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규창의 따옴표
자유와 주체에 대한 첫 경험, 열 아홉 살
<3학년2학기>(2025)
“아버지, 이제 저희도 성인이 되었으니까 술 한 잔 하겠습니다”
<3학년2학기> (2025)
갑자기 어른이 되는 열 아홉 살
소위 한국 나이로 스무살이 된 젊은이들을 주인공으로 한 한국 영화는 앉은 자리에서도 몇 편 떠올릴 수 있습니다. 이 시기가 주요 소재로 사용되는 이유는 아마도 '고3'이라는 12년 정규 교육의 마지막 단계를 막 지나와 성인으로서 사회에 진출하는 시기가 인생의 큰 변곡점이 된다는 의미에서 일 겁니다. 우리나라 교육현실에서는 열아홉살 이전은 대학 또는 취업이라는 목표만을 위해 달려야 하는, 자기 주체화나 다른 사유가 불가능한 시기이기에, 스무살에 갑자기 떨어진 정언명령("네 삶의 주인은 너니까 이제 알아서 하라")은 낯설게 느껴질 수 밖에 없기 때문일 겁니다.
우리 주변에는 이보다 조금 당겨 3학년 2학기에 스무살이 되는 아이들이 있습니다. 바로 실업계 고등학교 졸업반입니다. 영화는 우리 사회에 공존하지만 드러나지 않는 이들의 삶을 들여다봅니다. 고등학생을 소재로 한 영화나 드라마의 대부분이 수컷들의 힘자랑이나 폭력물인 현실에서, 별다른 악역이나 극적 긴장감 없이 각자의 삶을 진지하게 살아가려고 애쓰는 고3 주인공들의 분투와 그들을 둘러 싼 지극히 평범한, 그러나 한없이 답답한 사회 구조를 담담히 그리고 있다는 점에서, 이 영화는 우리 사회 속의 또 다른 사회, 우리 세계 속의 또 다른 세계를 그린 색다른 '두 세계' 영화라 할 수 있습니다. 시종일관 감정은 절제 되어 있고, 아이들의 생각이나 고민은 잘 드러나지 않은 채 은밀히 자라나고 성숙합니다.

새롭게 태어나는 사회적 주체
실업계 고등학교 졸업반 창우는 담임의 권유로 한 중소기업 공장에서 일하게 됩니다. 분위기도 괜찮고, 열심히 일하면 나중에 대학 진학도 할 수 있다는 말에 창우는 제안을 받아들이며 자신의 인생 다음 경로를 조심스레 그려보기도 합니다. 아직 무얼 하고 싶은지, 무엇이 되고 싶은지도 모르지만, 자기 인생이 이렇게 정해진 경로에 갇혀 버리기보다는 어떤 희망이나 여지를 두고 싶은 마음도 있었겠지요. 현장에서 만난 선배와 동료들은 창우보다 불과 몇 개월~ 몇 년 정도의 경력 차이지만 사회와 인생을 훨씬 많이 알고 있는 느낌입니다. 직장에서의 경험은 단기간이라도 큰 차이를 만드는 법이니까요. 그들은 '이건 이래야 한다'는 원칙이 굳건하고, 어른스럽습니다. 말하자면 그들은 조직 시스템에 잘 적응한 셈인데, 여전히 그래야 하는 이유가 궁금하고, 자기 생각이 살아있는 창우에게는 모든 것이 낯섭니다. 창우는 이제 자기 주체성의 싸움을 시작하는 것입니다.
"정부지원비, 장려금 800 나오면 엄마 빌려줄 수 있어?" 갑자기 올라버린 전세금 때문에 엄마는 창우에게 아쉬운 부탁을 합니다. 예전에는 창우가 먼저 '나 이 돈 필요 없으니 엄마 필요하면 줄게'라고 말했고, 그 때 엄마는 '엄마도 필요 없으니 네가 저축해 둬'라고 했던 돈입니다. 하지만 엄마의 부탁으로 선택권이 없어진 창우는 "몰라. 아직 결정된 거 없어"라고 짜증 섞인 대답을 합니다. 그 돈을 받으려면 이제 그 회사에 완전히 취직을 해야 하는 겁니다. 일도 할 만하고, 사람들도 좋고, 대학에 갈 가능성도 있어서 선택한 회사였지만, 막상 '그렇게 해야만 하는' 일이 돼 버리는 순간 창우는 선택권을 지닌 주체에 손상을 입게 되고, 당장의 즉답을 피하려고 합니다. 창우에게 필요한 것은 자유로운 선택권이지만 정작 그는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발견할 방법을 전혀 배우지 못했고, 그러한 혼돈의 외형적 모습은 항상 짜증 섞인 대답 뿐입니다.

