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주간모기영 145호

[최은의 책과 영화] <프로이트의 라스트 세션>(2024)과 아맨드 M. 니콜라이의 『루이스 vs. 프로이트』(홍성사, 2004)

2024.09.09 | 조회 28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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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모기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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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의 책과 영화]

<프로이트의 라스트 세션>(2024)과 아맨드 M. 니콜라이의 『루이스 vs. 프로이트』(홍성사, 2004)

아마도 루이스와 프로이트는 우리 내면의 갈등을 대변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마음 한편에서는 권위를 거부하며 프로이트와 함께 “나는 항복하지 않겠다”라고 말하지만, 다른 한 편에서는 루이스처럼 우리 내면에 깊이 자리잡은, 절대자와의 만남을 향한 갈망을 깨닫는다.

아맨드 M. 니콜라이, 『루이스 vs. 프로이트』(홍성사, 2004), 326쪽.

 생각이 다르고 믿는 바가 달라도, 심지어 그것이 과학과 종교적 확신의 문제라고 해도 서로 농담을 건네며 멋진 대화를 나눌 수 있다면 세상이 조금 더 살만해질까요. 맷 브라운의 영화 <프로이트의 라스트 세션>은 세대와 나라와 종교가 다른 20세기의 두 지성이 만난다는 멋진 상상으로부터 시작합니다. 

 1939년 9월 3일, 히틀러가 폴란드를 침공한 지 이틀 후이고 영국의 참전으로 제2차 세계대전이라는 세계사적인 비극이 시작되는 시점에 영화도 시작됩니다. 정신분석학의 창시자인 프로이트(안소니 홉킨스)는 빈에서 나치를 피해 런던으로 떠나왔고 16년째 앓고 있는 구강암 말기증세로 고통이 심했습니다. 83세의 프로이트는 그럼에도 자신의 상황과 운명을 스스로 결정지을 수 있다고 주장하고, 그렇게 할 거라는 고집을 놓지 않습니다. 
 프로이트의 연락을 받고 그를 만나러 온 41세 C.S.루이스(매튜 구드)는 어린 시절 신앙을 버리고 무신론자로 살다가 30대 초반에 회심한 후 유명한 기독교변증가가 되어 있었어요. 무신론자 시절 루이스는 무신론을 방어하기 위해 프로이트의 이론을 적극적으로 활용했고, 회심한 이후에는 프로이트를 정면으로 논박하는 글들을 썼어요. 『천로역정』의 패러디인 『순례자의 귀향』에서는 ‘지기스문트’라는 남성을 등장시켜서 프로이트 심리학을 풍자하기도 했죠. 이 이름은 20세까지 프로이트의 본명이었습니다. 

<프로이트의 라스트 세션>(맷 브라운, 2024) [이미지출처: 씨네21]
<프로이트의 라스트 세션>(맷 브라운, 2024) [이미지출처: 씨네21]

 무신론자인 지그문트 프로이트와 최고의 기독교 변증가 C.S. 루이스가 대화하는 장면을 처음 상상한 사람은 정신의학자인 아맨드 M.니콜라이였어요. 니콜라이는 하버드에서 30년 가까이 루이스와 프로이트의 대립되는 세계관을 비교하는 강의로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그는 이 내용을 “The Question of God”이라는 책으로 펴냈는데요. 한국에서는 『루이스 vs. 프로이트』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습니다. 
 니콜라이의 책은 미국의 극작가 마크 세인트 저메인이 쓴 희곡 <라스트 세션>의 근간이 되었습니다. 2010년부터 뉴욕에서 장기간 상연되었고, 한국에서도 2020년 초연한 이후 꾸준히 상연되며 호응을 얻어 온 2인극입니다. 영화 <프로이트의 라스트 세션>은 따라서 연극 <라스트 세션>과 책 『루이스 vs. 프로이트』, 두 작품에서 출발한 거지요.  

