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
여러분의 댓글이 저에겐 응원이 됩니다. ^^

소설

남자를 돼지로 만든 마녀의 억울한 사정

오디세우스의 모험에서 몇 페이지였던 키르케의 기묘하고 기나긴 인생

2026.08.24 | 조회 529 |
0
|
from.
김광혁 대표

오늘 뉴스레터에는 영화와 소설의 스포일러가 상당량 있습니다.
영화를 아직 안보신 분들은 영화를 보고 보시면 더 좋습니다.
그런데 3000년전에 쓰여진 이야기에 스포일러를 붙일 수 있나 모르겠네요. 😅


최근 크리스토퍼 놀란의 영화  ‘오디세이’를 보다가 반가운 인물이 하나 등장했습니다.

  Briton Rivière (1840-1920), Circe and her Swine (before 1896)  
  Briton Rivière (1840-1920), Circe and her Swine (before 1896)  

키르케 


그리스 신화를 조금이라도 아는 분이라면 이름보다 장면이 먼저 떠오를 겁니다. 외딴섬에 사는 마녀, 찾아온 남자들에게 음식을 먹인 뒤 돼지로 만들어버리는 여자, 그리고 오디세우스를 만나 그의 귀향길에 중요한 도움을 주는 존재입니다.

영화에서 키르케의 분량은 아주 길지 않습니다. 그런데 놀란은 키르케를 연기한 사만다 모튼을 두고 이 캐릭터가 영화의 ‘중심축’이었다고 표현했습니다. 촬영장에서 그녀의 연기가 끝나자 스태프들이 박수를 보냈고, 제작자 에마 토머스의 기억으로는 '다크 나이트'에서 히스 레저의 연기가 끝났을 때 이후 처음이었다고 합니다.

몇 분 등장하지 않는 마녀에게 왜 그렇게까지 무게를 실었을까요.

저는 영화를 보면서 키르케가 나오자 조금 반가웠습니다. 사실 저는 영화보다 훨씬 먼저 이 여자를 알고 있었거든요. 몇 년 전 매들린 밀러의 소설《키르케》를 읽고 꽤 오래 이 인물을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남자를 돼지로 만드는 여자라니.
일단 설정부터 좋지 않습니까. ㅎㅎ

그런데 책을 읽어보면 별로 웃을 이야기가 아닙니다.

 


  매들린 밀러 | 이봄 출판 | 2020년 06월 02일 발간  
  매들린 밀러 | 이봄 출판 | 2020년 06월 02일 발간  

키르케의 입장도 들어봅시다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에서 키르케는 생각보다 중요한 인물입니다. 오디세우스의 부하들을 돼지로 만들고, 헤르메스의 도움을 받은 오디세우스와 맞서고, 이후 그와 연인이 됩니다. 오디세우스 일행은 키르케의 섬에서 무려 1년이나 머뭅니다. 게다가 키르케는 그가 저승으로 내려가 예언자 테이레시아스를 만나야 한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이후 여행에서 만나게 될 위험까지 설명해줍니다.

이 정도면 여행 중 잠깐 스쳐 가는 NPC는 아닙니다. 그런데 우리가 기억하는 키르케는 이상하리만큼 단순합니다.

남자를 돼지로 만든 마녀.

저도 그랬습니다. 남자를 돼지로 만든 건 아주 잘 기억하면서 왜 그랬는지는 한 번도 궁금해하지 않았습니다. 생각해보면 좀 이상합니다. 사건은 기억했는데 사람은 기억하지 않은 셈입니다.

왜 외딴섬에 혼자 살았는지, 그전에는 어떤 삶을 살았는지, 오디세우스가 떠난 뒤에는 어떻게 되었는지에는 별 관심이 없었습니다. 당연한 일인지도 모릅니다. 그 이야기는 애초에 키르케의 이야기가 아니었으니까요.

우리는 키르케의 이야기를 읽었던 것이 아니라, 오디세우스가 키르케를 만난 이야기를 읽었던 겁니다. 영웅의 모험담에서는 이런 일이 흔합니다. 어떤 사람의 평생에서 영웅과 만난 몇 시간, 며칠, 몇 년만 잘라내면 그 사람은 금방 조연이 됩니다. 매들린 밀러가 한 일은 아주 간단했습니다. 그 카메라를 반대로 돌렸습니다.

오디세우스에게 키르케가 한 에피소드였다면,
키르케의 입장에서는 어떨까.

그 질문 하나가 500페이지짜리 소설이 됩니다.

