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점사이 21. 같이 걷기엔 별로

세점사이의 스물한 번째 뉴스레터를 보내드립니다.

2023.09.18 | 조회 2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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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점사이

말줄임표 사이에서 하고 싶었던 말들을 담습니다.

안녕하세요 구독자님! 세점사이의 스물한 번째 레터를 보내드리며 인사드립니다. 오랜만에 뵙네요! 세점사이의 세 번째 계절을 함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번 시즌부터는 글 앞의 신변잡기는 과감히 생략해볼 예정입니다. 본글이 나올 때까지 스크롤을 내리는 게 부담스러울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거든요. (사진과 구구절절이 있는 쪽이 마음에 드셨다면 자유롭게 피드백 주세요ㅎㅎ)

이번부터는 하나의 일관적인 주제를 가지고 시리즈가 진행될 예정입니다. 그래서 이번에 보내드리는 글은 하나의 에세이인 동시에 시리즈의 서문이기도 합니다. 어떤 이야기일까요? 제 글을 오래 전부터 읽어주셨던 분들께는 익숙한 소재일 수 있을 것 같은데요, 놀랍게도 뉴스레터에서는 다룬 적이 없더라구요 (...) 너무 매일 해서 그런가? 바로 소개드리도록 할게요.

 


같이 걷기엔 별로

유용한 몇몇 관용표현들과 궁합이 영 별로다. 보폭을 맞춘다거나, 함께 걷는다거나 뭐 그런 것들. 그런 말들을 쓰기엔 어딘가 양심에 켕기는 데가 있다. 같이 걷기 좋은 유형의 사람은 못 된다. 동행자로서의 결격사유는 몇 가지가 있지만 가장 기본적으로는, 걷는 속도가 빠르다는 점. 나는 성격이 급해 같이 걷는 사람을 곧잘 숨차게 만들어 버리곤 했다. 짧은 다리로 하는 종종걸음이라서 그 꼴이 멋지지 않은 건 덤이다.

차라리 내가 앞만 보고 전진하는 타입이었다면 어떻게 합리화라도 가능했을 텐데. 애석하게도 난 직진을 하는 쪽도 못 된다. 멋없는 종종걸음 사이에서 행보는 비틀거리고, 길의 한 쪽 끝에서 다른 쪽 끝으로 횡보가 이어진다. 내 옆에서 걷는 사람은 차도 밖으로 밀려나는 것을 감수해야 한다. 

먼 옛날부터 내려온 정상가족 규범의 신화 속에서 어머니는 늘 자식이 가는 길을 함께 걷는 존재로 그려진다. 그러나 우리 엄마는 내게 그렇게 걸을 거면 차라리 당신을 놓고 그냥 알아서 혼자 가라고 했더랬다. 갈지자 걸음을 걷는 이에게 모성 신화는 허락되지 않나니. 그게 대충 십 년쯤 전의 이야기다.

 

예전만큼 걸음이 빠르지는 않다. 철이 들어서 그런 건 아니고, 그냥 열몇 살 때만큼 다리에 힘이 펄펄 넘치지 않아서 그렇다. 여전히 급한 성격으로 종종거리지만(촬영 후기에 걸음이 빠르시다는 내용이 올라오기도 했으니!) 전처럼 한 블럭 안의 사람들을 전부 앞지른다거나 그렇지는 않다. 그 때는 나보다 다리가 팔 하나 만큼 긴 사람들보다도 내가 더 빨리 걸었더랬다. 축지법처럼. 이제 나는 그냥 보폭의 물리적 너비에 순응하는 사람이다. 급하면 차라리 뛴다.

내가 가진 물리적 보폭을 받아들이는 동안 꽤 여러 군데를 들렀다. 걸음이 느려진 것이지 비틀거리는 게 덜해지진 않았지만. 나에게 여행은 너무 무겁지만 스무 살 때 서울에 올라오고 난 뒤 적어도 그 안에선 꽤 여러 동네를 돌아다녔다고 할 수 있다. 방랑자의 마음 그런 거창한 건 아니고, 그냥 사진을 찍느라 그랬다. 사진을 찍으면서도 대단한 명소는 다니기를 싫어해서, ‘여기서도 사진을 찍어요?’ 싶은 동네들마다 점을 찍어댔다. (그래서 정작 그곳의 풍경은 알아도 그곳의 유명한 음식점 같은 건 하나도 모른다.) 사진을 찍고 글을 쓰는 사람(이런 표현은 좀 오글거리지만)으로 살면 그게 참 좋았다. 비효율적인 동선을 쌓으며 비척이다 보면 지도 위의 마커가 몇 개씩 지워져 있어서. 그러면서 자기소개를 여러 번 바꿨다. 학생이었다가 선생이었다가 글 쓰는 사람이었다가 사진 찍는 사람이었다가 그냥 백수였다가 다시 선생이었다가. 이제는 다시 사진 찍는 사람.

