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며: 처방전에서 만난 익숙한 이름
건기식 회사에 다닐 때 밀크시슬은 너무 익숙한 원료였습니다.
간 영양제 시장의 부동의 1위.
어느 회사 카탈로그를 펼쳐도 맨 앞에 있는 성분.
저한테는 그냥 "잘 팔리는 원료" 중 하나였어요.
그런데 어느 날, 병원에 갔다가 이상한 걸 봤습니다.
의사가 처방전에 적어준 약 이름.
실리마린.
어? 이거 밀크시슬 성분인데?
약국에서 처방약으로 나온다고?
우리가 마트에서 팔던 그 원료가?
순간 머릿속에 두 가지 생각이 동시에 들었습니다.
"오, 의사도 쓰는 거면 진짜 효과 있나 보네?"
"잠깐. 근데 효과가 그렇게 확실하면 왜 건기식으로도 팔지?"
그날 밤부터 파기 시작했습니다.
허가 서류, 논문, 그리고 건강보험 기록까지.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이 성분은 대한민국 정부가 "약값 대주기엔 근거가 부족하다"고 공식 판정한 성분입니다.
그것도 최근에요.

밀크시슬의 정체 — 성분 하나가 아니라 '칵테일'입니다
🌿 2,000년 묵은 엉겅퀴
밀크시슬은 엉겅퀴의 한 종류입니다.
서양에서는 2,000년 전부터 간에 좋다고 썼어요.
씨앗에서 뽑아낸 성분 이름이 실리마린(silymarin).
여기서 첫 번째 오해를 풀고 갑시다.
실리마린은 성분 '하나'가 아닙니다.
| 구성 성분 | 대략적 비율 |
|---|---|
| 실리빈 (silybin) | 약 33% |
| 실리크리스틴 | 약 13% |
| 이소실리빈 | 약 8% |
| 실리디아닌 | 약 3.5% |
| 기타 폴리페놀 등 | 나머지 |
여러 성분이 섞인 칵테일이에요.
이 중 주인공은 실리빈. 연구도 제일 많이 됐습니다.
재미있는 건, 이 성분들이 화학적으로 형제라는 겁니다.
분자식이 똑같아요(C₂₅H₂₂O₁₀).
같은 재료로 만들었는데 조립 방향만 살짝 다른 거죠.
레고 블록은 같은데 완성품 모양이 다른 겁니다.
그리고 그 모양 차이 때문에 몸에 흡수되는 정도가 다 달라요.
💧 치명적인 약점: 물에 안 녹습니다
실리마린의 최대 약점.
물에 잘 안 녹습니다.
우리 몸은 기본적으로 물입니다.
물에 안 녹는 성분은 장에서 흡수가 잘 안 돼요.
게다가 어렵게 흡수돼도 간이 바로 붙잡아서 대사시켜 버립니다.
그래서 입으로 먹은 실리마린 중 실제로 몸을 도는 양은 얼마 안 됩니다.
업계에서 "파이토솜", "미셀 공법" 같은 흡수율 개선 기술이
계속 나오는 이유가 바로 이겁니다.
원래 흡수가 잘 되는 성분이면 그런 기술이 왜 필요하겠어요.
일단 인정할 건 인정합시다 — 이거, 진짜 약 맞습니다
여기까지 읽고 "아, 밀크시슬 사기구나" 하시면 안 됩니다.
저는 팩트체커지 안티가 아니에요.
밀크시슬은 근본 있는 성분입니다.
💊 근거 1: 독일에서 온 진짜 의약품
한국 약국에서 파는 실리마린 제제(레가론 등)는
독일에서 개발된 정식 의약품입니다.
식약처 허가 효능·효과를 그대로 옮기면:
"다음 질환의 보조 치료: 독성 간질환, 만성 간염, 간경변"
용법도 확실히 정해져 있습니다.
초기에는 실리마린으로 1회 140mg을 하루 3번.
하루 420mg입니다.
이 숫자, 기억해 두세요. 뒤에서 반전으로 돌아옵니다.
🍄 근거 2: 독버섯 해독제로는 진짜 씁니다
이건 업계 사람들도 잘 모르는 사실인데요.
유럽에서는 실리빈 성분의 정맥주사가
독버섯(아마니타) 중독 환자의 해독 치료에 실제로 사용됩니다.
광대버섯류의 독소가 간세포로 들어가는 통로를
실리빈이 막아주는 원리예요.
즉, 특정 상황에서 이 성분이 간세포를 보호한다는 건
그럴듯한 이야기가 아니라 실제 의료 현장의 근거가 있습니다.
📋 근거 3: 식약처 고시형 간 건강 원료, 사실상 유일
그리고 하나 더.
건강기능식품 공전에서 "간 건강" 기능성으로 등재된
고시형 원료는 사실상 밀크시슬 하나입니다.
(고시형이 뭔지 기억 안 나시면 2장 복습!
아무 회사나 쓸 수 있는 '국가 공인 레시피'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공전 문구는 이렇습니다.
