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주간모기영 142호

[최은의 책과 영화] 프랜시스 보르젤로의 『자화상 그리는 여자들』(아트북스, 2017)과 <헬렌: 내 영혼의 자화상>(2020)

2024.08.12 | 조회 17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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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모기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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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의 책과 영화]

프랜시스 보르젤로의 『자화상 그리는 여자들』(아트북스, 2017)과 <헬렌: 내 영혼의 자화상>(2020)

 

 자서전을 염두에 두고 나는 그림들을 모아둔 서랍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매우 흥미로운 이미지들을 진지하게 살피며 그들에게 질문을 던졌다. 당신이 자화상에서 자신을 이러한 방식으로 보여주기로 결정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프랜시스 보르젤로, 『자화상 그리는 여자들』에서

 

 1998년에 초판 출간된 『자화상 그리는 여자들』은 프랜시스 보르젤로가 16세기부터 20세기까지 여성자화상들을 분류하려는 목적에서 쓴 책입니다. 여성 자화상의 변화는 단지 여성을 둘러싼 관점의 변화만으로 설명할 수 없고, 그들이 살았던 당대의 회화경향과 함께 보아야 한다고 작가는 말해요. 예컨대 오늘날 페미니스트 여성화가나 사진가들이 자신의 신체를 작품에 사용하는 방식도 자화상의 일종이라고 해석될 수 있습니다. 정치적인 발언이나 거대담론으로부터 자유로운 여성들의 개인적인 신체기입이란 그냥 얻어진 것이 아니죠. 당대의 관습에 편입되도록 허락받았거나 허락받지 못했던 선배 여성예술가들이 여성 / 미술가라는 이중의 평가 잣대가 강요하는 제약과 한계 속에서 자신을 표현할 방법을 찾아온 노력의 결과였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남성 예술가들과 달리 그들은 늘 ‘예외적인’ 존재로서, 어떤 참조대상도 없이 자기표현의 기술을 찾아내야 했어요. 이를테면 남성처럼 여성 역시 좋은 평판을 유지하고자 애썼지만 남성과 달리 여성 예술가의 경우는 그 좋은 평판이라는 것이 이중적인 의미를 띤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즉, 좋은 평가에는 그들의 작품이 높은 인정을 받을 뿐 아니라 그들의 행위에 비난의 여지가 없다는 의미도 함축되어 있다는 점을 간파했다는 거죠. 남성 미술가는 크게 제약받지 않았으나, 여성의 야망은 비방을 각오해야 했습니다. 따라서 여성은 자신을 어떻게 보여줄지 고민하면서 자화상의 범위를 확장하고 변화시켰는데요, 프랜시스 보르젤로는 여성의 자화상이 독자적인 하나의 장르로 다루어지는 것이 타당한 근거를 바로 여기에서 찾았습니다.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17세기에 메리 빌은 <두 아들의 초상화를 들고 있는 자화상>(1665년 경)에서 자신을 자기 직업에 자신감을 갖고 있는 여성 가장의 모습으로 그렸습니다. 18세기 최초의 여성 스타 화가였던 로살바 카리에라는 <겨울로서의 자화상>(1731)에서 담비 털 모티프를 사용한 자화상을 그리는데요, 이는 왕족의 아이템이었어요. 당시 ‘여류 화가’란 ‘이류’라는 뜻을 함축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로살바 카리에라는 스스로를 미술가들의 여왕으로 표현했던 거지요. 1776-1777년 경 안나 도로테아 트르부슈가 56세쯤에 그린 자화상은 외알 안경을 걸고 있는 화가의 지적인 모습을 담고 있었고요, 가장 아름답고 매력적인 이미지를 남긴 화가는 18세기의 엘리자베트 비제르브룅이었습니다. 비제르브룅의 자화상 중 그녀가 순진하고 사랑스러워보이지 않는 작품은 한 점도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결코 ‘선을 넘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녀가 작품 의뢰를 받아야 하는 여성들에게 위협적으로 보이지 않도록 했던 건데요, 고객에게 경쟁상대로 보인다는 것은 직업적 자살행위와도 같은 것이었기 때문이죠. 비제르브룅은 마리 앙투아네트의 초상을 그린 것으로도 유명하죠. 