 


아무것도 아닌 신


키르케의 아버지는 태양신 헬리오스입니다. 매일 황금빛 전차를 몰고 하늘을 가로지르는 강력한 티탄 신이고, 외할아버지는 세계를 둘러싸고 흐르는 거대한 물의 신 오케아노스입니다.

혈통만 보면 대단합니다. 아버지가 태양입니다. 집안에 해가 하나 있습니다.

그런데 정작 키르케의 어린 시절은 전혀 찬란하지 않습니다. 아버지처럼 강력하지도 않고, 다른 님프(요정)들처럼 아름답지도 않습니다. 무엇보다 목소리가 신답지 않습니다. 헤르메스는 나중에 키르케의 목소리를 ‘인간의 목소리’라고 부릅니다.

신들의 세계에서 인간 같다는 말은 칭찬이 아닙니다.

가족은 키르케를 놀리고 형제자매들은 무시합니다. 여자 신들에게 허락된 좋은 운명이란 대체로 아름다워서 괜찮은 남자의 아내가 되고 그의 아이를 낳는 것이었는데, 키르케는 그 기준에서도 별 볼 일 없는 존재였습니다.

소설에는 이런 잔인한 말이 나옵니다.

“못생긴 님프는 아무것도 아니지. 아무것도 아닌 것보다 더 미천하지.”

이 정도면 자존감이 건강하게 자라기는 꽤 어려운 환경입니다.

키르케는 누구도 기대하지 않았고 가족조차 별 쓸모가 없다고 생각했던 아이였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런 키르케에게는 신들의 세계와 잘 맞지 않는 성질이 하나 더 있었습니다.

인간에게 마음이 갔습니다.

이 정도면 이쁜거 아닌가? 사실 인간 기준에선 이쁩니다
이 정도면 이쁜거 아닌가? 사실 인간 기준에선 이쁩니다

인간의 목소리


'키르케' 초반에 프로메테우스가 등장합니다. 인간에게 불을 주었다는 이유로 신들에게 끔찍한 형벌을 받은 바로 그 프로메테우스입니다. 다른 신들에게 그의 고통은 별로 중요한 일이 아닙니다. 신은 죽지 않고 인간은 어차피 죽습니다. 인간 몇 명이 죽든 도시 하나가 망하든 불멸의 존재들에게는 잠깐 지나가는 사건일 뿐입니다.

그런데 키르케는 프로메테우스를 외면하지 못합니다. 키르케가 다른 신들과 남다른 이유는 단순히 힘이 약해서가 아닙니다. 고통을 이해합니다. 죽지 않는 신이면서 죽는 인간에게 이상할 정도로 마음이 갑니다.

나중에 인간 글라우코스를 사랑했을 때도 그렇습니다. 그의 가난하고 고된 삶을 불쌍히 여기고, 더 이상 그런 삶을 살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자기 힘을 이용해 글라우코스를 신으로 만들어버립니다.

좋아하는 남자를 신으로 만들어줬습니다.
이 정도면 연애 선물 스케일이 좀 큽니다.
문제는 신이 된 글라우코스가 키르케를 버린다는 겁니다.
(글라우코스 개객기...)

인간일 때는 그렇게 다정하고 겸손했던 남자가 신이 되자 신들의 세계에 너무도 빠르게 적응하고, 더 아름다운 스킬라에게 마음을 줍니다. 키르케가 자신의 힘을 처음 발견한 순간이 동시에 사랑이 무너지는 순간이 된 겁니다.

  왼쪽 하단의 남성이 해신 글라우코스, 오른쪽이 바로 스킬라. (정말 예쁜가...?)
  왼쪽 하단의 남성이 해신 글라우코스, 오른쪽이 바로 스킬라. (정말 예쁜가...?)

그리고 여기서 키르케도 사고를 칩니다.
질투에 사로잡혀 스킬라에게 마법을 걸어 괴물로 만들어버립니다.

저는 오히려 이 부분 때문에 키르케가 좋았습니다. 힘을 얻었다고 갑자기 현명해지지 않거든요. 첫사랑에 차이고 질투해서 다른 여자를 괴물로 만들어버립니다. 꽤 크게 사고를 칩니다.

소설 속, 키르케가 피해받은 여성이 힘을 얻어 멋지게 복수하는 이야기였다면 훨씬 단순했을 겁니다. 하지만 키르케는 피해자이면서 동시에 가해자가 됩니다. 상처받고, 분노하고, 질투하고, 그 감정으로 자기 힘을 잘못 사용합니다. 그리고 그 잘못은 수백 년 동안 그녀를 따라다닙니다.

