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점사이 30. 구태여 연필꽂이 같은 걸

세점사이의 30 번째 뉴스레터를 보내드립니다.

2023.11.20 | 조회 14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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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점사이

말줄임표 사이에서 하고 싶었던 말들을 담습니다.

안녕하세요 구독자님! 세점사이의 서른 번째 레터를 보내드리며 인사드립니다. 어느덧 세점사이의 세 번째 시즌도 마무리가 되었네요! 첫눈도 내렸고, 밖은 어느덧 완연한 겨울이라 묘한 기분입니다. 저도 어찌어찌 이번 가을에도 열 편을 써내서 보내드렸는데, 그간 글들이 괜찮으셨는지 모르겠네요. 괜찮으셨기를 바랄 뿐입니다. 지금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번 글에서는 에세이라는 장르 자체에 대한 마음을 담아 보았어요. 저의 좀 더 일상적인 글이나 사진들이 궁금하신 분들을 위해 네이버 블로그 링크를 남깁니다. 블로그에서 인스타그램 계정도 보실 수 있어요. 그럼, 바로 글 보여드릴게요.

https://blog.naver.com/mnx2575


구태여 연필꽂이 같은 걸

종종 방 책상 사진을 올리면 주변에서 부러움을 산다. 내 작업 공간들은 나름대로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는 편이고 실제로 나는 거기에 공을 좀 들였다. 물론 사진을 열심히 찍은 덕이기도 할 것이다. 다만 어쩌다 인터넷에서 방을 자랑하는 콘텐츠 등을 보면 내 공간들이 잘 꾸며진 축에 속한다는 걸 새삼 재확인하게 된다. 그러나 예쁜 방이 말끔한 일상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나는 시야가 지저분하면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타입의 사람이기에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시선 갈 곳을 정리했을 뿐이다. 그럼에도 결국 능률이 좋은 사람의 대열에는 끼지 못했다. 아주 작은 방해 요소만 있어도 나는 신경을 뺏기고, 집에서 일을 하려는 밤이면 늘 새벽 두세시까지 딴짓과 할일 사이를 바보처럼 오간다. 그러다 속으로 엉엉 울지. 말끔한 책상의 환상은 전부 가짜야, 하면서.

아침마다 제법 사진을 열심히 찍어두는 편
아침마다 제법 사진을 열심히 찍어두는 편

그럼에도 남의 집 이야기만 보면 눈길이 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누군가는 이걸 좋은 집을 구하기 힘든 세대가 가진 이른바 ‘오늘의 집 중독’이라고도 말했지만, 정확한 진단이야 어찌되었든 나는 남의 예쁜 집 사진이나 예쁜 집에서 사는 이야기를 좋아한다. 각자의 집을 예쁘게 찍어올리는 사람들이 내 SNS 팔로잉의 큰 비중을 차지하고, 혼자 밥을 먹거나 하면서 시간이 뜰 때는 예쁘게 꾸며놓은 집의 일상을 그리는 유튜버들을 멍하니 바라본다. 실질적으로 어떤 멋진 삶이 있을 거라는 환상 같은 건 이제 없다. 내 책상보다 훨씬 지저분한 책상으로 더 말끔한 재택근무를 하는 사람들이 수두룩하다는 걸 안다. 하지만 그럼에도 사람들이 자신의 생활에 맞춰 집을 꾸미는 모습을 보면 뭐라 정의할지 모를 설렘을 느낀다. 물론 이런 집꾸미기 유행에 비관적인 이야기를 할 수도 있겠지만, 뭐 세상에 뭐는 안 그렇겠어. 어쨌든 나는 조그만 연필꽂이 하나가 책상 위를 얼마나 말끔하게 하는지 알고 있다. 책상 위에 연필꽂이를 놓으며, 그 모양을 고민하고 그 안에 무엇을 넣을지 생각하는 모습을 보는 게 즐겁다. 이후의 일상을 담은 프레임에 그 연필꽂이가 등장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그냥 괜히 반갑다. 하나하나 직접 만드는 연속극 같다고나 할까? 멋진 일상을 전시하는 이들에게도 슬픔이나 고뇌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삶이란 그런 게 없기 때문에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런 것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어지는 것. 그들은 그런 것들을 안고 가는 와중 오늘은 연필꽂이 놓기를 행한 것이다. 그가 어제 울었다는 사실이 그 연필꽂이를 무의미하게 만들지는 않는다. 사실 나는 그가 어제 왜 울었는지 궁금하다.

