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주간모기영 160호

[최규창의 따옴표] <폭싹 속았수다 13화>(2025)

2025.05.17 | 조회 19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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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규창의 따옴표

불완전한 세상에서 꿈꾸는 완전한 지지:

<폭싹 속았수다 13화>(2005)

 

"아니다 싶으면 바로 집으로, 아빠한테 냅다 뛰어와, 알았지?" 

<폭싹 속았수다> 13화

한 부부의 일생을 중심으로 4대의 이야기를 그린 넷플릭스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 에는 아기자기한 명대사가 많은데, 같은 의미의 다른 말들이 지겹지 않게 반복되는 걸로 봐서, 작가가 그동안 쓰고 싶어 메모해 두었던 표현들을 장면마다 다 쏟아 놓은 게 아닌가 싶다. 역시 제주도를 배경으로 한 <우리들의 블루스>를 보며 마음이 많이 무너졌던 기억이 있어 주저하다가 결국 이 드라마를 보게 되었는데, 다행히 유쾌하게 무난히 정주행을 마칠 수 있었다. 한국 드라마의 백문일답은 역시 '가족'이었던 것이다.

극에 등장하는 다양한 관계 중에서도 눈에 띈 것은 아빠(관식)와 딸(금명)이었다. 금명은 식당에서 그릇을 깬 실수를 황급히 수습해주는 남친을 보며 혼잣말로 '아빤줄 알았네'라고 말한다. 항상 아빠가 자신을 보호하고 지켜주었던 것이다. 프로포즈를 한 남친에게 금명은 이렇게 선언한다. "나는 원래가 아빠 소속이야. 아빠가 아웃이라면 나도 아웃, 결혼 안 해" 세상 아빠들을 미소 짓게 할 이런 정답을 막 날리는 딸이 나중에 한 사람의 성인으로서 사회에서 자리를 잡아가는 과정을 드라마는 보다 심도 있게 보여준다. 때가 되면 그녀도 책임져야 할 자식이 생기고, 무한한 사랑을 주어야 하는 것이다. 여전히 불안한 관식은 금명의 결혼식장에서 팔짱을 끼고 입장할 때 딸에게 말한다 "금명아, 수틀리면 빠꾸! 아빠한테 냅다 뛰어와, 알았지?" 참고 참았던 금명은 울음을 터뜨린다. 세련되진 않지만 자기가 평생 들어왔던 노빠꾸 아빠의 진심.

폭싹 속았수다 스틸컷 <넷플릭스>
폭싹 속았수다 스틸컷 <넷플릭스>

큰 새가 높이 나는 것은 바람이 그 새를 받쳐주기 때문이다. 

- 장자 -

20세기 초 영국의 소아과의사이자 정신분석학자였던 도널드 위니컷은 인간의 본질적인 안정감은 인지되지 않은 완벽한 지지에 의해 가능하다고 말한다. 의식, 인식, 지각이 관여하기 시작하면 그 지지는 본질을 벗어나고, 영혼에 새겨지지 않는다. 마치 홀로 있는 상태의 아기가 젖을 주는 엄마에 의해 행복감을 느끼듯, 우리에게는 의식이 형성되기 이전에 온전히 지지받는다는 안정감을 경험하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의 제자인 마이클 아이건은 진정한 평화란 '미지의 누군가에게, 의식이 포착하지 못하는 심연의 영역에서, 전적으로 지지 받고 있는 상태'라고 말한다. 두 사람은 20세기 초 위대한 아동심리학자였던 멜라니 클라인이 정신의 초기 상태로 봤던 '투사적 동일시'보다 더 근본적인 '존재의 일차적 상태'를 상정하는데, 그 이유는 참된 '홀로 있음'은 오직 이 경우로만 가능하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홀로 있음은 인간에게 의존이 발생하기 이전, 본능에 앞선 상태, 참 자기로 존재하는 상태데, 그것은 오직 완전한 지지가 있을 경우에만 가능하다. 우리에게 부모가 있는 이유가 그러하고, 세상에 종교가 필요한 이유 또한 그렇다. 완벽하고 무조건적인 지지와 사랑,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이 무엇일까? 데리다의 말대로, 이 세상에 무조건적 환대는 불가능하지만, 그것이 전제 되지 않으면 조건적 환대도 불가능하다. 완전한 것이 있어야 불완전한 것도 가능해진다.

나는 이 드라마를 가족애의 틀이 아닌, '한 인간이 정말 온전히 지지 받을 수 있는가' 라는 물음으로 들여다보고 싶다. 사실 극에 등장하는 관식이 같은 남편 또는 아빠는 현실에서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봐야 한다. 그러나 관객은 저런 사람이 있을 것이라 생각해야 관계에 대한 보다 본질적인 사유에 접근할 수 있고, 자기의 가족사를 투사하고, 돌봐야 할 가족이 있는 현실의 삶으로 돌아올 수 있다. 작가는 금명의 나레이션을 통해 친절하고 꼼꼼하게 이 순환을 반복 설명한다. "내가 외줄을 탈 때마다 아빠는 그물을 펼치고 서 있었다. 떨어져도 아빠가 있다, 그 한마디가 얼마나 든든하던지"

다른 고등 종교들과 달리 기독교가 가진 독특한 신관은 이와 같은 완전한 지지에 대한 열망이 서려 있다.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내가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고..."(이사야 49:15~16) 부모가 되어 다시 보는 이런 텍스트들이 완전히 다르게 다가올 수 밖에 없다는 것이 아직 여전히 우리에게 종교가 필요하다는 반증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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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최규창
편집 디자인 : 모기영 편집부

2025년 5월 17일 토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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