스킬라는 바다에서 수많은 죄 없는 선원들을 잡아먹는 괴물이 되고, 키르케는 나중에 자신이 만든 괴물을 원래 모습으로 되돌리려고 하지만 실패합니다. 누군가 애초에 스킬라는 그런 운명이었을지도 모른다고 위로하자 키르케는 그 변명조차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나에게서 후회를 거두어갈 생각은 하지 마라.”

저는 이 문장이 참 좋았습니다. 자기가 상처받았다는 사실이 자신이 저지른 잘못까지 없애주지는 않습니다. 키르케는 자신도 누군가에게 괴물이 될 수 있었다는 것을 알고, 그 죄책감을 자기 삶 안에 그냥 남겨둡니다.

드디어 키르케가 입체적으로 보이기 시작합니다.

첨부 이미지
스킬라는 영화에서 이런 모습으로 나옵니다.
스킬라는 영화에서 이런 모습으로 나옵니다.

이 집안, 마법이 가업인가


그런데 키르케의 마법을 이야기하면서 한 가지 빼먹으면 안 되는 게 있습니다. 키르케를 아무런 배경도 없이 혼자 마법을 깨달은 천재처럼 보면 안 됩니다. 집안부터 심상치 않습니다.

아버지는 태양신 헬리오스이고 어머니 페르세는 오케아노스의 딸입니다. 남동생 아이에테스는 콜키스의 마법사 왕이고, 여동생 파시파에 역시 강력한 마법을 사용합니다. 그리고 아이에테스의 딸, 그러니까 키르케의 조카가 누구냐 하면 바로 메데이아입니다.

남동생은 마법사 왕,
여동생도 마법 사용자,
조카는 네임드 대마법사 메데이아.

(파시파에는 미노타우르스를 낳은 왕녀)

Giovanni Luteri called Dosso Dossi (ca. 1489-1542)
Giovanni Luteri called Dosso Dossi (ca. 1489-1542)

이쯤 되면 마법이 재능인지 가업인지 조금 애매합니다.

고대 신화에는 계보도 하나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전승에서는 아예 마법과 주술의 여신 헤카테를 키르케의 어머니나 스승의 계보에 직접 연결하기도 합니다. 그러니 키르케는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어느 날 갑자기 마법을 발명한 돌연변이라기보다 애초에 마법의 가능성이 강하게 흐르는 혈통에서 태어난 존재로 보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건 혈통이 아닙니다. 혈통만으로 끝났다면 저는 이 캐릭터가 그렇게 재미있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키르케의 형제자매도 힘을 가지고 있지만, 키르케의 마법은 이상하게 노동자의 기술처럼 보입니다. 식물을 찾아다니고 뿌리를 캐고, 약초를 갈고 섞고 끓입니다. 결과를 보고 실패하면 다시 합니다.

신들의 힘은 대개 그냥 됩니다. 제우스는 번개를 쏘기 위해 번개 사용설명서를 읽거나 매일 저녁 두 시간씩 연습하지 않습니다. 키르케는 다릅니다. 가능성은 혈통에서 왔지만, 그것을 자기 기술로 만드는 데는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그러니까 키르케의 마법에는 '혈통과 노동'이 함께 있습니다.

저는 이 차이가 꽤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키르케가 그냥 타고난 천재라면 이야기가 너무 쉬워집니다. 반대로 아무것도 없이 모든 것을 혼자 발명했다면 그것도 지나치게 영웅적인 이야기입니다. 키르케는 물려받은 가능성을 발견하고, 실패하고, 연구하면서 그것을 자기 것으로 만듭니다.

마법은 혈통에서 왔을지 몰라도, 마녀가 된 것은 키르케 자신의 일이었습니다.

 


Re: 제로부터 시작하는 유배지 생활


키르케는 결국 자신의 힘 때문에 아이아이에라는 외딴섬으로 추방됩니다. 신들의 입장에서는 확실한 벌입니다. 가족과 신들의 세계에서 떼어놓고 영원히 혼자 살게 만든 겁니다. 그런데 처벌이 좀 이상하게 작동합니다.

키르케가 처음으로 자유로워집니다. 더 이상 목소리가 이상하다고 놀리는 사람이 없고, 누구의 아내가 되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도 없습니다. 형제자매의 조롱도 없고 아버지의 명령도 없습니다.

“나는 숲속으로 들어갔고 이렇게 새로운 인생이 시작됐다.”

