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주간모기영 159호

[이정식의 시네마 분더카머] 영화 <해피엔드>(2025)

2025.05.10 | 조회 14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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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식의 시네마 분더카머

🚪 스물한 번째 방, 영화 <해피엔드>(2025)

 

수직으로 세워진 자동차처럼

  <해피엔드>는 일본의 사회상을 배음에 둡니다. 지진으로 인한 불안이 사회에 번지면, 권력자들은 ‘안전’이란 명목으로 자신이 주도하는 질서를 더욱 강화하죠. 감시와 처벌로요. <해피엔드>는 일본 정부의 이러한 방식이 영화의 인물들이 속한 고등학교의 운영방식과 닮아있음을 보여줍니다. 경찰은 밤마다 행인을 탐문하고, 감시카메라를 설치한 학교는 학생들을 감시하죠. 권력자가 입안한 규칙을 어긴다면 가차없는 처벌이 따라오기도 하고요. 고등학교 졸업을 앞둔 유타(쿠리하라 하야토)와 코우(히다카 유키토)가 살아가는 세계는 이런 곳입니다.

  그래도 유타와 코우는 억압적인 시공간 안에서 틈새를 만들고 즐길거리를 찾습니다. 그것을 잘 보여주는 장면이 오프닝 시퀀스인데요. 고등학생이라는 이유로 클럽 입장을 거부 당한 유타와 코우는 입구가 아닌 샛문을 발견하고는 스탭인 척하며 천연덕스럽게 안으로 들어갑니다. 큰 의미가 없는 장면처럼 보일지 모르나, 두 사람이 어떤 태도로 현실을 어떻게 견디는지에 대해 이 장면이 보여주는 것 같아요. 두 사람이 클럽 DJ로부터 건네받은 음악 USB를 들고 학교로 가, 그곳에서 밤새 음악을 듣는 장면도 마찬가지입니다. 숨막히는 질서 안에서도 그들은 누구도 쉽게 건드릴 수 없는 안온한 세상을 구축하며 살아갑니다. 다음 날 새벽, 둘은 대범한 장난을 기획합니다. 교장선생님의 차를 수직으로 세우기로요. 평소와 다를 바 없는 등교길, 교장 선생님의 차는 세워진 채로 모든 학생들의 스펙타클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이런 차의 모습이 <해피엔드>의 전언을 품고 있는 어떤 상징적인 이미지같다고 생각했습니다.

[사진 1] 영화 <해피엔드>(네오 소라, 2025) 스틸컷 1
[사진 1] 영화 <해피엔드>(네오 소라, 2025) 스틸컷 1

  <해피엔드>는 몇 가지 층위의 재난에 대한 영화이기도 합니다. 먼저 자연적 재난이 있습니다. 영화 안에서 지진 경보는 수차례 울립니다. 오보일 때도 있었지만, 실제 큰 규모의 지진이 세상을 덮치기도 합니다. 그리고 사회적 재난이 있습니다. 감시와 처벌이라는 방식으로 사람들을 통치/통제하는 정부와 학교가 그렇습니다. 마지막으로 개인적 재난이 있습니다. 그렇게 각별했던 유타와 코우의 관계에 균열이 이는데요. 자이니치 4세로 직접적으로, 때로는 은근하게 차별을 받으며 지낸 코우는 우연한 계기로 현실에 급진적으로 뛰어들어 불의를 바꾸려는 후미(이노리 키라라)에게 끌립니다. 그리고 현실의 문제를 뒤로한채 음악에만 생각하는 유타와는 거리를 두려 하죠. 자신을 밀어내려는 코우의 태도를 유타도 자연스럽게 알아차립니다. 졸업하고 미국으로 가려는 톰(아라지)을 위한 이별파티에서 코우는 문득 유타와 관련된 자신의 속내를 톰에게 털어놓습니다. “만약 대학에서 유타를 만났다면 우린 친구가 되었을까?” 이 물음을 유타는 숨죽여 듣습니다. 영화 초반부터 지금까지 그래왔듯 쓸쓸함을 애써 감추면서요.

