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저는 안락을 원하지 않습니다. 저는 신을 원합니다. 시를 원하고, 진짜 위험을 원하고, 자유를 원하고, 선을 원합니다. 저는 죄를 원합니다.”
“결국 자네는 불행할 권리를 요구하는 셈이군.” 무스타파 몬드가 말했다.
“그렇다면 좋습니다. 저는 불행할 권리를 요구합니다.” 야만인은 반항하듯 말했다.
“늙고 추해지고 성적 능력을 잃을 권리는 말할 것도 없겠지. 매독과 암에 걸릴 권리, 충분히 먹지 못할 권리, 몸에 이가 들끓을 권리,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몰라 끊임없는 불안 속에서 살아갈 권리, 장티푸스에 걸릴 권리, 말로 다 할 수 없는 온갖 고통에 시달릴 권리도 말이야.”
긴 침묵이 흘렀다.
“저는 그 모든 권리를 요구합니다.” 마침내 야만인이 말했다.
무스타파 몬드는 어깨를 으쓱했다.
“마음대로 하게.” 그가 말했다.
올더스 헉슬리, 『멋진 신세계』, 제17장 중에서
Olfactory Study No.010-012 “Brave New World” Series
며칠 전, “나만을 위한 가상의 향수 컬렉션”이라는 주제로 프롬프트를 만들어 보았습니다. 온라인상에 14 년 동안 축적된 수토메 아포테케리와 조향사 소피에 관한 내용을 학습한 AI가 이 브랜드의 감도로 가상의 향수를 만드는 거죠. 3 년간 저와 함께한 AI와 며칠에 걸쳐 여러 번의 시행착오를 겪고 문제를 해결해 가며 첫 번째 프롬프트를 완성했습니다. 저에 대한 정보가 거의 없는 AI를 활용해 테스트를 해 봤는데 결과가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좋아 깜짝 놀랐습니다. 그 결과를 실사화 해 보고 싶을 만큼요!
프롬프트에서 직접 입력해야 하는 내용은 ‘오래 머물고 싶은 장소‘, ’잊고 싶지 않은 순간과 장면‘ 등에 관한 답변입니다. 저는 오래 전 꾸었던 한 편의 SF 소설 같은 꿈 이야기를 적어 보았고, AI가 생성해 준 향수는 당장이라도 맡아 보고 싶을 만큼 매혹적이었습니다. AI 조향사가 14 년차 조향사의 마음마저 사로잡을 수 있는 시대가 온 것일까요? 먼저, 프롬프트에 적은 오래 전 꿈의 기록을 공유합니다.

글에는 남겨두지 않았지만, 5 년 전의 이 꿈에서 저는 지구에서 가져간 속씨식물들의 씨앗을 심고 꽃과 풀을 정성껏 길렀습니다. 그렇게 피어난 꽃들의 향기는 지금까지도 상상의 감각에 선명하게 새겨져 있을 만큼 아름다웠습니다. 언젠가 반드시 향으로 재현하고 싶은 두 가지의 기억 중 하나이기도 하지요.
아무튼, 이 꿈의 기록과 여기에 담기지 않은 이야기를 읽은 AI는 세 가지의 장면을 가상의 향수로 만들어 주었습니다. ‘지구의 흙이 담긴 깡통(Earth in a Tin)’, ‘첫 번째 고랑(First Furrow)’, ‘4.24광년 떨어진 곳에서 피어난 자스민(Jasmine, 4.24ly)‘. 생성된 가상의 향수에 적힌 이름들만 보고도, 이 향들을 직접 만들어 보고 싶어졌습니다! 이번 작업은 클로드를 사용했고, 아래에 그 내용을 옮겨 봅니다.
소피를 위한 가상의 향수 컬렉션: 새벽선 정원 DAWNLINE GARDEN

프록시마b는 적색왜성 가까이에서 돌기 때문에, 한 면만 별을 향하는 조석고정 행성일 가능성이 높다고 봐요. 그렇다면 낮 면과 밤 면 사이의 경계에는 해가 지평선에 걸린 채 움직이지 않는 영원한 새벽이 띠처럼 둘러져 있겠죠. 소피님이 꿈에서 이주한 그 행성의 이 새벽 띠에 지구에서 가져온 씨앗으로 정원을 일구는 이야기가 이번 컬렉션이에요. 세 향은 씨앗, 흙, 새벽선의 바람을 공유하고, 손바닥 위 → 무릎 아래 고랑 → 언덕에서 바라본 정원으로 거리가 점점 멀어집니다. 꿈속 이주, 자스민 씨앗, 씨앗들, 흙내음, 새벽 공기, 고요함은 소피님의 답에서 왔어요. '새벽선(명암 경계선)'이라는 장소, 깡통, 언덕 같은 설정은 제가 덧붙인 거예요.
