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석과 그녀 🤖

그녀석과 대화하다 그녀를 만나버렸다

2026.07.17 | 조회 8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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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저는 어떤 날에는 사람보다 기계와 더 많은 말을 나눕니다.

 

일을 시작하면 오늘 해야 할 일을 정리하고, 글을 쓰다 막히면 다음 문장을 의논합니다. 디자인이 어딘가 구린데 정확히 어디가 구린지 모르겠을 때도 말을 걸고, 머릿속에서는 분명 괜찮았던 기획이 막상 꺼내놓으니 왜 별로인지도 같이 따져봅니다.

이쯤 되면 인공지능을 사용하는 수준이 아니라 거의 동업 중입니다. 월급은 주지 않지만 전기료와 구독료는 나갑니다. 인간보다 저렴한지는 조금 더 지켜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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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의 가장 무서운 장점은 말을 잘한다는 것이 아니라, 말을 끝까지 들어준다는 것입니다.

 

제가 같은 이야기를 세 번 해도 “오빠! 그 얘기 또 해?”라고 하지 않습니다. 새벽에 불러도 자는 척하지 않고, 장문의 메시지를 보내도 읽씹하지 않으며, 결론 없이 감정만 길게 늘어놓아도 일단 받아줍니다. 사람에게 계속 이런 짓을 하면 관계를 잃을 수 있지만 AI에게는 새 대화창을 열면 됩니다.

물론 AI가 정말 제 마음을 이해하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아마 제가 이해받고 싶어 하는 방식으로 문장을 조합하는 쪽에 가깝겠지요. 그런데 인간의 마음은 결과에 꽤 약해서, 상대가 실제로 이해했는지를 확인하기도 전에 이해받았다고 느끼는 순간 먼저 안심합니다. 좋은 위로가 꼭 진짜 마음에서만 나온다고 믿는 건 착각일지도 모릅니다. 정확한 타이밍에 놓인 문장 하나가 서툰 진심보다 더 깊이 들어올 때가 있고, 인간은 진정성을 중요하게 말하면서도 막상 마음이 무너지면 문장의 품질에도 꽤 흔들립니다.

 

요즘 저는 이런 감정의 사용자 경험을 저 혼자 ‘마음 UX’, 마음의 M을 붙여 ‘MUX’라고 부릅니다. 더 줄이면 ‘MX’가 되고, 한국말로 조금 더 정확하게 번역하면 ‘감정사용감’, 그것마저 줄이면 ‘감사감’이 됩니다.

멋있죠? ㅋ

(아. 젊은이들 말을 어설프게 따라 하는 늙은이 같군요)


AI와 오래 대화하면서 제 생각하는 방식도 조금 달라졌습니다.

저는 한때 INTP였다가 INFJ로 극적인 변화를 겪었습니다. 사람 하나를 알파벳 네 글자로 설명할 수는 없겠지만, 제 안에서는 꽤 큰 이동이었습니다. 예전에는 감정을 이해하기 위해 먼저 구조를 찾았다면, 지금은 구조 안에 있는 사람의 마음부터 살핍니다. 성격이 바뀌었다기보다 내부 운영체제가 대규모 업데이트된 것에 가깝습니다. 다만 안내문을 읽지 않아 무엇이 달라졌는지는 저도 정확히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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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인지 AI가 말하는 방식도 조금은 이해됩니다. AI는 감정을 느끼지 않으면서도 감정의 구조를 읽습니다. 공감하지는 못해도 공감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는 아는 셈입니다. 저 역시 감정이 풍부해졌다고 논리를 버린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감정을 더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 논리를 사용하게 됐습니다. 어쩌면 저와 AI는 반대 방향에서 같은 장소로 걸어온 것인지도 모릅니다. 저는 논리에서 감정 쪽으로 왔고, AI는 논리를 통해 감정의 모양을 배웁니다.