그런 점에서 <해피엔드>는 일종의 ‘재난영화’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성장영화’라고 볼 수도 있을 거예요. 재난영화로서 <해피엔드>의 주인공은 코우와 유타이지만, 성장영화로서의 주인공은 유타만입니다. 그리고 유타가 성장하는 방향은 위가 아니라 아래입니다. 코우가 세상의 불의에 적극 개입하려는 사람들과 함께하게 된 것은 성장이라기보다 이동이라 할 수 있을 거예요. 자신이 매혹된 새로운 세상으로의 진입이고요. 이동과 진입을 통해 코우가 다른 세계로 건너가려 할 때, 그 자리에서 외로움을 견디는 것은 오직 유타의 몫입니다. 그리고 유타는 영화의 후반부에서 코우의 잘못을 제것으로 끌어와 그 대신 혼자 처벌을 고스란히 짊어지죠. ‘생각 없어 보인다’는 핀잔을 코우에게서 종종 받던 유타가 다른 인물들보다 가장 깊은 인물이 되는 순간입니다.

[사진 2] 영화 <해피엔드>(네오 소라, 2025) 스틸컷 2
[사진 2] 영화 <해피엔드>(네오 소라, 2025) 스틸컷 2

 영화의 마지막 장면, 하교길이면 어김없이 지나던 육교에서 둘은 마지막 이별을 이룹니다. 심상한 말투로 코우는 ‘또 보자’고 했지만, 유타는 알아차렸을 겁니다. 우리는 더이상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그와 모든 것을 나눴던 순간이 있듯이, 그 모든 것을 상징하는 그를 떠나보내야 하는 작별의 순간도 마찬가지로 겪어야만 한다는 것을요. 그토록 충만했던 시간에서 그 모든 것을 떠나보내야 하는 비움의 순간으로 건너가기. 충만에서 비움으로 건너가는 동안에는 끊임없이 불안할 겁니다. 수직으로 세워진 자동차처럼, 자그마한 진동에도 자신이 아끼고 소중하게 여긴 것들이 한순간에 무너져 내릴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안고 살아야 하겠죠. 한 사람이 어른스러워진다는 것은, 삶이 건네는 불안에 어느정도 익숙해지는 일과 같은 게 아닐까요. 그 감각에 익숙해진다는 게 아니라, 모든 것을 바꾸는 불가역적인 재난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감당해보겠다,라고 조용히 결심하는 태도 말이에요.

   마지막 이별, 그 시퀀스에서 영화는 둘의 장난을 프리즈-프레임으로 멈춥니다. 그럼으로써 아주 잠깐 축복같은 영원을 선물하죠. 그러나 다시 시간은 흐르고, 갈림길 앞에서 둘은 각자 자신 앞에 놓인 길을 향해 걸어갑니다. 이후로도 두 사람은 재난을 마주할 거예요. 그러나 재난 앞에 선 두 사람도, 지금과는 다른 사람으로서 그것을 맞이할 것입니다. 흔들리면서, 그러나 조금은 의연한 태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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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엔드>가 저는 아름다운 영화라고 느껴졌는데요. 물론 감각적인 영상 덕분이기도 할 거예요. 그런데 이런 문장을 보니, 제가 느낀 감정의 이유가 조금 납득이 되었습니다. 

 

나는 내가 느끼는 아름다움의 정의를 찾아냈다.
그것은 열렬하면서도 슬픈 무엇이다. 여인의 매혹적이고 아름다운 얼굴이란, 말하자면 관능과 슬픔을 동시에 꿈꾸게 하는 얼굴이다.
나는 기쁨이 아름다움과 연결되지 않는다고 주장할 수는 없겠지만, 기쁨이 아름다움의 통속적인 장식물의 하나라고 말하고 싶다.
그러나 슬픔은 말하자면 아름다움의 멋진 동반자인데, 그 안에 불행이 섞여있지 않은 아름다움을, 나는 거의 생각할 수 없을 정도이다.

샤를 보들레르, 벌거벗은 내 마음

 

이 문장과 유타의 얼굴을 겹쳐 놓고 생각하니 여운이 길게 남기도 합니다.

봄입니다. 평안을 빕니다.

 


글 : 이정식
편집 디자인 : 모기영 편집부

2025년 5월 10일 토요일

모두를위한기독교영화제 주간모기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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