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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ÉMOIRES: 엄마의 옛날 이야기, 그리고 수토메의 시작

2026.10.12 | 조회 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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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SOPHIE HONG

엄마의 옛날 이야기, 그리고 수토메의 시작

2013. 12.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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맏딸은 아빠의 모습을 닮는다고들 합니다. 저 역시 그렇습니다. 심지어 아주 하찮은 습관까지도 아빠를 닮았습니다. 그래서인지 아빠에게는 가끔 화가 나더라도, 한 숨 자고 일어나 생각해 보면 이해가 가곤 했던 기억이 납니다. 하지만 엄마는 지금까지도 종종 낯선 사람처럼 느끼기도 할 만큼 닮은 곳을 찾기가 어렵습니다. 게다가 저는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자주 늘어놓는 성격도 아니어서, 잠시 외국 생활을 했던 시기를 제외하고는 삼십 년 넘도록 같은 집에 살면서도 엄마라는 사람에 대해 아는 것이 많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미국에서 오래 생활했던 동생이 엄마와 더 많은 것들을 공유하고 있을 정도였으니까요.

그러던 제가, 지난해 회사를 그만두고 망가진 몸과 마음을 추스르며 하루의 대부분을 엄마와 보내는 날이 늘었습니다. 대화를 나누는 시간도 자연히 늘면서, 엄마에게 한 번도 물어본 적 없었던 것들에 대해 묻기 시작했습니다. 그리 심오한 질문들은 아니었습니다. 그저 인생의 방향을 바꾸어 놓은 결정적인 순간들에 엄마가 어떤 선택을 했었는지, 이유는 무엇이었는지, 이런 것들이 궁금했습니다. 젊은 시절의 엄마를 제 모습에 비춰 보기도 하면서요.

엄마는 지금껏 저에게 들려준 적 없었던 옛날 이야기를 참 많이도 들려주었습니다. 아빠를 만나기 전이었던 첫 직장 시절, 닮고 싶었던 언니와 한 편의 시 같은 편지를 주고 받던 여고 때의 어느 나른한 여름방학, 외할아버지가 당신의 이름을 걸고 운영했던 빵집의 전설, 외할머니의 한복집 이야기, 그리고 결혼 후 생전 처음으로 오징어를 사서 손질하다 시커먼 내장을 보고는 오징어가 다 썩은 줄 알고 통째로 내다 버렸던 사건까지…. 엄마는 아득한 기억을 마치 어제의 일들인 듯 생생하게 들려주었습니다. 돌아보면 아마도 그 즈음이었던 것 같습니다. 엄마를 나의 엄마가 아닌, 한 사람으로 바라보게 된 것이 말이지요. 

학창시절에는 국어 선생님이 되고 싶었을 만큼, 그리고 '문학소녀'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었을 만큼 엄마는 책 읽기를 좋아했습니다. 살림이 넉넉지 않은 집안의 맏딸로 혼자만의 시간을 좀처럼 가지기 어려웠기에, 엄마에게는 도서관에서 보내는 유성 같은 시간이 소중했습니다. 같은 학급 안에서는 누구의 것인지도 모르는 소설책을 서로 돌려 읽는 것이 그리도 즐거웠답니다. 일상의 소소한 낭만을 사랑했던 소녀 시절의 엄마는, 의외로 스케일이 큰 장편소설과 레마르크 류의 냉소주의 문학에 빠져 있었다고 합니다. 이런 면모에서라면 제가 엄마를 닮기는 했는지도 모르겠네요.

엄마가 나의 엄마가 아니었던 시절의 이야기를 들으며 뜻밖이라는 반응을 종종 보이던 저에게, 엄마는 정색하며 “넌 나를 다 알 수 없을 거야"라는 의미심장한 말들을 건네기도 했습니다. 신혼 시절까지도 언제나 책을 가득 쌓아 두고 읽었다 하니, 엄마의 삶은 아마도 저를 낳으면서부터 변하기 시작한 것이 아니었을까 합니다. 엄마의 상상 속 세계를 채우던 다채로운 서사도, 크고 작은 꿈들도 그렇게 잊혀 갔겠지요. 지금의 엄마에게 꿈이 무엇이냐 물으면, 늘 가족의 안부에 대한 바람 뿐입니다.

그렇게 엄마와 일상의 긴 시간을 함께하던 지난 가을, 저는 아주 오래전부터 엄마가 "나이 들어서는 고향으로 돌아가 아빠와 함께 작은 호텔을 운영하고 싶다"는 말을 가끔 했던 기억이 문득 떠올랐습니다. 좋아하는 소설 속에서 평화로운 전원 마을의 호텔을 배경으로 하는 장면을 만날 때면 유난히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막연한 미래에 대하여 상상하곤 했다면서요.

“엄마, 작은 호텔 한번 만들어 볼래?”

어떤 직감이 강렬하게 스친 듯, 저는 망설임 없이 물었습니다. 당시 우리는 살 집을 구해야 했습니다. 가세가 갑작스럽게 기울면서 집은 경매로 넘어가 있었고, 당장 내일의 일을 장담할 수 없던 상황 속에서 모든 것이 막연하기만 했지요. 계기가 어찌 되었든, 저는 소녀 시절 엄마의 꿈을 한번은 이루어 주고 싶었습니다. 집과 일터를 한 번에 마련할 수 있는 방안이기도 하니 더욱 매력적이었지요. 그리고 그날 오후, 마치 때를 알고 내리는 비처럼, 안국동에서 외국인을 대상으로 하는 한옥 숙박시설을 운영하고 있는 지인으로부터 자신의 사업을 인수하여 운영해 볼 생각이 없냐는 제안을 받았습니다. 그렇게 그날 저녁 우리는 종로로 향했습니다. 수토메의 이야기는 그렇게 시작되었습니다.

 

홍윤경, 『메모아르』(수토메, 2023)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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