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 Alex
맛나식당이라는 밥집이 있습니다.
스무 살에 서울에 올라와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거의 매일 그곳에서 밥을 먹었습니다.
가족을 빼면 제가 가장 큰 신세를 진 사람은 아마 맛나식당 사장님일 겁니다.
그 밥을 먹고 하루하루를 버텼으니까요.
사장님은 20년 넘게 같은 자리에서 가게를 지키셨습니다.
예전에는 일찍 큰일을 해낸 사람들을 동경했습니다. 20대에 회사를 팔아 억만장자가 된 창업가, 10대에 이미 걸작을 남긴 예술가 같은 사람들이요.
요즘은 한 가지 일을 오래 해온 사람이 더 대단해 보입니다. 남들 눈에 대단치 않은 일이라도 정성껏 오래 하면 세상에 좋은 무언가가 남는다는 걸 이제는 압니다.
오늘은 워런 버핏의 글을 가져왔습니다. 60년 넘게 한 가지 일을 해온 사람입니다. 자기만의 소신으로 경영하고 투자했고, 그 소신을 결과로 증명했습니다.
재밌게 읽으시길 바랍니다.
에디터 픽!
- 우리 역시 버크셔 주주를 끊임없이 바뀌는 얼굴 없는 군중으로 보지 않는다. 어쩌면 남은 평생 동안 자금을 맡겨준 사업 동반자로 여긴다.
- 장기 전망이 밝다면 단기 주가 변동은 우리에게 아무 의미가 없다. 좋은 가격에 지분을 늘릴 기회가 된다는 점만 빼면 말이다.
- 찰리와 나는 성과를 약속할 수는 없다. 하지만 여러분이 동업자로 남아 있는 동안 여러분과 우리의 재산이 정확히 같은 방향, 같은 속도로 움직인다는 것만은 보장할 수 있다.
- 우리가 가장 바라는 방식은 현금을 창출하면서 꾸준히 평균 이상의 자본수익률을 내는 여러 사업을 직접 소유하는 것이다.
- 버크셔 주식의 내재가치와 시장가격의 관계가 늘 일정해야 하고, 우리 바람대로라면 1대1이어야 한다. 다시 말해 우리는 버크셔 주가가 높기보다는 적정하기를 바란다.
에세이
본 아티클은 <An Owner's Manual>의 내용을 번역 및 편집한 글임을 밝힙니다.
1996년 6월, 버크셔 회장 워런 버핏은 주주들에게 '소유주 매뉴얼(An Owner's Manual)'이라는 소책자를 보냈다. 버크셔가 어떤 경제 원칙에 따라 움직이는지 큰 틀에서 설명하기 위해서였다.
서문
제너럴 리(General Re)와 합병하면서 버크셔 주주는 1년 만에 두 배로 늘어 약 25만 명이 됐다.
버크셔 부회장이자 내 파트너인 찰리 멍거와 함께 여러분 한 분 한 분을 진심으로 환영한다. 그 마음을 담아 이 소책자를 다시 찍었다. 우리 사업과 목표, 철학, 그리고 한계를 이해하는 데 보탬이 되길 바란다.
이 책자는 버크셔 산하의 여러 사업을 하나하나 소개하려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어떤 원칙으로 회사를 운영하는지 큰 그림을 보여주려는 것이다. 더 자세한 내용과 그간의 진척 상황은 연차보고서에서 확인할 수 있다.
원하는 주주에게는 1997년 연차보고서를 기꺼이 보내드린다. 1977~1996년 주주서한을 비롯한 방대한 자료는 우리 웹사이트(www.berkshirehathaway.com)에도 올려두었다.
소유주 중심 경영 원칙
1983년 블루칩(Blue Chip)을 합병할 때, 새 주주들이 우리의 경영 방식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도록 소유주와 관련한 경영 원칙 13가지를 정리했다.
1.형식은 주식회사지만 우리의 마음가짐은 동업자다.
찰리 멍거와 나는 주주를 함께 사업을 소유한 동업자로, 우리 자신은 업무를 맡아 집행하는 파트너로 여긴다. (보유 지분이 워낙 크다 보니, 좋든 싫든 우리는 회사를 지배하는 파트너이기도 하다.)
우리는 사업 자산의 최종 주인이 회사라고 보지 않는다. 회사는 주주가 자산을 소유하는 통로일 뿐이다.