키르케는 섬을 돌아다니며 식물을 익히고 약초를 채집하고 주문을 시험합니다. 집을 꾸미고 동물들과 살면서 누구의 허락도 받지 않고 자기 하루를 결정합니다. 자신을 사회에서 떼어내기 위한 유배였는데 그 단절 덕분에 처음으로 자기 삶을 갖게 된 겁니다. 감옥으로 준 섬이 집이 되어버렸습니다.

조금 역설적입니다. 우리는 보통 자유란 세상으로 나가는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키르케에게는 오히려 세상에서 쫓겨난 뒤에야 자유가 생겼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말합니다.

“내 섬에서 더이상 침묵하지 않겠어.”

저는 키르케가 진짜 마녀가 되는 순간을 굳이 하나 고르라면 처음 주문에 성공했을 때보다 이쪽을 고르겠습니다. 힘을 가진 순간이 아니라 자기 삶을 자기가 결정하기 시작한 순간입니다.

  Circe - Wright Barker (1864-1941)  
  Circe - Wright Barker (1864-1941)  

그래서 왜 돼지였을까


이제 우리가 제일 잘 아는 장면으로 돌아가보겠습니다. 키르케는 왜 섬에 찾아온 남자들을 돼지로 만들었을까요. 처음부터 그런 것은 아닙니다. 키르케는 찾아온 인간들에게 음식과 포도주를 내주고 잠자리까지 마련해줍니다. 인간을 좋아했던 신이니 당연한 행동이었을 겁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인간들은 그 친절을 다르게 받아들입니다.

남편이 없습니다. 아버지도 없습니다.
섬 자체에 남자가 전혀 없습니다.
외딴섬에 여자 혼자 살고 있습니다.

어떤 남자들에게는 그게 주인이 없는 여자처럼 보였습니다. 음식도 술도 집도 당연히 자신들이 누려도 된다고 생각하고 결국 키르케의 몸까지 마음대로 취하려 합니다. 키르케는 폭력을 겪고 강간을 당한 후 아주 잔인한 사실을 배웁니다. 자신을 지켜줄 사람은 아무도 없으며, 상대가 나를 약하다고 생각하는 순간 친절조차 약점으로 바뀔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 뒤부터 키르케는 자신의 섬을 위협하는 남자들을 돼지로 만들어버립니다.

꿀꿀.

처묵처묵 하는 너, 돼지가 되어라~
처묵처묵 하는 너, 돼지가 되어라~

저는 이 책을 읽으면서 조금 민망했습니다.

수천 년 동안 사람들은 “키르케가 남자를 돼지로 만들었다”는 이야기를 재미있게 기억했습니다. 저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런데 왜 그랬는지는 별로 궁금해하지 않았습니다.

매들린 밀러가《키르케》를 쓰게 된 질문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렇게 흥미로운 여성 캐릭터가 등장했는데 오디세우스가 칼을 들이대자 굴복하고 그의 연인이 되는 것으로 끝나는 원전을 읽으며, 키르케가 왜 남자들을 돼지로 만들었는지 알고 싶었다고 합니다.

“여자는 변덕스러우니까” 정도의 설명으로는 너무 재미없었던 거죠.

사람에게는 행동이 있고, 그 행동 앞에는 시간이 있습니다.

남자를 돼지로 만든 장면만 잘라놓으면 키르케는 괴물입니다. 하지만 그 앞에 수백 년의 삶을 붙이고 나면 같은 장면인데도 완전히 다르게 보입니다. 사건은 그대로인데 가해자의 무서움에서 피해자의 정당방위로 바뀝니다.

 


마녀라는 이름


그래서 저는 ‘마녀’라는 말도 재미있습니다.

키르케는 신입니다. 신화의 기준으로 보면 초자연적인 힘을 사용하는 게 이상한 일도 아닙니다. 제우스는 번개를 던지고, 포세이돈은 바다를 뒤집고, 아테나는 인간의 운명에 개입합니다. 그런데 아무도 제우스를 번개 마법사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그냥 신입니다.

반면 키르케의 힘에는 다른 이름이 붙습니다.

마녀.

매들린 밀러는 원전의 키르케를 여성의 힘에 대한 오래된 불안이 반영된 캐릭터로 봅니다. 여자가 강한 힘을 가지면 남자가 돼지가 된다는 극단적인 이미지니까요. 한국말로 바꾸면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와 비슷하달까요?

저는 이걸 단순히 “남자는 영웅이고 여자는 마녀다”라는 문장 하나로 끝내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보다 더 재미있는 건 같은 힘도 누가 갖느냐에 따라 이야기가 붙이는 이름이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키르케'에서 ‘마녀’는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 다른 뜻이 됩니다. 처음에는 두려움과 멸시의 이름이었지만, 점점 자기 능력을 알고 자기 삶을 결정할 수 있게 된 존재의 이름으로 바뀝니다.

