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llo] 지난 한 주 어떻게 보내셨나요?
어느 덧 선선해진 초가을입니다. 각자의 자리에서 어떻게 지내고 계신가요. 저는 개인적으로 1주일 정도 낯선 곳에도 다녀오기도 했고, 일적으로도 새로운 도전들을 마주하며 한 걸음씩 나아가고 있습니다.
그런 다양한 상황 속에서도 왠지 모르게 마음이 고요하고 차분한 느낌을 유지하고 있는데요. 아마 매일 조금씩 읽고 있는 책 '감정을 마주하면 길이 보인다 (문요한 작가)' 덕분인 것 같습니다. 코칭을 처음 공부 막 했을 때 마주한 제 핵심 감정이 불러 일으키는 폭풍보다는, 그래도 어느 정도 작업을 해 와서 그런지 잠잠하다 살짝 다가오는 파도처럼 제 깊은 마음과 마주하고 있습니다.
오픈채팅방에 올라오는 참여 멤버들의 인증을 보며, '정말 다양한 핵심 감정이 있구나, 유사한 상황에 정말 다른 감정을 느끼는 구나' 느끼기도 하고, 어떤 글에는 제 마음이 같이 침잠해 버리기도 합니다. 여러분들은 어땠나요. 어떤 자신의 마음과 마주하고 있나요.
오늘도, 지난 한 주 제가 셀프코칭한 이야기를 담담히 담아보려 합니다.
*책을 함께 하고 있지 않은데, 이 레터를 만난 분을 위해 관련 책 내용이 담긴 영상 하나 공유해둡니다. 책 내용의 핵심을 잘 담고 있습니다. 이번 주말 한 번 시청하시면서, 여러분의 핵심 감정과 마주해보실 수 있길 바랍니다.
[이번 주의 영상] 유난히 예민한 당신, 자꾸 긁히는 이유 - 문요한
지난 목요일 점심시간, '햇빛나눔'이 있었습니다. 이 날은 나눔 종료 후에 스스로 돌아보기를, '아 뭔가 내 얘기를 많이 한 것 같다. 뭔가 가득 쏟아낸 느낌인데, 그게 뭐였을까.'했던 것이 기억납니다. 한 번 글로도 풀어보려 합니다.

"핵심 감정이 우리를 힘들게 하는 것은 그 감정 자체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로부터 파생되는 온갖 가혹한 기준 때문이다."
"성향아, 니가 어떻게 좀 해봐."
어린 시절 부모님이 싸우시곤, 그 중재를 첫째인 제게 요청하시곤 했습니다. 그런 저는 하필 (지금 코치로서도 가진 강점, 재능이지만) 중재의 역량을 타고나게 갖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가족 내 갈등이 있을 때마다, 저는 중심에 섰었습니다. 지나고 나서 보니, 그건 건강하지 않은 중재였다는 것을 이해합니다. 사실 부모님이 갈등을 겪으셨을 때, 저도 불안하고 두려웠을텐데, 저보다 25년 이상 사신 어른의 갈등을 어린 제가 중재했다는 것 자체가 말이 되지 않는 상황이었음을 이제는 압니다.
그 때부터 제 안에 어떤 그룹 내에서 갈등 분위기가 있어보이거나, 어떤 아젠다가 있으면, 저도 모르게 그 중심에서 '제가 먼저 해결하려고 하는' 모습, '상대를 행복하게 하려면 뭘 하면 좋을지 준비하는' 모습을 갖게 되었습니다. '내가 이 관계를 지켜야 해', '이 관계에서 발생할 수 있는 갈등, 문제는 내가 미리 관리하고 예방하겠어.' 같달까요. 게다가 저는 타고난 계획형(Power J)이기도 했습니다. 타고난 중재, 소통의 재능에, 타고난 계획형이기까지 한 저는 그렇게 제 가까운 관계, 업무적 관계에서 그런 역할을 누가 시키지 않아도 먼저 손을 들며 살아왔던 것 같습니다.
그런 제가 올해 초, 그런 제 '습'에 경고를 울리는 일이 있었고, 저는 제가 꼭 하지 않아도 되는 관계 안에서도 그렇게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 일이 있었습니다. 아들러 식으로 표현하면, '제 과제'가 아닌 '타인의 과제'까지 '제 과제'처럼 대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아무도 자신의 과제까지 다뤄달라 하지 않았는데, 제 가까운 관계라는 이유로 저도 모르게 그 사람의 과제가 어려워지기 전에 제가 먼저 케어하려 했고, 당시 저는 제 과제 하나 제대로 못하면서 타인의 과제까지 케어하려다가 둘 다 제대로 못했습니다. 그러자 그 타인이 제게 물었습니다. '누가 그렇게 해 달래?'