찰리와 나는 여러분이 자신이 가진 주식을 날마다 값이 출렁이다가 경제나 정치 사건으로 불안해지면 언제든 내다 팔 종잇조각쯤으로 여기지 않기를 바란다. 그보다는 가족과 함께 농장이나 아파트 건물을 공동으로 소유한 것처럼, 기한 없이 함께할 사업의 일부를 가졌다고 생각해주었으면 한다.
우리 역시 버크셔 주주를 끊임없이 바뀌는 얼굴 없는 군중으로 보지 않는다. 어쩌면 남은 평생 동안 자금을 맡겨준 사업 동반자로 여긴다.
실제로 대부분의 버크셔 주주가 이런 장기 동업 개념을 받아들였다는 증거가 있다. 버크셔 주식의 연간 회전율은 미국 다른 주요 기업 주식과 비교하면 극히 낮다. 내 보유 주식을 빼고 계산해도 결과는 같다.
사실상 우리 주주들이 버크셔 주식을 대하는 방식은 버크셔가 투자한 기업을 대하는 방식과 거의 같다. 예컨대 코카콜라나 질레트 주식을 가진 우리는 버크셔를 두 비범한 기업의 동업자, 다만 경영에는 참여하지 않는 동업자로 여긴다. 그리고 성공 여부를 주가의 월별 등락이 아니라 그 기업의 장기적 성장으로 판단한다.
이들 기업의 주식이 몇 년간 거래되지 않거나 시세조차 나오지 않아도 우리는 조금도 개의치 않는다.
장기 전망이 밝다면 단기 주가 변동은 우리에게 아무 의미가 없다. 좋은 가격에 지분을 늘릴 기회가 된다는 점만 빼면 말이다.
2. 버크셔는 소유주를 중심에 두는 회사인 만큼, 이사 대부분이 순자산의 상당 부분을 회사에 투자하고 있다. 우리는 우리가 만든 요리를 직접 먹는다.
찰리 가족은 순자산의 90% 이상을, 아내 수지와 나는 99% 넘게 버크셔 주식으로 갖고 있다. 누이들과 사촌들을 비롯한 내 친척 상당수도 순자산의 막대한 부분을 버크셔 주식에 넣어두었다.
이렇게 달걀을 한 바구니에 몰아 담았지만 찰리와 나는 전혀 불안하지 않다. 버크셔 자체가 정말 뛰어난 사업을 아주 다양하게 거느리고 있어서다. 경영권을 가진 사업이든 의미 있는 소수 지분을 가진 사업이든, 그 질과 다양성에서 버크셔는 거의 독보적이라고 우리는 믿는다.
찰리와 나는 성과를 약속할 수는 없다. 하지만 여러분이 동업자로 남아 있는 동안 여러분과 우리의 재산이 정확히 같은 방향, 같은 속도로 움직인다는 것만은 보장할 수 있다.
우리는 고액 연봉이나 스톡옵션처럼 여러분보다 '유리한 고지'에 서게 해주는 그 어떤 수단에도 관심이 없다.
동업자가 돈을 벌 때만, 그것도 정확히 같은 비율로만 벌고 싶다. 그리고 내가 어리석은 결정을 내렸을 때, 나 역시 여러분만큼 금전적 고통을 겪는다는 사실이 여러분에게 작은 위안이라도 되기를 바란다.
3. 우리의 장기 경제 목표는 버크셔의 주당 내재가치 연평균 증가율을 최대로 끌어올리는 것이다.
우리는 버크셔의 경제적 의미나 성과를 덩치로 재지 않는다. 주당 기준으로 얼마나 성장했는지로 잰다.
앞으로 주당 성장률이 낮아지리라는 점은 분명하다. 엄청나게 불어난 자본 규모 탓이다. 그래도 미국 대기업 평균조차 넘지 못한다면 실망할 것이다.
이 원칙을 쓴 1983년 말 이후 우리의 내재가치(이 개념은 뒤에서 조금 설명하겠다)는 해마다 25% 넘게 늘었다. 찰리와 나조차 놀란 속도다. 그래도 위 원칙은 여전히 유효하다.
지금처럼 막대한 자본을 굴리면서 훨씬 적은 돈을 굴리던 시절만큼 성과를 내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우리가 바랄 수 있는 내재가치 증가율은 잘해야 연평균 15%이고, 이마저도 크게 밑돌 수 있다.
