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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추 수박 같이 먹을래?

고밤 씨의 드라마 <수박> 소개글을 담은 자유일꾼 뉴스레터

2025.01.03 | 조회 6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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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일꾼 책덕

자유를 생산하자

안녕하세요, 구독자 님. 

지난 주에 제1회 후추롱상사 아나바다 종합 축제 행사를 무사히 마쳤습니다. 여러 가지 물건과 사람들이 어울렁 더울렁 어우러졌던 하루였습니다. 그때 다 판매되지 않은 책과 물건은 다음 주까지 다용도실에서 계속 판매할 예정이에요. 혹시 근처 오실 일이 있으시면 구경 오세요. 영빈 님의 책 중엔 탐나는 좋은 책이 많답니다(속닥). 윤아 씨가 가져오신 그림책도 무척 귀한 책이 많고요. 

해가 바뀌었을 뿐인데 왠지 모를 책임감이 더해졌습니다. 아마 이제 다용도실의 계약 기간이 1년밖에 남지 않았다는 생각에 올해에는 뭔가 제대로 해봐야 하지 않겠나 하는 압박감이 없지 않아 있습니다. 

자꾸 '후추롱상사'라고 하니까 그게 대체 뭔데? 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을 텐데요. 제가 옛날에 후추 마카롱을 무척 좋아했거든요. 근데 그 후추 마카롱을 팔던 가게가 사라지면서 계속 그리워하고 있었어요. 게임 아이디도 후추마라고 짓기도 하고... 그러다 로컬스티치 공유 오피스에서 '(파는 사람도 사는 사람도) 좋아서 하는 마케팅'이라는 모임을 열었다가 마케팅이라는 뻔한 어감이 싫어서 '후추마케롱'이라고 변형을 했었어요. 그러다가 다용도실에 모인 사람들과 회사 아닌 회사, 조직 아닌 조직을 만들어보면 어떨가 하는 마음에 '후추롱상사'라는 가상의 회사 이름을 지어봤습니다. 

내친 김에 유튜브도 그냥 일상을 짜집기해서 올려보고 인스타그램도 만들었어요. (아직 아무에게도 알려주지 않았어요. 구독자 님께만 알려드리자면 페이퍼페퍼컴퍼니 @PapperPepperCompany입니다. 허허허.) 기존 조직의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자연스레 조직되는 회사는 어떤 모습일까 상상하며 실험을 해보고 있어요. 아직은 막막하지만 곁에 있는 사람들과 이것 저것 해보다 보면 우리만의 방식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오늘은 후추롱상사의 멤버, 다용도실의 성실한 동료, 고밤 님의 글을 공유해 드려요. 뉴스레터에 꼭 보내고 싶다며 몇 개월 전부터 열심히 글을 썼답니다. 재밌게 읽으셨다면 댓글로 간단히 감상도 남겨주세요. 고밤 님이 아주 아주 기뻐할 겁니다!


후추 수박 같이 먹을래?

매일 아침·저녁 식사를 차려주는 하숙집이 있다. 단, 규칙이 있다. 아침과 저녁 다 같이 먹기. 하숙집 주인은 이 규칙을 요즘 사람들도 과연 좋아할까 걱정하며 계속 지켜야 할지 말지 고민한다. 그러던 중, 우리의 주인공, 하야카와 모토코가 하숙집에 들어가게 된다.

여름이 거의 끝나갈 때쯤 다용도실 친구들에게 추천받은 일본 드라마 ‘수박’(사토 토야 外, 2003) 이야기다. 극의 배경은 여름이다. 잘 관리된 텃밭과 곳곳에 피어있는 해바라기, 뒤로 지나다니는 전철, 졸졸 흐르는 시냇물이 있는 한적한 동네. 그곳에 ‘해피니스산챠’가 있다. 주인공 하야카와는 서른 네 살, 은행에 다니는 직장인이다. 하숙집 주인, 유카의 말에 따르면 어쩐지 ‘정체된 사람’. 어느 날 유일한 입사 동기인 바바가 회삿돈 3억 엔을 횡령해 도주하면서 하야카와의 마음에는 작은 변화가 일어난다. 그때 보이는 해피니스산챠 입주자 모집 전단지!

