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샤의 ’샤샤샧‘]
박쥐인간의 변명 : 나는 어떻게 인간혐오애정론자 (Misanthrophile)가 되었는가?
— 다큐멘터리 《AI: 나는 어떻게 종말낙관주의자가 되었나》, 혹은 두려움을 안고 미래를 껴안는 방법에 대하여
** 이 글에는 다큐멘터리의 주요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시끄러우니까 주둥이 닥쳐, 이 xx년아!”

고성의 쌍욕이 롯데콘서트홀 로비를 울렸다.
2026년 6월 5일 제 23회 서울국제환경 영화제 개막식입장을 위해 줄서 기다리던 차였다. 어머니뻘의 나이 지긋한 여성에게 어떤 덩치 큰(머리통도 x큰) 남자가 고래고래 쌍욕을 퍼붓고 있었다. 바로 앞에 못지않게 덩치 큰 가드들이 있었지만 차마 귀에 담기 어려운 욕설을 쏟아내는 입을 막지 못했다. 봉변을 당한 여성은 부들부들 떨며 목소리를 높여 경찰에 신고전화를 했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입장이 시작되었고 욕한 남자를 잡아 둘 방도도 없었다. 심장이 벌렁거리고 어안이 벙벙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모두 영화를 보러 들어갔다. 기후위기를 걱정하며 지구를 구하러.
혼자 극장에 가는 행위를 좋아한다.
여기에는 영화관람만이 아니라 혼자 극장으로 오가는 여정속에서 느낀 그날의 공기, 기분, 해프닝들이 포함되어 있고 때론 그 모든 것들이 영화만큼 인상적인 기억으로 남기 때문이다. <잡식가족의 딜레마>를 보았을 땐 GV시간에 비건으로 살기의 고달픔을 호소하며 울먹였던 한 관객이, <더 웨일>을 보고 돌아오는 길엔 토사물 한가운데 누가 만원짜리를 떨어뜨려 놓고 간걸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주워 주머니에 넣던 한 소녀가 잊혀지지 않는다는 식이다.
제23회 서울국제환경 영화제 개막작은 그렇게 기후위기와 환경, 평화 어쩌구하자는 영화제에서 겪은 욕설의 난무와 이해할 수 없는 폭력이라는 아이러니로 내 기억에 새겨지게 된 거다. 이런 xx..


이런 세상에 아이를 낳아도 괜찮을까요?
어떤 다큐멘터리는 세상을 설명하려 하고, 어떤 다큐멘터리는 세상을 고발하려 한다. 다니엘 로허(Daniel Roher)와 찰리 타이렐(Charlie Tyrell)이 공동 감독한 《AI: 나는 어떻게 종말낙관주의자가 되었나(The AI Doc: Or How I Became an Apocaloptimist)》(2026)는 어느 쪽이냐면 너무 방대한 미지의 영역이라서 설명할 수도 없고 미래를 섣불리 예측할 수 없기에 고발할수도 없는…이 거대한 AI의 물결에 감독이 압도당하는 모습을 그대로 카메라에 담았다고 할 수 있겠다.
영화는 한가지 질문에서 출발한다. 이런 세상에 아이를 낳아도 괜찮을까요? (아니 이미 아기가 생겼는데? 아니 거 아저씨, 그런 질문은 만들기 전?에 했었어야지??)

