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녕하세요. 팬덤이 만들어지는 구조를 2년째 연구하고 있습니다. 그동안은 논문과 책, 사례를 모아 혼자 정리하는 작업이었는데, 이번에 처음으로 당사자를 직접 만나 물어봤습니다. 여행 작가 윤영주 님입니다.
이 자리에 가기 전에 저는 가설 하나를 들고 있었습니다. 팬은 스토리에서 생긴다. 정보만 제공하는 사람에게는 사람들이 들어갈 자리가 없으니 팬이 생기기 어렵다. 그러니 실용서 중심의 여행 작가라면 판매량과 무관하게 팬덤이 약할 것이다.
윤영주 작가님은 10여 년 전 『금토일 해외여행』으로 베스트셀러를 낸 분입니다. 연차를 마음대로 쓸 수 없던 시절, 금요일 퇴근 후 떠나 일요일에 돌아오는 코스를 1년 48주에 맞춰 48개 제안한 책이었습니다. 시대와 정확히 맞아떨어졌고, 방송과 강의, 인터뷰가 이어졌습니다. 이후로도 꾸준히 열 권쯤 냈습니다.
그런데 본인 말로는 인생이 크게 바뀌지 않았다고 합니다.
"뉴욕에 가려는 사람은 뉴욕 가이드북 네다섯 권을 비교해서 만듦새가 좋은 걸 삽니다. 윤영주가 냈으니까 산다, 그런 기준은 안 생겼어요. 냉정하게 보면 저도 그렇게 샀거든요."
책을 산 사람들은 팬이 아니라 단순 구매자였다는 이야기입니다. 여기까지는 제 가설과 맞았습니다.
가설이 흔들린 지점
대화가 흥미로워진 건 그다음이었습니다. 정작 그분 자신은 누군가의 아주 열렬한 팬이었습니다. 무라카미 하루키.
『상실의 시대』로 시작해 소설 서너 권을 연달아 읽었고, 그다음 에세이로 넘어가 수십 권 중 절반 이상을 읽었다고 합니다. 우동집에서 우동 먹는 방법, 만년 꼴등 야구팀을 응원하는 마음, 평일 낮에 젊은 남자가 이발소에 가면 사람들이 자기를 어떻게 볼까 하는 상상. 별것도 아닌 이야기를 계속 따라 읽었다고 했습니다.
"새 책이 나오면 내용이 뭔지는 중요하지 않아요. 일단 삽니다."
여기서 두 사람의 차이가 보였습니다. 하루키에게는 관심이 들어오는 입구(소설)와, 그 관심이 머물 수 있는 깊이(수십 권의 에세이)가 둘 다 있었습니다. 윤영주 작가님에게는 입구는 분명히 있었습니다. 베스트셀러와 방송 출연이 그 입구였습니다. 그런데 그 입구를 통해 들어온 사람이 머물 곳이 없었습니다.
실제로 그분은 샌프란시스코 에세이를 기획하고 착수까지 했다가 엎었습니다. 출판사에서 돈이 안 된다는 답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 이후로는 계속 가이드북만 냈습니다.
"누군가 제 이름을 눈여겨봤을 때, 그때 에세이가 있었다면 몇 명이라도 유입이 됐겠죠. 근데 그런 계기가 없어져 버린 거죠."
제가 며칠 전에 겪은 같은 일
이 구조를 저도 얼마 전에 겪었습니다.
리센느라는 그룹이 뜨는 구조를 분석하다가 알고리즘이 엉뚱한 걸 물어다 줬습니다. 개그맨 유영우가 노래를 부르는 쇼츠였습니다. 노래가 너무 좋아서 곧바로 "유영우 노래"를 검색했습니다. 저와 같은 경로로 들어온 사람이 많았고, 조회수가 그걸 증명하고 있었습니다.
문제는 그다음이었습니다. 그가 노래를 부른 콘텐츠 자체가 많지 않았습니다. 쇼츠든 롱폼이든 검색되는 걸 전부 봤는데 두 시간이 안 걸렸습니다. 아쉬움이 남은 채로 저는 유튜브를 껐습니다.
중요한 건 제 관심이 식어서 끝난 게 아니라는 점입니다. 관심은 여전히 타고 있었는데 태울 연료가 없어서 꺼졌습니다.