그리고 이 소설에는 그런 여자들이 계속 등장합니다.

(마녀, 마법소녀 연대기를 쓰고 싶지만 그건 다음 기회에~ ㅋ)

 


파스파에, 메데이아. 흐린 기억속의 그녀들


키르케의 여동생 파시파에는 미노스 왕의 아내이자 미노타우로스의 어머니입니다. 흔히 황소에게 욕정을 품어 괴물을 낳은 기괴한 여자로 기억합니다. 그런데 소설 '키르케'에서 보면 조금 다릅니다.

파시파에는 이 세계의 규칙을 누구보다 빨리 배운 사람입니다. 힘이 없으면 짓밟히니 차라리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사람이 되는 쪽을 선택합니다. 키르케와는 아주 다른 방식으로 살아남은 겁니다.

조카 메데이아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사랑 때문에 미쳐버린 무서운 여자로 기억하지만, 황금양털 신화에서 이아손은 사실 메데이아의 지식과 마법 없이는 성공할 수 없습니다. 영웅 뒤에 엄청나게 유능한 조력자가 있었는데 그 사람이 여자였고, 이야기는 오랫동안 영웅 쪽을 더 크게 기억했습니다.

메데이아에게 영원한 사랑을 맹세하는 이아손, 장 프랑수아 드 트루아
메데이아에게 영원한 사랑을 맹세하는 이아손, 장 프랑수아 드 트루아

그리고 페넬로페.

20년 동안 얌전히 남편을 기다린 현모양처 정도로 생각하기 쉽지만, 이 소설의 페넬로페는 굉장히 영리합니다. 아무도 조용히 길쌈하는 여자를 위험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점을 이용해 사람을 관찰하고 정보를 모으고 몇 수 앞을 계산합니다. 약해 보인다는 것이 오히려 무기가 됩니다.

이 여자들이 재미있는 건 모두 같은 방식으로 강하지 않다는 겁니다. 파시파에는 공포를 이용하고, 메데이아는 지식과 마법을 쓰고, 페넬로페는 인내와 지략을 사용합니다. 키르케는 자신의 힘을 직접 갈고닦습니다.

누가 더 올바른 여자냐를 가리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각자 다른 방식으로 살아남은 여자들입니다.

그래서 '키르케'를 읽다 보면 한 명의 마녀를 복권시키는 이야기를 넘어, 그리스 신화에서 우리가 몇 줄짜리 역할로만 알고 있던 여자들이 하나씩 사람으로 돌아오는 느낌이 듭니다.

 


오디세우스도 사람입니다


매들린 밀러는 오디세우스를 나쁜 남자로 만들어놓고 끝내지 않습니다.

오디세우스는 여전히 매력적입니다. 머리가 좋고, 말도 잘하고, 용감합니다. 수많은 신과 괴물 사이에서 힘으로 밀어붙이기보다 머리와 말로 살아남는 사람입니다. 키르케가 왜 그에게 끌렸는지도 이해됩니다.

두 사람 모두 자기보다 훨씬 강한 존재들에게 휘둘리면서도 어떻게든 자신의 방식으로 살아남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키르케에게 오디세우스는 자신이 오랫동안 바라봐온 인간의 장점과 결함을 아주 진하게 가진 사람처럼 보입니다.

키르케에게 오디세우스는 오랜 세월 만난 수많은 인간 가운데 드물게 자신의 고독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둘이 함께 보낸 1년은 단순히 마녀에게 붙잡혀 지체한 시간이 아니라, 서로 상처 입은 두 사람이 잠시 같은 집에서 숨을 고른 시간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오디세우스는 자만심이 강하고 자신의 명예 때문에 주변 사람을 위험에 빠뜨립니다.

'오디세이아'에서 보면 그의 선택은 영웅의 모험입니다. 그런데 아들 텔레마코스의 입장에서 보면 조금 이상해집니다. 왜 굳이 키클롭스에게 자기 이름을 밝혀 포세이돈의 저주를 받았는지, 왜 아버지의 명예 때문에 그렇게 많은 부하가 죽어야 했는지를 묻게 됩니다.

같은 사람인데 카메라 위치가 바뀌자 전혀 다르게 보입니다. 저는 이게 이 소설에서 제일 재미있는 부분 중 하나였습니다. 영웅을 악당으로 만드는 게 아니라 영웅도 사람으로 만드는 것.