프랜시스 보르젤로, 『자화상 그리는 여자들』(아트북스, 2017)
프랜시스 보르젤로, 『자화상 그리는 여자들』(아트북스, 2017)

 그밖에 프리다 칼로와 카미유 클로델, 베르트 모리조, 마리 로랑생처럼 비교적 우리에게 잘 알려진 여성 화가들의 자화상들이 당대사회와 상호작용하여 출몰한 결과에 대해 책은 상세히 다룹니다. 하지만 그 많은 여성 화가들의 자화상 중 책의 표지를 장식한 얼굴은 프리다나 카미유, 베르트 모리조가 아니고 가장 아름답고 매력적이었다는 비제르브룅도 아닙니다. 핑크색 표지 앞면에 등장한 자화상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핀란드 화가 헬렌 쉐르벡입니다. 그렇다면 검은 바탕에 볼이 발그레한 얼굴을 남긴 헬렌 쉐르벡은 자신이 어떻게 보이기를 바랐던 걸까요? 그러니까 그가 자화상에서 자신을 그렇게 보여주기로 결정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헬렌: 내 영혼의 자화상>(안티 조키넨, 2020) [이미지 출처: 씨네21]
<헬렌: 내 영혼의 자화상>(안티 조키넨, 2020) [이미지 출처: 씨네21]

 

<헬렌: 내 영혼의 자화상>(2020) “그냥, 화가죠.”

안티 조키넨의 영화 <헬렌: 내 영혼의 자화상>(2020)은 마치 위 질문에 대한 어떤 응답인 것처럼 보입니다. 자화상과 초상화로 유명한 핀란드의 여성화가 헬렌 쉐르벡(1862-1946)의 삶을 다룬 이 영화에서 조키넨이 가장 먼저 스크린에 담은 작품은 프란시스 보르젤로의 책표지이기도 한 바로 그 그림, “자화상, 검은 배경”(1915)입니다. 50대 초반의 화가는 여기서 목을 길게 빼고 어딘가 먼 곳을 주시하고 있는 듯한 표정입니다. 홍조를 띤 얼굴이 배경의 검은 색과 대조되어 밝아 보이면서도 꾹 다문 입과 단호한 턱선이 소녀같은 얼굴 색조에 강인함을 더하고 있어요.  

[이미지 출처: 씨네21]
[이미지 출처: 씨네21]

 헬렌 쉐르벡은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중반까지 활동했던 핀란드의 대표적인 화가입니다. 네 살 때 계단에서 넘어진 이후 장애를 입었고 가난했던 헬렌은 열한 살 때 이미 실력을 인정받아 장학금을 받고 지금의 핀란드 예술 아카데미인 핀란드 예술가협회 학교에서 그림을 공부했어요. 이후에도 개인 장학금과 러시아 의회 지원금으로 파리와 런던을 오가며 일찍이 인상주의와 같은 유럽의 새로운 화풍을 익혔을 뿐 아니라 파리 만국박람회에서 동상을 수상하는 등 국제무대에서도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19세기 여성 화가에게는 어쩌면 당연하게도 그림실력이 안정과 성공을 보장해주는 것은 아니었어요. 장애 외에도 여러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활동 초창기에 그린 전쟁과 가난에 대한 사실주의적인 회화는 여성작가가 그리기 적합하지 않은 소재라는 비판을 받았고, 가장 지지받고 싶었을 가족, 특히 어머니 올가는 헬렌이 얌전히 집안일이나 하며 러그 디자인 정도로 돈을 벌어오기를 노골적으로 요구했습니다. 한때 스웨덴 출신 화가와 약혼했으나 그의 가족이 헬렌의 장애를 문제 삼아 헤어진 후 1946년 83세로 생을 마감하기까지 헬렌은 독신이었어요. 