첨부 이미지

하야카와의 잔잔한 마음에 누가 물수제비라도 하는 것 마냥 어느새 큰 동요가 일고 있다.

“나도 집을 나와 볼까?”

그렇게 하야카와는 해피니스산챠에 들어가게 되는데...

입주자는 카리스마 넘치지만 허당끼 있는 문화인류학과 교수님, 성인 만화를 그리며 근근 살아가는 만화가, 아버지가 물려준 하숙집을 성실히 운영 중인 주인. 그리고 하야카와. 서로 다른 여성 네 명이 함께 살아가면서 벌어지는 일을 에피소드 형식으로 보여준다. 인상 깊었던 에피소드 몇 개를 추려봤다.

 

3화, 영원히 앞으로 가지 못하는 사람

하야카와에게는 중학생 때부터 동전을 모으고 있는 저금통이 있다. 저금통을 채워서 같이 놀러 가자는 약속을 했던 친구는 금세 그 저금통을 깨고 미술 재료를 샀다. 하지만 하야카와는 약속이 깨진 이후로도 동전을 계속 모으고 있다. 그리고 유망한 일러스트레이터가 된 그 친구의 잡지 인터뷰를 우연히 해피니스산챠 사람들이 보게 된다.

“그 친구요? 아직도 저금하고 있어요”

“영원히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사람이 있잖아요? 친구는 그런 성격이거든요”

친구가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한 걸 보고도 잠자코 계속 저금통을 채울 수는 없는 법.(ㅂㄷㅂㄷ) 하야카와는 자신도 저금통을 깨고 무언가를 해보겠다는 결심으로 동전으로 가득 찬 저금통을 카트에 묶어 하라주쿠로 향한다. 10년 넘게 모은 이 저금통으로 하야카와는 무엇을 하게 될까? (궁금하신 분들은 시청을 권해드립니다.) 하야카와가 한 일은 하야카와답기도 하고 아니기도 한 듯 하지만 해피니스산챠 친구들에게는 모두 만족할 만한 일이었다. 그리고 하야카와 자신에게도.

 

4화, 당신에겐 의외성이 있나요?

바바(3억 엔 횡령한 하야카와 친구)를 찾기 위해 해피니스산챠를 찾아온 형사가 하야카와에게 누가 봐도 은행직원 같다고 얘기한다. 사람들은 의외성을 가진 인물을 궁금해하는데 그런 면에서 하야카와는 궁금하지 않은 사람이란다. 흥! (주인공 절대지켜인 편) 정말 그런가? 싶다가 과연 그런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하야카와의 시무룩해진 모습을 보니 괜히 이런 반감이 생긴다. 반드시 의외성이 있어야 할까? 왜 남의 관심을 구해야 하지? 그런데 나는 나만의 가치, 나만의 매력, 나만의 무언가가 있을까? 흠. 문득 개성을 갖기 어려운 시대에 개성이 없어서 또 스트레스인 그런 이상한 시대라는 생각이 든다.

 

1화, 제목은 왜 수박일까

“오늘 올해 첫 수박을 샀어요. 반으로 자른 수박이었어요.

언젠가 입주자가 가득 차면 한 통짜리 수박을 살 생각이에요.”

