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코칭’을 만났을 때 나는 적잖이 놀랐던 것을 기억한다. 내가 살아오며 궁금해 했던 것이 모두 함축적으로 담겨 있는 분야 같이 느껴졌다. 많은 것이 와닿았지만, 그 중에서도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에 대한 어떤 실마리를 찾은 듯한 기쁨에, 집에 돌아오던 6호선 지하철 안에서 벅찼던 가슴을 잊지 못한다.
지나고 나서 보니,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라는 질문 이면에 ‘나를 어떻게 잘 데리고 살까’란 질문을 품고 있었던 것 같다. 그 때 난 20대 중반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사회적 시계’를 계속 듣고 자랐던 나였다. 10대 때는 오직 좋은 대학교를 들어가기 위해 달렸고, 대학 들어와서 20대 때는 드디어 대학생이야’란 안도감도 잠시 ‘취업’, ‘소득활동’이라는 더 큰 문이 기다리고 있었다. 취업 이란 것 앞에 다시 사회적 시계는 더 세게 째깍 거렸다. 갖추어야 하는 인턴십 경험, 자격증들, 학점들. 대학의 낭만은 없었다. 다시 사회가 말하는 것을 향해 뛰었다.
아직도 기억난다. 합정역 근처 출판사가 운영하는 한 카페에서 모 회사에 이력서를 막 쓰던 오후였다. 나란 존재가 어떤 점에서 가치가 있는지, 얼마나 열심히 살아왔고, 어떤 능력을 갖추었는지 하염없이 쓰던 그 때, 나에게 비춰진 오후 햇살이 이렇게 말하는 듯 했다. ‘세상이 아니라, ‘나’는 어떻게 살고 싶은가?’ ‘사람들이 말하는 좋은 삶이 아니라, ‘내’가 정말 살고 싶은 삶이란 어떤 걸까?’ 가슴이 쿵. 그렇게 멍하니 창 밖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옆을 둘러보니, 출판사의 다양한 책들이, ‘다양한 삶이 있어’라고 내게 속삭이는 듯 했다.
그 때 였을까, 난 오히려 ‘깊은’ 터널에 빠졌다. 너무나도 명료했던 방향성이 다 사라진 듯 했다. 어떻게 살고 싶은가 물으니 오히려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게 된 느낌이었다. 방향을 잃은 나를 무엇을 해야 그 방향을 찾을 수 있을지 몰랐다. 그래서 난 겨우 할 수 있는 것이라도 시작했다. 치열하게 새벽기도를 나갔다. 손을 모아 하나님께 기도를 하기도 했다. 깜깜한 새벽 손을 모으면 하염없이 눈물이 나기도 했다. 너무나 열심히 살아왔는데, 난 나 자신을 잃은 듯 했고, 나에 대해 아는 것도 하나 없었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모르겠는 느낌에 절망적이고도 슬펐다.
그렇게 얼마나 슬픈 시간들을 보냈을까. 충분히 슬퍼하면 바닥까지 내려가 딛고 올라오는 것일까. 무슨 이유인지 모르겠지만, 어느 날 아침 나는 노트와 펜을 들고서, 당시 내가 즐겨 가던 상수동 이리카페에 나 자신을 데려다 놓았다. 아메리카노 한 잔을 주문해두고, 노트를 폈다. 그리고 펜 뚜껑을 열었다. 그리고 내 마음 속에 차 있는 모든 말들을 그 하얀 종이 위에 폭풍적으로 써내려 갔다. 휘갈겨 갔다는 것이 더 맞았을 것이다. 마치 가슴 속 컵에 가득차 있어 찰랑거리던 무언가가 팔 따라 흘러 내려와 내 손 끝 펜을 끝으로 줄줄 흘러내려가는 듯 했다. 그렇게 내 컵에 차 있던 무언가가 다 비워질 때까지 멈출 줄 몰랐다. 그게 나와 ‘자기대화일지’의 첫 만남이었다.
자. 기. 대. 화.
