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주간모기영 202호

[샤샤의 ‘샤샤샧’] <공순이>(2026)

2026.07.11 | 조회 19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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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샤의 ’샤샤샧‘]

이름표를 붙여 내 가슴에 ~ 모기영 x 공순이(2026)

 

지극히 평범하고도 흔한 이름을 가진 나는 이름 때문에 놀림 받는 아픔을 모른다. 이름때문에 늘 고통받아왔다며 우는 삼순이에게 택시기사가 위로의 말을 건넨다. “아이구 뭐 삼순이만 아니면 되지 뭘~” 하는 20년전 지금으로선 상상하기 어려운 시청률 50%에 육박했던 드라마 내이름은 김삼순의 한 장면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면 당신은 아마도 나와 같은 옛 사람일 것이다. 사실 한국 현대사에서 여성들의 이름은 유난히 쉽게 뭉뚱그려졌다. 식모는 '식순이', 버스 안내양은 '차순이', 여공은 '공순이'로 불렸다. 이름은 있었지만 이름으로 불리지 못했던 사람들. 그렇게 이들은 어느새 모두 '삼순이'가 되었다. 실제로 여성 노동자들의 삶을 조망한 책의 제목 역시 <삼순이>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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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제목만 들었을 때, 많은 이들은 당연한 고정관념을 작동시켰을 것이다. 70~80년대 섬유 공장이나 신발 공장에서 미싱을 돌리며 오빠와 남동생의 학비를 벌던, 우리가 흔히 낮잡아 부르던 '공돌이, 공순이'의 그 익명화된 여공 이야기일 것이라고 말이다. 지난 7월 3일, 홍대 상상마당 시네마에서 전주국제영화제의 화제작 《공순이》를 모두를위한기독교영화제(모기영) 특별시사회를 통해 만나보았다. 

이름이란 무엇일까. 단지 사람을 서로 구별하기 위해 붙여놓은 표식일까, 아니면 한 사람의 삶과 운명, 그리고 그를 바라보는 시대의 시선까지 함께 압축해 담아내는 작은 그릇일까.

성경에서 이름은 언제나 존재의 본질과 연결되어 있었다. 아브람이 아브라함이 되고, 야곱이 이스라엘이 되고, 시몬이 베드로가 되었던 것은 단순한 개명이 아니라 존재의 재정의에 가까웠다. 하나님은 사람을 부르실 때 언제나 이름부터 부르셨고, 이름을 안다는 것은 곧 그 존재를 안다는 뜻이었으며, 이름을 불러준다는 것은 곧 그 존재를 인정한다는 뜻이었다. 성명학에서는 이름이 운명을 이끈다고 여기고 현대 심리학에서도 이름이 자기이해와 타인의 기대를 통해 성격형성이나 대인관계에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결과들이 있다. 그래서 많은 문화권에서는 아이의 이름을 짓는 일은 단순한 작명이 아니라 축복과 기원의 의식이었다.

영화 제목만 들었을 때, 많은 이들은 당연한 고정관념을 작동시켰을 것이다. 70~80년대 섬유 공장이나 신발 공장에서 미싱을 돌리며 오빠와 남동생의 학비를 벌던, 우리가 흔히 낮잡아 부르던 '공돌이, 공순이'의 그 익명화된 여공 이야기일 것이라고 말이다. 지난 7월 3일, 홍대 상상마당 시네마에서 전주국제영화제의 화제작 《공순이》를 모두를위한기독교영화제(모기영) 특별시사회를 통해 만나보았다.

