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주간모기영 125호

[최은의 책과 영화] 잭 런던의 『야성의 부름』(1903)과 <콜 오브 와일드>(2020), [모기책방] 시즌 1

2024.03.09 | 조회 19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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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모기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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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의 책과 영화]

잭 런던의 『야성의 부름』(1903)과 <콜 오브 와일드>(2020)

 ‘벅’은 세인트 버나드 아빠와 잉글리시 셰퍼드 엄마 사이에서 태어난 다부진 체격의 영민한 개였습니다. 미국 남부의 명망 있는 판사댁 반려견으로 세상 부러울 것 없던 벅은 어느 날 정원사 조수 마누엘에게 이끌려 알래스카의 썰매개로 팔려가고 말죠. 우편배달부였던 첫 주인 페로와 프랑수아로부터 두 번의 주인들을 더 거친 후 벅은 운명적으로 존 손턴을 만나게 됩니다. 이즈음 벅은 내로라 하는 대장개 스피츠를 제거하고 남부출신 개로서는 이례적으로 알래스카의 굶주린 개떼들까지도 제압한 후 썰매개 무리의 대장이 되어 있었는데요, 손턴이 벅을 보았을 때 벅은 더 이상 대장의 위엄과는 거리가 먼 몰골이었습니다. 얼음이 녹아가는 강물에 썰매를 끌고 들어갔다가 무리와 함께 곧 빠져죽거나 끝까지 항명하다 매맞아 죽거나, 둘 중 하나의 선택지만을 눈앞에 두고 있었어요. 

"저 개를 또다시 때리면 넌 내 손에 죽는다."

 와우. 손턴의 이 한 마디가 벅의 생명을 구했습니다. 이날 이후 벅과 손턴은 냉혹한 자연의 세계에서 서로에게 최고의 동반자가 됩니다. 손턴이 벅을 구했듯이, 벅도 두 번이나 손턴의 생명을 구했을 뿐 아니라, 벅 덕분에 손턴은 더 깊은 미지의 세계로 모험을 떠날 수 있는 자본을 확보하게 되었어요. 1890년대 중반, 금광을 찾아 전 세계에서 사람들이 북극으로 몰려들던 시절의 이야기입니다. 

잭 런던, 『야성의 부름』, 권택영 옮김, 민음사, 2010.
잭 런던, 『야성의 부름』, 권택영 옮김, 민음사, 2010.

 1903년에 출간된 소설 『야성의 부름』의 작가 잭 런던은 실제로 1897년 클론다이크 골드러시에 참여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이 소설을 집필했습니다. 1986년부터 1899년 사이 캐나다 북부 클론다이크로 금광을 찾아 몰려든 10만여 명 가운데 한 사람이었던 그는 유콘강역에서 한겨울을 지났다고 해요. 작품에서 손턴이 그랬던 것처럼, 실상 그가 관심 있었던 것은 일확천금이 아니라 모험 자체이고 인간과 자연이었던 것을, 십대시절부터 방랑자로 세상을 떠돌았던 작가의 인생이 말해줍니다. 잭 런던은 이 모험에서 돌아와 전업작가의 길에 들어서기로 하고 엄청난 양의 글을 쏟아내기 시작합니다. 그 가운데 벅을 주인공으로 한 『야성의 부름』은 잭 런던을 세계적인 작가로 만들었을 뿐 아니라 미국의 자연주의 소설과 잭 런던의 대표작으로 불리는 작품이 되었습니다. 이 이야기에는 인간과 개의 뭉클한 우정 이상의 무엇이 있다는 거겠지요.

벅은 거친 행복에 휩싸였다. 그는 마침내 자신이 숲의 형제와 나란히 부름이 들려오는 곳을 향해 달려가고 있으며 부름에 응하고 있음을 느꼈다. 태곳적 기억들이 빠르게 몰려왔고 전에 그것의 그림자에 반응했듯이 현실에서도 반응했다. 그는 희미하게 기억하는 다른 세상에서 이렇게 한 적이 있었다. 그리고 지금 바로 같은 반응을 하고 있었다. 광활한 하늘을 머리에 이고, 한 번도 밟지 않은 흙 위로 자유롭게 광야를 달리고 있었다.

알라딘 eBook 『야성의 부름』 (잭 런던 지음, 권택영 옮김) 중에서

 골드러시에 몸을 싣기 전 잭 런던은 열네살 때부터 이미 농장과 공장의 노동자였고 굴을 훔쳐 파는 해적도 되었다가 내면의 이끌림에 응해 스스로 ‘호보(떠돌이 노동자/부랑자)’가 되어 아메리카 대륙을 횡단하며 구걸하고 체포되어 감옥에도 갇히면서, 대단히 거칠게 살아왔는데요, 십대 부랑자 시절의 경험을 쓴 에세이들은 『더 로드』(지식의 편집 역간, 2022)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습니다. 인간 버전의 벅을 생생하게 만날 수 있는 작품이죠. 냉정하고 혹독한 사내들의 세계에서 홀로 또 다른 부랑자들과 함께 길을 떠돌며 소년 잭이 익힌 야성의 법칙이 늑대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 같지요. 