그 때 깊게 스스로와 만났습니다. '그러게, 아무도 나에게 그렇게 해 달라하지 않았는데, 나는 왜 그러지?' 그렇게 2-3일 정도 눈만 뜨면 눈물을 줄줄 흘리던 저는 다짐했습니다. '나의 과제가 아닌 것에 선 넘지 않겠다'고요. 그리고는 하나씩 선을 넘고 있던 제 일상 속 관계들에서 한 걸음씩 뒤로 빠지고, 하나씩 손에서 놓기 시작했습니다.
"사랑으로 했다면서, 상대가 내 뜻대로 반응 없어 빡이 친다면, 사랑이 아니다"
내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불안한 분위기'가 생기지 않도록 늘 예방하는 저를 바라보며, 그게 사랑으로 하는 거라 생각했는데, 한 번 더 생각해 보면 사랑이 아니라, 불안을 막고 싶은 '제 불안'이었음을 이제 압니다. 불안을 막고 싶은 제 '통제욕구'였음을 압니다.
사랑은 내가 뭘 줬는데, 상대가 내가 기대한 반응을 하지 않아도 상관 없는 것이라 했습니다. 하지만, 삐뚫어진 제 사랑, 제 케어 너머에는 내가 기대한 반응이 없으면 속상한, 억울한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 뜻은 '내가 뭘 주고 있는 행위'가 내 자신에게 '건강하지 않은 = 무리 중이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랑을 하려면, 제가 무리하지 않아야 함을 배워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올해 내내 '무리하지 않는 선', '나의 과제와 타인의 과제의 분리', '주고 나서 상대 반응에 개의치 않는 자유한 느낌'을 배우고 있습니다.
그럴려면 제가 뭘 할 때 이게 '무리인지 아닌지' 자체를 인지해야 하는데요, 어이가 없게도, 이 나이가 되어서도 제 몸의 감각에 이리 둔함을 또 배웁니다. '뭐가 무리인지' 그 선도 모를 만큼 늘 무리 이상으로 종종대며 살았음을 이제 압니다. 내 안에 무리다, 건강하지 않다라는 감각을 이제야 배웁니다. 그 어린 7살 때, '저는 중재하고 싶지 않아요, 저도 지금 아프고 속상해요, 그걸 중재하는 건 제게 무리에요.' 라고 말 못하고, 못 배웠던 그 감각을 40대가 되어서야 새삼스레 배워가는 중입니다.
그리고 8개월 좀 지난 지금, 조금 더 가벼워졌습니다.
조금 더 편안해져가고 있습니다.
그건 그 사람의 과제임을 압니다.
내가 기꺼이 줄 수 있는 사랑까지 건네고, 아니면 손을 접을 수 있어졌습니다.
10년은 더 연습해보고 싶은 귀한 감각입니다.
이번 주에 제공된 팟캐스트와, 책 주요 문장 공유드려요.
[이번 주의 음성] EP. 91: "마음의 큰 가시를 빼야 한다" | 26년 9월의 책 '#감정을마주하면길이보인다', 2026-09-11
[이번 주의 문장] 감정을 마주하면 길이 보인다, 문요한 저 (2025)
힘든 감정일수록 저절로 해소되지 않는다. 경험되고 이해되고 표현되어야만 해소된다. (6)
유일한 답은 ‘내가 그 사람이 되어주는 것’이다. 내가 상처받은 그 아이의 옆에 있어 주는 것이다. 이제라도 그 아이가 어떤 일을 겪었는지 관심을 갖고 들어주는 것이다. 그 아이가 혼자 감당할 수 없어 억눌렀던 그 힘든 감정을 다시 경험하고, 이해하고, 표현해 보는 것이다. 자신 안의 상처받은 아이를 홀로 두지 않는 것! 그것이 핵심 감정 치유 여정의 시작이다. (19)
아이는 양육자의 눈치를 살피고, 양육자를 기분 좋게 해주려고 애를 쓰게 된다. 그래야만 심리적 고통을 덜 받으면서 나아가 돌봄과 사랑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29)
-부모는 아이가 세상에서 만난 최초의 사람이다. 아이가 최초로 사랑한 사람이면서 동시에 아이가 최초로 미워한 사람이다. (87)
아동, 청소년기에 형성된 핵심 감정은 시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는다. 강한 감정을 유발하는 사건은 생존에 중요하기에 뇌는 이를 반드시 기억한다. 그리고 유사한 자극에 쉽게 활성화된다. 점점 더 예민해지고 강렬한 감정이 된다. (35)


여정의 마지막 날, 숙소 근처에 있는 공원 벤치에 누워, 따스한 햇살에 그저 가만히 만끽하던 차였다. 오직 들리는 것은 놀이터에 놀고 있는 아이들 웃음소리와 짹짹 우는 참새들 소리였다. 자연스럽게 눈이 나무에 앉아 있는 참새를 쫓게 되었다. 어찌 저리 작은 새가 저리 빨빨대며 요리조리 이동할까, 귀여워서 눈이 자꾸 갔다.