출처: 샤샤
출처: 샤샤

다큐멘터리 《공순이》의 주인공인 엄마 ‘김공순’ 씨의 시작은 눈물겹다. 청각장애를 가진 부모의 맏딸로 태어난 그녀는 언어와 소통의 장벽 탓에 제때 출생신고를 하지 못했다. 뒤늦게 관공서로 찾아간 마을 이장은 어머니의 고향인 전남 ‘고흥’을 입안에서 몇 번이고 되뇌이다가 “고흥, 고흥, 고응, 공... 아 그래, 공순이로 하자!”라며 즉흥적으로 이름을 적어 넣었다고 한다. 출생의 순간부터 세상이 씌운 가난과 장애, 그리고 성별의 편견 어린 시선과 고달픈 수식어를 온몸으로 받아내야 했던 이름, ‘공순이’. 이 기가 막힌 출생의 비밀을 딸의 카메라 앞에서 들려주며, 소리도 제대로 내지 못한 채 방바닥을 데굴데굴 구르다 눈물까지 찔끔 흘리는 공순 여사의 폭소는 얼핏 보아서는 웃는 것인지 우는 것인지 구별이 가지 않는다. 인간의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던 찰리 채플린의 말처럼, 인생의 어떤 서글픈 사연들은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종잡을 수 없어 그저 '웃프다'는 말 외엔 설명할 길이 없다.

여성노동자를 얕잡아 부르는 누군가의 멸칭이 너무나 부끄러워서, 젊은 날 신발공장에 진짜 공순이로 취직할 때는 ‘선희’라는 예쁜 가명을 썼다던 김공순 여사. 그녀는 그렇게 ‘막’ 지은 이름표를 달고서, 세상이 또다시 ‘막노동’이라 손가락질하며 폄하하는 남초 중심의 건설 현장에서 무려 20년 가까이 숙련된 기술로 벽지를 발라온 베테랑 도배 노동자다. 코다(CODA, Children Of Deaf Adults)라는 무거운 정체성을 짊어지고, 본인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이혼당해 버린 아픔을 겪었으면서도, 카메라 앞에서는 한없이 깨발랄하고 사랑스러운 '엄마'다.

출처: https://www.instagram.com/yusoyoung.movie/
출처: https://www.instagram.com/yusoyoung.movie/

회빙환과 사이다의 도파민 시대, ‘엄마’라는 치트키

최근 대중문화 전반을 지배하는 ‘회빙환(회귀·빙의·환생)’이라는 키워드는 이제 단순한 유행을 넘어, ‘이번 생은 망했다(이생망)’라는 청년 세대와 현대인들의 자조적 집단 무의식을 반영하는 서글픈 문화적 증상이 되었다. 《재벌집 막내아들》, 《내 남편과 결혼해줘》, 《어게인 마이 라이프》, 《판사 이한영》에서부터 최근 실사화 소식으로 나에게 충격을 준 《재혼황후》와 제작 중인 《상남자》에 이르기까지, 대중이 열광하는 서사의 플롯은 한결같다. 이번 생의 실패와 고통을 인내하는 것은 시간 낭비이니, 아예 인생을 리셋하여 미래의 지식과 압도적인 배경이라는 ‘치트키’를 보유한 채 가볍게 ‘사이다 복수극’을 펼치고 싶다는 열망이다. 고구마 전개는 잠시도 견디지 못하고, 지루한 회상이나 응시(Pause) 장면은 건너뛰는게 당연하며 도파민이 팡팡 터지는 자극적인 전개마저 2배속으로 돌려보는 숨 가쁜 시대다.

이처럼 재미없고 지루한 것은 죄악이 되어버린 도파민의 홍수 속에서, 상업적 자본도 없는 독립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유소영 감독이 세상 향해 당당히 꺼내든 비장의 치트키는 다름 아닌 ‘엄마’다.. 대한민국에서 딸의 카메라로 기록하는 엄마의 이야기라니, 이건 시작부터 반칙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관객의 심장을 치고 들어온다. 거친 남자들도 버거워하는 먼지 가득한 건설 현장을 종횡무진하며 도배지를 바르고, 하루 종일 땀과 석고 가루를 뒤집어쓴 채 일하면서도 여공 시절 ‘선희’의 마음으로 곱게 화장하는 일을 포기하지 않는 사랑스런 김공순 여사의 모습 위로, 극장 안 관객들은 저마다 자기 엄마의 얼굴을 자연스럽게 겹쳐 읽는다.

