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은의 책과 영화]
『네루다의 우편배달부』(1985)과 <네루다>(2016)
"시인 동무, 당신이 저를 이 소동에 빠뜨렸으니 책임지고 저를 구해 주세요. 당신이 제게 시집을 선물했고, 우표를 붙이는 데에만 쓰던 혀를 다른 데 사용하는 걸 가르쳤어요. 사랑에 빠진 건 당신 때문이에요."
"천만에! 시집 두어 권 선물했다고 내 시를 표절하라고 허락해 준 줄 알아? 게다가 자네는 내가 마틸데를 위해 쓴 시를 베아트리스에게 선사했어."
"시는 쓰는 사람의 것이 아니라 읽는 사람의 것이에요!"
"너무나 민주적인 말이라 감동하겠군. 하지만 아버지가 누군지 가족 투표로 정할 만큼 극단적인 민주주의를 행하지는 말자고."
- 안토니오 스카르메타, 『네루다의 우편배달부』(민음사, 2004), 85쪽.
단 한 사람을 위한 우편배달, 그리고 시
칠레의 어느 시골 마을에 어부의 아들이었으나 뱃일을 하기 싫은 청년이 있었습니다. 마리오 히메네스라는 열일곱 살 소년이었는데요. 여느 때처럼 마을을 어슬렁거리던 어느 날 그는 우체부를 구하는 광고를 보게 됩니다. 단 한 사람을 위한 우편배달부였죠.
"하지만 그건 쌈박한 일이잖아요!"
마을사람들이 문맹이어서 우편물 수신자가 한 사람뿐인데, 그 수신자가 파블로 네루다라는 우체국장의 말을 들은 마리오의 반응입니다.
매일 엄청난 양의 편지가 시인 앞으로 오는데 대부분 여성으로부터인 것을 보고 마리오는 네루다를 부러워하고 시에 관심을 갖게 됩니다. 그리고 드디어, 단테의 연인과 이름이 같은, 운명의 소녀 베아트리스를 만나 그녀에게 사랑의 시를 써 보내고 싶어졌는데요, 마리오가 베아트리스에게 쓸 시를 써달라고 네루다에게 부탁하면서 둘은 시에 대해 이야기를 주고받는 사이로 발전하게 됩니다. 물론 네루다는 시를 써주지는 않고 대신 ‘메타포란 무엇인가’와 같은 흥미진진한 화두를 던지며 마리오를 시의 세계로 안내해 주었지요.
작가 안토니오 스카르메타는 가상의 인물 마리오와의 우정을 통해 칠레의 정치인이며 노벨문학상을 받은 저항시인었던 파블로 네루다(1904-1973)의 소탈하고 친근한 모습을 담아냈어요. 여기서 네루다는 호기심 많은 소년에게 ‘메타포’와 ‘추신’을 알려주고, 소년의 첫사랑을 응원해서 함께 주점에 동행하고, 결혼식의 증인이 되어주며, 소년으로서는 생애 처음 받아 보는 편지를 먼 나라에서부터 보내옵니다. 물론 ‘추신’을 달아서요.
소설은 1969년 네루다가 가장 사랑했던 시골 집 ‘이슬라 네그라’에 머물던 시절부터 1973년 그가 사망할 때까지를 다루고 있습니다. 이 시기 네루다는 칠레 공산당의 대통령 후보가 되었다가 살바도르 아옌데에게 대통령 후보를 양보해서 칠레 최초로 선거에 의한 사회주의 정부가 탄생하는 데 기여했고, 파리 대사로 출국했다가 돌아왔고, 암을 얻었고, 피노체트에 저항하던 아옌데가 최후를 맞고 피노체트가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지 12일 만에 병원에서 생을 마감합니다.
마리오는 그 사이 베아트리스와 결혼하고 파블로의 이름을 딴 아들을 낳고, 네루다의 노벨문학상 수상을 축하하는 파티를 열고, 이슬라 네그라의 소리들을 녹음해서 네루다에게 보내기도 하고, 그의 말년에는 군부의 살벌한 감시 속에 갇히다시피 한 네루다에게 비밀 전보를 전달하며 끝까지 그의 곁을 지킵니다. 어리숙하지만 나름 귀엽게 시인을 졸졸 따라다니던 소년 마리오는 그렇게 청년이 되고 남편이 되고 아이 아빠가 되고 마침내 자신만의 작품을 써낸 시인이 되어 네루다의 시를 삶으로 살아냅니다.
