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의 날개를 통해 본 삶
불안한 뉴스가 연일 지속됩니다.
전쟁에 관한 뉴스가 끊임이 없습니다.
경제에 관해선 말할 것도 없습니다.
삼성전자는 흔들리고 있고
부동산 시장도 심상치 않습니다.
오히려 코로나 때보다 심각하다는 평가가
심심치 않게 들리고 있습니다.
우리의 삶은 늘 그랬습니다.
불안은 길고 안정은 짧았죠.
IMF 이후로 30년간 국내 경제에
‘호황’이라는 단어는 없었습니다.
그 뜻은
이 글을 읽고 있는 대부분은
늘 불황 속에서 살았다는 뜻입니다.
이토록 불안이란 우리의 삶에서
뗄 수 없는 것입니다.
불안은 외면할 수도 없고
제거할 수도 없습니다.
오늘은 그 누구보다 불안했던 시기에
불안했던 시절을 보낸 작가
이상의 ‘날개’를 가지고 와서
저의 인사이트를 더해서 전해드리려 합니다.
오늘의 내용은 이상의 날개를 읽은
‘저만의 해석’이며 이것은 학술적, 문학적 정답이라거나
오류가 없는 내용이 아님을 미리 밝힙니다.
어쩌면 개인의 소감에 가까울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제가 느끼기에
이상의 ‘날개’는 분명
우리의 불안의 이유와
불안을 이겨내는 삶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삶에 불안이 산재해있거나,
그 불안의 시기를 잘 지나가고 싶으신 분이라면
오늘의 내용이 도움이 될 것입니다.
- 간략한 줄거리(사견이 포함된, 내용을 아시는 분은 아래로 넘기셔도 됩니다.)
이야기는 33번지 18가구에서 시작된다.
빛이 들지 않는 어느 방 한편에 한 남자가 누워있다.
그는 하는 일 없이 방에 누워 머리로
발명도 하고 시도 쓰고 논문을 쓰기도 한다.
하지만 이내 그것이 다 무슨 소용이 있을까 싶어
생각을 접고 아내가 없는
아내의 방으로 가서 자신만의 놀이를 한다.
아내의 향수를 맡기도 하고, 작은 불놀이도 한다.
그의 아내는 아름답지만, 무슨 일을 하는지 모르고
대화는 없지만 아내는 늘 그에게 은화를 준다.
그의 아내는 33번지 18가구 속에서
가장 아름다웠고 그 아름다움은 자랑이었다.
그는 그 누구와도 교류하지 않았지만
자신의 삶에 만족했고
특별히 자신이 살고 있는 방을 위해
자신이 태어난 것만 같다고 할 만큼
자신의 삶을 즐겼고 감사했다.
아내가 지어준 밥, 정확히 말하자면
아내가 지었을 거라 추정되는 밥과 반찬이
맛있지는 않았다.
그것이 때때로 야속하기도 했지만
그는 모이를 받아먹듯 그것을
넙죽 받아먹었다.
아내는 아침저녁으로 밥을 가져다주었고
그는 그것을 홀로 방에서 앉아 먹었지만
그의 몸은 마르고 피골은 상접하다.
그는 매일 그런 삶을 살았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아내가 밤 외출한 틈을 타
외출을 나가기로 한다.
은화를 지폐로 바꾸고
어디로 가야 할지 몰랐지만
도리어 목적지를 잃어버리기 위해
거리를 쏘다녔다.
하지만 오랜만의 외출에 그는
급격히 피곤해졌고 간신히 버티며
집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자신의 방으로 가려면 반드시
아내의 방을 통과해야 하는데
아내의 방에 손님이 있는 것 같았다.
이내 헛기침을 하고 아내의 눈초리를 피해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얼마 후 그는 다시 밤 외출을 나선다.
허나 야맹증이 좀 있는 터라 될 수 있는 한
밝은 거리로 돌아다닌다.
그러고는 경성역에 위치한 카페에 들렸다.
커피를 주문해 마신다.
그는 지금까지 돈을 써 본 일이 없었다.
지난 외출 때도 돈을 바꾸기만 하고
떠돌아다니기만 했는데 처음으로
돈을 사용해 커피를 마셨다.