잭 런던, 『더 로드: 길 위의 삶, 호보 이야기』, 김아인 옮김, 지식의편집, 2020
잭 런던, 『더 로드: 길 위의 삶, 호보 이야기』, 김아인 옮김, 지식의편집, 2020

 『야성의 부름』에서 작가의 분신과도 같은 벅이 야성을 향한 긴 여정에서 가장 먼저 학습한 것은 “곤봉과 송곳니의 법칙”이었습니다. 곤봉을 든 인간에게는 대항하지 말 것, 송곳니(자연)의 세계에서는 중간은 없으며 물러섬 없이 싸우거나 죽거나 결심해야 할 순간이 온다는 것과 같은 깨달음이었죠. 하지만 여행의 말미에 벅은 곤봉이나 칼 또는 화살이 없을 때 인간이 얼마나 나약한지, 하여 얼마나 싸우기 쉬운 상대인지 알게 됩니다.

 결국 잭 런던의 소설은 자연/야성과 문명의 대립에서 자연의 위대함에 손을 들어준 것인데요, 그것이 약육강식의 세계에 대한 맹목적 예찬과는 다르다는 점이 이 소설을 더욱 특별하게 만든다고, 소설을 번역한 권택영 선생은 말합니다. 나면서부터 탁월한 혈통을 물려받은 벅이었지만 그가 썰매개들의 세계에서 대장 스피츠를 물리친 것은 송곳니의 힘 뿐 아니라 지략 덕분이었고 다른 싸움을 만들어내는 ‘상상력’ 때문이었습니다. 벅은 힘을 지녔을 뿐 아니라 창의적으로 싸우는 법을 알았고, 자연의 법칙과 거대한 힘 앞에서 겸허하면서도 타인과 세계로부터 재빨리 학습해내는 능력이 있었으며, 그것으로 현실에 적응할 뿐 아니라 새로운 법과 질서를 만들어 인간과 동료 동물들 사이에서 멋지게 실현해 내고 싶어 했죠. 그리고 스스로의 결단에 의해 미련 없이 문명을 벗어나 야성의 부름에 응답하게 됩니다. 벅은 다름 아닌 런던이 생각한 가장 이상적인 인간형이었습니다. 

 아울러 모두가 황금을 향해 달려갈 때 그 한복판에서 작가가 돈과 당대의 욕망이 가져온 비극을 직시하고 경고했다는 점도 기억해두고 싶습니다. 강에서 채취한 사금으로 가득한 보따리가 “노란 물이 줄줄 흘러나오는 주머니”로, 하찮은 것처럼 묘사된 것이 재미있다고 생각했어요. 자연으로부터 충족될 수 있는 날것의 욕망 앞에서 돈 자체(황금)에 대한 욕심은 전혀 ‘자연스럽지’ 않을 뿐 아니라 허상에 가까운 것이라고 폭로하는 것 같기도 하죠. 모든 시대 문학과 예술이 맡아온 가장 중요한 역할 중 하나일 겁니다.

인간들이 북극에서 황금을 발견했기 때문에, 마누엘(벅을 판 정원사 조수)이 아내와 자신을 빼닮은 자식들의 욕구를 충족시키지 못할 정도로 임금이 적었기 때문에 그는 그렇게 원시적인 모습으로 되돌아갔다.

알라딘 eBook 『야성의 부름』 (잭 런던 지음, 권택영 옮김) 중에서

 문명에서 나고 자란 반려견이 야생 늑대의 우두머리가 되어 태곳적 조상들의 땅으로 돌아갔다는, 이 매력적인 이야기를 할리우드가 그냥 잠재워두었을 리가 없겠죠. 디즈니는 2020년 해리슨 포드가 손턴을 연기한 영화 <콜 오브 와일드>를 제작했습니다. 모션 캡쳐로 구현된 벅은 여기서도 여전히 지혜롭고 용맹하고 세계의 법칙을 제대로 습득한 리더의 모델이지만 차마 최고라고는 말하지 못하겠습니다. 그러니까, 각성한 영웅으로서 벅의 야성은 디즈니스럽게 잘 길들여진 모습으로만 용맹합니다. 사냥감의 목덜미에서 따끈하게 솟아오르는 피의 맛을 알아버린 벅의 본능적인 잔인함은 어떤 생물체도 살아서 살이 뜯기는 모습을 들키지는 않도록 잘 포장되었고, 단지 모험을 즐기고 홀로 자족하는 예외적 인간이었던 손턴은 어린 아들을 잃고 방황하다 북극까지 떠내려 와 표류중인 슬픈 가장이 되어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디즈니는 이 영화를 <라이언 킹>처럼 만들어 놓았군요. 