 

그래서, 웬만해선 혼자 걷는 게 편하다. 남에게 부담을 줄 필요도 없고 구태여 남을 신경써서 걸을 필요도 없다. 갑갑하면 앞지르고 힘이 빠지면 비척이고. 내 멋대로 종종거리고 있으면 마음에 불편이 없다. 그런데 사실, 빠르게 비틀거리는 사람으로 살면서 알게 된 게 있다. 이런 식의 종종걸음이 사실 기대만큼 빠르지 않다는 것. 예전에 친구들과 제주도를 갔었다. 원래 있던 곳에서 카페까지의 거리가 택시를 타거나 하기에는 애매해 우리는 그냥 걸어가기로 했었다. 나는 카메라를 들고 가며 자꾸 사진을 찍고, 친구들은 그냥 대화하면서 천천히 걷고. 나는 찍고싶은 게 보이면 빨리 걸어가서 사진을 찍느라 한참 서 있었다. 친구들은 그 동안에도 그냥 천천히 걷고. 결론적으로 나는 금방 뒤쳐져 먼저 가 기다리는 것은 그들의 몫이 되었다. 그렇게 단독행동을 하면서 찍은 사진이 그렇게 의미가 있지도 않았다. 잔뜩 흐린 시골 동네에 있어봐야 뭐가 있었겠어. 그렇게 뒤쳐진 채 찍은 사진들의 90프로는 나중에 사용하지도 않았다. 우스운 일이었다. 친구들은 눈치를 안 주는데 나는 또 괜히 눈치를 봤다.

그 여행의 어느 하루는 그걸로도 모자라 완전히 혼자 보냈다. 따로 또 같이 여행이었다. 숙소까지 친구들과 다른 곳으로 잡아두고 하루를 혼자서 걸어다니며 보냈다. 마찬가지로 그다지 똑똑한 동선은 아니었지만(정확히 말하자면, 멍청이 같은 동선이었다) 그렇게 혼자 삽질을 하고있는 건 왠지 마음이 편안한 구석이 있었다. 무작정 많이 걷고 갑자기 서고. 뱀에 물릴 뻔도 하고 길을 잘못 들기도 하고. 서점에 가다가 갑자기 꽃 핀 담장 앞에 서서 꿀벌 사진을 백 장 넘게 찍고. 바다를 보다가 허탕을 쳤다가 맘에 드는 곳을 찍다가, 연락을 하나도 안 보다가, 한참 서서 카톡을 보다가. 디지털로 사진을 찍다가 필름 카메라를 들었다가. 바다에 있다가 갑자기 내륙으로 향하는 택시를 타 별안간 오름에 오르고. 그 얼렁뚱땅의 모험을 마치고 우리는 비행기 시간에 맞춰 다시 모여 서울로 함께 돌아왔다.

혼자 걸으며 찍은 바다의 필름사진
혼자 걸으며 찍은 바다의 필름사진
혼자 마주친 들판
혼자 마주친 들판

여행이 끝난 직후 며칠 정도를 들여 사진을 정리했다. 확실히 혼자 있을 때 남긴 사진들이 많았다. 하지만 친구들과 함께 있던 날에 찍은 사진들은 결국 친구들의 모습을 담은 것들만 남았다. 물론 인물사진에 더 주력하는 내 사진의 갈래도 그러한 편향에 한몫을 했겠지만, 기껏 뒤떨어져 걸으며 담은 것들의 주요한 10프로가 따로 함께 걸었던 친구들의 모습이라는 건 뭐랄까, 좀 머쓱한 일이었다. 사진속의 그들은 나를 기꺼이 기다리고 있었다. 물론 내가 좀 더 늦었더라면 기다리지 않았을지도 모르지만. 어쩌면 내가 그러한 사진들에 최종 십 퍼센트를 투자할 수 있었던 것은 하루의 혼자 여행을 앞두고 있었어서인지도 모르고, 어쩌면 하루의 혼자 여행을 만들 수 있었던 것은 따로 또 같이 걸었던 친구들 덕인지도 모르겠다.

고등학생 때 친하게 지내던 친구들이 다섯 있다. 그 때는 지금보다 다리 힘이 더 팔팔해 내가 정말로 축지법을 쓰던 시절인데, 그 중 넷은 느긋하게 걷기를 좋아하고 그 중 하나는 나와 걸음이 얼추 맞아서 항상 넷과 둘 이런 모양으로 걸었다. 물론 걸음이야 걸음이고, 항상 밖으로 그만 밀라고 볼멘소리를 하긴 했지만. 사실 그 친구도 빠르게 걷는 걸 좋아하지는 않았다. 그냥 맞춰준 거겠지. 이제는 안다. 대전을 떠나서도 그 친구하고는 가끔 연락을 했다. 아주 가끔 대전에 내려가면 그 친구를 통해 약속을 잡는다.