사실 대기업 가운데 장기간 내재가치를 연 15%씩 복리로 불릴 수 있는 곳은 손에 꼽힌다고 본다. 그러니 15%에 한참 못 미치는 증가율로도 '평균 이상'이라는 목표는 이룰 수 있을지 모른다.
4. 우리가 가장 바라는 방식은 현금을 창출하면서 꾸준히 평균 이상의 자본수익률을 내는 여러 사업을 직접 소유하는 것이다.
그다음은 주로 보험 자회사를 통해 상장 주식을 사들여 그런 사업의 일부를 소유하는 것이다. 해마다 자본을 어디에 배분할지는 기업의 가격과 매물 사정, 그리고 보험 자본이 얼마나 필요한지에 따라 정해진다.
늘 그랬듯 지금도 뛰어난 기업을 협상을 거쳐 통째로 사들이기보다는 주식시장에서 일부를 사들이기가 더 쉽다. 그래도 우리는 여전히 100% 인수를 선호하며, 운이 따르는 해도 있다.
실제로 지난 3년간 일곱 건을 인수했다. 가뭄 같은 해도 있겠지만 앞으로 수십 년 동안 여러 건을 인수할 것으로 기대하고, 되도록 큰 거래이기를 바란다. 과거에 성사시킨 인수만큼 질이 좋다면 버크셔에 큰 힘이 될 것이다.
우리의 숙제는 현금이 쌓이는 속도만큼 빠르게 투자 아이디어를 찾아내는 일이다. 이런 점에서 주식시장 침체는 우리에게 상당히 유리하게 작용할 공산이 크다.
첫째, 기업을 통째로 살 수 있는 가격이 대체로 내려간다.
둘째, 보험 자회사들이 훌륭한 기업의 지분 일부를, 이미 보유한 기업의 추가 지분까지 포함해, 좋은 가격에 사들이기 쉬워진다.
셋째, 코카콜라처럼 꾸준히 자사주를 사들이는 훌륭한 기업들이 더 싼값에 자사주를 매입할 수 있게 되니, 그 기업도 우리도 이득을 본다.
결국 버크셔와 장기 주주에게 하락장은 득이 된다. 장을 꾸준히 보는 사람에게 식료품값 하락이 반가운 것과 같은 이치다. 그러니 시장이 폭락하더라도(때때로 그런 날은 반드시 온다) 당황하거나 슬퍼할 필요가 없다. 버크셔에는 좋은 소식이다.
5. 사업을 두 갈래 방식으로 소유하는 데다 전통적 회계에는 한계가 있어서, 연결 기준 보고이익만 봐서는 우리의 실제 경제적 성과를 제대로 알기 어렵다.
찰리와 나는 소유주로서도 경영자로서도 이 연결 수치를 사실상 무시한다. 대신 우리가 경영권을 가진 주요 사업별 이익을 따로 보고하겠다. 우리가 매우 중요하게 여기는 숫자다. 이 수치와 개별 사업에 관해 추가로 제공하는 정보가 있으면 대체로 각 사업을 판단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간단히 말해 우리는 연차보고서에 정말 중요한 숫자와 정보를 담으려 한다. 찰리와 나는 사업마다 실적이 어떤지 세심하게 살피고, 각 사업이 어떤 환경에 놓여 있는지도 이해하려 애쓴다.
이를테면 어떤 사업이 업계의 순풍을 타고 있는지, 아니면 역풍을 맞고 있는지 말이다. 찰리와 나는 어느 쪽인지 정확히 알고 그에 맞춰 기대치를 조정해야 한다. 그렇게 내린 결론은 여러분에게도 전하겠다.
돌이켜보면 우리 사업은 거의 모두 기대 이상의 성과를 냈다. 하지만 가끔은 실망스러운 일도 있었고, 그런 일도 좋은 소식만큼 솔직하게 알리겠다. 성과를 보여주기 위해 흔치 않은 지표를 쓸 때는 그 개념이 무엇이고 왜 중요한지 설명하겠다.
예컨대 연차보고서에서 보험 '플로트(float)'라는 말을 자주 보게 될 것이다. 요컨대 우리는 우리의 생각을 있는 그대로 알려야 한다고 믿는다. 그래야 여러분이 버크셔의 사업뿐 아니라 우리의 경영 방식과 자본 배분 방식까지 평가할 수 있다.
6. 회계상 결과가 어떻게 나오느냐는 우리의 운영이나 자본 배분 결정을 좌우하지 않는다.