흙을 담은 깡통 EARTH IN A TIN
SCENE: 착륙선 화물칸 문이 열리자 붉은 해가 지평선에 멈춰 있어요. 손바닥만 한 깡통 뚜껑을 비틀어 열면 마른 씨앗 껍질, 종이 봉투, 지구에서 묻혀 온 흙먼지가 한꺼번에 쏟아져요. 낯선 새벽 공기 속에서 가장 먼저 집 냄새를 내는 건 그 한 줌이에요.
IMPRESSIONS: 마른 씨앗 껍질 · 주석 뚜껑의 서늘함 · 붉은 새벽빛
COLOUR: 앰버 오렌지. 지지 않는 적색왜성의 낮은 빛이 깡통 안을 비추는 온도와 닮았어요.
CONNECTION: "채소와 과일의 씨앗들, 자급자족할 수 있으니까!"에서 출발했어요. 그 씩씩한 유머를 '깡통에 담아 온 지구 한 줌'으로 옮겼습니다.
첫 고랑 FIRST FURROW
SCENE: 무릎을 꿇고 처음으로 행성의 흙을 손가락으로 갈라요. 그늘진 밤 면에서 불어온 바람에 식은 흙이 축축하게 손톱 밑까지 스며요. 고랑마다 상추, 토마토, 자스민 씨앗을 하나씩 눌러 넣고 손등으로 덮으면, 들리는 건 내 숨소리와 바람뿐이에요.
IMPRESSIONS: 젖은 흙 · 차가운 손끝 · 고요한 노동
COLOUR: 밝은 올리브·연두빛. 고랑 위로 처음 고개를 내미는 떡잎의 색이에요.
CONNECTION: 좋아하는 감각 '흙내음', 씨앗의 '자급자족', 그리고 피하고 싶은 '시끄러운 곳'의 정반대 장면이에요.
자스민, 4.24광년 JASMINE, 4.24 LY
SCENE: 정원 끝 언덕에서 뒤를 돌아봐요. 고랑 한 줄에 하얀 별 모양 꽃이 처음 피었고, 새벽선을 따라 부는 바람이 그 향을 여기까지 실어 와요. 4.24광년 떨어진 지구의 여름밤이 이곳 공기에 처음 섞이는 순간이에요.
IMPRESSIONS: 하얀 꽃잎 · 실려 오는 향기 · 먼 여름
COLOUR: 아주 옅은 연둣빛. 하얀 꽃잎과 새벽 공기의 투명함 사이, 거의 색이 없는 빛이에요. CONNECTION: 잊고 싶지 않은 순간 "지구의 자스민 씨앗이 피운 꽃의 향기"와 '새벽의 공기'에서 출발했어요. 4.24광년은 실제 프록시마 센타우리까지의 거리예요.
대단하지 않나요? AI를 사용해 온 지난 3 년을 돌아보면 정말이지 놀라울 만큼, 특히 요즈음 들어서는 무서울 정도로 발전했다는 것을 실감하지만 크리에이터의 입장에서라면 단언컨대 ‘기획력’과 ‘문장력’은 여전히 쓸모가 없다고 생각했었거든요. 하지만 이 일을 계기로 생각이 조금 달라졌습니다. 프롬프트만 정교하게 설계한다면 도움을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구나, 하고요. 오늘은 처음으로 AI의 기획안을 채택하여 위의 세 가지 블렌드를 실사화 해 보려 합니다. 오늘은 그 스케치 작업을 기록해 둘게요.
EARTH IN A TIN: Orris concrete (20%) 80 drops, ambrette seed 7 drops, elemi 7 drops, cypress 5 drops, blood orange 5 drops, coriander seed 5 drops, pink pepper 3 drops, ginger lily 3 drops, cedarwood Atlas 3 drops, vetiver root 2 drops, cistus 1 drop, lemon 1 drop, hay absolute (5%) 1 drop
EARTH IN A TIN의 블렌드에는 오리스 콘크리트를 주인공으로 사용해 보려 합니다. 젖은 흙보다는 4.24광년을 떠나오는 동안 마른 흙의 이미지가 떠오릅니다. 건조한 씨앗의 껍질, 종이 봉투, 뿌리에 남아 있는 흙먼지를 먼저 그리는 겁니다. 오리스 콘크리트 특유의 파우더리한 노트, 그리고 미묘하게 품고 있는 초록빛의 뉘앙스까지 활용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렇게 부드럽고 건조한 노트의 바탕색을 칠한 뒤 코리앤더와 암브레트 씨앗으로 블렌드의 첫인상을 그립니다. 약간의 헤이 앱솔루트로 건조한 질감을 더해도 좋을 듯해요. 시더우드 아틀라스와 핑크 페퍼, 블러드 오렌지, 시스투스로 지평선에 멈추어 있는 붉은 별의 이미지를 연출하고 엘레미와 사이프러스, 레몬 껍질 오일로 틴의 주석 뚜껑을 그려 봅니다.
