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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에세이 / 사소한 이유

꼭 거창한 이유가 필요한 건 아니야

2023.09.17 | 조회 37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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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말을 해주고 싶어. 별거 아닌 것에 죽음을 생각하고, 별거 아닌 것에 삶을 생각하는 게 이상한 것이 아니라고. 그건 너에게 충분한 아픔이며, 커다란 부담이라고. 아무도 너의 통증을 가늠하고 판단할 수 없어.

 

사람들은 보통 생각한다. 집이 파산하거나, 부모님이 돌아가시거나, 왕따를 당하고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거나. 그런 큼직하고 거창한 이유들이 있기에 우울해하고 죽음을 생각한다고.

하지만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다. 물론 그런 이유들로 우울에 빠진 사람도 있겠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그러니 우울증인 사람들에겐 모두 그렇게나 크고 거대하게 불우한 사정이 있으리라고 멋대로 짐작하지도, 그런 이유가 없다고 해서 그런데 왜 우울증이냐고 묻지도 말아줬으면 한다.

우리는 꽤나 작은 이유 하나에 죽음을 생각하고, 작은 이유 하나에 삶을 바란다. 그게 우리고, 우리가 그렇다. 그냥 그런 사람들이다.

이해를 바라는 건 아니다. 그저 비꼬지 말아줬으면 한다. 의심하지 말아줬으면 한다. 우리의 아픔을 함부로 재단하고 섣불리 떠벌리지 말아주기를 원한다.

 

"뭐야, 별거 아니었잖아."

 

그 말을 듣는 게 너무도 무서워서, 우리는 더 꽁꽁 숨기고 있다. 더 억지로 드러내며 심각해 보이려고 노력한다.

우리를 부정당하기 싫다. 우리의 고통이 거짓이 되는 걸 지켜만 볼 수는 없다. 그게 우리가 상처를 드러내고, 또 드러내지 않고 싶어 하는 원인이다.

내가 아프다는 것을 말한 적이 있었다. 내가 느끼고 있는 것들을 털어놓고, 내가 생각하는 이유를 뱉어낸 적이 있었다.

상대의 반응이 애매했던 탓일까, 그 눈동자에서 미심쩍다는 빛을 읽어냈던 탓일까. 나는 슬며시 입을 열어 물었었다.

 

"별일도 아닌 것에 죽고 싶다고 말하니까 좀 이상하지?"

 

속으로는 간절히 빌고 있었다. 제발 그가 아니라고, 너는 충분히 힘들고 아픈 것이라고 말해주기를.

 

"응... 솔직히 좀 그렇네. 네가 고작 그런 것 때문에 그렇게 심한 생각을 할 줄은 몰랐는데."{

 

고작 그런 것. 내가 물은 말이기에 돌아온 대답이었지만, 상대는 진심으로 내게 대꾸한 것일 테지만. 거칠게 쿵쾅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킬 수 없었다.

이후로는 꽁꽁 숨겼다. 함부로 이유를 말하지도 아프다는 걸 밝히지도 않았다. 정말 좋은 사람을 만났다 해도 내 온전한 진심을 드러내는 일은 없었다.

작은 이유가 어때서, 고작 그런 이유가 어때서. 나는 이미 충분히 고통받고 있는데, 우리는 이미 충분히 갈기갈기 찢어지고 있는데.

알아 달라는 게 아니다. 이해해 달라거나 공감해 달라는 게 아니다. 그저 존중해 달라는 게 다인데, 그게 그렇게 어려운 일인가 보다.

학교 가기 싫어서 죽음을 생각하고, 달달한 것을 먹으며 삶을 바란다. 거울 속 내가 너무 못생겨서 죽음을 생각하고, 가족의 품에 안겨 삶을 바란다. 너무 늦게까지 늦잠을 자버려서 죽음을 생각하고, 날씨가 너무 좋아서 삶을 바란다.

그냥 그런 것이다. 우리는 그렇게 삶을 보낸다.

'고작'이라는 수식언이 붙는다 해도, 이게 우리이며 이게 우리의 상처이다.

사소한 이유 하나에 죽음을 생각하고, 사소한 이유 하나에 삶을 바란다. 그건 결코 이상한 것이 아니고, 잘못하는 것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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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 백까마귀

우울증을 가다듬는 중인 글쟁이의 감성 에세이. (위로 한 스푼, 공감 한 스푼) / 가끔 쓰는 여행 힐링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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