인수 비용이 비슷하다면, 일반 회계 기준상 장부에 잡히는 이익 1달러보다 잡히지 않는 이익 2달러를 사는 편이 훨씬 낫다. 우리는 실제로 이런 선택에 자주 직면한다.
기업 전체(이익이 전부 장부에 잡힌다)는 소량 지분(이익 대부분이 잡히지 않는다)을 지분율대로 환산한 가격의 두 배에 팔리는 일이 흔하기 때문이다. 전체적으로 보면, 그리고 시간이 흐르면, 장부에 잡히지 않은 이익도 자본이득을 통해 내재가치에 고스란히 반영되리라 본다.
경험해보니, 피투자기업이 배당하지 않고 쌓아둔 이익은 전체적으로 볼 때 우리에게 배당으로 지급되어 공식 보고이익에 포함되었을 때와 똑같이 버크셔에 득이 됐다.
피투자기업 대부분이 정말 탁월한 사업을 하고 있어서, 추가 자본을 사업에 재투자하든 자사주 매입에 쓰든 아주 유리하게 활용할 수 있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물론 그들의 자본 결정이 하나같이 주주인 우리에게 이익이 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그들이 쌓아둔 1달러마다 1달러를 훨씬 넘는 가치를 얻었다. 그래서 우리는 투시이익(look-through earnings)이 한 해 영업 성과를 현실적으로 보여주는 지표라고 생각한다.
1992년 우리의 투시이익은 6억 400만 달러였다. 그해 우리는 이를 연평균 15%씩 늘려 2000년에 18억 달러로 키우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그런데 이후 1998년 제너럴 리 합병 때 대규모로 찍은 신주를 비롯해 주식을 추가로 발행했다. 그래서 애초에 세운 주당 목표를 맞추려면 이제 2000년 투시이익이 24억 달러는 되어야 한다. 그래도 이 목표를 꼭 달성하고 싶다.
7. 우리는 빚을 아껴 쓰고, 돈을 빌릴 때는 되도록 장기 고정금리로 빌린다.
대차대조표에 무리하게 레버리지를 일으키느니 차라리 흥미로운 기회를 놓치는 편을 택하겠다.
이런 보수적 태도 때문에 성과를 손해 본 적도 있다. 하지만 보험계약자와 채권자, 그리고 순자산의 이례적으로 큰 몫을 우리에게 맡긴 수많은 주주에 대한 수탁 책임을 생각하면, 마음 편히 취할 수 있는 태도는 이것뿐이다. (인디애나폴리스 500 우승자 중 한 명의 말처럼 "1등으로 들어오려면 먼저 완주부터 해야 한다.")
찰리와 나의 재무 셈법으로는 몇 퍼센트포인트의 수익을 더 얻자고 편안한 밤잠을 내줄 수는 없다.
나는 가족과 친구들이 갖고 있지도 필요하지도 않은 무언가를 얻으려고, 그들이 이미 갖고 있고 꼭 필요로 하는 것을 위험에 빠뜨려도 된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
게다가 버크셔에는 비용이 싸고 위험하지 않은 레버리지 원천이 두 가지 있다. 덕분에 자기자본만으로는 불가능한 규모의 자산을 안전하게 보유할 수 있다. 하나는 이연법인세이고, 다른 하나는 '플로트'다. 플로트란 보험사가 보험금을 지급하기 전에 보험료를 먼저 받기 때문에 손에 쥐고 있게 되는 남의 돈이다. 두 재원 모두 빠르게 불어나 지금은 합쳐서 약 320억 달러에 이른다.
더 반가운 점은 지금까지 이 돈에 비용이 한 푼도 들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이연법인세 부채에는 이자가 붙지 않는다. 보험 인수에서 손익분기만 맞추면 플로트 비용도 0이 된다. 우리는 보험업을 해온 32년 동안 평균적으로 손익분기를 맞춰왔다.
물론 둘 다 자기자본이 아니라 엄연한 부채다. 다만 약정도 만기도 없는 부채다. 결국 이 재원들은 더 많은 자산을 굴릴 수 있다는 부채의 장점은 그대로 주면서 단점은 하나도 떠안기지 않는다.
앞으로도 플로트를 공짜로 확보할 수 있다는 보장은 물론 없다. 하지만 그 목표를 이룰 가능성은 보험업계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고 본다. 과거에 이 목표를 달성했을 뿐 아니라(여러분의 회장이 몇 차례 중대한 실수를 저질렀는데도 말이다), 1996년 가이코(GEICO)를 인수하면서 앞으로의 전망도 한층 밝아졌다.