로허 감독은 2023년 다큐멘터리 《나발니(Navalny)》로 아카데미상을 수상한 캐나다 출신 영화인이다. 권력에 맞선 개인의 용기를 날카롭게 포착했던 그가, 이번엔 전혀 다른 종류의 두려움 앞에 서 있다. 챗GPT를 처음 접했을 때의 경이와 불안, 수십억 개의 데이터로 훈련되어 이미 방대한 지식을 축적한 AI가 불과 몇 초 만에 글을 쓰고 그림을 그려내는 광경은 예술가로서 곧 아버지가 될 한 인간으로서 그를 뒤흔들었다.
2026년 1월 선댄스 영화제에서 세계 첫 공개된 이 다큐는 그 불안의 기록이다.
영화는 크게 세 갈래로 전개된다. 먼저 비관론자들의 경고, 그 다음 낙관론자들의 반박, 그리고 마지막으로 AI 경쟁을 실질적으로 이끄는 CEO들과의 대면.
휴먼테크놀로지센터 공동창립자 트리스탄 해리스(Tristan Harris)와 아자 라스킨(Aza Raskin), AI 정렬 연구의 선구자 엘리에저 유드코프스키(Eliezer Yudkowsky), 그리고 AI 안전센터 소장 댄 헨드릭스(Dan Hendrycks)같은 비관론자들은 극단적으로 “AI 위험 연구를 하는 사람들 중에는 자녀가 고등학교에 진학할 때까지 살아남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이들도 있다고” 말한다.
반대쪽에서 효율적 가속주의(e/acc) 운동을 이끄는 기욤 베르동(Guillaume Verdon), 마이크로소프트 리서치 소장 피터 리(Peter Lee), 앤트로픽 공동창업자이자 CEO 다니엘라 아모데이(Daniela Amodei)같은 이들은 AI는 기후 위기, 식량 문제, 의료 불평등을 해결할 인류 역사상 가장 강력한 도구라고 낙관한다.
그 사이에서 팔랑귀 감독은 속절없이 희망의 봉우리와 절망의 계곡 사이에서 롤러코스터를 타며 흔들린다. (여보게 다니엘…거 쓸데없는 걱정하며 머리 싸매고 끙끙거리지 말고 임산부 부인의 발이나 주물러주쇼! 라고 말해주고 싶었던 순간들)
영화의 후반부, 로허는 현재 AI 경쟁을 실질적으로 주도하는 다섯 인물을 정조준한다. 오픈AI CEO 샘 알트먼(Sam Altman), 앤트로픽 CEO 다리오 아모데이(Dario Amodei), 구글 딥마인드 CEO 데미스 하사비스(Demis Hassabis), 그리고 인터뷰를 거부한 메타의 마크 저커버그와 너무 바빠 참석하지 못한 xAI의 일론 머스크. 인터뷰 당시 알트먼 역시 첫 아이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아이가 AI 세상에서 자라는 것이 두렵지 않다고 말한다. 오픈AI가 AI 경쟁에서 앞서 있기 때문에 안전성 테스트에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할 수 있다고. 그러나 로허가 "모든 것이 괜찮을 것이라고 안심시켜 줄 수 있습니까"라고 묻자, 알트먼은 단호하게 답한다. "그것은 불가능합니다." (거 당연한 소리를 새삼스럽게 단호하게 말하긴!)


