다. 내게 익숙하고 친숙한 사물일수록 사물의 생김새나 용도, 위치가 딱딱하게 굳어져 있기 때문이다. 그런 사물들을 시에 데려와 놓으면 문장과 어울리지 못하고 고집을 부린다. 저 혼자 완성된 의미가 있는 것처럼. 그것이 사물의 사실일 수는 있어도 진실이 되지는 못한다. 모르는 것을 아는 체하는 것보다 아는 것을 모르는 체하는 게 훨씬 어렵다. 시는 의도적으로 몰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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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은 유지하고 내용을 고쳤다. 의미를 담아 줄 공간이 필요해서.

시가 누군가에게는 그럴싸, 하게 읽혔으면 한다.

연정모

많은 사람과 마찬가지로 미술관을 좋아한다. 전시 관람에 대단한 취미가 있다기보다 미술관에 있다는 기분을 좋아하는 것에 가깝다. 

내가 아는 미술관은 전부 빛이 잘 드는 곳에 자리하며, 층고가 높다. 크고 길게 난 유리창 사이로 햇빛이 들어온다. 창이 언제나 깨끗하게 닦여 있는 것은 물론이다. 밝다는 건 두려움 없다는 것. 아침처럼. 사람들은 느리게 걸어다니며, 우악스럽지 않은 소리로 대화한다. 층이 켜켜이 쌓여 있는 생활건축물과는 다르게 로비와 계단이 환히 개방되어 있다. 

미술관이 공유하는 또 하나의 특징이라 하면 무채색 옷을 입은 직원들이 전시관의 코너마다 앉아 있다는 점. 그들은 정갈히 앉아, 입장하는 관람객의 수를 기록한다. 입구를 살피기 위해 고개를 꺾거나 눈을 데굴데굴 굴리지 않고도 몇 명이 이 구역에 들어섰는지 정확히 알아챈다. 조금도 움직이지 않는 것 같지만 자세히 보면 엄지를 움직여 손에 쥔 계수기를 딸깍딸깍 누르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그 일이 너무도 아름다워 보인다. 미술품처럼 조용히 앉아 사람의 수를 세는 일. 감격 또는 경멸하는 사람 틈에서 무미한 일. 그들이  1,2,3… 전시관으로 전진해 가는 동안 영영 한 시점 안에 머무는 일. 다음 사람들의 감격 또는 경멸을 기다리며. 그것이 참 외롭고 또 경쾌해 보여서 언제나 그들이 부러웠다. 

아주 고요히 삶을 견디고 싶다. 

얼마전엔 평창동에 위치한 서울시립미술아카이브에 다녀왔다. 개관 때부터 가봐야지 생각하고 있었는데 교통이 편리한 동네는 아니라 미뤄두었더랬다. 갑작스레 약속이 취소된 일요일 아침, 퍼뜩 그곳이 떠올랐다. 미술관 안에 아주 근사하게 정돈된 도서 큐레이션 공간이 있다고 들었는데! 그곳에 나를 앉히고 싶었다. 

버스를 갈아타며(중간에 내려 커피를 마셔가기도 하며) 도착했다. 기분 탓일 수도 있겠지만 높은 지대에 위치한 동네를 방문하면 조금 개운해지는 것만 같고, 혼자 온전한 오전을 보내고 있다는 기분에 그것만으로도 꽤 좋았다. 

근 몇 달간 나에게 있었던 이상한 상태에 대해 알려드리겠다. 사람들을 만나고 돌아오면 (만난 이가 누구든 그곳의 분위기가 어떠했든 간에) 몇 시간이 지나도 붕 들뜬 기분이 쉽사리 가라앉지 않는다. 전혀 즐겁지 않고 불쾌감만 몰고오니 문제다. 말로 설명하기 어렵지만 가슴이 벌렁거리고 잡념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식으로 이어지며… 뿌연 증기 속에 있는 듯 머리가 말꼬롬하지 못하다. 

사실 낯선 감각은 아닌데 그 빈도와 정도가 과해졌다. 이전에는 ‘실은 꽤 잘 보이고 싶고 약간은 어색한’ 사이의 사람들과 시간을 보낸 후 느꼈던 기분이라면 이제는 누굴 만나고 오든 저 불편상태를 거치는 것이 디폴트다. 

그래서 말이지 나는…

아주 조용하고 싶다. 

그 일요일 나는 서울시립미술아카이브에 앉아 몇 시간 동안 일기를 쓰고 책을 읽었다. 몇 개의 설치 작품과 영상 작업을 본 후였고, 내가 보고 나온 전시관에서는 도슨트 투어가 시작된다는 안내가 흘러나왔다. 사람들의 발소리나 일정한 말소리는 미술관을 더 미술관답게 한다. 그 규칙적인 소리 안에 있음이 그저 좋았다. 애쓸 필요 없이 매끄러운 기분. 잠시라도 단순해지는 기쁨.

미술관에 대한 시를 쓰고 싶다는 생각은 오래전부터 해 왔지만 그동안은 그것에 대한 어떤 어렴풋한 이미지만 가지고 있었기에 제대로 되지가 않았다. 이번에도 호기롭게 시작하고서는 어떤 이야기를 쓸지 한동안 뻗어나가지 못했었는데, 내가 미술관에서 안정감을 느끼는 이유를 떠올리니 조금은 간단해졌다. 이곳은… 거대하고 아름다운 알 부화기 같다. 희고 따뜻하다. 나는 그 안에 알처럼 가만히 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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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호로 실어보낼 시 한 편을 썼다. 친구 한 명이 이 시는 왜 쓴 거야? 물었고 딱히 할 말 없어서 “삶을 대하는 것이 어려워서”라고 답했음. 지금 생각하니 아주 정확히 말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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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그날 내가 쓴 일기의 마지막 두 문장이다. 

ㅤㅤ그러나 나는 이 아침이 마음에 든다.

ㅤㅤ이 아침을 더 여러 개 갖고 싶다.

🚶생활기

차재신: 농구하다 목을 다친 후로 오른팔에 힘이 들어가지 않습니다. 운동도, 농구도 제대로 안 되는 상태라 몹시 침울한 상태입니다.

연정모: 다음 달 출간될 문예지의 검토본을 보고 있는데요. 시작노트를 고치느라 골치입니다. [시인이기]에서 매번 써왔으니 어렵지 않을 거라 생각했는데, 역시 종이에 인쇄될 글을 쓰는 덴 많은 고민이 따르는군요. (발표 지면 소식은 또 전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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