8. 경영진의 '희망 목록'을 주주 돈으로 채우는 일은 없다.
주주에게 돌아갈 장기적 경제 효과는 따지지 않은 채 경영권 프리미엄을 얹어 기업을 통째로 사들이는 식으로 사업을 다각화하지 않겠다. 여러분의 돈은 우리 돈이라면 했을 방식으로만 쓰겠다. 그리고 여러분이 주식시장에서 직접 주식을 사서 스스로 포트폴리오를 분산할 때 얻을 수 있는 가치까지 꼼꼼히 견주어보겠다.
찰리와 나는 버크셔의 주당 내재가치를 높일 수 있다고 확신하는 인수에만 관심이 있다. 버크셔 대차대조표가 커진다고 우리 연봉이나 사무실이 커지는 일은 결코 없다.
9. 아무리 고귀한 의도라도 결과에 비추어 주기적으로 점검해야 한다.
우리는 이익을 배당하지 않고 쌓아둔 것이 옳았는지를, 장기적으로 쌓아둔 1달러가 주주에게 최소 1달러의 시장가치를 안겨주었는지로 검증한다. 지금까지는 이 시험을 통과했다. 앞으로도 5년 단위로 기간을 옮겨가며 계속 이 시험을 적용하겠다. 순자산이 커질수록 유보이익을 현명하게 쓰기는 점점 어려워진다.
지금도 이 시험을 통과하고 있지만 통과하기가 갈수록 만만치 않다. 이익을 쌓아두어도 추가 가치를 만들어낼 수 없는 시점이 오면, 배당으로 돌려드려 주주들이 직접 그 돈을 운용하도록 하겠다.
10. 우리는 내주는 만큼의 기업가치를 받을 때만 보통주를 발행한다.
이 원칙은 합병이나 공모는 물론 출자전환, 스톡옵션, 전환증권까지 모든 형태의 발행에 적용된다. 주식 발행이란 결국 여러분 회사의 작은 조각을 파는 일이다. 회사 전체의 가치에 걸맞지 않은 조건으로는 그 조각을 팔지 않겠다.
1996년 B주를 매각하면서 우리가 버크셔 주식은 저평가되어 있지 않다고 밝히자 일부는 충격을 받았다. 하지만 그건 근거 없는 반응이었다. 정말 충격받을 일은 주가가 저평가된 상황에서 주식을 발행하는 경우다.
공모하면서 자사 주식이 저평가되었다고 말하거나 넌지시 내비치는 경영진은 대개 진실에는 인색하거나, 기존 주주의 돈에는 인색하지 않은 사람들이다. 경영진이 실제로 1달러 가치가 있는 자산을 알면서도 80센트에 판다면 소유주는 부당하게 손해를 입는다.
우리는 B주 공모에서 그런 범죄를 저지르지 않았고 앞으로도 저지르지 않을 것이다. (다만 많은 언론이 그렇게 보도했지만, 우리는 매각 당시 우리 주식이 고평가되었다고 말한 적도 없다.)
11. 찰리와 내가 공유하는 태도 가운데 재무 성과에 불리하게 작용하는 것이 하나 있다는 점을 분명히 알아두기 바란다.
가격이 아무리 높아도 우리는 버크셔가 가진 좋은 사업을 팔 생각이 전혀 없다. 수준이 떨어지는 사업이라도 어느 정도 현금을 벌어들일 것으로 보이고 경영진과 노사관계가 만족스럽다면 웬만해서는 팔지 않는다. 그런 사업을 떠안게 만든 자본 배분 실수를 다시는 되풀이하지 않기를 바란다.
대규모 설비투자만 하면 부진한 사업도 만족스러운 수익을 낼 수 있다는 제안에는 매우 신중하게 대응한다. (전망은 눈부시고 지지하는 사람들도 진심이겠지만, 형편없는 산업에 거액을 추가로 쏟아붓는 일은 대개 늪에서 허우적대는 것만큼이나 부질없다.)
그렇다고 진 러미(gin rummy) 게임처럼 차례가 올 때마다 가장 가망 없는 사업을 내버리는 경영은 우리 방식이 아니다. 그렇게 하느니 전체 성과가 조금 손해 보는 편을 택하겠다.