시사회를 보러 집을 나서던 길에 엄마가 보낸 묵직한 택배 상자를 받았던 참이었다. 맨날 뼈마디가 쑤시고 안 아픈 데가 없다면서도, 시골 텃밭 구석에서 자식 놈 주겠다고 땀 흘려 길러낸 감자며 고추, 깻잎, 상추, 애호박을 자식 입에 넣어주고 싶어 안달이 난 내 엄마. 바쁘다는 핑계로 한번 내려오라는 독촉을 미루는 딸을 기다리지 못하고, 그 무거운 상자를 굳이 우체국까지 들고 가 택배로 부치신 것이다. "그 무거운 걸 뭐하러 참..." 늘 그렇듯이, 고맙다는 따뜻한 인사 대신 툴툴거리는 타박이 먼저 튀어나와 버렸던 야박하고 못난 딸에게… 섭섭해하면서도 엄마는 결코 사랑과 돌봄을 멈추지 못한다.

모기영 부집행위원장 최은 평론가의 소개처럼, 이 영화는 ‘딸이 귀기울여 듣는 엄마의 이야기인 동시에 엄마가 딸을 무조건 응원하고 보듬는 영화’이기도 하다. 영화 뒤에 이어진 관객과의 대화(GV)에서 유소영 감독은 카메라를 들이댔을 때 엄마가 오히려 딸의 영화를 위해 의식적으로 예쁜 포즈를 취하고 좋은 ‘그림’을 만들고자 연기를 하려 했던 모습이 전혀 예상치 못한 당혹스러움이자 감동이었다고 고백했다. 딸이 만드는 영화가 부디 세상에서 잘 되기를 바라는, 자식을 향한 그 눈물겨운 엄마의 마음은 내 메마른 이성이 깨닫기도 전에 눈물샘이 먼저 감지하고 촉촉해진다. 딸이 비로소 고개 숙여 귀 기울여 듣게 된, 너무나 잘 안다고 오만하게 생각했지만 실제로는 단 한 번도 제대로 알지 못했던 한 여성 노동자의 진짜 이야기는, 화려한 컴퓨터 그래픽이나 뻔한 회빙환의 가짜 구원 서사 없이도 대중을 압도하는 강력한 몰입감과 묵직한 감동을 돌려준다.

 

“너 없이도 이렇게 잘살아냈다 이 시끼야” "When life gives you lemons, make lemonade."

영화가 완성되면 가장 먼저 누구에게 보여주고 싶냐는 질문에 공순 여사는 잠시의 망설임도 없이 이혼한 남편이라고 하며 “너 없이도 이렇게 잘 살아냈다.”고 보여주고 싶다고 한다.

회빙환이라는 키워드에서도 볼 수 있듯이 현대인의 판타지, 아니 어쩌면 시대와 문화를 초월한 인간의 가장 오래된 욕망은 결국 "여기가 아닌 어디, 내가 아닌 누군가, 이 생이 아닌 다른 생"인지도 모르겠다. 지금보다 더 좋은 조건에서 다시 시작하고 싶고, 지금의 실패와 상처를 수정하고 싶으며, 지금의 몸과 지금의 이름으로부터 도망치고 싶은 마음 말이다.

영화 《죽어야 사는 여자(Death Becomes Her)》와 《서브스턴스(The Substance)》는 늙어가는 자기 자신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젊고 아름다운 육체를 갈망하는 여성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최근 개봉한 《금발이 되고 싶어(Slanted)》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인종적 정체성마저 벗어던지고 백인 여성의 몸을 욕망하는 이야기를 그린다. 피부색도, 나이도, 계급도, 이름도 모두 갈아치울 수만 있다면 더 행복해질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

그러나 흥미롭게도 지금의 나를 부정하고 다른 내가 되고자 했던 이야기들의 결말은 대개 파국으로 끝나고 원래 모습보다 추악하게 망가져 버린다.