돌아오는 길, 비가 내리기 시작하고
그는 비를 맞으며 집으로 돌아왔다.
아내는 밤 12시 이후에 들어오라고 했지만
그는 도무지 참지 못하고 12시 이전에 집으로 들어간다.
아내는 12시 이전에 돌아온 자신을 보며
화를 낼 것 같지만 아무래도 상관없다.
허약한 몸에 비를 맞으니 감기가 걸려
다시 방안에 들어가 일단 누웠다.
아내는 의외로 화를 내지 않는다.
그저 따뜻한 물에 정제약 4알을 준다.
그는 이것을 얼른 받아먹었다.
한동안 아내가 주는 약을 먹었다.
약을 먹으니 감기도 차츰 나아졌다.
몸이 좀 괜찮아지니 다시
외출을 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그러자 아내는 외출하지 말라고 말한다.
약을 먹고 가만히 누워 있으라고 말한다.
외출하다 감기가 들어
자신을 고생시키는 게 아니냐고 말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약을 좀 더 먹고 방에 누워있기로 한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났다.
그의 일상은 다시 원래대로 돌아갔다.
방 안에 누워있다 아내가 외출한 틈을 타
아내 방으로 가 작은 장난들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는 다시 이런 순간이 즐거웠다.
이렇게 편안하고 즐거운 세월을
하나님께도 자랑하고 싶을 만큼.
그러던 중 그는 아내의 화장대 밑에서
이상한 것을 발견하게 된다.
그것은 최면 약 아달린.
약의 숫자를 세어본다.
4알이 부족하다.
오늘 아침에 그는 정제 약 4알을 먹었다.
그는 계속 잤었다.
어제도, 그제도.
감기가 다 나았는데도
아내는 계속 아스피린을 주었다.
그는 머리가 복잡해 산 위로 뛰어 올라간다.
주머니에는 아달린을 넣고.
아스피린, 아달린, 아스피린, 아달린, 아스피린, 아달린…,
그는 마음이 복잡해 견딜 수가 없어
그냥 6알을 통째로 입에 넣어 삼켜버린다.
그대로 기절하다 싶이 잠들어버린다.
하루를 꼬박 잠든 것 같다.
풍경이 붉게 물든 아침이다.
그는 아내를 여전히 이해할 수 없다.
하지만 아내가 내게 준 것이 아스피린이고
아달린은 아내의 마음이 심란해
아내가 복용했던 것이라면?
그는 뛰어내려간다.
아내에게 용서를 빌기 위해.
그리고 벌컥, 집의 미닫이문을 연다.
그리고 보아서는 안 되는 것을 보고 말았다.
그는 너무 놀라 문을 다시 닫고
어지러움을 느끼며 기둥을 짚고 서자
매무새를 풀어헤친 아내는 불쑥
그의 멱살을 잡는다.
그는 어지러움에 그만 넘어지고 만다.
아내는 남자를 깨물었다.
그때 뒤이어 한 남자가 방에서 나와
아내를 덥석 안아 방으로 들어갔다.
아내는 도리어 그에게 화를 낸다.
너 밤새워 가면서 도둑질하러 다니느냐고,
혹은 계집질하러 다니느냐고 말이다.
그는 너무나 억울한 마음에
너야말로 나를 죽이려 했던 것 아니냐고
소리를 질러보고 싶었지만
긴가민가한 마음에 내뱉지는 못한다.
그리고 툭툭 털고 일어나
아내가 주었던 나머지 돈을
문 앞에 두고는 도망치듯
밖으로 나왔다.
“여러 번 자동차에 치일 뻔하면서 나는 그래도 경성역으로 찾아갔다.
빈자리와 마주 앉아서 이 쓰디쓴 입맛을 거두기 위해여 무엇으로나
입가심을 하고 싶었다. 커피! 좋다. 그러나 경성역 홀에 한 걸음 들여놓았을 때
나는 내 주머니에는 돈이 한 푼도 없는 것을 그것을 깜빡 잊었던 것을 깨달았다.
또 아득하였다.”
그래서 그는 다시 이리저리 헤매기 시작한다.
그렇게 몇 시간 후에 그는 미쓰꼬시 백화점 옥상에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때는 거의 대낮.