그러다 문득 참새의 엄청 작은 발이 눈에 들어왔다. 나뭇가지에 앉은 참새의 작은 발. 마침 거센 가을바람이 계속 불어 하염없이 흔들리는 나뭇가지 위에 앉아 있는 저 발. 참새는 저 흔들리는 가지가 무섭지 않을까, 그 때 이전에 둘째 돌 때 누군가 선물 카드에 적어주었던 문장이 떠올랐다.
"나무에 앉은 새는 가지가 부러질까 두려워하지 않는다. 새는 나무가 아니라 자신의 날개를 믿기 때문이다" - 류시화, 책 '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보지 않는다' 中
저 작은 참새도 자기가 앉은 나뭇가지가 아니라 자신의 날개를 믿는구나란 것에 감탄할 무렵, 연이은 질문이 올라왔다. 그럼 저 참새는 어떻게 날개를 믿을 수 있게 되었을까? 아, 결국 계속 날개를 펼쳐서 휘저어 보았겠구나. 계속 공중에서 떨어질까봐 두려워도 계속 날개를 퍼덕거렸겠구나. 그럼 나도 나를 믿기 위해서 뭘 하면 좋을까. 계속 내 날개를 퍼덕거려볼 수 있는 곳으로 가야겠구나. 가지를 믿지 말고, 계속 나와 만나야겠구나.
그리고 그 날 밤, 쏟아질 것 같은 밤하늘 별을 보며, '밤하늘이 어두워야만 우리는 비로소 빛나는 별을 볼 수 있다'란 말이 떠올랐다. 나의 핵심감정은 어두운 상황에 생겼지만, 그 핵심감정 덕분에 우리가 볼 수 있는 빛나는 별도 있지 않았을까? 나는 그렇게 어린 시절부터 중재, 소통하는 힘을 키워왔고, 가까이 있는 관계를 잘 케어하는 감각을 키워왔기에, 그게 또 지금 나의 직업에서는 강점이 되어주기도 했기 때문이다.
해소되지 않아 구석에 박혀 있는 그 핵심감정을 마주하고 싶지 않아서, 팔에 박힌 가시가 건들여질까봐 조심하는 삶을 사는 동안에 길러진 근육도 있지 않을까. 책을 읽은 1주 동안 핵심감정을 꼭 나쁘고, 타파해야만 하는 존재처럼만 인식되다가, 그 덕분에 내 안의 빛을 발견할 수 있단 생각을 하니, 달리 보이기 시작했다. 나부터도 그런 어린 시절의 깊은 고민이 있었기에 2010년에 코칭을 처음 만났을 때, 한 눈에 내가 하고 싶은 일이란 것을 알아볼 수 있었던 것 같다.
오늘 레터를 읽으며
1) 어떤 나 자신을 만났나요?
2) 그런 나 자신과 함께 다음 한 주 어떻게 살아보고 싶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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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주는코치
내 핵심감정이 어떤 나를 만들었을까? 혼자서도 씩씩하게 잘해내는 내가 되었다. 누구도 나를 지켜주지 않고 보살펴주지 않아서 힘들고 어려웠던 시간들, 외롭고 고단했던 시간들을 생각하며 우울해 했던 시간들을 뒤로 하고 지금은 혼자의 자유를 만끽하며 살아가고 있다. 말하고 보니 이것 또한 나의 강점이 된 것이다. 혼자가 어색하지 않은? 어색할때도 많다..ㅎ 그렇지만 근본적으로 혼자있을때 외롭거나 슬프지 않다. 그런 나 자신과 다음주에는 모닝페이지를 하며 나와 만나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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