지금도 우리는 진 러미식 경영을 하지 않는다. 1980년대 중반 섬유 사업을 접기는 했다. 하지만 20년을 버틴 끝에, 영업손실이 끝없이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아주 비싼 값을 받을 수 있는 사업을 팔 생각은 해본 적이 없고, 부진한 사업을 내던지지도 않았다. 대신 부진의 원인이 된 문제를 바로잡는 데 힘을 쏟았다.
12. 우리는 여러분에게 솔직하게 보고하겠다.
기업가치를 평가하는 데 중요한 장점과 단점을 모두 짚겠다. 처지가 바뀌었다면 우리가 알고 싶었을 사업상 사실들을 여러분에게 알리는 것이 우리의 지침이다. 여러분은 최소한 그만큼은 알 권리가 있다.
게다가 주요 언론 사업을 거느린 회사로서, 우리 기자들이 남을 보도할 때 요구하는 정확성과 균형감, 날카로움보다 낮은 잣대를 우리 자신에게 들이댄다면 변명의 여지가 없다. 솔직함은 경영자인 우리 자신에게도 이롭다. 사람들 앞에서 남을 속이는 CEO는 결국 혼자 있을 때 자기 자신마저 속이게 된다.
버크셔에는 '빅 배스(big bath)' 같은 회계 꼼수나 구조조정이 없고, 분기나 연간 실적을 매끈하게 다듬는 일도 없다. 홀마다 몇 타를 쳤는지 늘 있는 그대로 알리고, 스코어카드에 손대는 일은 절대 없다. 보험 준비금처럼 숫자가 어쩔 수 없이 매우 대략적인 '어림값'일 수밖에 없을 때는 일관되고 보수적으로 접근하겠다.
여러분과는 여러 경로로 소통하겠다. 연차보고서에서는 적당한 분량 안에서 가치 판단에 필요한 정보를 최대한 많이 모든 주주에게 전하려 한다. 분기 보고서에도 압축적이지만 중요한 정보를 넉넉히 담으려 하는데, 이건 내가 쓰지 않는다(독주회는 1년에 한 번이면 족하다).
또 하나의 중요한 소통 자리는 연례 주주총회다. 찰리와 나는 이 자리에서 다섯 시간 넘게 버크셔에 관한 질문에 기꺼이 답한다. 다만 우리가 할 수 없는 소통 방식이 하나 있다. 바로 일대일 소통이다. 버크셔의 소유주가 수천, 수만 명에 이르니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어떤 소통에서든 우리는 특정 주주만 유리해지는 일이 없도록 한다. 애널리스트나 대주주에게 실적 '가이던스'나 그 밖의 가치 있는 정보를 따로 주는 업계 관행도 따르지 않는다. 모든 소유주가 같은 시점에 같은 정보를 받는 것이 우리의 목표다.
13. 솔직함을 원칙으로 하지만, 상장 증권 투자 활동에 대해서는 법이 요구하는 만큼만 밝히겠다.
좋은 투자 아이디어는 좋은 제품 아이디어나 기업 인수 아이디어처럼 드물고 귀하며, 경쟁자에게 빼앗기기도 쉽다. 그래서 보통은 투자 아이디어를 이야기하지 않는다.
이미 판 증권(다시 살 수도 있으니까)이나 우리가 사들이고 있다는 헛소문이 도는 주식도 마찬가지다. 그런 보도를 어떤 때는 부인하고 어떤 때는 '노코멘트'라고 하면, 노코멘트가 곧 사실을 인정하는 셈이 되기 때문이다.
개별 종목에 대해서는 여전히 입을 닫지만, 사업 철학과 투자 철학은 얼마든지 이야기한다. 나는 금융 역사상 가장 위대한 스승인 벤 그레이엄에게서 아낌없는 지적 가르침을 받았다. 그러니 그에게 배운 것을 나 역시 전하는 게 도리라고 생각한다. 벤의 가르침이 그에게 그랬듯, 그로 인해 버크셔에 유능한 투자 경쟁자가 새로 생기더라도 말이다.
새로 덧붙인 원칙
가능하다면 버크셔 주주 한 사람 한 사람이 주식을 보유한 기간에 얻은 시장가치의 손익이, 같은 기간 회사의 주당 내재가치 손익에 비례하기를 바란다.
그러려면 버크셔 주식의 내재가치와 시장가격의 관계가 늘 일정해야 하고, 우리 바람대로라면 1대1이어야 한다. 다시 말해 우리는 버크셔 주가가 높기보다는 적정하기를 바란다.