대화란, 마주보고 이야기를 나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대화를 자기 자신과 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자기 자신을 ‘마주보고’ 이야길 나눈다는 것이다. 아, 이 간단한 말이 다 큰 성인에게 왜 이토록 어렵고 힘든 것이었단 말인가.
그 이유는 분명했다. 나 자신이 있다는 것을 잊을 정도로, 나의 모든 시선이 ‘외부’로 향해 있었다. 삶의 모든 기준을 외부에 두고 있었다. 나는 그 외부의 기준들을 충족시키고, 따라가는 ‘대상(object)’에 불과했다. 나는 그렇게 나를 소외시키고, 나를 잃어갔다. 나와의 관계가 멀어졌다는 가장 분명한 증표는 ‘공허함’이다. 내 존재(being)로 살아가기 위해 태어난 이 삶에서 내가 사라졌을 때 오는 그 감정.
하얀 노트에 빽빽하게 적힌 검은 활자들은 내게 말해주고 있었다. ‘내’가 여기 있다고. ‘목소리’를 가진 내가 여기 있다고. 내 이야길 들으며 살아가달라고. 내가 여기 있음을 잊지 말아달라고. 나는 항상 네가 내 이야길 들어주길 이렇게 기다리고 있었다고. 그 때부터 나는 ‘자기대화일지’ 작성을 하루 중 반드시 챙기는 사람이 되었다.
반드시 챙겨야 했던 이유는 간단했다. 그러한 ‘노트’라는 매개체를 통해 ‘나 자신’을 잃지 않기 위해서였다. 그 뜻은 그만큼 잠시만 정신줄을 놓으면 다시 나를 잃고 막 앞을 보고 내달리던 나로 너무나도 빠르게 회귀해버릴 만큼 내가 연약하단 것을 의미했다. 매우 의식적으로 내가 나를 챙겨야 했다.
그렇게 챙겨 쓰던 나의 자기대화일지에는 내 삶이 담겨 있다. 나의 희노애락 묻은 하루하루들, 혹시 이루어질지 몰라 하며 적어보는 나의 꿈들, 누구에게도 말 못할 나의 수치스러움, 연약함, 깊은 좌절감. 거름망 없이 적혀내어지는 내 진심들이 일지에 가득 적혀 있다. 나의 자기대화일지는 그렇게 가장 가까이에서 내 자신의 이야길 들어주는 벗이 되어주었다.
자기대화일지를 작성한 지도 어느 덧 15년이 다 되어간다. 여전히 적혀 내려가는 글들에는 큰 변화가 없는 듯 하지만, 시나브로 나는 나 자신을 무의식적으로도 챙길 수 있는 내가 되었다. 내 안의 목소리와 나의 존재를 잃지 않는 내가 되었다. 어떤 상황에서도 누군가의 마음과 상황을 더 우선시 바라보던 내가 조금은 더 그 무게의 추를 나 자신에 두게 되었다.
나는 이런 나의 경험을 바탕으로 내가 하는 일의 장면들에서 ‘자기대화일지’를 꾸준히 소개해왔다. 너무나 간단해 보이지만, 소개해 드릴 때마다 듣는 표현들은 놀라웠다. 내가 처음 쓰기 시작했을 때의 모습과 비슷했다. 그건 마치 ‘나란 존재 없이는 이 삶도 없지만, 이 삶을 살아가며 나는 나란 존재를 잊고 살아왔어요.’같은 새삼스러움, 놀라움, 슬픔, 먹먹함 같은 것 같달까. 나의 지독한 아픔에서 벗어나고자 간절하게 발버둥치며 발견한 무언가가 누군가에게도 도움이 된다는 것에 뭉클했다. 그래, 우리는 그렇게 크게 다르지 않은 사람들이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이 그리웠으며, 우리 자신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싶은 마음은 가득하나, 그 행위가 어색할 뿐인 서툴게 자라난 어른들이었다.
