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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BICUE CHRONICLE No.003 “영원히 항해할 운명”

2026.10.14 | 조회 74 |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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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SOPHIE HONG

황량한 물가에,

원대한 생각에 잠긴 그가 서서

먼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알렉산드르 푸시킨, 「청동 기마상」(1833), 서시 도입부

 

 

Olfactory Study No.006 “Destined to Sail Forever”

 

첨부 이미지

마지막 장면을 보기 위해 보고 또 보는 영화가 있으신가요? 저에게는 《첨밀밀》(1996)이 그렇고, 《러시아 방주》(2002)가 그렇습니다. 《첨밀밀》 이야기는 가까운 미래의 언젠가로 미루고, 오늘은 《러시아 방주》의 마지막 장면에 대하여 이야기합니다.

알렉산더 소쿠로프 감독의 《러시아 방주》는 원테이크로 촬영된 작품으로도 유명합니다. 96분 동안 카메라는 단 한 번도 멈추지 않으며 에르미타주 미술관의 방들을 지나갑니다. 그러는 사이 수천 명의 배우들과 오케스트라 단원들은 필사의 호흡을 맞추어야 했고, 몇 번의 시도 끝에 영화사의 기적을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언젠가부터 저는 이 전설적인 성취의 이면을 봅니다. 좀처럼 숨 고를 틈을 주지 않으며 방에서 또 방으로, 휩쓸려가듯 휘청이는 곡선을 그리며 이동하는 카메라의 움직임이, 제가 살아온 지난 20여 년의 세월과 너무나도 닮아 있기 때문입니다. 해야 할 일을 마치면 그 다음의 해야 할 일이 쉼 없이 이어지고, 지나온 시간의 여운을 품어 볼 시간을 갖지 못한 채 다음의 시간이 쉼 없이 펼쳐지는 생활 속에서는 죽을 것처럼 아파도 컷을 외칠 수 없습니다.

화자를 이 현기증 나는 서사 안으로 이끄는 인물은 ‘유럽인(The European)’이라 불리는 남성으로, 그는 19세기의 러시아를 여행하며 신랄한 기록을 남긴 프랑스 외교관이라는 소문이 있습니다. 표트르 대제의 시대와 예카테리나의 연극, 니콜라이 1세의 접견, 혹한 속의 포위전이 펼쳐지는 장소들로 화자를 안내하는 그는 때때로 권태로워 보이기도 합니다. 어떤 사연으로 이 궁전 안을 떠도는 유령이 된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어쩌면 그는 미술관이라는 장소를 상징하는 존재인 듯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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