물론 찰리와 나는 주가를 좌지우지할 수 없다. 하지만 우리의 정책과 소통으로 소유주들이 정보를 바탕으로 합리적으로 행동하도록 이끌 수는 있고, 그러면 주가도 자연히 합리적인 수준에 머물게 된다. 고평가도 저평가만큼 나쁘다는 우리의 방침이 서운한 주주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동업자의 투자 실수가 아니라 회사의 성장에서 이익을 얻으려는 장기 투자자를 끌어들이는 데는 이 방식이 가장 좋다고 우리는 믿는다.
내재가치
이제 앞서 언급했고 앞으로 연차보고서에서도 자주 보게 될 용어 하나를 살펴보자.
내재가치는 무엇보다 중요한 개념이다. 투자 대상과 사업의 상대적 매력을 평가하는 유일하게 논리적인 방법이기 때문이다. 정의 자체는 간단하다. 사업이 남은 수명 동안 벌어들여 꺼내 쓸 수 있는 현금을 현재가치로 할인한 값이다.
하지만 계산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정의에서 보듯 내재가치는 정확한 숫자가 아니라 추정치이고, 금리가 움직이거나 미래 현금흐름 전망이 바뀌면 함께 고쳐야 하는 추정치다. 게다가 똑같은 사실을 놓고도 두 사람은, 찰리와 나 사이에서도, 거의 언제나 조금씩은 다른 값을 내놓는다. 우리가 내재가치 추정치를 공개하지 않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것이다. 대신 연차보고서에는 우리가 직접 내재가치를 계산할 때 쓰는 사실들을 담는다.
한편 주당 장부가치는 정기적으로 보고한다. 계산하기는 쉽지만 쓰임새는 제한적인 숫자다. 이 한계는 우리가 보유한 상장 증권 때문이 아니다. 상장 증권은 장부에 현재 시가로 기록된다. 문제는 경영권을 가진 자회사들이다. 이들의 장부가치는 내재가치와 크게 동떨어질 수 있다.
그 차이는 위로도 아래로도 벌어질 수 있다. 1964년을 예로 들면, 당시 버크셔의 주당 장부가치가 19.46달러였다는 것은 확실했다. 하지만 이 숫자는 회사의 내재가치를 크게 부풀린 것이었다. 회사의 자원이 전부 돈이 안 되는 섬유 사업에 묶여 있었기 때문이다.
섬유 자산은 사업을 계속한다고 가정하든 청산한다고 가정하든 장부에 적힌 가치에 미치지 못했다. 그런데 지금 버크셔의 상황은 정반대다. 이제는 장부가치가 내재가치에 한참 못 미친다. 우리가 경영권을 가진 기업 상당수가 장부가치보다 훨씬 큰 가치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실상을 다 보여주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장부가치를 보고하는 이유가 있다. 크게 과소평가되어 있기는 해도, 지금으로서는 버크셔의 내재가치 흐름을 대략 따라가는 지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즉 어느 해든 장부가치의 변동률은 그해 내재가치의 변동률과 꽤 비슷할 가능성이 크다.
장부가치와 내재가치가 어떻게 다른지는 대학 교육이라는 투자를 떠올리면 어느 정도 감이 온다. 교육에 든 비용을 '장부가치'라고 해보자. 이 비용을 정확히 따지려면, 학생이 취업 대신 대학을 택하면서 포기한 소득까지 넣어야 한다.
여기서는 교육이 주는 소중한 비경제적 혜택은 일단 접어두고 경제적 가치만 따져보자. 먼저 졸업생이 평생 벌어들일 소득을 추정하고, 교육을 받지 않았다면 벌었을 소득 추정치를 뺀다. 그러면 교육 덕분에 더 버는 초과 소득이 나온다. 이를 적절한 이자율로 졸업일 기준까지 할인한다. 그렇게 나온 금액이 교육의 경제적 내재가치다.
어떤 졸업생은 교육의 장부가치가 내재가치보다 크다는 걸 알게 된다. 교육비를 댄 사람이 본전을 뽑지 못했다는 뜻이다. 반대로 내재가치가 장부가치를 훌쩍 넘는 경우도 있다. 자본을 현명하게 투입했다는 증거다. 어느 쪽이든 분명한 사실은 하나다. 장부가치로는 내재가치를 가늠할 수 없다.
버크셔의 경영
마지막으로 버크셔의 현재와 미래 경영에 관해 이야기하며 글을 맺으려 한다.
