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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ÉMOIRES: 곱게 나이 드는 길

2013. 11. 15

2026.10.13 | 조회 17 |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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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SOPHIE H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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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꿈이 많았습니다. 아주 어려서는 잠 자는 동안 19 세기의 독일로 가서 슈만을 만나곤 했을 만큼 피아노를 좋아했습니다. 그와 만나는 장소였던 카페는 노란색 외벽의 건물 1 층에 위치해 있었습니다. 아치형의 출입문이 열리고 닫힐 때마다 이따금씩 마차를 끄는 말발굽 소리가 새어들었고, 젊은 음악가들의 피아노 연주 소리가 거리로 새어 나갔지요. 저는 네 살 무렵부터 피아노를 쳤고, 여덟 살 즈음에는 슈만을 배우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좀처럼 실력이 늘질 않더군요. 난이도가 특별히 높았던 것도, 연습을 게을리 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런 답답한 시간이 계속되던 것이 칭찬과 격려에 익숙했던 나이에 스트레스였는지, 꿈에서라도 작곡가를 찾아가 무엇이든 물어보고 싶었던 게 아니었나 합니다.

언제나 담배 연기가 자욱했던 이 카페에서 저를 반갑게 맞아주었던 슈만의 얼굴이 생생합니다. 여덟 살 꿈속의 슈만은 '좀 부족하면 어때 꼬마야. 괜찮아!'라며 웃어주던 따뜻하고 유쾌한 사람이었습니다. 한 번도 기대했던 답을 듣지 못했지만, 이만큼 나이를 먹고 돌아보니 그가 옳았습니다. 슈만의 음악에는 여덟 살 어린 아이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깊은 내면의 성찰이 담겨 있으니 말이지요. 우리가 다시 만난다면, 그는 여전히 같은 자리에서 한결같은 모습으로 저를 위로해 줄까요? 아니면 이제는 어른이 된 저에게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해야 할 만큼 버거웠을 인생의 무게를 조금이라도 내비쳐 줄까요? 어디에도 흔적을 남기지 않은 만남이었지만, 슈만은 저에게 아주 오랫동안 만나지 못한 사람인 듯 느껴집니다.

학창시절에는 화가가 되고 싶었습니다. 수업을 밥 먹듯 땡땡이 치고 박물관과 미술관에서 긴 시간을 보내곤 했지요. 그러면서 아름다운 삶을 살았던 예술가들의 이야기에 빠져들었고, 미대에 진학하는 대신 미술사 전공을 선택했습니다. 가진 것 없이도 마음껏 꿈을 꾸고, 오직 꿈만을 좇으면서도 밝은 앞날을 그릴 수 있었던 시절이 문득 사무치게 그립습니다.

요즈음은 오래 전 배우로 활동하시기도 했던 문숙 선생님의 저서 『문숙의 자연식』, 『문숙의 자연치유』를 운명처럼 만나, 몸과 마음의 건강은 물론 지역의 먹거리와 환경을 생각하는 자연식(Macrobiotics)을 공부하는 중입니다. 자연식의 전체론적 접근에 담긴 통찰의 깊이에 매일 새롭게 감탄하고 있습니다. 지극히 단순하기에 더욱 심오한 자연식의 철학을 언젠가 저의 언어로 이야기할 수 있게 된다면, 요리사로 살아보고 싶기도 합니다.

하지만 저에게 단 하나의 꿈만을 이야기하라 한다면, 망설임 없이 ‘예쁜 할머니가 되는 것’이라 답할 것입니다. 계절마다의 간소한 옷가지, 책 몇 권, 작은 소파 하나, 오래된 화분과 그릇들, 그저 버려도 좋을 보풀

가득한 담요, 손가락에는 평생 끼고 산 은가락지 하나. 이런 것들이 제 살림의 전부였으면 좋겠어요. 서른 한 살 나의 살림을 오늘부터 비워 나간다 해도 결코 쉽게 이룰 수 없을 소망이겠지만, 적어도 소멸에 관한 우주의 우주의 이치를 크게 거스르지 않으며 살아갈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곱게 나이 들어 가는 게 저의 가장 큰 꿈입니다. 하지만, 겨우 서른이 되었을 무렵의 제 모습은 이미 조금도 곱지 않았습니다. 급격한 스트레스로 온몸이 불시에 마비되는 증상이 생겨났고, 결국 집안이 어려워진 상황에서도 회사를 그만둘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누구보다 생활력이 강했던 제 몸이 그리 쉽게 망가질 리 없다는 안일한 생각이 병을 더욱 악화시켰던 것입니다. 검사 결과 저는 심각한 빈혈을 앓고 있었고, 갑상선 기능 항진증과 위궤양은 장기적인 치료가 필요했을 정도로 심각한 상태였습니다.

지난 시간을 돌아보기 시작한 것은 그 무렵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앞으로의 삶에서 소중히 여겨야 할 가치들을 처음으로 진지하게 고민하며 이런 것들을 다짐했지요. 곱게 나이 들기 위해 세운 원칙이었습니다.

생활을 단순하게 하자.

음식을 건강하게 먹자.

살림을 간소하게 하자.

요즈음의 저는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시간을 귀하게 여기고 반복되는 일상에 귀한 의미를 두기 위해 노력합니다. 더 이상 쓸모가 없는 물건은 번잡스러운 생각을 정리하고 비우듯 집 앞뜰에 ‘원하는 만큼 가져가세요’라는 문구와 함께 내어놓기도 하지요. 새롭게 다짐한 것들을 나름의 방식으로 실천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2013. 11. 15)

 

홍윤경, 『메모아르』(수토메, 2023)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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