아 그래서? 뭐? 결론이 뭡니까?
영화제목이 곧 스포일러다. (모두 예상했겠지만 바로 그 예상대로가 맞아요.) 야심찬 주제로 영화를 만들기 시작해서 AI산업계의 거물들과 인터뷰도 다 했는데 아마 감독도 이거 어떻게 마무리를 지어야 할지 막막했을 거야. 스크린데일리(Screen Daily)는 "짜증스러울 만큼 결론이 없다"라고 평했고, 《버라이어티(Variety)》는 영화가 "데이터 기반 낙관주의 쪽으로 다소 기울어진다"고 봤다. 인디와이어(IndieWire)는 "AI를 파악했다고 주장하지 않는 것이 이 영화를 볼 만한 이유"라고 따뜻하게 옹호했다. "나에게 '종말낙관주의자'란 등뼈도 없고 벙커만 있는 무기력한 영화 제작자다.”라는 비아냥도 보인다. 첫 아이의 탄생이라는 감상때문인지 로허는 어쩌면 거대한 질문에 대해 지나치게 온화한 태도를 보인다. 거대 데이터 센터가 현재 어떻게 환경과 저소득층 지역사회를 파괴하고 있는지, 알트먼이 이스라엘 방산 기술에 관심을 보인 보도들에 대해, 앤트로픽의 군사 기술 관련 계약에 대해서는 묻지 않는다.
'종말낙관주의(Apocaloptimism)'라는 단어는 영화 속 인터뷰이 중 한 명이 만든 신조어다. 종말(Apocalypse)과 낙관주의(Optimism)의 합성어. 재난이 올 수도 있다는 것을 눈 부릅뜨고 인정하면서도, 그 안에서 가능성을 찾겠다는 태도다. 뭐 달리 무슨 선택지라도 있는 것처럼…
영화를 보면서도 자꾸 줄을 서다 겪은 일이 생각났다. 몇 칸 건너 보이는 거대한 남자의 머리통을 보며 나는 봉변을 당했던 여성의 떨리는 손이 자꾸 어른거렸다.
기후, 전쟁, 기아... 인류가 당면한 거대한 문제들을 AI가 해결할 수 있을거라는 기술낙관론 앞에서 수십억 개의 파라미터도, 멀티모달 모델도, 안전 정렬 연구도, 몇분 아니 몇초 동안 퍼부어진 욕설 같은 우리가 일상에서 숨쉬듯 겪는 크고, 작은 폭력을 막지 못한다.
문제는 AI가 아니야!
“치킨은 살안쪄요. 살은 내가쪄요.”라는 런치백의 노랫말처럼 지구가 아픈게 아니라 인간이 아프고 AI가 인류를 멸망시키는 것이 아니라 결국 인간의 어리석음이 인류를 멸망시킬 거다. 모자무싸가 한바탕 휩쓸고 지나간 요즘 SNS피드는 넷플릭스 드라마 <참교육>에 관한 설전으로 뒤덮였다. 무너진 교권을 바로잡기 위해 창설된 가상의 '교권보호국'이 폭력적인 학생과 그 부모를 통쾌하게 응징한다는 웹툰원작 드라마다. 찰지게 싸다구를 날리며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인류의 가장 오랜 신념과 전통을 잇는 사이다 전개에 열광하는 이들도, 바르고 올바른 가르침이라는 참교육을 폭력과 사적 제제를 통한 응징이자 또다른 폭력으로 왜곡한다며 통탄하는 목소리들도 있다. (아니 어디 왜곡되고 훼손된 언어가 한둘이던가? 태극기, 개신교, 민주주의…)
만약 드라마처럼 누군가 나서 욕하는 남자를 폭력으로 응징했다면, 현실에서도 그것이 사이다였을까? 잠시 상상해보았다. 아니, 속이 시원하기는커녕 더 큰 폭력 앞에 두배로 더 공포스럽고 당혹스러웠을 것 같다. (엄마 어떻게 해 여기 미친 놈이 둘이나 있어… 덜덜덜 – 이렇게 말하면 누군가는 이런 표현이 얼마나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으며 조현병 환자들에 대한 혐오를 조장한다고 통탄할 모습이 상상된다.)

현실에선 사이다 결말도 구원자나 영웅도 존재하지 않는다. 느닷없는 폭력 앞에서 그것을 직접 당한 피해자뿐만 아니라 주위의 방관자들도 무력감을 느낀다. 인간은 얼마나 폭력적이고, 얼마나 쉽게 잔인해질 수가 있는가. 디스토피아가 그려내는 미래에서 인간을 파괴하는 것은 언제나 기술이 아니라 인간이다. 디스토피아의 진짜 건축가는 언제나 인간이었다. 인간은 줄에서 노인에게 쌍욕을 퍼붓는다. 인간은 지하실에 아이를 가두고 그 위에서 행복하게 산다. 인간은 아우슈비츠를 만들었고, 히로시마에 원폭을 떨어뜨렸고, 르완다에서 이웃이 이웃을 칼로 베었다. 인간은 자신이 만든 알고리즘 안에 스스로를 가두고, 자신이 섬기는 우상 앞에 자신의 자유를 바친다. 인간은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지배하고, 진리라고 말하면서 거짓말하고, 신을 섬긴다고 말하면서 이웃을 짓밟는다. (내가 원하는 선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하지 아니하는 바 악을 행하는도다, 라던 사도 바울의 처절한 탄식이 2천 년이 지난 지금도 유효한 이유다. 아, 하나님. 인간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을 보시고 마음에 한탄하셨다던 그 상심을 이제야 조금 알겠습니다. 예수님, 대체 왜 이런 우리를 구원하겠다고 십자가에 매달리기까지 하신 건가요 ) 타인은 지옥이고 나 자신을 포함해서 인간이란 존재는 정말이지 너무 싫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파트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다 아기와 눈이 마주쳤다. 나도 모르게 끼를 부리며? 살랑살랑 손을 흔들며 웃어 보였다. 아기 눈동자가 흔들리고 웃을까 말까 망설이다 자기도 손가락을 까딱거린다. 마음 한구석에 몽글하게 온기가 돈다. 아기들은 얼마나 신비한 존재인가. C.S. 루이스는 그의 설교 <영광의 무게>에서 "평범한 사람은 없다. 우리가 나누는 대화 상대는 그저 죽어 없어질 필멸자가 아니다. 성찬식 다음으로 우리의 감각에 나타나는 가장 거룩한 대상은 우리의 이웃이다"라고 했다. 유모차 속 아기의 눈망울에서, 나는 감독이 마주했을 그 거룩하고 압도적인 신비를 본다.
(아.. 지금 …다니엘 로허 감독의 심정이 어떤 건지 나 완전히 알것만 같아. 이야기를 시작은 했는데 시작했을 때부터 알고는 있었지만 뭐 속시원한 결론이나, 명쾌한 답이 없다는 건 당연한 이야기이고… 아기가 태어난 걸 보니 너무 예쁘고 사랑스럽고, 아기 눈을 보며 절망적인 미래니 하는 결말은 도저히 낼 수 없고…. 그나저나 이걸 어떻게 마무리한단 말인가?)
KT개인정보유출사건에 대한 고객서비스로 제공된 디즈니플러스 이용권을 써먹어야겠다는 일념으로 꾸역꾸역 <골드랜드>를 보았다. 아무도 믿을 수 없는 서로 뒤통수를 치고 또 얻어터지는 아수라장 속에서 역설적으로 위기 때마다 뜻밖의 구원은 믿지 못했던 그 상대에게서 왔다. 이런 것을 ‘진흙탕 연대’라고 해야 하나.