“나는 거기 아무 데나 주저앉아서 내 자라 온 스물여섯 해를 회고하여 보았다.
몽롱한 기억 속에서는 이렇다는 아무 제목도 불거져 나오지 않았다.
나는 또 나 자신에게 물어보았다. 너는 인생에 무슨 욕심이 있느냐고,
그러나 있다고도 없다고도 그런 대답은 하기가 싫었다.
나는 거의 나 자신의 존재를 인식하기조차도 어려웠다.”
허리를 굽혀 잘들 생긴 금붕어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는 고민한다.
다시 아내에게 돌아가는 것이 옳은가?
어려웠다. 그럼 다른 곳으로 가야 하나?
어디로 가야 하나?
“이때 뚜우 하고 정오 사이렌이 울렸다. 사람들은 모두 네 활개를 펴고
닭처럼 푸드덕거리는 것 같고…”
“나는 불현듯 겨드랑이가 가렵다. 아하, 그것은 내 인공의 날개가 돋았던 자국이다.
오늘은 없는 이 날개. 머릿속에서는 희망과 야심이 말소된 페이지가 딕셔너리 넘어가듯 번뜩였다.
나는 걷던 걸음을 멈추고 그리고 일어나 한 번 이렇게 외쳐 보고 싶었다.
날개야 다시 돋아라.
날자. 날자. 한 번만 더 날자꾸나.
한 번만 더 날아 보자꾸나. “
이상의 날개는 늘 논란을 가지고 옵니다.
아는 사람은 많지만 그 의미와 해석에 있어서 어려움을 겪지요.
*이 해석은 저만의 해석이며 정답이 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때때로 이것은 한 백수의 일기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피해 망상적 글로 표현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결코 그렇게 보지 않으며,
이상의 자전적 내용임과 동시에
어쩌면 우리의 자전적 내용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소설에서 사용된 은유와 비유들을 체크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저는 이것들은 4가지로 구분해 체크하려고 합니다.
1. 관계적 관점. 2. 장소적 관점 3. 시간적 관점 4. 세부 사항들
1. 관계적 관점, 아내는 누구인가?
주인공은 외부 사람들과 만나지 않는다.
그는 방에만 있으면서 아내의 집에 얹혀산다.
아내의 이름은 연심이,
그의 아내는 아마 몸을 파는 사람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주인공은 모든 것을 아내의 허락을 받아야만 했다.
외출을 하는 것도, 심지어 아내의 방에 들어가는 것도.
그는 아내에게 혼나기도 한다.
명백한 상하관계.
그런데 재미난 것은 아내의 방은 1층이고
주인공의 방은 2층에 있다는 점이다.
물리적 공간의 위치적 상하관계는
주인공이 위, 아내가 아래.
하지만 관계적 상하관계는
아내가 위, 주인공이 아래다.
아내는 주인공에게 음식을 가져다준다.
주인공은 그것을 좋아하지 않지만
‘모이 먹듯’, ‘사료 먹듯’ 넙죽 받아먹었다고 표현한다.
아내는 분명 남편인 주인공을
모시는 것 같은 ‘모습’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주인공은 자신을 모시는 것 같은
아내에게 ‘지배’당하는 것처럼 보인다.
아내는 남편이 사라진 하룻밤 사이에
다른 사람을 받아들인다.
그리고 그 품에 얼른 안겨 들어간다.
주인공은 아내 덕분에 ‘의,식,주’를 해결한다.
주인공은 아내에게서 돈도 받는다.
하지만 주인공은 언제든지 대체될 수 있다.
이상이 소설을 쓰던 시절은 일제강점기로서
대한민국에 산업혁명이 시작되던 시기다.
(이 부분은 역사적 논란이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문화적으로는 서양적인 것이 많이 들어왔음은 분명하다.)
산업 혁명의 문화적 산물이라고 한다면
‘효율성, 공장화, 위계와 질서’일 테다.
사람들은 꿈과 편안함을 맞바꾸었다.
생활을 위해 현대식 일을 하는 사람들이 늘기 시작했던 시기.
생활의 수준이 분명 전보다 나아졌을지라도
여전히 생활의 수준을 유지하기 위해
타인과의 비교 속에서 조금 더 나아지기 위해.
