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중캉의 생태주의로 영화읽기
<더 빅 이어>(2011)
꽃봉오리가 여물고 새순이 피어날 시기가 다가올수록, 더 짙은 자연으로 파고들고 싶은 강한 본능이 피어오릅니다. 이러한 시기에 만나기 좋은 즐거운 영화가 있기에 소개합니다. 드라마 <섹스 앤 더 시티> 시리즈와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를 연출한 데이비드 프랭클 감독의 2011년도 영화, <더 빅 이어>라는 작품입니다.
잭 블랙과 오언 윌슨이 주연으로 출연하기에 박장대소하는 코미디를 먼저 떠올리게 되지만 뜻밖의 감동과 치유를 만나게 되는 드라마장르의 영화이기도 하지요. 북미에서 한 해 동안 가장 많은 새를 관찰하는 사람을 뽑는 ‘빅 이어’ 경기에 참여하며 좌충우돌하는 세 남자의 이야기를 그린 이야기로, 베스트 셀러 작가 마크 옵마식이 1998년의 빅이어 경기를 바탕으로 쓴 동명의 논픽션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습니다. (뜨인돌 출판사에서 번역한 한국어판 책은 ‘탐조가birder’를 ‘새사냥꾼’이라는 단어로 번역하는 바람에 큰 혼동을 주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영화는 새에 관한 이야기이기 보다는 결국엔 사람 사는 이야기를 그립니다. 지루하기 이를 데 없는 직장생활을 이어가며 아내에게도 버림 당한 브레드(잭 블랙 분)에게 탐조란 삶의 새로운 아름다움을 만끽하는 돌파구이지요. 성공적인 기업의 CEO이자 화목한 가정까지 이루며 부러울 것 없는 은퇴를 맞이했음에도 늘 정답 속에서만 살아온 노년의 사업가 스튜(스티브 마틴 분)에게 탐조란 생애 처음으로 맞이해 보는 즐거운 일탈입니다. 경쟁자들을 교활하게 짖밟고 가정을 내팽개치면서까지 1위 타이틀을 빼앗기지 않으려는 전년도 우승자 케니(오언 윌슨 분)에게 탐조란 그럼에도 거짓말로 성적을 부풀리는 짓 따위는 하지 않는 마지막 자존심이지요. 이렇게 상황도 나이도 사회적 지위도 모두 다른 세 남자의 탐조 경쟁을 키득거리며 지켜보다 보면 어느새 우리는 새를 사랑하는 이들이 가진 자연에 대한 순수한 경외감 속에 함께 젖어들게 됩니다.
강아지를 데려오면 집을 나가버리겠다더니, 어느새 “우리 예쁜 뽀삐”의 코가 닳도록 입을 맞추시는 여느 K아버님들의 이야기처럼, 영화에서도 귀여운 반전을 보여주는 아버지가 등장합니다. 35살이 되도록 번듯한 직장 하나 구하지 못한 아들이 1년동안 새를 관찰하는 여행을 떠나겠다는 선언을 하자 뒷목을 잡고 핏대를 세우던 브레드의 아버지 레이몬드. 하지만 그는 심장마비라는 삶의 고비를 겪으며 비로소 자신의 인생에서 진정한 아름다움을 스스로 찾아나선 경험이 없었다는 사실을 직면합니다. 그리고 아들과 함께 나선 탐조의 여정에서 ‘북방올빼미’의 경이로운 자태를 만나고는 그 숨이 멎을 듯한 아름다움에 사로잡히고 말지요. 영화는 이렇게 우리에게 그저 생소하기만 한 야생의 존재들이 지니고 있는 숨겨진 아름다움을 간접적으로나마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합니다. 삶의 경험과 경계를 확장시켜주는 이러한 영화적 순간을 저는 참 좋아합니다.
이 글을 쓰는 지금, 저는 어느 교외의 숲체원에 와있습니다. 1시간 정도 가볍게 산책길을 걸으며 10종 남짓한 새들의 소리를 구분하고 그 이름을 불러줍니다. (동고비, 쇠딱따구리, 오색딱따구리, 딱새, 박새, 진박새, 오목눈이, 어치, 물까치, 까마귀..) 누군가 저에게 새를 좋아하게 된 이유를 물었을 때 저는 그들이 가진 순수한 눈망울을 가장 먼저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감추는 것 없이 그저 본능과 호기심으로 번뜩이는 맑고 동그란 눈. 그 작고 가벼운 몸속에서 터져나오는 오묘하고도 저마다 고유한 쏭(song)들. 오직 아름답기 위해 진화한 신비로운 빛깔의 깃. 그리고 철마다 대륙과 대륙을 쉬지 않고 비행하는 경이로운 능력까지. 그들과 사랑에 빠질 이유는 너무도 많다고 느껴지네요.
이제 본격적인 번식철이 지나고, 녹음 짙은 여름철이 다가오면 이른 새벽 온 숲을 가득 채우는 새들의 합창소리를 들으러 또다시 숲을 찾게 되겠지요. 콘크리트처럼 차갑게 굳어가는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여전히 우리와 자연의 경계를 넘나들며 태고의 아름다움을 만나게 해주는 저들의 존재가 눈물겹도록 소중하게 여겨집니다. 당신이 아직 탐조가가 아니시라면, 저들의 눈동자를 마주치지 않도록 조심하세요. 비밀처럼 감추어진 아름다움을 만나버릴테니까!
글 / 편집디자인 강원중
2024년 3월 16일 토요일
모두를위한기독교영화제 주간모기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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