여전히 불완전한 예속적 주체
영화는 열 아홉에서 스무 살로 넘어가는 시점에서 갑자기 인생의 무언가를 스스로 결정해야 하는 작은 주체의 갈등을 계속 드러냅니다. 그러나 그 주체의 결정은 바로 더욱 거대한 주체인 사회가 필요로 하는 사람으로 스스로를 구비시키는 방향으로 모아지는 것이 현실이지요. 문명사에서 가장 자유로운 시대를 산다는 현대인이 사실은 그 자유를 그대로 반납하면서 자신을 개조하여 자본주의에 적합한 인간으로 끊임없이 자기 계발을 해야 하는 존재로 스스로를 주체화하는 현상을 우리는 매일 목격합니다. 가장 자유로운 것이 아니라 사실은 가장 예속화 된 삶을 선택할 수 밖에 없는 것이죠.
실업계 3학년 2학기는 주체화의 능동성이 생기는 때일 뿐, 결국 우리는 새로운 속박의 굴레로 들어갑니다. 영화의 마지막에서 우리는 공장에서 후배들을 돌보며 차분하게 자기 일상에 적응해 가는 창우를 봅니다. 그도 결국 자기를 가르쳤던 선임 대리와 비슷한 역할을 하는 사람이 되어 갑니다. 이 영화에는 악한 사람이 없습니다. 그러나 이들이 모여 만들어가는 조직의 분위기는 무언가 불안하고 위태로우며 억압적입니다. 이것이 사회의 힘이며 구조의 무게입니다. 여전히 이 나라에서는 모든 가구의 2/3가 한 번의 오차도 없이 매 달 수입이 들어와야 신용을 유지하며 삶을 영위할 수 있습니다. 코 밑에 물이 찰랑거리듯 숨만 쉬며 살아가는 일상을 보내는 이들이 영화를 보는 내내 느끼는 불안은 바로 관객 자신의 미래에 대한 것인테지요. 부디 이 일상이 깨질만한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도 우리는 여전히 우정에서 희망을 봅니다. 함께 예속되어 있지만 서로 때문에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 이것이 희망입니다. 인간의 의식이 시간 개념이라는 저주를 얻게 되어 생겨난 미래의 불안이 우리의 현재 일상을 잠식하고 있더라도, 함께 먹고, 웃고, 이야기하면서 그것을 잠시 잊을 수 있는 축복이 바로 우정에서 나온다는 것, 이것이 이 영화의 위로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모두 그런 친구들을 갖고 있으니까요. 공장 옥상에서 햄버거 하나를 급하게 먹고 내려가야 하는 현실이라도, 공장 지역에서는 얻을 수 없는 선물 같은 음식이 주는 미각적 행복이 잠시나마 다른 세상을 경험하게 할 수 있다면 그렇게 다시 하루를 살 힘을 얻게 되겠지요. 함께 있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했던 친구들의 소중함도 알게 될 거고요.

그래도 숨을 쉴 수 있는 구멍만 있다면
"아버지, 이제 저희도 성인이 되었으니까 술 한 잔 하겠습니다"
영화에 등장하는 또래 주인공 네 명은 각자 자기의 길을 선택합니다. 우재는 진작에 회사가 자기 길이 아니라며 떠나고, 다혜도 떠나고, 성민은 회사에서 에이스라고 불렸지만 결국 떠납니다. 가장 적응하지 못할 것 같던 창우만 남습니다. 그 길이 결국 자본주의의 '손바닥' 위이고, 예속화의 연장이라 해도, 우리는 이들이 모두 자신만의 삶이 있고 '나는 나'라고 외치는 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만 19세가 되는 1월 1일 자정에 우재는 창우를 불러 편의점 맥주를 꺼낸 후, CCTV로 지켜볼 아버지에게 술 한 잔 하겠다고 꾸벅 인사합니다. 아무 것도 뚜렷하지 않은 불안한 미래가 여전히 생각을 지배하고 있지만, 이 순간 이들은 어떤 억압이나 감시도 벗어난 채 자유롭습니다. 진정한 주체성도, 자유도, 우정도, 불안도 모두 그들의 마음 속에 있는 것이니까요.
"슬픔에 의해 균형이 잡히지 않으면 '행복'이라는 단어는 그 의미를 잃을 것이다."
칼 융
요즘 모기영은? 모기영 소식!
안녕하세요, 모기영지기 기영이 입니다:)
기영이는 이번주 열심히 영화제 투어중인데요, 그 영화제들은 바로……
서울국제어린이영화제, 그리고 부산국제영화제입니다.
두 영화제는 매 해 모기영 멤버들에게 특별한 영화제일텐데요, 현재 박일아 프로그래머님은 서울국제어린이영화제의 프로그래머로 활동하고 계시고, 최은 부집행위원장님 역시 부산국제영화제 아시아섹션의 모터레이터로 활동중이십니다. 다양한 영화제에서 활동하는 모기영 멤버들 넘 멋지십니다!!!~~~~
1. 제13회 서울국제어린이영화제 (2025.09.10-17)

서울국제어린이영화제는 우리 모두는 어린이다, WE KID! 라는 슬로건을 갖고 있는 국내유일 국제어린이영화제입니다. 영화 속 주체적인 어린이의 모습을 고민하고, 어린이 감독과 관객을 위한 축제의 장을 꾸준히 마련하는 의미있는 영화제이지요. 올해 벌써 13회를 맞았다고 하네요!




2. 제 30회 부산국제영화제 (2025.9.17-26)
올해 30회를 맞는 부산국제영화제는 그야말로 24시간 축제분위기입니다. 칸, 베를린, 베네치아 영화제 수상작 및 상영작들이 대거 준비되어 있고 무엇보다 스폐셜 게스트들도 여느 해 보다 많이 찾아와 주었답니다. 그만큼 열기도 뜨겁고, 그만큼…… 영화표도 구하기 힘들다는 사실 !! ( 물론 저는 매일 아침 광속의 클릭, 또 클릭으로 예매성공!) 영화의 바다에서 좋은 작품 많이 많이 보고 가겠습니다.




아앗!
그러보고니, 제7회 모기영도 이제 두 달 남았네요! 커밍 쑨…
글 : 최규창
편집 디자인 : 모기영 편집부
2025년 9월 20일 토요일
모두를위한기독교영화제 주간모기영
주간모기영에 바라는 점이나 아쉬운 점 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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