아맨드 M. 니콜라이, 『루이스 vs. 프로이트』(홍성사, 2004)
아맨드 M. 니콜라이, 『루이스 vs. 프로이트』(홍성사, 2004)

 『루이스 vs. 프로이트』에서 저자가 다루는 프로이트와 루이스의 사상과 세계관은 다음과 같은 키워드들을 경유하고 있습니다. 창조자, 양심, 행복. 성, 사랑, 고통과 죽음 같은 문제들이죠. 신의 존재/부재라는 초월적인 영역으로부터 시작해서 인간의 실존에 이르기까지, 두 사람은 각 주제들에 대해 극명하게 대조되는 관점을 취하면서 논쟁합니다. 
 그런데 특히 영화에서 이러한 접근은 정작 사상의 차이보다 두 사람이 비슷한 고민과 고통을 겪었다는 사실에 더 주목하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정신의학자답게 니콜라이의 책이 두 사람의 사상의 뿌리로 그들의 유년기부터의 경험과 기억, 전기적인 요소들을 비중 있게 다룬 것과 무관하지 않을 겁니다.  

<프로이트의 라스트 세션>(맷 브라운, 2024) [이미지출처: 씨네21]
<프로이트의 라스트 세션>(맷 브라운, 2024) [이미지출처: 씨네21]

 프로이트의 어머니는 아버지의 세 번째 부인이고, 40세인 아버지가 십대인 어머니와 결혼했을 때, 그에게는 이미 손자가 있었습니다. 집안 형편이 넉넉하지 않았고요, 프로이트는 평생 유대인 혐오증의 피해자였어요. 세 살 때까지 어머니 대신 자신을 돌보아주었던 유모가 돌연 집에서 쫓겨난 사건은 어린 프로이트에게 큰 상실이 되었습니다. 유대교 집안이었지만 가톨릭이었던 유모를 따라 어릴 적 프로이트는 교회에 다녔습니다. 이 모든 개인사가 복합적으로 프로이트가 종교와 신을 거부하게 된 원인이 되었을 거라고, 『루이스 vs. 프로이트』의 저자 니콜라이는 조심스럽게 언급하기도 했습니다. 

<프로이트의 라스트 세션>(맷 브라운, 2024) [이미지출처: 씨네21]
<프로이트의 라스트 세션>(맷 브라운, 2024) [이미지출처: 씨네21]

루이스는 아일랜드에서 변호사 아버지와 목사의 딸이었던 어머니 사이에서 모태신앙으로 태어났어요. 가톨릭사회인 벨파스트에서 이방인이나 다름없는 개신교인 가정이었는데요, 프로이트가 어려서 유모를 잃었다면, 루이스는 어머니를 아홉 살에 여읩니다. 아내를 잃고 상심한 아버지가 형과 루이스를 기숙학교에 보냈어요. 여기서 루이스는 가장 어두운 시절을 보냈습니다. 아버지를 떠났듯이 신을 떠나 무신론자가 됐고요. 그리고 서른 살까지 무신론자로 삽니다. 사도바울처럼 극적인 경험은 아니지만, 지성과 깨달음이 루이스를 회심에 이르게 했다고 그는 말했습니다. 

<프로이트의 라스트 세션>(맷 브라운, 2024) [이미지출처: 씨네21]
<프로이트의 라스트 세션>(맷 브라운, 2024) [이미지출처: 씨네21]

프로이트와 루이스는 둘 다 소년 시절부터 아버지와 불화했고, 꽤 오랜 세월을 무신론자로 살았고, 사랑하는 가족의 죽음과 결핍을 경험했으며, 두려움이 무엇인지 잘 아는 사람들이었습니다. 프로이트는 루이스가 어머니를 잃고 아버지와 분리된 경험을 이야기할 때 단번에 그의 결핍과 근원적인 갈망을 알아보고 이해합니다. 소년시절의 경험에서 벗어나는 것이 그렇게도 어렵다고, 그는 말했어요. 그것은 자기 자신에게 하는 말이기도 했을 겁니다. 맷 브라운이 프로이트 역에 안소니 홉킨스를 캐스팅한 것은 탁월한 선택이었습니다. 그는 <쉐도우 랜드>(1993)에서 50대의 C.S.루이스를 연기했던 적이 있지요. 한때 ‘루이스’였던 그가 루이스와 유사한 삶의 경험을 지녔으나 전혀 다른 믿음을 선택한 프로이트가 되어 나타난 거죠. 