 

많고 많은 글의 갈래 중에서 왜 하필 에세이를 좋아하느냐는 이야기를 자주 듣는다. 이건 새삼스러운 이야기이기도 하고 영 꿍한 이야기이기도 한데, 왜냐면 어쨌든 에세이라는 장르는 가장 잘 팔리는 장르인 동시에 뭐랄까, 어떤 편견에 노출되어 있는 장르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뭐랄까, 고급 텍스트는 아니라는 거지. 학부라고는 하지만 어쨌든 문학을 전공한 사람이라서 더 그런 시선을 받는 감이 있다. 종종 친구들은 에세이에 대한 불호를 이야기하면서 그런 말들을 했다. 정말 시덥잖고 쓰잘데기없는 얘기들을 길게 늘여놓는다고. 짧게 말해서 안물안궁 장르. 

틀린 말은 아니다. 나조차 종종 에세이 쓰는 일을 안물안궁 아트라고 부른다. 멋쟁이 에세이스트의 시작은 하나도 안 궁금한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일단 들어는 보게 만드는 일. 쉽지 않은 일이다. 매번 글을 쓸 때마다 의문을 가진다. 20대 후반 남성이 커피 내려마시는 이야기_copy 11937 같은 게 지구상에 존재해야 할 이유가 있는가? 그러나 독자가 일단 그걸 들여다보기로 결심을 했다면 그 다음은 쉽다. 그런 얘기를 들어보기로 했다는 것부터가 어느 정도는 호감의 표시이기 때문이다. 그 이후에는 이야기를 잘 하기만 한다면 어쨌든 끝까지는 읽힌다. 그리고 우리는 안다. 텍스트 한 바닥 분량의 말들을 전할 수 있는 기회가 살면서 얼마나 적은지. 심지어 그게 커피 마시는 얘기 정도라면.

이상한 일이지만 내 글 중에서 가장 좋은 반응을 얻었던 건 가장 소소한 종류의 이야기들이다. 내가 술을 잘 못 마시는 데에 대한 이야기라든가, 내 말장난들의 뿌리에 대한 해명이라든가, 버스 타고 가다가 사진 찍은 이야기라든가. 정작 온 힘을 들여서 쓴 이야기들은, 뭐랄까, 좋아하는 사람들은 좋아해 주지만 막 천 단위 만 단위의 호응을 받지는 못한다. 그런데 지나가다가 저 쓸데없는 이야기들을 끝까지 읽은 사람들조차도, 누가 길가에서 대뜸 비슷한 주제의 이야기를 하면 안물안궁, 하면서 지나갔을 거다. 에세이 매대를 보면서 대체 이런 걸 왜 읽냐고 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들은 어쨌든, 읽었다.

그러므로 잡지 역시 좋아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므로 잡지 역시 좋아하지 않을 수 없다

이유야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내가 너무 괜찮은 도입부를 쓰는 바람에 그들이 혹했을 수도 있다. 그건 글 쓰는 사람의 역량이지. 어쩌면 공감을 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유야 어찌되었든, 의문은 여전히 남는다. 왜 그들은 저 술 잘 못 마셔요, 하는 한 줄 요약이 아닌 글 전체를 읽고 하트를 남기게 되었느냐는 것. 왜냐면 사실 가장 매력적인 것들은 물어보지 않은 디테일들에 있기 때문이다. 연필꽂이 그 자체보다는 연필꽂이 때문에 바뀐 일상들. 좀 낯간지러운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그 왜, 사랑을 하면 그런 것들이 궁금해지니까. 성격에 따라 누군가는 물음표 살인마처럼 물음표를 던져댈 것이고, 누군가는 그걸 산 날 기분이 어땠는지를 듣고 싶어할 것이지만, 결국 본질은 비슷하다.