그러다 연초에 국내 디자인문구 브랜드 ‘인디고’ 측과 ‘자문자답 자존감 다이어리 50가지 질문’편 업데이트 하는 소통을 하다가, ‘자기대화일지’라는 것에 대해 이야기 나누게 되었다. 현이사님과 이야기 나누며, 올해 한 번 자기대화일지를 노트로 출시하는 것에 대해 동의하게 되었고, 빠른 기획 단계를 거쳐 디자인 작업까지 진행되었다. 인디고 직원분들은 나의 작은 아이디어를 언제나 위대하게 실물로 만들어 주시는 분들이시다. 언제나 감탄스럽다. (지난 2017년부터 이어진 인연, 인디고와의 여러 자문자답 시리즈 개발 프로젝트들은 감사하게도 최근 ‘트렌드 코리아 2025’에도 소개되었다 : https://www.instagram.com/p/DHDrqUhTZBw/?utm_source=ig_web_copy_link&igsh=MzRlODBiNWFlZA== (최근 관련 팝업 영상)
그리고 이번 주, 드디어 제작이 되어 저자인 내게 몇 권 도착했다. 박스를 뜯는 내내 뭔가 마음이 뭉클했다. 2010년 나는 15년 뒤, 이런 미래가 있을거라 생각하지 못했다. 내가 생각한 것보다 조금 더 멋진 이 '현재'라는 미래는, 어쩌면 과거 치열하게 나의 아픔을 다루고 마주했던 그 때의 내 경험들로 만든 무언가가, 그 진심이 사람들에게도 전해졌고, ‘자기대화일지’라는 하나의 단어에 그 마음들이 묻어 전해지고 전해진 것 아닐까.
더 자기 자신을 쉽게 잃어버릴 수 있는 시대다. SNS로 더 많은 세상의 기준들, 화려한 사람들, 달려나가는 옆 사람들의 성취들에 쉽게 노출될 수 있다. 나 자신이 올바로 서 있지 않고 그런 파도를 마주하면, 나란 존재는 파도에 금방 휩쓸려 떠내려갈 것이다. 어쩌면 우린 지금 더 자신을 진하게 만나야 하는 건지도 모른다. 그것도 매우 지독하게. 나를 붙들고서, ‘오늘 하루는 어땠어?’, ‘오늘 네 마음은 어땠는데?’, ‘오늘 네 하루를 통해 알게 된 건 뭐야?’, ‘지금 네가 원하는 건 뭐야?’ 하루 5분이라도 묻고, 그 모든 삶의 중심을 우리 존재 중앙에 두고서 다시 세상에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
그 어떤 삶을 살더라도, 이것 한 가지 만은 확실하다.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 자신은 늘 있던 그 곳에서 우리 자신이 자신의 이야길 들어주길 기다리고 있다. 시간을 내어주길 기다리고 있다. 그 출발은, 우리 자신이란 존재가 거기 있다는 것부터 시작일 것이다. 우리 자신에게 곧바로 돌아가게 할 마법의 말은 아마도 우리 자신의 이름일테다. 지금 이 순간, 우리 자신의 이름을 불러보자. ‘OO야.’ 그럼, 누군진 모르겠지만 무언가 그 다음 답이 들릴 것이다. 그 목소리가 바로 ‘우리 자신’인 것을. 이번에 출시된 이 자기대화일지 노트가 어느 도시 어딘가에서 이것이 필요했던 누군가에게 가 닿아 그 사람이 자신을 만나는데 조금이라도 더 도움이 되길 소망한다. 내가 15년 전 일어섰던 것처럼, 15년 동안 계속 넘어지고 일어섰던 것처럼, 자기 자신을 만나고, 만나서, 결국 자기 자신과 살아가기를.
이번 주 소식
소식 1. [팟캐스트] EP. 46: "정리하기, 씻기, 달리기" | 25년 6월의 책 '#나라는식물을키워보기로했다 ', 2025-06-11
소식 2. 코칭수련커뮤니티 '사이시옷' 7월 셀프북코칭 모집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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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퍼
나의 간절함. 연약함을 드러내지 않고 알아가는 좋은 방법이네요. 일지가 있다면 좀 더 쉽게 접근할 수도 있고요. 그나저나 아직도 이리카페가 있을까요? 골목길 카페에서 디자인씽킹을 열심히 논하던 시절을 떠올려 주셨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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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y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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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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