김공순 여사도 다른 삶을 꿈꾸었을까. 어쩌면 그럴 여유조차 없지 않았을까. 가난한 청각장애 부모의 딸로 태어나 서러웠던 어린 시절도,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홀로 남겨졌던 시간도, 남자들도 버거워하는 건설 현장을 전전하며 도배 일을 해야 했던 세월도 눈물을 보일지언정 웃으며 말하는 공순 여사의 대답은 호기롭다. 그것은 무책임하게 가족을 떠나버린 남편에게 하는 말이라기보다, 자신의 인생을 향해 던지는 당당한 선언처럼 들린다.

"When life gives you lemons, make lemonade."

(인생이 너에게 레몬을 준다면, 그것으로 레모네이드를 만들어라.)

이 오래된 속담처럼, 공순 여사는 자신에게 주어진 시고 쓴 삶을 끝내 자기만의 방식으로 달콤하게 살아냈다. “봐라, 내가 이렇게 잘 살아냈다”고 온몸으로 웅변하면서 말이다.

이제는 '공순'이라는 이름이 부끄럽지 않다는 우리의 주연 여배우 김공순 여사. 그녀의 이름을 한자로 어떻게 표기하는지 알 수 없으나, 내 마음대로 '공로 공(功)'에 '순할 순(順)' 자를 대입해 본다. 자신의 수고(功)로 마침내 삶의 순리(順)를 이어낸 삶. 그것이 바로 우리가 스크린을 통해 마주한, 가장 아름다운 이름의 본질이 아닐까.

출처: https://www.instagram.com/yusoyoung.movie/
출처: https://www.instagram.com/yusoyoung.movie/

엄마, 여성, 노동을 이야기하는 이 영화는 나에게도 미련이 큰 개인적 기억을 소환한다. 작년 나는 《나는 엄마가 먹여 살렸는데》, 《니는 딸이니까 말하지》를 펴낸 출판사 ‘딸세포’의 김은화 작가가 진행하는 모녀 구술사 프로그램에 참여한 적이 있다. 비록 온전한 한 권의 구술사로 매듭짓지는 못해 아쉬움이 남았지만, 짧은 시간이나마 엄마를 인터뷰하며 내가 전혀 알지 못했던—사실은 굳이 궁금해하지도 않았던—한 여성의 역사를 마주할 수 있었다.

출처: 샤샤
출처: 샤샤

"엄마와 딸의 서사는 이제 너무 뻔한 신파가 아니냐"고 누군가 냉소할 때쯤, 세상은 이토록 새로운 얼굴의 엄마들을 스크린 위로 호명해 낸다. 익명성에 갇혀 있던 ‘공순이’들의 역사를 복원하고, 느슨해진 모녀 관계의 서사에 팽팽한 긴장감과 생동감을 선사하는 수많은 여성들의 이야기가 새삼 반갑고 감격스럽다. 이번 인천 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되었다. 딸의 다정한 시선으로 길어 올린 김공순 여사의 이 눈부신 레모네이드 같은 삶이, 올여름 더 많은 관객의 마음에 가닿아 서늘하고도 뜨거운 위로가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보석 같은 영화를 특별 시사회로 만나게 해준 모기영에게도 다시한번 감사드린다. 많은 응원과 후원을 부탁드립니다!

출처: 샤샤
출처: 샤샤

이런 멋진 굿즈까지!! 실패로 좌절하는 청춘들에게 응원의 한마디를 해달라는 GV시간 관객의 요청에 이 영화자체가 가장 큰 응원의 메시지가 아닐까 싶다는 유소영 감독의 말이 옳습니다! 정말 일이 잘될 것처럼 힘이 나는 마법의 부적—아니 굿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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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샤샤
편집디자인 모기영 편집부

2026년 7월 11일 토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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