그래서 안물안궁이라는 이야기를, 장난 삼아 쓰긴 쓰더라도, 별로 좋아하지는 않는다. 지금보다 더 어릴 때는 정말 그 말이 싫다고 화를 내기도 했다. 사실 예쁜 집 자체는 중요하지 않다. 처음에 이목을 끌 수는 있어도, 집의 전경을 보는 건 게시글 하나면 족하다. 그를 팔로우하게 되는 것은 결국 그가 그 안에서 사부작거리는 것들에 대한 사랑, 혹은 선망 때문이다. 그게 더 재밌다. 그런 집을 가진 사람이 선택하는 물건이 궁금하다는 것은 그의 미감에 대한 관심이 있다는 것이고, 그의 후기가 궁금하다는 것은 그의 일상의 패턴이 궁금하다는 뜻이다. 내가 예쁜 책상을 만들게 된 것이 역으로 정신없는 나의 집중력 때문임을 토로하고, 그걸 듣는 사람들이 있듯이. 그리고 그게, 에세이라는 장르가 건드리는 지점이라는 것이다. 아주 큰 주제들 사이에서 전해지는, 그를 사랑해야만 들을 수 있는 디테일들. 내밀한 에세이일수록 아름다운 이유가 달리 어디에 있겠는가. 물론 이건 가끔 징그럽기는 하지만 뭐 사는 게 다 징그럽죠 머. 에세이를 쓰는 사람들의 삶이 언제나 찬란하지는 않겠으나, 현실적이고 구질구질한 지점들과 거기에 대해 내뱉는 나름의 탄성이 그 모든 물어보지 않은 이야기들을 읽음직하게 만든다. 좋은 에세이를 기꺼이 읽을 때, 우리는 그 글을 쓴 이를 잠시 사랑하게 되는 것이다. 이건 소설에서는 완벽하게 충족되기 어려운 감각이다. 좋은 에세이를 읽을 때 우리의 발은 확실히 땅에 닿아 있다. (물론 형편없는 에세이들이 엄청나게 많음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소설이나 시라고 안 그런가요?)

친구와 함께 작업한 인터뷰 사진의 굿즈들
친구와 함께 작업한 인터뷰 사진의 굿즈들

내 사진의 가장 확고한 바탕이 어디에 있느냐는 질문에 항상 인터뷰 사진이라고 답한다. 패션 쪽에도 바탕이 있기는 하지만 그건 관심사와 형식의 차원이고, 정서적으로는 인터뷰다. 이미 여러 번 말한 바다. 라이프스타일 잡지의 인터뷰 사진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외모가 완벽하지는 않다. 외모가 뛰어나서 뽑힌 사람들이 아니기 때문에, 그냥 보통 사람들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사진을 보고 있으면 나는 그들이 궁금해지고, 그들이 쓰는 물건들, 그들의 공간들을 담은 글과 사진들을 정신없이 훑게 된다. 디테일이 있는 이야기들. 그러니까 내 사진은, 궁금하지 않으면 실패.

에세이를 처음부터 좋아한 것은 아니다. 사실 싫어하는 축에 가까웠지. 일상적인 이야기를 많이 남기긴 했지만 어떤 읽을 만한 아티클로서 쓴거라기보단 그냥 일기에 가까웠다. 에세이를 쓰기보단 엽편을 많이 쓰던 날들이 길다. 군대에 가서 막 자대배치를 받았을 때쯤, 나는 심심했다. 아무것도 없는 그 안의 시간이 너무 길었다. 그래서 책을 마구잡이로 읽었는데 머리가 뜨끈해지는 무거운 책들은 읽고 싶지가 않았다. 종이로 된 에세이 책들을 그 때 처음 읽었다. 처음에는 그냥 시간때우기였던 것 같은데, 곧 너무 좋아하게 되어서, 시간이 났다 하면 큰 서점에 가 에세이 책들을 잔뜩 사들고 왔다. 이병률이나 이기주 같은 작가를 지금은 그렇게 좋아하지 않음에도 그 이름을 볼 때 괜스레 애틋한 건 에세이에 대한 내 사랑이 그들과 함께 시작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좋아하는 박선아 작가나 이슬아 작가 같은 사람도 그 시절 알게 되었다. 그들은 인터뷰마저 좋았다.

카메라를 사들고 사진을 찍기 시작한 것도 그 즈음이었다. 못생긴 빡빡머리 시절의 사진들이 덜 못생긴 지금의 사진들보다 많은 이유다. 그러한 시기적 일치는 우연은 아닐 것이다. 이후로 시간은 몇 년쯤 지나 나는 적당히 꾸민 책상 이야기를 가져다가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덧붙이며, 에세이에 대한 사랑을 설파한다. 아무도 물어보지 않은 일이다.

여전히 에세이 읽기의 지성적 효용을 물으면 우물거리게 된다. 맘에 드는 에세이를 읽었다고 내용을 하나하나 기억하지도 못한다. 대부분은 그저 모호한 감정적 인상으로 남아있을 뿐. 그러나 타인이 말하는 자잘한 것들을 굳이 경청하고 궁금해하는 일련의 과정은, 좋다. 나는 여전히 누군가의 책상 위가 궁금하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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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4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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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asiwol

    0
    5 months 전

    마지막 글이라니 아쉬워요

    ㄴ 답글 (1)
  • 겨울고양이

    0
    5 months 전

    글 내용이 너무 공감됐어요! 이번 시즌 레터 중에 가장 마음에 드는 글이에요 :)

    ㄴ 답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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