[이미지 출처: 씨네21]
[이미지 출처: 씨네21]

<헬렌: 내 영혼의 자화상>은 그녀의 80평생 중 50대인 1913년 무렵부터 1923년의 시기를 다루었습니다. 왜 이 시기였을까요? 1913년은 헬렌(로라 비른)이 미술상 괴스타 스텐만(야르코 라티)과 삼림 감시원이면서 작가였던 에이나르 레우테르(요하네스 홀로파이넨)를 만난 해입니다. 덕분에 헬렌은 은둔생활 10여 년 만에 다시 세상으로 작품을 내보낼 기회를 얻었죠. 당시 그녀는 건강 문제로 짧은 미술학교 교사생활을 뒤로 하고 어머니(피르코 사이시오)와 함께 핀란드 남부의 히방카에 머물고 있었어요. 괴스타 주도로 1917년에는 헬싱키에서 생애 첫 단독 전시회가 열렸고, 같은 해 에이나르가 쓴 헬렌 쉐르벡 연구서가 출간되었습니다. 그리고 1923년은 어머니가 사망한 해였어요. 역사적으로는 제1차 세계대전 이후 1917년의 러시아 혁명과 러시아로부터 핀란드의 독립, 1918년 핀란드 내전과 같은 정치적 격변과 여성동맹연합(1892년 설립) 활동과 같은 사회운동이 헬렌이 속한 세계를 들썩이게 하고 있었습니다. 

[이미지 출처: 씨네21]
[이미지 출처: 씨네21]

헬렌의 1915년 작 <자화상, 검은 배경>은 특히 이 즈음 그녀의 화풍이 변화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사실적인 표현보다는 감각과 정서가 더 드러나 보이는 그림으로, 1918년에 에이나르를 그린 <선원> 같은 작품은 본래의 직업과 상관없이 에이나르가 ‘선원처럼 느껴진’ 순간을 그린 초상화입니다. 1923년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헬렌의 건강이 나빠지면서 헬렌의 작품은 점점 추상화의 경향을 강하게 보이기 시작했어요. 영화가 주목한 헬렌의 중년기 10여년의 시간은 따라서 헬렌의 개인적인 삶이나 작품세계, 그를 둘러싼 사회적 환경에 이르기까지 모든 영역에서 중요한 변곡점이 되는 시기였음에 틀림없습니다.

[이미지 출처: 씨네21]
[이미지 출처: 씨네21]

영화 도입부에서 10년 만에 세상에 다시 나온 헬렌에게 기자가 화가에게는 익숙하면서도 지리했을 그 질문을 던졌어요. “당신이 지금까지 그려온 전쟁과 가난은 여성 화가에게 어울리지 않는 주제인데요?” 헬렌이 답해요. “전 여성화가로 불리고 싶지 않아요. 그냥 화가죠.” 헬렌은 자신이 어떻게 보이고 싶은지, 어떻게 불리고 싶은지 정확하게 알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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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렌 쉐르벡의 자화상을 보며 ‘얼굴들’에 대해 생각했어요. 우리가 매일 거울을 통해서 보는 자신의 얼굴과 매일 만나는 우리 곁의 얼굴들에 대해 우리는 어떤 이미지를 그리고 있을까요. 여러분은 어떤 얼굴들에 특별히 마음이 쓰이시나요.

 제가 좋아하는 소설가 김애란은 『눈먼자들의 국가』(문학동네, 2014)에 실린 에세이 「기우는 것, 우리가 본 것」에서 이렇게 말했어요. 

“‘이해’란, 조금씩 바깥의 폭을 좁혀가며 ‘밖’을 ‘옆’으로 만드는 일이다.”

다가오는 11월에 만날 제6회 모기영의 주제는 “곁의 얼굴”입니다. 

눈에 보이고 호흡이 느껴지는 얼굴로 여러분의 곁에 서게 되기를 기대하고 기다리겠습니다. 

늘 고맙습니다.

 

최은
편집디자인 강원중

 

2024년 8월 12일 월요일

모두를위한기독교영화제 주간모기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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