하숙집을 운영하는 유카는 아빠에게 편지를 쓴다. 매일 입주자들의 식사를 차리는 일은 귀찮은 일이지만 왠지 계속하게 된다면서도 하숙집 입주자가 다 차면 한 통짜리 수박을 살 것이고 그럴 수 있게 아빠도 기도해달라고 한다. 마지막 화까지 다 보고서도 드라마 제목이 대체 왜 수박인지 영 감이 안 왔는데 글을 쓰면서 어쩌면 여름철 함께 나눠 먹어야 하는 가장 상징적인 음식이라서가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이 시점에서 생각나는 다용도실 에피소드. 겨울에 접어들면서 다용도실에 귤이 들어왔을 때 일이다. 그 귤은 특이하게 껍질에 검은 점들이 박혀있었다. 다들 그 생김새에 대해 얘기하고 있었는데 용크가 “이거 제주도 남원에서 나는 후추귤이잖아요.”라고 해서 다용도실 모두가 “음~그렇구나”, “진짜 이름처럼 후추 뿌린 거 같아”라며 철석같이 믿었다. 하지만 알고 보니 용크의 천연덕스러운 농담이었다! (누가 농담을 그렇게 진지하게 해요?) 그 후로도 그 귤을 보면 ‘후추귤’이 떠올랐고 다용도실에 오시는 분들에게 자연스럽게 “후추귤 드실래요?”라며 권하기도 했다는 에피소드... 나만 재밌나?(머쓱)

암튼 귤 하나로 웃기도 하고 맛있게 나눠 먹기도 하면서 한 철을 즐겁게 보낸 일이 나에겐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다. 이 얘기를 갑자기 왜 하냐면 드라마를 보는 내내 해피니스산챠가 꼭 이 다용도실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물론 해피니스산챠처럼 같이 사는 형태는 아니지만 가족들보다 오랜 시간 얼굴을 보며 뭔가를 함께 먹고, 고민을 나누고, 작은 일상들을 공유하는 관계성이 닮았다. 이에 더해 자유를 생산한다는 목표로 함께 이것저것 도모해 보던 지난 몇 개월이 나는 참 즐거웠다.(이 글을 읽고 계신 분 중에도 혹시 이런 일들을 함께하고 싶다면 얼마든지 환영입니다.) 드라마를 소개한다면서 다용도실 자랑으로 글을 마치려니 이래도 되나 싶지만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은,

“다용도실 이런 곳이야! 그래서 말인데 후추 수박 같이 먹을래?”


안녕하세요. 고밤입니다. 뉴스레터로 처음 인사드립니다. 작년 8월 말 즈음부터 누가 시키지 않았지만 다용도실에 성실하게 출석하고 있는 중입니다. 출석해서 뭘 하냐고 물으신다면 선뜻 하나만 얘기하기는 어렵습니다. 정말 여러 가지를 하고 있기도 하고(글쓰기, 피아노 연습, 여러 작당 등등) 사실 뭐 먹으면서 놀 때가 많긴 합니다. 민망하지만 그렇습니다. 작년 가을, 다용도실 친구들에게 드라마 ‘수박’을 추천받았습니다. 요즘은 드라마를 잘 안 보긴 하지만 어쩐지 이건 보고 싶더라고요. 결과적으로 굉장히 즐겁게 보았습니다. 그래서 이 재밌는 드라마 나만 보지 말고 더 많은 사람이 보고 힐링이 되었으면 좋겠다라는 마음으로 글을 써보았습니다. 가을에 본 드라마 얘기를 왜 이제야 뉴스레터에 업로드 했는지는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지만(따흑) 글에 대한 부담을 내려놓고 이제는 사람들 앞에 내놓기로로 용기를 내보았어요. 연말에 사건사고가 참 많았는데 새해에는 무탈하고 평온한 일상들이 함께하길 바라봅니다. 부디 재밌게 읽으셨기를 바라면서. 총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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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4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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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면의 프로필 이미지

    0
    3 days 전

    우왕 한겨울의 후추수박 넘 달고 마딧다,,,,, 여기 리필(?)이요 !! 😋🍉

    ㄴ 답글 (1)
  • Yeong Bin의 프로필 이미지

    Yeong Bin

    0
    about 11 hours 전

    드라마를 겨우 한 회밖에 안 봤는데 꼭 고밤 님과 함께 드라마의 처음부터 끝까지 달린 기분이에요. 이런 드라마였구나. 저는 이번 겨울에 한번 달려봐야겠습니다.

    ㄴ 답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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