<프로이트의 라스트 세션>(맷 브라운, 2024) [이미지출처: 씨네21]
<프로이트의 라스트 세션>(맷 브라운, 2024) [이미지출처: 씨네21]

단, 맷 브라운의 영화가 주목하는 그들의 공통점과 유대감은 이 정도에 그치지 않습니다. <프로이트의 라스트 세션>은 그들이 비밀을 지니고 있었다는 점에서도 비슷하다고 말합니다. 영화에서 프로이트는 말해지지 않은 것, 혹은 말할 수 없는 것이 더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고 했어요. 꿈과 무의식이 그런 것처럼요. 

프로이드에게 그것이 막내딸 안나 프로이트의 동성애 성향과 아버지와의 애착관계의 문제였다면, 루이스에게는 전사한 친구의 어머니였던 무어 부인과의 애매하고 비밀스러운 관계입니다(물론 이 부분은 니콜라이의 책과 저메인의 연극에서 ‘말해지지 않은 것’이기도 하고, 프로이트와 루이스에 대한 연구서들이나 여러 전기들에서 상이하게 설명되는 이슈입니다만). 신랄한 논쟁과 공방을 주고받으면서도 두 사람은 이 문제에 대해서는 함구하고 싶어했습니다. 덕분에 둘이 헤어질 즈음 우리는 그들의 말과 삶을, 그들이 직접 말한 것과 말하지 않은 것 사이의 간극을, 다른 결론을 내린 같은 고민 앞에서 대화의 행간과 서로의 마음을 헤아렸을 두 지성의 품격을 찬찬히 반추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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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큐브 광화문 답사 다녀왔습니다]

제6회 모기영은 11월 21일(목)-24일(일) 씨네큐브 광화문에서 열립니다. 나흘동안의 축제를 잘 준비하기 위해 실무진들은 지난 금요일 극장으로 출동했습니다. 여기서 손님을 맞고 여기에 포토월을 세우고 여기는 담소를 나눌 수 있는 공간으로 준비해볼까, 구석구석을 살피며 살짝 설렜던 것도 같습니다. :) 함께 기대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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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도 혹시 그러신가요. 기독교가 다시 비웃음과 조롱의 대상이 되어 연일 회자되는 것을 보며 저는 요즘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궤변과 우격다짐이 난무하고 무례함이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공공의 무대에 어김없이 기독교인들이 ‘빌런’으로 등장하는 것이 속상하고 부끄럽습니다. 

독립을 독립이라 말하지 못하는 독립기념관장, 노동자 탄압 발언에 앞장서온 고용노동부 장관, 차별금지법과 동성애가 북한공산당 혁명에 이용될 것이라고 말하는 국가인권위원장은 모두 교회에 열심히 출석하는 기독교인이라고 하지요. 공적인 자리에서 선포되는 신앙이 이토록 폭력적일 수 있구나, 혹 그분들은 순교자의 마음과 사명으로 똘똘 뭉쳐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인가, 생각하자면 절망을 넘어 섬뜩하기까지 합니다.

세상의 빛이 되고 희망이 되어야 할 그리스도인들은 어쩌다가 좌절과 혐오의 대명사가 되고 값싸게 동원하고 이용하기 좋은 집단의 표상이 되었을까요. <라스트 세션>의 프로이트와 루이스처럼, 우아한 논쟁을 마치고, 예컨대 “오류에서 오류로, 그렇게 진실에 이를 것이다” 같은 멋진 전망과 함께 퇴장하기에는 이미 너무 멀리 와 버린 것은 아닌가 싶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가만히 있을 수만은 또 없어서, 모여서 책을 읽고 영화라도 보자고, 그렇게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고 함께 울고 웃으며 더 나은 세상을 꿈꾸어 보자고, 어쩌면 같은 마음을 품고 계실 분들을 향해 계속해서 손을 내밀어봅니다.

모기영은 올해도 그와 같은 마음으로 여섯 번째 잔치를 도모합니다.  

다가오는 11월, 광화문에서 뵙겠습니다. 

 

최은
편집디자인 강원중

 

2024년 9월 9일 월요일

모두를위한기독교영화제 주간모기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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