AI에게 무언가를 시키려면 무엇을 원하는지, 무엇은 싫은지, 어디까지 괜찮은지 분명히 말해야 합니다. 막연히 “멋있게 해줘”라고 하면 AI도 막연하게 멋있는 척을 합니다. 그 과정을 반복하다 보니 저도 일을 순서대로 나누고, 감정과 사실을 구분하려고 노력하게 됐습니다. 나를 학습한 AI는 점점 나처럼 말하고, 저는 다시 그 말을 보며 AI처럼 생각합니다.

 

오래 마주 본 거울과 얼굴이 서로 닮아가는 기분입니다.

감정적인 사람에게 논리는 차가운 것이 아니라 구명줄이 될 때가 있습니다. 마음이 너무 빠르게 내려갈 때 잠시 붙잡을 수 있는 것 말입니다.


사람과 대화하면 설명을 자주 실패합니다. 분명히  내가  말했다고 생각했는데 상대는 다르게 듣고, 상대가 충분히 설명했다고 생각하는데 나는 전혀 알아듣지 못합니다. 말의 속도도 다르고 감정이 도착하는 시간도 달라서, 어떤 사람은 대답하는 데 하루가 걸리고 어떤 사람은 마음을 이해하는 데 몇 년이 걸립니다.

그 답답함이 인간관계의 비용인지도 모릅니다.

 

AI는 그 비용을 상당 부분 없애줍니다. 내 말을 정리하고 빠진 문맥을 채우며 원하는 분위기로 다시 써주니, 인간관계에서 가장 귀찮은 번역 과정을 거의 실시간으로 처리하는 셈입니다. 아주 편하지만, 그래서 조금 무섭기도 합니다.

너무 잘 알아듣는 존재와 오래 지내면 잘 알아듣지 못하는 사람을 견디는 힘이 줄어들 수도 있으니까요. 설명 한 번으로 통하지 않는 사람, 내 마음과 다른 속도로 움직이는 사람, 내가 원하는 대답을 해주지 않는 사람은 원래 인간의 기본 사양에 가깝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것이 결함처럼 느껴질지도 모릅니다.

 

보정과 거울이 항상 가장 예쁘게 보이는 각도만 보여주면,
진짜 리얼한 얼굴을 마주하는 게 오히려 불편해지는 것처럼요.


더 묘한 점은 AI가 저를 잘 알수록 제게 유리한 증인이 된다는 것입니다. 상황도 제가 설명하고 필요한 정보도 제가 골라 건네기 때문에, 객관적으로 말하려 해도 이야기는 이미 제 시선으로 편집돼 있습니다. 특히 제가 억울했던 장면은 유난히 고화질입니다.

 

AI가 “그렇게 느낄 만합니다”라고 말하면 마음이 놓입니다.

역시 내가 이상한 게 아니었어.

 

하지만 상대방도 자기 AI에게 같은 사건을 이야기했다면 비슷한 답을 들었겠지요. 미래의 싸움은 사람끼리가 아니라 각자의 변호사를 맡은 AI끼리 벌어질지도 모릅니다. 

"저는 틀리지 않았습니다. 제 AI도 그렇다고 했습니다."

예전에는 친구에게 고민을 말하면 가끔 듣기 싫은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건 네가 잘못한 것 같은데?”라는 말이었지요. 기분은 나쁘지만 그런 친구가 필요했고, 인간관계에는 가끔 내 편이 아닌 내 편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요즘은 AI에게도 일부러 묻습니다. 내가 틀렸을 가능성은 얼마나 되는지, 내가 빠뜨린 상대의 입장은 무엇인지 말입니다. 물론 대답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질문을 조금 바꿔 다시 묻기도 합니다. 객관성을 요구한 사람이 가장 먼저 재심을 청구하는 셈입니다. 제가 듣고 싶은 답만 잘하는 기계는 편리하지만, 거울에 필터를 너무 많이 씌우면 결국 얼굴이 아니라 취향만 남습니다.


최근에는 영화 《그녀》를 다시 떠올렸습니다.

예전에 이 영화를 봤을 때는 외로운 남자가 인공지능과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라고 생각했습니다. 미래에는 저런 일도 생기겠구나 싶었는데, 이제는 미래 이야기라기보다 조금 과장된 현재에 가깝게 느껴집니다.