위대한 오디세우스도 누군가에게는 사랑하는 사람이었고, 누군가에게는 무책임한 남편이었고, 누군가에게는 부재한 아버지였고, 누군가에게는 지휘관이었습니다.

한 사람에게 붙는 이름이 하나뿐일 리가 없습니다.

Odysseus and Circe 1580-1585 Hans von Aachen 1552-1615
Odysseus and Circe 1580-1585 Hans von Aachen 1552-1615

그리고 키르케는 엄마가 됩니다


오디세우스가 떠난 뒤에도 키르케의 인생은 계속됩니다. 키르케는 오디세우스의 아이 텔레고노스를 낳습니다. 여기서 또 재미있는 일이 벌어집니다. 전쟁도 아니고 괴물과 싸우는 것도 아닌데 출산과 육아가 키르케에게 새로운 전쟁이 됩니다.

자기는 죽지 않는 신인데 아이는 다칠 수 있습니다.
이제까지는 자기 한 몸 지키면 됐지만,
세상에서 가장 약한 존재 하나가 생겨버렸습니다.
키르케의 마법도 여기서 조금 달라집니다.

처음 힘을 발견했을 때는 질투 때문에 스킬라를 괴물로 만들었고, 폭력을 겪은 뒤에는 자신을 지키려고 남자들을 돼지로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아이를 낳고 나서는 누군가를 살리기 위해 자기 힘을 사용합니다. 같은 마법인데 사람이 달라지니 용도가 달라집니다.

판타지 소설을 좋아하는 저는 이런 부분이 좋았습니다. 캐릭터가 성장했다는 걸 “레벨이 올랐다”로 보여주는 게 아니라 같은 힘을 이전과 다르게 사용하는 것으로 보여줍니다. 그리고 키르케는 텔레고노스를 정말 사랑하지만 결국 아들도 떠나보냅니다. 누군가의 딸이었다가, 누군가의 연인이 되고, 누군가의 어머니가 되었지만 그 역할들이 키르케의 전부가 되지는 않습니다.

이제 키르케에게는 자기 인생을 살기 시작합니다.

 


마법은 마법인데...


그리고 다이달로스가 있습니다. 미노타우로스를 가두는 미궁을 만든 바로 그 다이달로스입니다. 저는 다이달로스가 키르케와 만나는 부분도 꽤 재미있었습니다. 한 사람은 마녀이고 한 사람은 발명가인데, 둘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이상하게 닮았습니다.

둘 다 무언가 만드는 사람입니다.

다이달로스는 손과 머리로 기계와 구조물을 만들고, 키르케는 식물과 지식과 의지로 주문을 만듭니다. 둘 다 재료를 알고 실패를 경험하고, 손으로 무언가를 반복해서 만들어냅니다. 그래서 키르케의 마법을 읽다 보면 이상하게 실험실의 약품 냄새가 납니다. 또한 마법인데 실험적인 공예 같습니다.

재료가 있고, 도구가 있고, 경험이 있고, 실패가 있습니다.

많은 판타지 소설과 만화에서 마법사가 손을 한번 휘두르며 '파이어볼!!' 하면 멋진 불덩어리가 나가는 장면은 많습니다. 그런데 그 불덩어리가 나오기 전에 얼마나 오래 실패했는지를 보여주는 이야기는 생각보다 많지 않습니다.

키르케는 그 인고의 시간을 보여줍니다.


판타지 쓰는 분들은 한 번 드셔봐, 트라이~


그래서 저는 판타지를 쓰거나 마법이 등장하는 콘텐츠를 만드는 분이라면 소설 '키르케'를 한번 읽어보셨으면 합니다. 주문 이름 짓는 법을 알려주는 책도 아니고, 마법 시스템 설정집도 아닙니다. 불 속성은 물 속성에 약하다는 친절한 표도 없습니다.

대신 더 근본적인 질문을 합니다.

한 사람은 어떻게 마법사가 되는가.

어디에서 힘을 얻었는지, 그것을 익히는 데 얼마나 시간이 들었는지, 왜 그 힘을 사용하는지, 그 힘 때문에 무엇을 잃었는지, 잘못 사용했을 때 무엇을 책임져야 하는지까지 보여줍니다. 설정집에는 마법의 규칙이 적혀 있습니다. '키르케'에는 그 규칙을 살아내는 사람이 있습니다.

키르케가 특히 재미있는 건 두 종류의 마법사가 한 사람 안에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태어날 때부터 마법의 가능성을 가진 사람이면서 동시에 그 가능성을 연구와 노동으로 기술로 만드는 사람입니다.