네루다가 하는 말들이나 멋진 싯구들이야 그가 노벨상까지 받은 저명한 시인이니 지당하겠지만 이 소설에서 무지렁이에 가까운 베아트리스의 엄마와 소년 마리오와 우체국장 같은 인물들이 불쑥 내뱉는 메타포들을 듣고 있자면 우리 삶이 얼마나 많은 의미들로 넘실대는지, 새삼 발견하게 됩니다. “하늘이 울고 있다”처럼, 한 사물을 다른 사물과 비교하여 말하는 것이 메타포라고 시인은 설명해주었는데요, 시와 메타포는 어쩌면 이해되지 않는 세상을 비슷한 다른 무엇을 끌어와서라도 어떻게든 헤아려보려는 안간힘이거나 최소한 자연스러운 정신활동이 아닌가 생각하게 되었어요. 세상이 난해하고 삶이 버거울수록 우리에게는 더 많은 시와 더 많은 은유가 필요한 거겠지요.
『네루다의 우편배달부』는 영화 <일 포스티노>의 원작으로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시네마 천국>(1988)의 알프레도로 유명한 필립 느와레가 네루다로 출연한 아름답고 세상 평화로운 작품이죠. 영화는 칠레가 배경인 소설의 장소를 이탈리아의 작은 섬으로 옮겨왔습니다. 따라서 시대배경도 1952년 무렵으로 바뀌었는데요, 네루다가 반정부 인사로 찍혀 망명한 후 유럽에 머물던 시기입니다. 마리오가 절대로 열일곱 살로 보이지는 않고, 베아트리스(여기서는 이탈리아 식으로 베아트리체입니다)가 열여섯 살이 아닌 것이 틀림없어서 원작의 풋풋하고 당돌한 느낌보다는 순박하고 충직한 이미지가 강한 것도 나름 차이점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지난 30여 년 동안 큰 사랑을 받은 <일 포스티노>도 훌륭하지만, 제가 더 좋아하는 네루다 영화는 파블로 라라인의 2016년 작 <네루다>입니다. 여기도 파블로 네루다를 ‘좇는’ 사람이 하나 등장합니다. 시작은 추종이라기보다는 추격이었지만요. 가엘 가르시아 베르날이 네루다의 뒤를 쫓는 비밀경찰 오스카 페룰쇼노 역을 맡아 멋진 연기를 보여주었어요.
1948년 1월, 대통령과 현 정부를 비판했다는 이유로 칠레 공산당 의원인 네루다가 의원직을 박탈당하면서 비밀경찰에게 쫓기는 신세가 됩니다. 대선에서 네루다의 지지와 도움을 받았던 비델라 대통령에게 네루다는 이제 눈엣가시가 되어 있었죠. 그는 오스카에게 네루다의 흠집을 잡아 민중의 영웅을 ‘범죄자’로 만들어오라는 지령을 내립니다. 그 일은 어려워 보이지 않았어요. 오스카가 보기에 네루다는 여자들에게 인기가 좋아서 그들을 수없이 영감의 대상으로 삼아 시를 쓰는 종자였고, 도피중에도 수시로 사창가에 드나들었으며, 침대 없으면 잠을 못자면서도 공산주의자라고 떠들고 다녔고, 볼셰비키 혁명이 일어나면 가장 먼저 도피를 하고 말 겁쟁이이며 잘난 체 하는 시인일 뿐이었거든요. 공산주의자들이란 일하기 싫어서 교회나 불태우면서 존재감을 드러내는 사람이라고 그는 믿었어요. 영화는 그의 목소리를 내레이션으로 삼아 네루다의 도피생활을 따라다닙니다.
문제는 그가 가는 곳마다 흠집이 될 만한 사건들이 돌연 미담이 되어 돌아온다는 거였어요. 네루다에게 버림받은 첫 부인은 생방송에서 증언을 하겠다고 나와서는 “돈을 안줘서 그렇지 네루다는 착한 사람이며 좋은 시인”이라고 주장하고, 사창가의 노래하는 여장 가수는 네루다의 타락과 비행을 폭로하는 대신 그가 자신을 ‘예술노동자’이며 네루다와 평등한 예술가라고 불러주었다며 눈물을 글썽입니다. 게다가 오스카는 네루다의 시집 『모두의 노래』와 그가 서명까지 해서 자기에게 남긴 경찰소설을 읽고 점차 미묘한 자의식과 혼돈에 빠지게 됩니다.
네루다의 소설에서 주인공을 쫓는 경찰, 즉 오스카 자신은 조연이었어요. 오스카는 시인이 제멋대로 만들어놓은, 주어진 책 속의 인생 그대로 살지 않을 거라고 다짐합니다. 그는 네루다의 흠결을 잡아내고 체포해서 영웅이 되고 싶었어요. 하지만 네루다에게 가까이 다가갈수록 그 시인의 다정함과 위대함과 민중에 대한 꾸밈없는 애정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되는 거지요.