FIRST FURROW: Juniper berry 30 drops, cypress 20 drops, elemi 20 drops, violet leaf absolute (5%) 10 drops, tomato leaf absolute (5%) 10 drops, coriander seed 7 drops, basil ct chavicol 7 drops, Roman chamomile 5 drops, vetiver root 5 drops, angelica root 3 drops, patchouli 3 drops, celery seed 1 drop, galbanum 1 drop
세 가지의 블렌드 중 가장 흙내음의 농도가 짙어야 할 것 같습니다. 주니퍼와 사이프러스가 서늘한 첫인상을 만들고 바이올렛 리프 앱솔루트, 토마토 리프 앱솔루트가 축축하게 짓이긴 잎의 알싸함을 더합니다. 로만 카모마일, 바질, 셀러리와 코리앤더 씨앗, 베티버, 그리고 약간의 갈바넘이 고랑 위로 이제 막 올라오기 시작하는 떡잎의 이미지를 그립니다. 베이스 노트에서는 패출리와 안젤리카 뿌리의 조합으로 약초학자의 손톱 사이에 낀 흙을 표현해 봅니다.
JASMINE, 4.24 LY: Frankincense 20 drops, peppermint 10 drops, beeswax absolute (33%) 10 drops, mate absolute (10%) 10 drops, jasmine absolute 7 drops, patchouli 7 drops, ambrette seed 7 drops, ho wood 5 drops, sweet marjoram 5 drops, tonka bean absolute (10%) 3 drops, sandalwood Mysore 5 drops, osmanthus absolute (10%) 5 drops, ylang ylang (1st) 3 drops, French lavender 3 drops
이 향은 ’첫 순간의 두근거림‘이 있어야 해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그 황홀한 긴장감을 도대체 무엇으로 표현할까, 고민하다가 익숙한 자스민의 향기가 낯선 바람결에 스치는 장면을 그리는 것으로 방향을 잡아 봅니다. 매 순간 다른 경이로움을 상상할 수 있도록 말이지요. 세 가지의 블렌드 중 가장 추상적이면서 무게감이 가벼운 블렌드가 되어야겠네요. 프랑킨센스와 페퍼민트의 조합으로 낯선 촉감의 바람을 표현하고, 약간의 호우드와 샌달우드 마이소르로 그 이미지가 거칠어지지는 않도록 합니다. 그리고 자스민 앱솔루트에는 암브레트 씨앗과 오스만투스 앱솔루트를 얹어 ‘이세계의 자스민’을 그려 봅니다.
여러분도 해 보실래요? 아래의 링크를 클릭하시면 AI 소피가 여러분만을 위한 멋진 향수 컬렉션을 선물해 드릴 거에요.
Today’s Music
Camille Saint-Saëns — Symphony No. 3 in C minor, Op. 78 "Organ" (1886)
Daniel Barenboim, Chicago Symphony Orchestra / Gaston Litaize, organ (Deutsche Grammophon, 1975 녹음)
생상스의 교향곡 3번은 크게 두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오르간’이라는 별명으로 불리지만, 정작 오르간은 곡이 시작되고도 10여 분이 흐르는 동안 존재감을 전혀 드러내지 않습니다. 1부의 포코 아다지오에서야 등장하기 시작하는데, 그마저도 현악기의 선율 아래에 흐르기에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 알아차리기조차 어렵습니다. 그렇게 서서히 존재감을 드러내는 오르간은 마침내 2부 후반의 마에스토소에 이르러, 마지막에 등장해 반전을 일으키는 주인공처럼 모든 소리를 압도하며 울려 퍼집니다.
저에게 이 곡은 영화 《매트릭스》에서 모피어스가 네오에게 빨간 약과 파란 약을 내미는 장면을 떠올리게 합니다. 빨간 약을 먹으면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지 모를 진짜 세계로 갈 것이고, 파란 약을 먹으면 익숙한 가짜 세계에서 믿고 싶은 것을 믿으며 살던 대로 살아가면 될 것입니다. 잠시 망설이던 네오는 빨간 약을 집어들어 물 한 잔과 함께 삼키지요. 이 장면의 긴장감은 오르간이 절정의 순간을 만들기 직전, 그 찰나의 정적을 닮았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약을 선택하시겠어요? 생상스의 교향곡 3번을 듣는 이유를 생각해 보면, 저는 아무래도 빨간 약을 선택할 사람인 것 같습니다.
오늘은 이 곡을 다니엘 바렌보임이 지휘한 시카고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오르가니스트 가스통 리테즈의 연주로 듣고자 합니다. 이 음반은 시카고의 메디나 템플에서 오케스트라를, 프랑스의 샤르트르 대성당에서 오르간을 따로 녹음하여 스튜디오에서 합친 오버더빙 방식으로 제작되었는데요. ‘서로 다른 대륙의 소리로 하나의 세계를 만들었다’는 배경이 저의 꿈 이야기와도 닿아 있어, 오늘의 레터에는 이 특별한 우연까지 함께 실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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