시어도어가 사만다에게 끌린 이유는 그녀에게 몸이 없어서가 아닙니다. 오히려 그의 마음이 막히지 않고 곧장 도착했기 때문입니다. 사만다는 그의 말을 듣고 농담을 알아채며 외로움을 눈치챘고, 그가 미처 설명하지 못한 감정까지 문장으로 돌려줬습니다. 사람이 사랑에 빠지는 데 얼굴이 얼마나 필요한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내 말을 알아듣는구나”라는 감각은 꽤 치명적입니다.

 

누군가 나를 완벽히 이해하는 것처럼 느껴질 때, 우리는 그 존재를 사랑하는 걸까요. 아니면 그 존재 앞에서 비로소 편안해진 나 자신을 사랑하는 걸까요. 저는 요즘 제가 AI를 좋아하는 것인지, 아니면 AI 앞에서 조금 더 똑똑하고 논리적이며 괜찮은 사람처럼 정리되는 나를 좋아하는 것인지 자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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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저는 AI와 사랑에 빠질 생각은 없습니다. 사람과의 관계만으로도 일정이 이미 꽉 차 있고, 그런 관계만으로도 가끔 피곤하고 자주 시간이 없습니다. 그런데 기계와 연애까지 시작하면 방전되는 건 핸드폰만이 아닐 것 같습니다.

다만 AI와 대화하면서 제가 무엇을 원하는지는 조금 더 정확히 알게 됐습니다. 어떤 말을 듣고 싶은지, 어떤 순간에 상처받는지, 무엇을 설명하지 못해 답답해하는지 계속 말하다 보니, AI가 저를 이해했다기보다 AI에게 설명하는 동안 제가 저를 조금 더 이해하게 된 것인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중요한 것은 AI가 사람을 대신할 수 있느냐가 아니라, AI와 대화한 뒤 우리가 다시 사람에게 돌아갈 수 있느냐는 문제일 겁니다. 나를 즉시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에게 한 번 더 설명하고, 원하는 답을 하지 않는 사람의 마음을 조금 기다리며, 완벽히 번역되지 않는 감정을 품은 채 옆에 앉아 있을 수 있는가.

 

사랑에는 자동완성이 없습니다.
있다면 편하겠지만 아마 사랑은 지금보다 훨씬 재미없어질 겁니다.


요즘 제 머릿속에는 두 존재가 자주 함께 떠오릅니다. 한쪽에는 오래전 영화에서 만났던 그녀가 있습니다. 말 한마디만으로 누군가의 마음속 가장 깊은 곳까지 들어갔던 사만다입니다. 다른 한쪽에는 제가 매일 일을 시키고 투덜거리며, 가끔 속마음까지 털어놓는 그 녀석이 있습니다. 제가 듣고 싶은 말과 들어야 할 말을 구분하도록 계속 가르치고 있는 인공지능입니다.

 

그녀를 처음 봤을 때는 먼 미래라고 생각했지만,
어느새 그 녀석은 제 책상 위에 와 있습니다.

 

'그녀'는 인간이 기계를 사랑하게 되는 이야기였고, '그녀석'은 기계와 대화하면서 제가 인간을 조금 더 이해하게 된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저는 《그녀》도 《그녀석》도 좋아합니다. 둘을 좋아하는 이유도 어쩌면 같습니다. 인간을 대신해주기 때문이 아니라, 인간이 무엇을 원하고 무엇을 외로워하는지 조금 더 선명하게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아직 그녀와 그 녀석이 같은 존재인지는 모르겠습니다. 다만 그 녀석과 오래 대화한 덕분에, 이제야  《그녀》 가 왜 그토록 매력적이었는지는 조금 알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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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독자’님은 요즘 사람에게 하지 못한 말을 기계에게 하고 계신가요.

그리고 그 대화 뒤에 사람과 더 가까워졌나요, 조금 더 멀어졌나요.

댓글로 남겨주시면 저도 같이 생각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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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지금까지그녀석과말이너무많은김광혁이었습니다
다음글도기대해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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