 

하루하루는 나름대로 계획적으로 사는 편이지만 삶이란 원래 불가항력적인 데가 있다. 어쩌면 이건 그냥 자기합리화일지도 모르는 얘기지. 제주도의 어느 엉망진창 혼자 하루도 원래는 철저히 계획된 거였다. 호텔, 전체적인 동선, 관광지 사이를 이동할 교통수단, 지점별 체류시간, 식사 메뉴까지. 하지만 그냥 길가에 동백이 그렇게 예쁘게 피어있을 줄은 몰랐고 벚꽃이 그렇게 일찍 필 줄은 몰랐을 뿐이다. 서점은 생각보다 작았고 음식점에선 메뉴 하나만 시키기 아쉬웠다. 해는 생각보다 늦게 졌고 구름은 예상보다 두껍게 꼈다. 그럴 줄은 몰랐던 거다. 결과론적으로는 비효율적이고 느긋한 동선을 즐긴 사람이 됐지. 하지만 애초에 그 제주도의 대중교통이란 게 예측이 가능한 거냐구요.

사람의 걸음걸이를 보면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를 알 수 있다고 했다. 그렇다면 확실히 나는 한참 전에 망했다. 나는 내가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여기저기를 기웃기웃 튀어다닌다. 제 멋에 빠져 종종걸음으로 걷다가 뭔가에 또 빠져 한참 가만히 있는다. 빠른 걸음이 무색하게 남들보다 한참을 뒤쳐져 있다. 하지만 그렇기에 밖에다 할 말은 늘 가장 많지. 비틀거리며 들렀던 곳들의 도움을 생각도 못한 곳에서 받았다. 제주도에서 혼자 버스를 타고 읽었던 책의 내용을 중요한 강의의 비유로 써먹고, 가만히 서서 찍었던 사진이 나중에 찰떡같이 쓸 데가 생겨 요긴하게 써먹는다. 

버렸다고 생각한 시간들이 많다. 예를 들어 강사로서 강의를 해온 시간들이나 소설을 쓰겠다고 덤볐던 십 대 시절이 그렇다. 그런데 감상주의에 빠질 것 없이 이것들은 정말 구체적인 부분에서 나를 살렸다. 강의 경험의 경우 작업실 월세를 내기 위해 허우적거리던 시기에 훌륭한 파이프라인이 되어 주었다. 사진가로서의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하는, 부업으로서의 학원일에 단단한 밑바탕이 되기도 한다. 촬영을 진행할 때도 그 때의 경험들은 내성적인 내가 능숙하게 처음 보는 고객을 상대로 아이스브레이킹을 할 수 있게 한다. 소설을 쓰겠다고 덤볐던 기억은 촬영의 이미지를 구상하는 기초체력이 되었고, 지금까지도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버틸 수 있게 하는 근간이 됐다. 정말 취업에 도움이 안 된다고 생각했던 대학교 전공과 부전공은(국문학을 전공하고 사회학을 이중전공했다) 세상을 듣고 말하고 이해하는 데에 핍진성 있는 무게감을 더했고 그건 여전히 내가 뭔가를 그려나가는 데에 있어 핵심이 된다. 트위터 등지에서 바이오에 테슬라를 달고 있는 사람들이 멍청하고 쓸모없는 선택이라고 린치를 했을 것 같은 캐릭터들이긴 하지만. 물론, 뭐 그래. 돈은 별로 안 된 게 맞다. 멍청하긴 하네.

 

그럼 뭐 어때. 추상적인 이야기를 다시 해보자. 저 비틀거림의 기억들은 나를 구성했다. 그게 내 이미지. 나는 확실히 좋은 보행자는 아니다. 동행자로서도 그렇지. 한 때 가깝게 지내다가도, 음, 이상한 이상론을 쫓아가다 너무 멀어진 사람들이 있고, 적으로 돌리게 된 사람도 많다. 하지만 그럼에도 같이 걸었던 사람들이 있다. 그 모든 합류와 이별과 재회와 삽질의 경험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결론적으로, 어쨌든 좀 느리지만 어찌되었든간에 나는 어딘가에 서 있기는 하다. 여기는 나도 처음 서보는 곳. 철저하게 계획해도 알 수가 없는 게 인생사라 나는 내가 언제 어디로 갈지 잘 모른다. 하지만 거기엔 처음 보는 풍경이 있을 것이다. 또 근사하게 살이 붙을 거야. 그리고 이 길을 종종 함께 걸어주었던 사람들과는 더 돈독한 관계가 된다는 것을 안다. 떠날 수는 있겠지만 떠나서도 또 이어지는 게 사람. 아니면 뭐, 마는 거지. 

한참을 이상하게 걸으니 이걸 어찌 써먹을지 대충 감이 잡힌다. 모르면 또 배우겠지. 현실감각 없는 이야기 같지만 현실감각이 없었던 적은 없다. 내가 숨겨놓은 재능이 있다면 어디서든 어떻게 해서든 한 달에 이백만 원은 끌어오는 일. (물론 그 소환술이 멋진 포즈를 가졌을 것이라 장담은 못 한다.) 

 

걸으면 걸을수록 가고자 하는 곳에 가까워진다. 무엇을 찾으려 그렇게 걸어왔는지, 보다 명확해지고 있다. 당분간은 그것들에 대해서 이야기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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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2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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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well6325

    0
    7 months 전

    메일함 정리를 하던 중 세점사이 레터를 발견하고 무척 반가웠습니다! 당분간은 월요일이 덜 싫어지겠네요

    ㄴ 답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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