황금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어도 인간은 금을 먹고 살 수는 없다. 인간은 타인의 존재가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데이먼즈 투투 대주교는 <Hope and Suffering> (1984)에서 이렇게 말한다.
“나의 인간성은 당신의 인간성과 묶여 있습니다. My humanity is bound up in yours.” — 데스몬드 투투 대주교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요한일서 4:20)"는 서슬 퍼런 말씀도 결국 같은 과녁을 향한다. 신을 사랑한다는 증거는 대단한 교리나 종교적 열광에 있지 않고, 오직 내 곁의 깨어지고 모순 가득한 인간을 환대하는 데 지불되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가 스스로 인간임을 증명할 수 있는 것은 타인과의 관계속에서 뿐이다.
이미 AI가 움직이는 세상이라며 호들갑을 떨고 불안에 서성여도… 온통 배신과 탐욕이 가득한 세상이라 할지라도…그 지옥 같은 곳에서 누군가가 다른 누군가를 위해 기꺼이 손을 내밀거나 의리를 지키는 그 '관계의 순간'에 우리는 비로소 인간다워진다.
갈팡질팡하던 감독이 "나는 그렇게 종말낙관주의자가 되었다"라며 다소 무책임하게(?) 영화를 마무리한 것처럼, 나 역시 그렇게 하루에도 몇 번씩 오락가락하며 '인간혐오애정론자'가 된다.
+ 올해도 시사회 소식! 예에~~
안녕하세요, 모기영지기 입니다.
올해도 모기영 후원자님들, 그리고 항상 관심으로 함께해주시는 관객분들을 위한 시사회 자리를 마련하였습니다.
⭐ 첫 서울 상영 ⭐
상영작은 올해 전주국제영화제 화제작이자 한국장편경쟁 수상작인 <공순이> 입니다.


“엄마는 공순이다. 나는 그게 창피해 오래 외면했다. 서른이 넘어 고향으로 돌아온 나는 카메라를 들고 일터의 엄마를 따라가기 시작한다. [제27회 전주국제영화제]”
🎬 상영작: 공순이
📍일시: 2026년 7월 3일(금) 19:00
📍장소: 홍대 KT&G상상마당 시네마 지하4층
📍참석: 유소영 감독, 이정식 프로그래머
신청폼:
📅 신청기간: 2026년 6월12(금)-30(화)
(조기매진시 선착순으로 마감합니다)
많은 신청 바랍니다!
* 2026 주간모기영은 매주 토요일 오전 11:00시에 발송됩니다.
글 샤샤
편집디자인 모기영 편집부
2026년 6월 13일 토요일
모두를위한기독교영화제 주간모기영
이번 주간 모기영은 어떠셨나요?
'혐오 대신 도모, 배제 대신 축제' 모두를위한기독교영화제를 응원하는 메시지를 보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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