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춘기라서 그래. 그 시기만 지나면 다 괜찮아질 거야.
좋아하지 않는 말이다. '사춘기' 또는 '갱년기' 아니면 그저 '호르몬 변화' 때문에. 그런 형식적이고 모범적인 답안을 내 상태에 가져다 붙이는 것은 나를 멋대로 단정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정말 맞는 말일 수도 있다. 그저 사춘기이기 때문에 내가 유독 우울해하고, 불안함을 느끼며, 사사건건 눈물을 흘리고 극단적인 생각을 이어가는 것일 수도 있다. 당연히 호르몬 변화의 영향이 없지는 않을 것이다. 그걸 너무도 잘 알고 있었지만, 내 아픔의 이유가 그것 뿐인 것은 아니었다.
사람들은 우리의 고통에 이유를 요구한다. 대답을 요구한다. 합리적인 대꾸를 내놓지 못한다면 우리으 고통은 고통이 아니게 되어버린다. 그러다 멋대로 우리의 이유를 재단한다.
"사춘기라서 그래."
사춘기만 지나면 다 괜찮아질 거라는 말이, 그 시기만 지나면 전부 나아질 거라는 말이 너무도 날카롭다. 기한을 정해두고 그 안에 나아지지 않으면 벌을 받기라도 할 것처럼, '회복'이라는 것이 우리에게 의무이며 압박이 된다. 그걸 소리 내어 외치고 주장하고 싶지만, 되려 돌아오는 것은 질시 어린 꾸짖음이 다이다.
'이 시기가 지나도 나아지지 않으면 어떡하지.'
그건 하나의 공포가 되고.
'이렇게나 끔찍하고 고통스러운 게 모두에게 당연했던 걸까.'
그건 하나의 죄책감이 되며.
'그런데 나 혼자 참지 못하고 티를 내버려서.'
그건 하나의 후회가 되고.
'그렇지만 아무도 나를 이해하지 못해.'
그건 하나의 외로움이 되어, 나를 스스로의 감옥 속으로 이끈다.
나는 성장통을 겪고 있다. 우리는 성장통을 겪고 있다. 지금 이 아픔을 가다듬고 어루만져서 환한 빛 속으로 나아간다면 지금보다 나은 내가 되리라는 걸 알고 있다. 한층 더 성장한 내가 되리라는 걸 알고 있다.
그렇다고 이건 모두가 겪기에 그저 그런 것이 아니다.
사춘기라 단정 짓고는,
"나도 겪어 봤어."
"참으면 되잖아."
"조금만 더 견뎌."
라는 막무가내의 말을 뱉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겪고 있는 아픔이, 성장통이 정말 우리가 사춘기일 뿐이기 때문일까.
그것에 대한 내 답은 '아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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