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에서 만난 모기영!
제25회 전주국제영화제 방문기
영화와 영화제에 진심인 모기영은 올해도 전주를 찾았습니다. 강신일 집행위원장과 최은 부집행위원장이 제25회 전주국제영화제 개막식에 참석하는 것으로 모기영의 전주 일정이 시작되었어요. 극내향인 두 사람에게 파티와 대형 행사 참석은 매번 쉽지 않은 미션인데요, 레드카펫 입장에서부터 국내외 내빈들이 모인 개막식 리셉션까지 어디서나 환영받은 강신일 위원장의 존재감과 인기 덕분에 유쾌한 저녁이었답니다. 작은 영화제 모기영의 지평도 그만큼 넓어졌겠지요?
개막작 <새벽의 모든>(미야케 쇼, 2024)
제25회 전주국제영화제의 개막작은 미야케 쇼 감독의 <새벽의 모든>입니다.
이름도 생소한 질병 PMS(월경전 증후군)를 안고 살아가는 후지사와(가미시라이시 모네)는 월경일이 다가오면 감정기복이 심해져 주변 사람들에게 자꾸 실수를 합니다. 감당 못할 화를 내거나 예민하게 반응하는 정도가 지나쳐서 사회 초년생 시절에는 직장을 잃기도 했어요. 수년 동안 나름의 생존방법을 터득한 걸까요, 그녀가 직장 동료들에게 고급 빵을 사다 주는 장면이 잦아서 보는 마음이 짠해집니다. 동료들은 “어이쿠, 매번 이러지 않아도 되는데...”라고 말하며 어쩌면 사과의 표현일 그녀의 호의를 감사히 받습니다. 다들 익숙해진 것 같았어요. 쫓겨나다시피 나와야 했던 첫 직장에 비해 너그럽고 친절한 사람들과 함께 일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요, 후지사와가 지금 일하는 곳은 현미경이나 천체 망원경 같은 과학 도구를 만드는 회사입니다.
그 날도 후지사와는 직장 동료들에게 빵을 돌리고 있었어요. 무심한 듯 무례한 듯, 눈치도 없이 신입직원 야마조에(마쓰무라 호쿠토)는 후지사와의 빵을 거절합니다. “저는 크림빵 안 좋아하는데요.” 게다가 야마조에는 탄산수를 입에 달고 살며 병뚜껑 따는 소리로 후지사와의 신경을 자꾸 거스르죠. 후지사와는 결국 야마조에에게도 폭발하고 말았어요. 그리고 다음 날 또 빵을 삽니다.
사실 야마조에는 공황장애로 전 직장에서 나와 후지사와의 회사로 옮겨왔어요. 청각장애인 복서를 주인공으로 한 <너의 눈을 들여다보면>(2022)을 연출한 미야케 쇼 감독은 이번에는 PMS와 공황장애를 지닌 주인공들의 눈을 들여다보게 합니다. 이 특별한 사람들이 안전하다고 느끼는 이 곳 과학회사의 대표가 아픔을 지닌 인물이라는 점도 중요합니다. 사장인 쿠라타 카츠오씨(미츠이시 켄)는 20년 전 동생을 잃고 10년째 애도 모임에 나가고 있어요. 그가 후지사와와 야마조에의 형편을 알고 받아들였으리라는 점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지요. 청각장애나 월경증후군, 공황장애와 애도는 모두 ‘지속되는 상태’입니다. 치료와 완치로 명명될 수 없는 고통이죠. 그러고 보니 요양원에서 갓 나온 후지사와의 어머니도 지속적인 돌봄을 필요로 하는 환자입니다.
각자의 고통을 지닌 여러 인물들을 통해 <새벽의 모든>은 질병에도 ‘급’이 있다는 편견에 조용하고 단호하게 도전합니다. 후지사와가 야마조에의 집을 찾아가 나도 어려움이 있다며 공감을 표했을 때, 야마조에는 조금 어이없어 했어요. 여자들이라면 누구나 한 달에 한 번 겪는 일이라는 정도만 알고 있는, 후지사와의 PMS와 2년 전 시작되어 일상을 다 망가뜨려놓은 자신의 공황장애가 어떻게 유사한 것일 수 있는지, 야마조에는 전혀 이해가 안 되고 감을 잡을 수도 없었던 거죠. “이걸 당신이 이해한다고?” 같은 표정이라고나 할까요.
