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 뉴스레터는 질문 하나로 시작하고 싶습니다.
우리 회사가 지난달에 올린 소재 중에서 아무거나 하나 꺼내보세요. 배너든 썸네일이든 상관없습니다. 거기서 로고와 브랜드명만 지웁니다. 그걸 우리 브랜드를 모르는 사람 열 명에게 보여주고 "이게 어느 회사 같나요"라고 물어봅니다.
몇 명이 맞힐까요.
저는 이 테스트를 꽤 여러 번 돌려봤습니다. 결과는 대체로 비슷했습니다. 0명 아니면 1명. 그리고 그 1명은 보통 경쟁사 이름을 댑니다. 민망한 경험이지만 이 민망함이 지금 브랜드 업계 전체의 상태라는 걸 최근 조사 하나가 숫자로 보여줬습니다.
B2B SaaS와 AI 기업 100곳을 같은 기준으로 채점한 2026년 조사가 있습니다. 식별 자산 여덟 개를 각각 0에서 3점으로 매기고 24점 만점으로 합산했습니다. 컬러, 로고, 비주얼 디바이스, 타이포그래피, 태그라인, 사람(캐릭터나 창업자 얼굴), 제품 UI 모티프, 음악과 사운드.
결과는 이랬습니다. 100곳 중 78곳이 7~12점 구간에 몰렸습니다. 이 구간에 붙은 이름이 재미있습니다. "유능하지만 잊힌다."
못 만들었다는 뜻이 아닙니다. 다들 잘 만들었습니다. 잘 만든 결과물이 서로 너무 비슷해서 머릿속에 남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맥락 밖에서도 알아볼 수 있는 최상위 구간에 들어간 곳은 100곳 중 한 곳이었습니다.
저는 이 숫자를 보고 전략 실패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투자처 선택의 실패라고 봤습니다.
한 가지 덧붙이고 싶은 게 있습니다. 저는 '유능하지만 잊힌다'는 진단이 '못 만들었다'는 진단보다 훨씬 위험하다고 봅니다.
못 만든 브랜드는 문제를 압니다. 내부에서도 불만이 나오고 영업에서도 불평이 올라옵니다. 그래서 어느 순간 리브랜딩 예산이 잡힙니다. 반면 유능하게 만든 브랜드는 아무도 문제를 제기하지 않습니다. 디자인 시스템이 정리돼 있고 가이드 문서도 있습니다. 심사에서 상도 받습니다. 그런데 고객 머릿속에는 없습니다.
이 상태는 외부 자극 없이는 절대 깨지지 않습니다. 제가 로고 가리기 테스트를 권하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비용이 거의 안 드는 외부 자극이기 때문입니다.
자산별 평균을 펼쳐보면 바로 드러납니다. 컬러는 평균 2.12점이었습니다. 86%가 2점 이상을 받았습니다. 반대로 음악과 사운드는 평균 0.08점. 100곳 중 91곳이 0점이었고 2점 이상은 한 곳도 없었습니다. 사람 관련 자산도 평균 0.73점에 머물렀습니다.
왜 이렇게 되는지는 예산 흐름을 보면 설명됩니다. 브랜드 예산은 "안 하면 욕먹는 칸"으로 먼저 흐릅니다. 컬러 시스템 없이 리브랜딩을 끝낼 수 없습니다. 로고 없이 제품 출시를 못 합니다. 그래서 전부 그 칸을 채웁니다. 모두가 채운 칸은 변별력을 잃습니다.
86%가 2점 이상인 항목에서 2점을 받는 건 사실상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반대로 91%가 0점인 항목에서 1점만 받아도 혼자 서 있는 셈이 됩니다.
여기서 퍼포먼스 마케팅을 해본 분들은 익숙한 구조를 느끼실 겁니다. 입찰이 과열된 키워드와 아무도 안 보는 키워드. CPC 1만 원짜리 레드오션 키워드에 전 예산을 밀어넣는 퍼포먼스 담당자는 없습니다. 그런데 브랜드 예산은 정확히 그렇게 쓰이고 있습니다.
브랜드 자산도 경매장입니다. 단가가 다르고 경쟁 밀도가 다릅니다. 그런데 브랜드 쪽 회의에서는 이 비교를 거의 하지 않습니다. 퍼포먼스는 단가를 보고 브랜드는 완성도를 봅니다. 같은 회사 안에서 쓰는 언어가 갈라져 있다는 게 저는 더 큰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조금 더 실무적인 얘기를 하겠습니다.
식별 자산이 약하면 그 비용은 브랜드 쪽에서 안 나옵니다. 매체비에서 나옵니다. 같은 캠페인을 돌려도 브랜드가 식별되지 않으면 노출 한 번이 기억 한 조각으로 쌓이지 않습니다. 매번 처음부터 다시 설명해야 합니다. 빈도를 올려서 메우려면 예산이 더 들어갑니다.
저는 이 구조를 광고 리포트에서 여러 번 봤습니다. 소재 성과는 나쁘지 않은데 브랜드 검색량이 안 올라가는 캠페인. 클릭은 사는데 기억은 못 사는 상태입니다. 이걸 소재 문제로 진단하면 다음 분기에도 똑같은 결과가 나옵니다. 크리에이티브를 아무리 바꿔도 알아볼 흔적이 없으면 누적이 안 되니까요.