여전히 ‘먹고살기 위해’ 일하는 사람들.
사랑은 사라졌고 관계만 남았다.
꿈은 사라졌고, 그것이 무슨 소용인가 싶다.
혼자 발명도 하고 시도 쓰고 논문도 쓰지만
지금 당장 아내가 주는 것들에 만족한다.
아내는 나를 섬기지만
나는 그에게 지배당한다.
그렇다.
아내는 ‘돈벌이 수단’
꿈이 아닌 ‘직업’이었다.
원치 않는 음식이어도
모이 먹든 꾸역꾸역 먹는다.
아내로 인해 행복하다기 보다
아내가 준 것들로 행복해한다.
아내의 모양은 자랑이 된다.
남들보다 낫기 때문이다.
분명 일은 자신에게 속해 있다.
그래서 일은 자신에게 편의와 생활을
대접하고 제공해 준다.
하지만 어느 순간 일은 자유를 앗아간다.
자신의 일상과 비일상 그 사이에
늘 아내의 방이 있어 감시를 받는다.
그리고 잠시라도 자리를 비우면
그는 금세 다른 사람으로 대체된다.
자유를 찾으려는 움직임이 감지되면
아내는 태도를 바꾼다.
화를 내지 않고 약을 준다.
나의 잘못으로 일을 그르쳤으며
다시 약을 먹고 원래대로 돌아오라고 말한다.
그것은 감기약인지 최면 약인지 분간이 가지 않는다.
현실을 똑바로 바라보라고 얘기하지만
오히려 그것이 왜곡된 현실인 것은 아닐까?
자유와 꿈은 허상일까?
아니면 그것이 허상이라는 말이 최면일까?
지금은 이러한 관점에서
줄거리를 처음부터 다시 읽어보자.
읽어보았는가?
그렇다면 ‘날개’의 내용이 다르게 느껴질 것이라 확신한다.
오늘은 다시 줄거리를 읽으며 느낀 바를
아래 댓글에 적어보자.
생각난 것들을 양식과 규격에 맞추지 않아도 좋다.
마음대로 옮겨보자.
아마 생각이 정리되지 않고,
여전히 복잡한 부분이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하지만 그것을 글로 적다 보면 정리가 되고
오히려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 역시 생각될 것이다.
그러니 이번에는 꼭, 읽고 난 부분을
댓글에 옮겨보기를 바란다.
아직 완전한 해설처럼 느껴지지 않을 것입니다.
빠진 부분도 많게 느껴지고, 석연치 않은 부분이
반드시 있을 것입니다.
당연합니다.
이상의 ‘날개’는 짧지만 그 속에 포함된
은유와 비유가 너무나 많아
오늘 내용만으로 설명이 충분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다음 주는 나머지 부분인
2. 장소적 관점 3. 시간적 관점 4. 세부 사항들을
적어 나누려 합니다.
오늘 내용을 글로 정리하고 다음 주 내용을 읽으면
다음 주 내용을 훨씬 쉽게 이해할 수 있고
즐겁게 사유하며 즐길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합니다!
부디, 오늘 이 내용을 읽고 글로 옮기며
사유의 즐거움을 만끽하는 한 날이 되었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즐거운 저녁, 남은 하루 보내시기를 소망합니다! 🙏
생각하게 된 부분을 꼭 댓글로 남겨주세요!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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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의 채원
아내 = 일 일을 하는 목적은 무엇일까? 무엇을 위해 일을 하는가. 일을 하는 의미와 이유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수 있는 글이었습니다. 결국, 일을 하는 것도 '나'의 편안함과 행복을 위해 하는 것이죠. 행복을 찾아서. 다음 주에 편안한 글로 만나길 바라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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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강
내 의지라고 생각했던 일들도, 사실은 의존적일 수 있다. 의존적이라고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겠지만, 주체성을 스스로 얼마나 지니고 있는지, 나의 날갯짓이 제대로 바람을 가르고 있는지 움직여봐야 한다. 행동해야 한다. 방황하더라도, 길을 잃더라도, 내가 스스로 만들어낸 날갯짓이라면 그게 바로 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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