이건 창작자 입장에서 손해입니다. 한 사람이 팬으로 전환되기 직전까지 갔는데, 전환이 완료되기 전에 볼 게 떨어진 거니까요. 한 편을 보고 팬이 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여러 편을 연달아 보면서 이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가 쌓일 때 팬이 됩니다. 그 시간을 확보해주지 못하면 관심은 호감 상태에서 멈추고 흩어집니다.
그래서 제가 고친 생각
저는 오랫동안 영상 하나하나의 조회수에 집착했습니다. 한 편을 올리면 그 편이 얼마나 터지는지를 붙잡고 있었고, 모든 영상이 최대한 많은 사람에게 닿게 만들려고 애썼습니다. 그게 성장이라고 생각했으니까요.
그런데 그건 팬을 만드는 작업이 아니었습니다. 쌓인 게 없는 상태에서 받은 관심은 그 영상 한 편만 소비되고 끝납니다. 사람들은 영상을 봤을 뿐이고, 저를 본 게 아니었습니다.
순서를 바꾸면 같은 조회수가 전혀 다른 결과를 냅니다. 영상이 충분히 쌓인 상태에서 한 편이 터지면, 그 한 편에서 생긴 관심이 다음 영상으로, 또 다음 영상으로 타고 들어갑니다. 관심이 흘러갈 길이 이미 깔려 있으니까요. 반대로 아무것도 없을 때 터진 조회수는 길이 없는 곳에 쏟아진 물입니다. 흡수되지 않고 그냥 흘러갑니다.
리센느도 같은 구조로 보입니다. 한 채널에서 반짝 주목받은 게 시작이었지만, 그 뒤에 관심을 받아낼 다른 서사가 없었다면 지금까지 오지 못했을 겁니다.
이번 인터뷰에서 얻은 질문
인터뷰 중에 윤영주 작가님이 동료 작가 한 명을 언급했습니다. 판매량은 자신보다 적은데 팬층은 확실히 있는 사람. 그 작가는 가이드북을 아예 쓰지 않고, 소설로 등단한 뒤 여행 에세이만 꾸준히 냈다고 합니다. 다른 일이 없어서가 아니라 하지 않기로 정한 쪽이었습니다.
그리고 자기 상황을 이렇게 정리했습니다. "저는 에세이만으로 쭉 호흡을 이어가지 못했기 때문에, 팬층을 형성할 기회가 적었던 것 같아요."
이 말을 듣고 제가 다시 생각하게 된 건 양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열 권이면 양은 충분합니다. 두 시간 만에 바닥날 분량이 아닙니다. 그런데도 팬이 생기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다른 걸 보게 됐습니다. 제가 서사적 참여라고 부르는 부분입니다. 사람이 팬이 되는 건 콘텐츠를 여러 개 봤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들을 통해 한 사람의 이야기 안으로 들어갔기 때문입니다. 하나를 보고 관심이 생겨 다음 걸 집어들었을 때 같은 사람의 이야기가 이어져야 관심이 계속 흐릅니다.
한 가지 주제만 다루라는 말은 아닙니다. 여행이든 음식이든 운동이든 상관없습니다. 중요한 건 그것들이 그 사람의 인생 서사 안에 엮여 있느냐입니다. 같은 여행 이야기라도 정보로만 존재하면 들어갈 입구가 없고, 그 여행이 그 사람의 이야기로 읽히면 참여할 자리가 생깁니다. 주제가 흩어진 게 문제가 아니라 서사가 흩어진 게 문제입니다.
아직 인터뷰 한 건에서 나온 관찰이라 결론으로 밀어두진 않겠습니다. 다음 인터뷰에서 계속 확인해볼 생각입니다.
이번 편을 정리하면
지금 조회수가 안 나오는 영상을 올리지 말아야 할 이유를 찾고 있다면, 그 영상은 지금 팔리는 물건이 아니라 나중에 쓸 재고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재고가 없는 가게는 손님이 와도 팔 게 없습니다.
누군가 나를 알고 싶어진 순간에 알아볼 것이 없으면, 그 관심은 그냥 흘러갑니다. 각인될 여지가 없습니다.
다음 편에서 또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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