"간 건강에 도움을 줄 수 있음"
일일섭취량: 실리마린으로서 130mg

여기까지 보면 완벽하죠?
2,000년 역사.
독일 의약품.
독버섯 해독제.
식약처 고시형.
그런데 지금부터가 진짜입니다.
반전 ① — 약 설명서에 숨은 두 글자
아까 의약품 효능·효과를 다시 봅시다.
"다음 질환의 보조 치료: 독성 간질환, 만성 간염, 간경변"
"보조."
치료제가 아닙니다. 보조 치료제예요.
영화로 치면 주연이 아니라 보조출연입니다.
간염을 실리마린으로 '치료'하는 의사는 없습니다.
진짜 치료(항바이러스제, 금주, 체중 감량)를 하면서
옆에 얹어주는 약이라는 뜻이에요.
의약품 트랙에서조차 단독 주연 자리를 못 받은 성분.
이게 실리마린의 정확한 위치입니다.
반전 ② — 세계 최고 수준의 연구들이 내린 결론
"그래도 보조라도 효과는 있는 거잖아요?"
좋은 질문입니다. 데이터를 봅시다.
📊 코크란 리뷰 (2007) — 의학계의 대법원
코크란 리뷰는 전 세계 임상시험을 모아서 판정하는,
의학계에서 가장 깐깐한 심판입니다.
알코올성 간질환과 B형·C형 간염 환자를 대상으로 한
임상시험 13개, 915명을 분석했습니다.
결론:
사망률에 유의한 효과 없음.
질 좋은 연구들만 추려서 보면, 간질환 관련 사망률에도 유의한 효과 없음.
📊 JAMA 논문 (2012) — 고용량으로도 안 됐다
"용량이 부족해서 그런 거 아냐?"
미국 연구진도 똑같이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만성 C형간염 환자 154명에게
일반 용량(420mg/일)도 아니고 그 5배(2,100mg/일)까지 먹여봤어요.
24주 동안, 위약(가짜약) 그룹과 비교하면서.
결과:
간수치(ALT)가 목표만큼 떨어진 사람 — 위약 그룹 2명, 실리마린 그룹도 각각 2명.
가짜약과 차이가 없었습니다.
세계 최고 권위 의학저널 JAMA에 실린 결과입니다.

반전 ③ — 2021년, 대한민국 정부의 공식 판정
여기가 이 챕터의 하이라이트입니다.
우리나라 건강보험에는 급여 적정성 재평가라는 제도가 있습니다.
쉽게 말하면 이겁니다.
"예전에 보험 적용해준 약들, 진짜 그럴 가치가 있는지 다시 따져보자."
2021년, 보건복지부가 재평가 대상으로 5개 성분을 골랐는데
그 선정 이유가 의미심장합니다.
"주요국에서 건강기능식품으로 혼용되는 성분"
번역하면: "이게 약이야, 식품이야?"
실리마린이 여기 포함됐고, 결과는요.
"임상적 유용성의 근거가 미흡" → 급여 삭제
실리마린 27개 품목이 건강보험 목록에서 빠졌습니다.
이게 무슨 뜻이냐면요.
"국민이 낸 보험료로 이 약값을 대줄 만큼의 근거가 없다"
나라가 공식적으로 그렇게 판정했다는 겁니다.
물론 뒷이야기가 있습니다.
제약회사들이 행정소송을 냈고, 법원 집행정지를 받은 제품들은
아직 급여가 유지되고 있어요.
그리고 2026년, 실리마린은 개편된 재평가 제도의
심사 대상에 또다시 올랐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진행 중인 싸움입니다.
그런데 왜 의사는 계속 처방할까?
자, 처음 질문으로 돌아갑시다.
근거가 이 정도인데 왜 병원에서는 처방이 나올까요?
제가 업계에서 보고 들은 현실적인 이유는 세 가지입니다.
1. 싸다.
급여가 되던 시절엔 환자 부담이 몇백 원 수준이었습니다.
2. 안전하다.
부작용이 거의 없습니다. 줘서 손해 볼 게 없어요.
3. 환자가 뭐라도 원한다.
"간수치가 좀 높네요. 술 줄이시고 3개월 뒤에 봅시다."
이렇게만 말하면 환자가 서운해합니다.
처방전에 뭐라도 적어주면 환자가 안심하고 돌아가요.
즉, "의사가 처방한다"와 "근거가 탄탄하다"는 다른 문장입니다.
의료계에도 관행 처방이라는 게 있고,
실리마린은 그 대표 사례예요.
💸 그리고 용량의 아이러니
아까 기억해 두시라고 한 숫자, 여기서 씁니다.
| 구분 | 하루 실리마린 용량 | 가격대 |
|---|---|---|
| 처방약/약국약 | 초기 420mg | 저렴 |
| 건강기능식품 | 130mg (법적 상한) | 보통 더 비쌈 |
건기식은 법적으로 하루 130mg을 넘길 수 없습니다.
의약품 초기용량의 3분의 1도 안 되는 양이에요.