후지사와는 이에 발끈합니다. 여성인 저조차도 따끔해지는 순간이었어요. 누구에게나 자신의 아픔이 가장 커 보이고 자기 병이 가장 중해 보이겠지만, 사실 각자가 겪는 질병은 고유한 것이어서 타인이 나서서 경중을 따질 수 없다는 점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말이지요. 후지사와의 말을 듣고 있자니, 여전히 나의 병이 가장 중해 보이고 나의 감정이 가장 진지하고 소중한 상태였구나 깨닫게 됩니다.
<새벽의 모든>의 주인공들은 이 사실을 잘 알고 있거나 알아가며 성장하는 인물들입니다. 드라마틱하게 병이 치유될 리 없고, 타인이 아픔에 공감한다 한들 딱히 그들을 도울 재주도 없어 보이지만 그들은 쉽게 포기하거나 냉소하지 않습니다. 후지사와는 미용실에 갈 수 없는 야마조에를 위해 난생처음 미용가위를 손에 들고, 후지사와가 화를 낼 것 같은 순간에 야마조에는 뜬금없이 그녀에게 세차를 부탁하죠. 사랑스럽고도 안도감을 주는 풍경들입니다. 이들은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낼 것 같아서요.
문득 드라마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가 생각났어요. <새벽의 모든>의 영어제목은 “All The Long Nights”인데요, 긴 밤들이 지나가면 새벽이 찾아오고 아침이 오듯이 그들의 삶에도 희망이 있겠지요. 하지만 밤이 꼭 칠흑 같은 어둠을 의미하지 않는 다는 점이 더 중요할지 모르겠습니다. 밤을 지나는 동안에도 그들의 머리 위에는 반짝이는 별들이 있으니까요. 후지사와와 야마조에가 일하는 곳이 자주 천체를 관측해야 하는 과학회사인 것이 참 다행이다 싶습니다.
소중한 정기후원 감사드립니다 ❤️
* 2024년 4월 1-30일 기준
강나루 강도영 강원중 강종철 구귀남 길섶교회 김대현 김동석 김명관 김미지 김소혜 김솔지 김영준 김재균 김지향 김현주 김혜영 김희라 대지교회 류현 문형욱 박성민 박은영 박일아 박재우 박준형 박진숙 박현선 박현홍 서경희 송정훈 신동주 신원균 심에스더 오늘교회 엄태미 윤선정 이강희 이동은 이범진 이신석 이유리 이유혁 이정식 장다나 정민호 지은실 최규창 최은 최현 최재용 최현 한송희 *한유정 님 (*신규후원)
<모기영 정기후원자를 위한 특별 시사회>
이탈리아의 천재 감독, 난니 모레티의 신작 <찬란한 내일로>를 국내 개봉 전 미리 관람할 수 있는 특별한 기회! 모기영 정기후원자를 위한 특별 시사회에 초대합니다. 새롭게 정기후원을 약정해주시는 분들께서도 신청하실 수 있습니다.
이탈리아 영화의 오늘을 대표하는 거장 난니 모레티의 작품은 지난 1회 모기영에서 <우리에겐 교황이 있다>라는 영화로 소개되기도 하였습니다. 즐거운 코미디 속에 통렬한 사회적 메시지를 담아내는 그의 최신작을 함께 감상하고 나누는 자리를 마련하였습니다.
*특별히, 아직 정기후원자는 아니지만 주간모기영을 구독자 다섯 분께 초대권을 드립니다! (선착순 마감)
일시 : 2024년 5월 24일(금) 저녁 7시
장소 : 상상마당 시네마 (서울 마포구 어울마당로 65 지하 4층)
대상 : 모기영 정기후원자 및 후원약정자 (1인 1매, 양도 가능)
신청 : 하단 구글 링크
* 좌석이 협소한 관계로 1인 1석만 제공되는 점 양해바랍니다. 1매에 한해 양도가 가능하며, 신청 링크에서 양도받으시는 분의 정보를 입력해주시기 바랍니다.
👇시사회 참가 신청링크👇
https://forms.gle/Dm2f9eCdVQyqFLJFA
모기영 실무진은 5월 3일 불금 저녁에 전주에서 뭉쳤습니다. 좋은 영화와 만나는 경험만큼 좋은 사람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참 좋은 봄날입니다.
모기영이 올해의 축제를 여는 가을이 오기까지 잘 영글어 가겠습니다.
5월의 새벽, 전주에서 인사드립니다.
고맙습니다.
글 최은 / 편집디자인 강원중
2024년 5월 4일 토요일
모두를위한기독교영화제 주간모기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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