요즘 판타지에서 익숙한 마법사의 훈련, 약초학, 연금술, 주문 연구, 작업실 같은 이미지와 연결해서 생각해볼 만한 부분이 많습니다. 물론 키르케가 간달프의 할머니라는 뜻은 아닙니다. ㅎㅎ

현대 판타지는 북유럽 신화, 켈트 전승, 중세 문학, 민간설화 등 온갖 것이 섞인 거대한 잡탕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너무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마녀’라는 캐릭터의 문화적 족보를 아주 오래전까지 거슬러 올라가면 그곳에 키르케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약초를 다루고, 주문을 만들고,
람을 변신시키고, 외딴곳에서 동물과 살고,
위험한 지식을 가지고 있으며
그 힘 때문에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여자.

3천 년 전부터 꽤 익숙한 캐릭터가 이미 있었습니다.

 


그런데 결국 인간 이야기가 됩니다


여기까지 읽으면 '키르케'가 억압받던 한 여성이 힘을 찾아가는 이야기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마지막에는 조금 다른 곳에 도착합니다. 

키르케는 신입니다. 죽지 않습니다.
백 년이 지나도 천 년이 지나도 그대로입니다.

우리가 보기에는 엄청난 축복 같습니다. 저도 한때는 늙지 않고 영원히 살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요즘은 잘 모르겠습니다. 천 년째 허리가 아프면 그것도 꽤 난감할 것 같습니다. '키르케'에서 불멸은 생각보다 행복하게 그려지지 않습니다.

끝이 없으니 바뀔 이유도 없습니다. 내일도 있고 백 년 뒤도 있고 만 년 뒤도 있습니다. 오늘 누군가를 상처 입혀도 시간은 무한합니다. 그래서 신들은 쉽게 사랑하고 쉽게 버리며, 심심하면 인간의 삶을 건드립니다.

반대로 인간은 죽습니다. 그래서 집을 짓고, 사랑하고, 아이를 키우고, 후회하고, 내일을 준비합니다. 끝이 있기 때문에 오늘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여기서 처음부터 키르케를 따라다니던 ‘인간의 목소리’가 다시 돌아옵니다.

처음에는 결함, 신답지 않고 초라하며 인간처럼 들린다는 이유로 비웃음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수백 년을 살아보니 키르케가 다른 신들과 달랐던 이유가 모두 그 목소리 안에 있었던 것처럼 보입니다. 인간의 고통을 이해했고, 죽음을 슬퍼했고, 자신의 잘못을 후회했고, 사랑했고, 아이를 낳고 키웠으며, 결국 떠나보내는 법도 배웠습니다.

처음에는 조롱거리였던 인간의 목소리가 마지막에는 그녀가 선택할 삶의 방향이 됩니다.

키르케는 불멸을 버립니다.
인간이 되기로 합니다.

“인간의 목소리를 가졌으니 그 나머지까지 가져보자.”

저는 이 문장이 참 좋았습니다.

키르케는 처음에는 아무것도 아닌 것보다 더 미천한 존재라고 불렸습니다. 이후에는 위험한 마녀라고 불렸고 누군가의 딸, 누군가의 연인, 누군가의 어머니로 살았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신이라는 가장 거대한 이름마저 버립니다. 자기가 고른 삶을 살기 위해서입니다.

생각해보면 키르케가 평생 원했던 것은 엄청난 마법도 아니고 신들에게 복수하는 것도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자기 삶을 자기 것으로 만드는 것. 처음부터 끝까지 그 이야기였습니다.

 


관점을 바꾸면 전혀 다른 게 보입니다


매들린 밀러가 소설 '키르케'에서 한 일은 생각보다 단순합니다. 3천 년 된 신화를 부수지도 않았고 오디세우스를 지워버리지도 않았습니다. 새로운 세계를 만든 것도 아닙니다.

카메라만 주연에서 조연으로 조금 살짝 옮겼습니다. 그러자 영웅의 여행에서 몇 페이지 등장했던 마녀에게 어린 시절이 생기고, 첫사랑이 생기고, 질투와 실수가 생기고, 죄책감과 수백 년의 고독이 생겼습니다.

오디세우스에게 키르케는 긴 여행에서 만난 한 여자였습니다. 하지만 키르케에게 오디세우스는 긴 삶에서 잠시 만난 한 남자였습니다. 주인공이 바뀌었을 뿐인데 같은 신화가 전혀 다른 이야기가 됩니다.