정리하면 이렇게 됩니다.
하루 420mg 먹여도 가짜약과 차이를 못 낸 성분을,
130mg짜리로, 더 비싸게 사 먹는 것.
이게 "의사도 처방하는 밀크시슬" 마케팅의 실체입니다.
공정하게 — 완전히 죽은 성분은 아닙니다
팩트체커니까 반대쪽 데이터도 보여드립니다.
지방간(비알코올성 지방간, NAFLD) 쪽에서는
희망적인 신호가 있긴 합니다.
지방간 환자 대상 소규모 임상들을 모은 메타분석(2017)에서
실리마린 복용 그룹의 간수치가 통계적으로 유의하게 떨어졌어요.
AST, ALT 모두요. 이후 분석들에서도 비슷한 신호가 반복됩니다.
다만 세 가지 단서가 붙습니다.
- 연구 규모가 작습니다.
- 간수치(피검사 숫자)가 떨어진 거지, 간 조직이 좋아졌다는 증거는 불분명합니다.
- 지방간의 진짜 치료는 체중 감량입니다. 이건 근거 등급이 차원이 다릅니다.
그래서 제 정리는 이렇습니다.
간염·간경변 → 효과 입증 실패 (코크란, JAMA)
지방간 간수치 → 약한 신호 있음 (소규모 연구)
나라의 판정 → 보험료 쓸 근거 부족 (2021)
"효과 없음"도 아니고 "효과 있음"도 아닌,
"이 정도 근거"라는 게 정확한 답입니다.
🔍 그래서 이건 진짜? — 판단 기준
영양제를 권하는 코너가 아닙니다. 판단 기준만 드립니다.
1. 간수치가 올랐다면, 영양제 검색보다 원인 확인이 먼저입니다.
지방간인지, 술인지, 약물인지, B형간염인지.
원인마다 해법이 완전히 다릅니다.
밀크시슬은 그 어떤 원인의 해법도 아닙니다.
2. "간 해독", "피로회복", "숙취"가 적힌 밀크시슬 제품은 거르세요.
식약처가 허가한 문구는 "간 건강에 도움을 줄 수 있음" 한 줄입니다.
그 이상은 전부 불법이거나 편법 광고입니다.
3. 그래도 먹겠다면, 실리마린 함량 130mg 기준만 확인하세요.
프리미엄이니 고흡수니 하는 수식어에 웃돈 줄 근거는 없습니다.
하루 420mg으로도 안 된 게임입니다.
4. 지방간 진단을 받으셨다면 — 체중의 5~7% 감량.
이게 전 세계 진료지침이 인정하는 진짜 치료입니다.
영양제 값으로 좋은 운동화를 사세요. (카테킨 편에서도 드린 말씀입니다.)
3줄 요약
- 밀크시슬(실리마린)은 근본 있는 성분 맞습니다 — 독일 의약품이고, 독버섯 해독 주사로도 씁니다. 근데 의약품 허가 문구조차 "보조 치료"입니다.
- 코크란 리뷰와 JAMA 대규모 임상에서 효과 입증에 실패했고, 2021년 대한민국 정부는 "임상적 유용성 근거 미흡"으로 건강보험 급여를 삭제했습니다. 2026년 지금도 재평가가 진행 중입니다.
- 건기식 밀크시슬은 그 성분을 의약품 용량의 3분의 1 이하로 담아 더 비싸게 파는 상품입니다. "의사도 처방한다"는 말은 "근거가 탄탄하다"는 뜻이 아닙니다.
간 영양제 이야기, 오늘 다룬 밀크시슬이 전부가 아닙니다.
헛개나무, 그리고 "개별인정" 간 원료들까지 — 나머지 이야기는 준비 중인 전자책에서 모두 공개할 예정입니다. 소식은 이 뉴스레터에서 가장 먼저 알려드릴게요.
📚 References
- 식품의약품안전처 고시, 「건강기능식품의 기준 및 규격」(건강기능식품 공전) — 밀크씨슬(카르두스 마리아누스) 추출물
- 의약품안전나라(nedrug.mfds.go.kr) — 레가론캡슐140 허가정보 (효능·효과, 용법·용량)
- Rambaldi A, et al. Milk thistle for alcoholic and/or hepatitis B or C virus liver diseases. Cochrane Database Syst Rev. 2007;(4):CD003620.
- Fried MW, et al. Effect of silymarin (milk thistle) on liver disease in patients with chronic hepatitis C unsuccessfully treated with interferon therapy: a randomized controlled trial (SyNCH). JAMA. 2012;308(3):274-282.
- Zhong S, et al. The therapeutic effect of silymarin in the treatment of nonalcoholic fatty liver disease: a meta-analysis. Medicine. 2017;96(49):e9061.
- 보건복지부, 2021년 약제 급여 적정성 재평가 결과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 2021.11.) — 실리마린·빌베리건조엑스 급여 제외
- 보건복지부, 2026년 약제 급여 적정성 재평가 대상 선정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 202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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