첫 번째 원칙에서 밝혔듯 찰리와 나는 버크셔의 업무집행 파트너다. 하지만 힘든 일은 전부 자회사 경영자들에게 맡긴다. 사실상 손을 떼다시피 할 만큼 권한을 넘긴다. 버크셔 직원은 약 4만 5,000명인데 본사 인원은 고작 12명이다.
찰리와 나는 주로 두 가지 일을 한다. 자본 배분, 그리고 핵심 경영자들을 챙기고 뒷받침하는 일이다.
경영자 대부분은 간섭받지 않고 사업을 꾸려갈 때 가장 행복해하며, 우리도 대개 그렇게 둔다.
그래서 그들은 운영과 관련한 모든 결정을 내리고, 사업에서 남은 현금을 본사로 보내는 일까지 책임진다. 현금을 우리에게 보내니, 직접 그 돈을 굴려야 했다면 찾아왔을 온갖 유혹에 흔들리지 않는다. 게다가 찰리와 나는 어떤 경영자가 자기 업계 안에서 찾을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다양한 투자 기회를 접한다.
우리 경영자 대부분은 이미 따로 큰 부를 일군 사람들이다. 그러니 그들이 골프나 낚시 대신 버크셔에서 일하기를 택하도록 분위기를 만드는 건 우리 몫이다. 그러려면 그들을 공정하게, 우리가 그 자리에 있었다면 받고 싶었을 방식으로 대해야 한다.
자본 배분은 찰리와 내가 둘 다 즐기는 일이고, 그동안 쓸 만한 경험도 꽤 쌓았다. 대체로 이 분야에서는 흰머리가 흠이 되지 않는다. 돈을 굴리는 데 날랜 운동 신경이나 단단한 근육은 필요 없으니까(천만다행이다). 머리만 제대로 돌아간다면 찰리와 나는 지금까지처럼 계속 일할 수 있다.
내가 세상을 떠나면 버크셔의 소유 구조는 바뀌겠지만 흔들리지는 않을 것이다.
첫째, 유증과 세금을 처리하려고 팔아야 할 주식은 내 보유분의 약 1%에 불과하다.
둘째, 나머지는 아내 수전이 나보다 오래 살면 아내에게, 그렇지 않으면 가족 재단으로 간다. 어느 쪽이든 버크셔에는 지금 우리가 따르는 것과 같은 철학과 목표를 지닌 지배주주가 남는다.
그때가 되면 버핏 가문은 경영에서 물러나 경영자를 뽑고 감독하는 역할만 맡는다. 그 경영자가 누가 될지는 물론 내가 언제 세상을 떠나느냐에 달렸다. 하지만 경영 구조는 미리 그려볼 수 있다.
기본적으로 내 역할을 둘로 나눠 한 사람은 투자를, 다른 한 사람은 운영을 맡는다. 새로운 인수 건이 생기면 두 사람이 힘을 합쳐 결정을 내린다. 두 경영자는 이사회에 보고하고, 이사회는 지배주주의 뜻을 따르며, 지배주주의 이해관계는 다시 여러분의 이해관계와 맞닿아 있다.
이런 경영 구조가 당장 필요해지더라도, 두 자리에 누구를 앉힐지는 내 가족과 몇몇 핵심 인사가 이미 알고 있다. 두 사람 모두 지금 버크셔에서 일하고 있고, 내가 전적으로 믿는 이들이다.
승계 문제는 앞으로도 가족과 계속 공유하겠다. 버크셔 주식은 내 재산의 거의 전부이고, 내가 떠난 뒤에도 꽤 오랫동안 아내나 재단 자산에서 그만큼의 비중을 차지할 것이다. 그러니 내가 승계 문제를 얼마나 신중하게 고민해왔는지는 믿어도 좋다.
지금까지 버크셔를 이끌어온 원칙이 내 뒤를 잇는 경영자들에게도 길잡이가 되리라는 점 역시 믿어도 좋다.
우울한 이야기로 끝맺고 싶지는 않으니 한마디 덧붙인다. 나는 요즘처럼 몸 상태가 좋았던 적이 없다. 버크셔를 경영하는 일이 정말 즐겁다. 인생을 즐기면 오래 산다는 말이 맞는다면, 므두셀라의 장수 기록도 안심할 수 없을 것이다.
*므두셀라: 구약성경 창세기에 나오는 인물로 969세까지 살았다고 전해진다. 서구에서 장수의 상징으로 쓰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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