<콜 오브 와일드The Call of the Wild>(크리스 샌더스, 2020)
<콜 오브 와일드The Call of the Wild>(크리스 샌더스, 2020)

혹시 저처럼 <콜 오브 와일드>가 너무 순한 맛이라고 생각하실 분들께는 잭 런던의 원작을 영화로 만든 다른 작품 <마틴 에덴>(2020)을 권해드립니다. 잭 런던은 1909년 반 자전적 소설인 『마틴 에덴』을 출간했는데요, 피에트로 마르첼로는 이 소설을 각색하여 20세기 중반 이탈리아를 배경으로 한 영화를 만들었어요. 세상을 떠돌던 하층 노동자 계급의 마틴과 상류층 여성 엘레나의 사랑이야기를 조마조마하게 들여다보다가, 20세기 역사와 사회구조에 대한 생생한 통찰에 짐짓 놀라는 척 하다가, 길들여지지 않은 야성을 지닌 마틴에게 어느새 연민을 품게 되는 작품입니다. 잘생긴 마틴, 루카 마리넬리에게 그해 베니스국제영화제는 남우주연상을 수여했습니다.

<마틴 에덴>(피에트로 마르첼로, 2019)
<마틴 에덴>(피에트로 마르첼로,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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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기책방 시즌 1 OPEN !

모기책방은 ‘모두를위한기독교영화제와 함께 책을 읽는 방’입니다.

❙ 기간: 2024년 3월 19(화) – 5월 28일(화) / 격주 화요일(총6회)
❙ 시간: 저녁 7시-9시 30분
❙ 장소: 빅퍼즐문화연구소(마포구 홍익로5길 43, 2층) 
❙ 모임 형식: 세미나(참여자 중 발제 담당자 지정) 
❙ 진행자: 최 은 영화평론가. 모기영 부집행위원장 
❙ 인원: 10명 내외
❙ 참가비: 모기영 정기후원자 5천원 / 비후원자 5만원
❙ 신청기간 및 방법: 2024.2.6.(화)-2024.3.12.(화) 구글 폼
https://forms.gle/TfZCjDD57tLSST4M8

3개월 간, 이런 책들을 읽습니다.
3/19 『다시, 성경으로』(레이첼 헬드 에반스, 바람이불어오는곳, 2020) **읽고 오세요!!**
4/2  『무례한 기독교』(리처드 마우, IVP, 2014)
4/16 『누가 포스터모더니즘을 두려워하는가?』(제임스 K. A. 스미스, 도서출판100, 2023)
4/30 『문화의 신학』(폴 틸리히, IVP, 2018)
5/14 『파수꾼 타르콥스키, 구원을 말하다』(김용규, IVP, 2023) (1)
5/28 『파수꾼 타르콥스키, 구원을 말하다』 (2)

이런 분들이 오시면 좋습니다. 

+기독교와 문화를 진지하게 공부해보고 싶은 분
+기독교와 대중문화, 두 세계에서 분투하시는 중인 분 
+모기영과 함께하고 싶은 분
+모기영의 미래가 궁금하신 분 

[참고사항]

+첫 모임은 발제 대신 각자 책(『다시, 성경으로』)을 완독하고 오셔서 감상을 나누는 시간으로 진행하고, 2-6회차 발제자를 선정합니다.
+5,6회차 『파수꾼 타르콥스키, 구원을 말하다』는 영화를 각자 감상하고 와서 타르콥스키 영화와 책을 함께 논할 예정입니다.

Q.‘시즌2’가 있나요?

모기책방 시즌2는 6월-8월 중 시즌1에 이어서 진행할 예정입니다. 
읽는 책의 목록은 달라집니다. 

 


소중한 정기후원 감사드립니다 ❤️

* 2024년 2월 1-29일 기준

강나루 강도영 강원중 강종철 구귀남 *길섶교회 김대현 김동석 김명관 김미지 김소혜 김솔지 김영준 김재균 김지향 김진선 *김한결 김현주 김혜영 김희라 대지교회 류현 박성민 박은영 박일아 박재우 박준형 박진숙 박현선 박현홍 배재우 서경희 송정훈 신동주 신원균 심에스더 오늘교회 윤선정 *엄태미 이강희 이동은 이범진 이신석 이유리 이유혁 이정식 장다나 정민호 정시안 지은실 채송희 최규창 최은 *최재용 최현 한송희 님  (*신규후원)

보내주신 소중한 후원금에 감사드립니다.

모기영 후원안내 ( ▲ 이미지를 클릭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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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기영의 새로운 도전 “모기책방”, 아직 여분의 자리가 있습니다.

태곳적 ‘야성의 부름’까지는 아니더라도,^^;; 오래 전부터 당신을 간절히 부르고 찾아온 모기영의 목소리가 혹시 들리시는지 모르겠습니다. 

까칠까칠하고 뾰족하고 정리되지 않은 생각이라도 함께 나눌 동지들이 있으면, 살얼음 쩍쩍 갈라지는 야생의 혹독한 강이라도 넉넉히 손 붙들고 건너볼 수 있지 않을까요. 

마침 봄도 오고 있는데 말이지요.

고맙습니다.

새봄에 얼굴로 뵙겠습니다!

 

최은
편집디자인 강원중

 

2024년 3월 9일 토요일

모두를위한기독교영화제 주간모기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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