오스카는 마치 평생 장발장 뒤를 쫓았지만 마침내 그 ‘죄수’의 숭고함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던 『레미제라블』의 자베르와 같아 보입니다. 흥미롭게도 경감 자베르가 사기꾼의 아들로 감옥에서 태어났던 것처럼 비밀경찰 오스카도 사창가에서 태어났군요. 아마도 그는 ‘천한 신분’ 이라는 낙인을 벗기 위해 부단히도 애써왔을 것이고 그래서 반드시 영웅이 되어야 했겠지요. 자신이 경찰국의 창설자인 페룰쇼노의 사생아라고 믿고 있는(믿고 싶은) 그는 이 경찰국장의 동상 앞에서 “감사합니다, 아버지.”라고 인사합니다.
죽기 직전에야 비로소 오스카는 자신이 노동자와 민중의 아들이며 자신의 아버지가 힘든 노동으로 얻은 돈 몇 푼을 쥐고 사창가를 찾아 욕정을 채웠을 거라는 사실을 인정합니다. 그가 끝까지 총구를 들이대려 했던 시인 네루다는 바로 그들을 위한 시를 썼다는 것도 말이지요. 그는 결국 이 위대한 시인을 좇았던 것은 그 자체로 엄청난 일이며, 아무 것도 없이 태어나 이제 무언가를 남기게 되었으니, 조연이어도 상관없다고 말합니다. ‘훌륭한 경찰’은 죽고 이렇게 또 한 사람의 예술가가 태어납니다. 네루다가 오스카 페룰쇼노의 이름을 소리내어 부르는 순간 뱀파이어 마냥 관에 누워있던 오스카가 눈을 번쩍 뜨는데요, 시인 네루다 뿐 아니라 민중이며 그의 피조물인 오스카도 불멸의 존재가 되고 예술이 될 거라고, 영화 <네루다>는 위트를 담은 농담 을 건네옵니다.
오스카의 마지막 내레이션은 두 개의 목소리가 겹쳐 들리도록 녹음되었어요. 죽은 오스카이기도 하고 네루다이기도 한 이 목소리가 말합니다.
“우리는 서로를 꿈에서 볼 정도였고 그는 나를 늘 지켜봤어. 경찰, 네가 쓴 소설 맘에 드나? 배경은 백색의 눈과 말… 실은 네가 나를 만든 거야.“
경찰소설의 작가이자 민중시인인 네루다 또한 그를 쫓는 형사 오스카의 존재로 인해 자신의 삶이 더 가치 있는 것이 되었음을 고백하게 되는 거지요.
박해받는 정치인이고 위대한 시인이면서 민중에게 늘 다정하고 평등했던 시인을 다루는 영화 <네루다>가 파블로 네루다보다 오히려 그를 의심하고 동경하면서 모순가운데 쫓아다니는 오스카를 더 돋보이도록 한 것은 현명하고 사려 깊은 선택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자애롭고 유머러스한 동네 할아버지 시인도 좋지만, 우리에게는 자신이 아끼고 사랑했던 이웃 또는 민중과 주인공의 자리를 고루 나눌 줄 알고 그들 덕에 영웅이 영웅으로 존재할 수 있음을 인정하는 이런 어른이 필요한 시절이 아닌가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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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4월이 오고야 말았습니다. 4.3 항쟁이 있었고, 총선이 있고, 세월호 참사가 10주기를 맞게 되는 4월입니다.
지난주에는 부활주일을 맞아 용산 대통령실 인근에서 열린 <고난받는 이들과 함께하는 부활절 연합예배>에 참석했는데요, 올해는 스텔라데이지호 참사 7주기를 추념하는 예배였어요. 2017년 선적량의 두 배에 달하는 26만톤의 철광석을 싣고 브라질에서 중국으로 향하던 14만톤급 스텔라데이지호가 브라질 본토에서 2,500킬로미터 떨어진 심해에서 단 5분 만에 침몰해 22명의 선원이 실종된 사건이었죠. 세월호나 천안함 못지않게 비극적인 국가적 참사였지만 상대적으로 빨리 잊혀지고 있는 것 같아 또 미안해지는 시간이었습니다.
1948년에 쓴 에세이 「작가와 리바이어던」에서 조지 오웰은 이렇게 썼어요. 우리에게도 ‘가라앉는 배’가 ‘메타포’였으면, 그러니까 가라앉는 배를 우리가 여전히 메타포로 사용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내일(4월 7일) 저녁에는 안산 4.16생명안전공원 부지에서 얼굴로 뵐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설령 서로 알아보지 못할지라도, 한 장소에 한 마음으로 함께 있었다는 사실이 작은 위안이 되는 봄날이기를 바랍니다. 근처 어딘가에서 만개한 벚꽃을 만날 수 있다면 더 좋겠지요.
늘 고맙습니다.
글 최은
편집디자인 강원중
2024년 4월 6일 토요일
모두를위한기독교영화제 주간모기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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