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같은 공간, 같은 시간에 있을 때 대화를 하고 서로의 눈을 바라보고 피부를 스치면서 감정과 생각을 교환한다. 이런 만남과 교환의 네트워크를 통해 성장한다. 하지만 사실 이러한 교환을 위해 굳이 같은 공간과 같은 시간에 있을 필요는 없다. 서로를 연결하는 생각과 감정들은 바다를 건너는 것도 어렵지 않고 수십 년의 세월을, 어떤 때는 심지어 수 세기를 건너뛸 수도 있다.
카를로 로벨리,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이중원 옮김, 쌤앤파커스, 2019.

삶은 고통으로 가득합니다. 그리고 그 고통을 이기게 하는 힘은 오직 다정함에서 비롯되지요. 어른이 되어간다는 건 그 진리를 받아들이는 과정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저에게 다정함은 형식보다는 태도의 언어입니다. 따뜻한 말, 작은 배려, 생색내지 않는 호의와 같은 ‘느슨한 연대’에 가깝다고 할까요?
지난 1월 1일, 저는 새해의 첫 게임으로 《Journey》라는 작품을 플레이했습니다. 이 게임에서 플레이어는 중세의 수도자를 연상케 하는 모습으로 여행자가 되어 아득히 먼 곳에서 빛나고 있는 산을 향해 걸어갑니다. 묵언수행이라도 하듯 대사 한마디 없이 메마른 사막과 폐허, 눈보라 속을 홀로 걷고 또 걷습니다. 특정 구역에서 길을 잃어 한동안 벗어날 방법을 찾지 못하고 있으면, 의미를 잃은 채 그저 반복할 뿐인 생활 속에서 불현듯 스치는 생각처럼 ‘이게 맞나?’ 싶습니다. 그리고, 역시 삶이 그렇듯, 헤매는 동안 우연히 같은 곳을 지나는 누군가를 만나게 되기도 합니다. 게임은 상대에 대한 정보를 주지 않습니다. 하지만 가상의 세계에서 만난 플레이어들은 그렇게 얼마간 곁에서 걷는 동안 함께 길을 찾고, 먼저 알아낸 것에 대한 정보를 나눕니다. 키보드를 조작하여 서로에게 말을 걸듯 소리를 내기도 하지요. 다정하게 건네는 인사는 울림이 되고, 울림이 서로에게 닿으면 함께 더 멀리 날 수 있게 되기도 한답니다. 게임이 진행되는 동안 플레이어는 몇 번이고 익명의 동행을 반갑게 만나고, 또 어느새 헤어집니다. 그렇게 여정을 마치면 크레딧이 다 올라간 뒤 길 위에서 만난 여행자들의 이름이 하나씩 떠오릅니다.
우리는 삶이라는 긴 여행의 길목마다 만난 사람들과 한 시절, 혹은 그보다 긴 세월 나란히 걸으며 지혜를 나누고, 서로의 곁을 지키고, 함께 성장합니다. 다정한 순간들은 그렇게 쌓여가는 것이겠지요. 행복이란 게 뭐 별거 있나요. 돌아보면, 지금껏 살아오며 만난 모든 사람들이 제 삶에서 저마다의 의미가 되어 주었고, 때가 되면 떠났습니다. 언젠가 찾아올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 《Journey》의 엔딩처럼 삶의 단 한 지점에서 스친 고마운 인연의 얼굴까지도 모두 기억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P.S. 오래전, 《Journey》의 개발자 제노바 첸은 소피아라는 이름의 소녀에게서 받은 편지 한 장을 공개한 일이 있었습니다. 제가 이 게임을 처음 알게 된 사연이기도 하지요. 소피아는 암으로 세상을 떠난 아버지와의 마지막 날들에 이 게임을 함께 즐겼다고 합니다. 아버지를 잃은 후 한동안은, 타이틀 화면조차 눈물 없이 넘길 수 없었을 만큼 말이지요. 편지에는 이 게임이 아버지의 마지막 여정을 닮아 더욱 애틋하고, 가장 알맞은 때에 두 사람이 이 게임을 만난 것에 감사한다는 말도 적혀 있었습니다. 첸은 게임의 출시가 늦어지는 과정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었지만, 소피아의 이야기를 듣고 그동안의 수고를 보상받았다고 느꼈다는 말을 덧붙였습니다. 이 일화는 언제나 제가 버텨온 지난 14년의 시간을 떠올리게 합니다. 지금 이 글을 읽어 주시는 한 분 한 분의 여러분이 계셨기에 오늘의 저와 수토메 아포테케리가 있다는 것에 새삼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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