그래서 저는 요즘 캠페인 기획서에 한 줄을 넣습니다. "이 소재에서 우리만 가진 요소가 무엇인가." 답이 "로고 위치"뿐이면 그 캠페인은 경쟁사 소재와 바꿔 써도 돌아간다는 뜻입니다.
국내 데이터는 더 직설적입니다.
올해 발표된 K-BPI 조사에 '인지 효율성'이라는 지표가 등장했습니다. 비보조인지도 대비 최초인지도 비율입니다. 쉽게 말해 우리를 아는 사람 중에서 우리를 가장 먼저 떠올리는 사람의 비중입니다. 산업별 1위 브랜드는 57.7%였습니다. 2위는 40.0%, 3위는 32.8%. 1위가 1.4배에서 1.8배 높았습니다.
이 지표가 중요한 이유는 질문을 바꿨다는 데 있습니다. "알려졌는가"가 아니라 "먼저 떠오르는가"를 묻습니다.
인지도 조사에서 90%가 우리를 안다고 답해도 카테고리를 떠올릴 때 세 번째로 소환되면 구매 후보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보조인지도는 이 차이를 가립니다. 보기를 주고 "들어보셨나요"라고 물으면 숫자가 예쁘게 나옵니다. 보고서에 쓰기 좋습니다. 그런데 의사결정에는 쓸 수 없습니다.
저는 브랜드 트래킹 대시보드 맨 앞자리에서 보조인지도를 내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자리에는 최초인지도를 비보조인지도로 나눈 값이 와야 합니다. 숫자가 작아 보여서 보고하기 싫을 뿐입니다.
그래서 이번 주에 뭘 해볼 수 있을까요. 세 가지를 제안하고 싶습니다.
첫째, 맨 앞에서 말한 로고 가리기 테스트를 실제로 돌려보세요. 슬랙에 소재 세 장을 올리고 타 부서 사람들에게 물어보는 정도로 충분합니다. 내부 채점은 예외 없이 후합니다. 자기 평가 점수와 외부 응답의 차이가 실제 출발점입니다.
둘째, 우리 브랜드의 여덟 칸을 직접 채점해보세요. 0점짜리 칸이 몇 개 나오는지 세는 것만으로 다음 분기 예산 대화가 달라집니다. 저는 이 작업을 한 시간 안에 끝냈고 회의에서 가장 유용했던 자료가 됐습니다.
셋째, 비어 있는 칸 중에서 딱 하나만 고르세요. 두 개를 동시에 하면 둘다 안 됩니다. 예산 문제가 아니라 노출 빈도 문제입니다.
여기서 한 가지만 미리 말해두고 싶습니다. 비어 있는 칸을 가져가는 일의 진짜 비용은 제작비가 아닙니다. 안 바꾸겠다는 약속입니다.
사운드든 캐릭터든 반복 노출 없이는 우리 것이 되지 않습니다. 최소 2~3년은 같은 자산을 들고 가야 합니다. 그런데 조직에서 이게 제일 어렵습니다. 리더십이 바뀌면 전임자가 만든 자산을 먼저 들어냅니다. 새 담당자는 자기 포트폴리오에 넣을 결과물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저는 새 식별 자산을 제안할 때 제작 일정보다 유지 합의를 먼저 문서화하자고 말합니다. 2년 쓰고 버린 사운드 로고는 자산이 아니라 그냥 비용입니다.
그런데 솔직히 말하면 여기까지는 쉬운 쪽입니다. 비어 있는 칸을 발견하고 "그럼 우리도 사운드 로고 만들자"로 가는 순간 함정이 하나 기다리고 있습니다. 소비자 조사 숫자를 보면 이미 소닉 로고를 가진 브랜드는 꽤 많습니다. 그런데 그게 어느 브랜드인지 맞히는 정답률은 절반에 못 미칩니다. 만드는 일과 우리 것으로 귀속되는 일은 완전히 다른 프로젝트라는 뜻입니다.
이 함정을 모르고 집행하면 2년 쓰고 버리는 비용이 됩니다. 알고 집행하면 91%가 비워둔 칸을 혼자 가져갑니다. 차이를 만드는 건 제작비가 아니라 다른 종류의 약속입니다.
원문에는 상위 3개 기업이 정확히 어떤 자산으로 올라갔는지, 버티컬마다 출발선이 왜 2.7점이나 벌어지는지, 그리고 가격 결정력의 94%를 설명하는 지표가 무엇인지까지 데이터를 다 펼쳐뒀습니다. 이 글에서 제가 가장 오래 고민한 부분은 뒤쪽에 있습니다.
원문 보기: https://medium.com/@hoon_16083/%EB%8B%A4-%EC%B0%A8%EB%B3%84%ED%99%94%ED%96%88%EB%8B%A4%EB%8A%94%EB%8D%B0-100%EA%B3%B3-%EC%A4%91-78%EA%B3%B3%EC%9D%B4-%EB%98%91%EA%B0%99%EC%95%98%EB%8B%A4-330e71b80b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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