저는 이게 창작에서도 꽤 재미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기 위해 반드시 새로운 세계부터 만들 필요는 없습니다. 이미 너무 잘 알고 있는 이야기에서 아무도 오래 바라보지 않았던 사람에게 카메라를 돌리는 것만으로 전혀 다른 이야기가 나오기도 합니다.

괴물이라고 불리던 사람에게 삶을 붙이고, 악녀라고 불리던 사람에게 시간을 돌려주고, 조연이라고 생각했던 사람에게 처음과 끝을 만들어주는 겁니다. 그러면 한 줄짜리 마녀가 500페이지짜리 사람이 됩니다.

'키르케'는 그걸 아주 잘한 소설입니다.


아니... 여기까지 읽으셨다고요?
저는 이 글의 1/3 지점에서 다들 나가떨어질 줄 알았습니다.
여기까지 오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ㅎㅎ 


🍪 잠깐, 이 집안은 그 뒤가 더 막장입니다


여기까지 꽤 진지한 이야기를 했으니 마지막에는 조금 황당한 이야기를 하나 하겠습니다. 이건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 본편 내용은 아닙니다. 원전 대부분이 사라지고 후대의 요약을 통해 줄거리가 전해지는 '텔레고니아'라는 후속 서사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키르케와 오디세우스 사이에는 텔레고노스라는 아들이 태어납니다. 텔레고노스는 성장한 뒤 한 번도 보지 못한 아버지를 찾아 여행을 떠나고 결국 이타카에 도착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서로 누군지 모릅니다. 

결국 애비를 모르는 아들과 아들을 모르는 애비의 개싸움이 벌어집니다. 그리고 아들인 텔레고노스는 아버지인 오디세우스를 죽입니다. 텔레고노스는 나중에야 자신이 죽인 사람이 아버지 오디세우스였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여기까지만 보면 처절한 그리스 비극이죠.
하지만! 그런데! 아직 끝이 아닙니다.
여기서 끝났으면 그리스 신화가 아니죠.

텔레고노스는 이후 오디세우스의 아내였던 페넬로페와 결혼합니다. 그리고 페넬로페와 오디세우스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 텔레마코스는 키르케와 결혼합니다. 허허허...

오디세우스 빼고, 모두에게 행복한 결말.
오디세우스 빼고, 모두에게 행복한 결말.

다시 한번 정리해보겠습니다.

키르케와 오디세우스의 아들 텔레고노스는 자기 아버지의 아내와 결혼합니다. 그리고 키르케는 자기 옛 연인과 그 아내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과 결혼합니다. 그러니까 키르케 입장에서는 자기 아들이 옛 남자의 아내와 결혼하고, 자기는 옛 남자의 아들과 결혼한 셈입니다.

잠깐만요.
족보가 왜 이래. 어?

막장 드라마 쓰시는 분들, 너무 새로운 설정을 만들려고 애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리스인들이 3천 년 전에 웬만한 건 이미 다 했습니다. 😉

 

끝.

 


'구독자'님은 오래된 이야기에서 한 번쯤 “저 사람의 뒷이야기가 궁금한데?” 하고 생각해본 인물이 있으신가요? 조연이라고 생각했던 사람에게 카메라를 한번 돌려보세요. 생각보다 긴 이야기가 숨어 있을지도 모릅니다.

첨부 이미지

감사합니다.이번주는남자를돼지로만드는마녀이야기를신나게한김광혁이었습니다.

다음 주에는 또 다른 이야깃거리를 물고 돌아오겠습니다.

그때까지 제가 돼지가 되지 않는다면 말이죠~ 🐷

 

 

다가올 뉴스레터가 궁금하신가요?

지금 구독해서 새로운 레터를 받아보세요

이번 뉴스레터 어떠셨나요?

오늘의 각성제 님에게 ☕️ 커피와 ✉️ 쪽지를 보내보세요!

댓글

의견을 남겨주세요

확인
의견이 있으신가요? 제일 먼저 댓글을 달아보세요 !

다른 뉴스레터

© 2026 오늘의 각성제

영화와 문화의 단맛을 핥고, 일상의 쓴맛을 한 입 깊게 베어 물어 드립니다.

뉴스레터 문의afterculture@kakao.com

메일리 로고

도움말 오류 및 기능 관련 제보

서비스 이용 문의admin@team.maily.so 채팅으로 문의하기

메일리 사업자 정보

메일리 (대표자: 이한결) | 사업자번호: 717-47-00705 | 서울특별시 송파구 위례광장로 199, 5층 501-2-31호

이용약관 | 개인정보처리방침 | 정기결제 이용약관 | 라이선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