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점사이 24. 나의 무거운 미신에게

세점사이의 스물네 번째 뉴스레터를 보내드립니다.

2023.10.09 | 조회 16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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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점사이

말줄임표 사이에서 하고 싶었던 말들을 담습니다.

안녕하세요 구독자님! 세점사이의 스물네 번째 레터를 보내드리며 인사드립니다. 아시안 게임과 길고 긴 연휴가 가져오는 도파민도 어느새 끝을 맞이하고 있네요. 저는 스포츠에 큰 관심이 없었는데도 안세영 선수의 단식 결승 경기는 정말 감명깊게 보았던 것 같아요. 이 벅찬 드라마들이 마무리가 된다니 괜스레 서운하기도 합니다. 오늘은 제가 종종 사용하는 중형 필름 카메라에 대한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최근 글들과는 스타일이 조금 다를 수도 있겠네요. 아무튼간에, 바로 글 보여드리겠습니다.


나의 무거운 미신에게

예전에 읽은 어느 책의 저자는 농경이나 자본주의 같은 것들까지도 미신이라 불렀다. 농경의 생산성이 합리의 영역에 근접하게 된 것은 몇백 년도 되지 않은 일이다. 사람들은 수천년간 수렵채집 시절보다 더 많은 노동량과 더 부족한 영양 상태를 가지고 살았다. 자본주의 체제 아래에서 사는 것은 철저히 꿈과 환상에 복무하는 것과 같다. 자신의 노동가치를 기꺼이 어떤 상위의 약속에게 바치는 일. 그의 정의에 의하면 미신이란 독립된 두 사건 사이에 합리적이지 않은 인과를 붙이려는 시도였다. 그런 류의 비합리적이고 거대한 이야기들을 생각하다 보면 일상 속의 가벼운 루틴이나 징크스 같은 것들 몇 개쯤하곤 얼마든지 같이 뒹굴어도 괜찮을 것 같다. 

나라는 사람의 자리를 굳이 정해보자면 미신싫어 사람 테이블 위에 명패가 놓이겠으나, 사실 자잘한 것들에 대해서는 꽤 너그러운 편이다. 당장 나 역시 그런 것들에게서 자유롭지 못하고, 무엇보다 이성과 합리가 나를 추동한다고 자랑스레 말하기에는 나와 함께 살아가는 헛짓거리들이 너무 많다. 그 중에서 가장 그럴싸해 보이는 걸 꼽자면, 준비를 많이 한 촬영에 늘상 중형 필름 카메라를 함께 들고가는 것이 될 것 같다. 중형 필름 카메라란 말 그대로 중형 사이즈의 필름을 사용하는 카메라를 뜻한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떠올리는 필름은 소형 필름이다. 소형 필름은 사진 한 장이 기록되는 면의 길이가 35mm이기 때문에 35mm 필름이라 부른다. (디지털 카메라의 풀 프레임 규격도 이와 동일하다.) 중형 필름의 경우 (다양한 비율이 있지만) 120mm 필름이라고도 불린다. 엄청나게 크다는 이야기다. 

이 넓은 면적 전체에 이미지를 기록하기 위해서, 렌즈는 커져야 하고, 필름을 담는 바디 역시 커져야 한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왕크니까 왕 무겁다. 내가 사용하는 친구는 더 그렇다. 이건 부정할 수 없이 꽤 부담이 된다. 카메라가 온전히 들어가는 가방을 찾기도 힘들 뿐더러, 어찌어찌 가방에 넣더라도 등판에 묵직하게 걸리는 무게는 체력을 금방 동나게 한다. 세 걸음쯤 가면 갖다 버리고 싶다.

그런 고생을 하면서 촬영장까지 가지고 갔을 때 그 고생 만큼의 보람이 있느냐고 누가 묻는다면 솔직히 그렇진 않다고 답해야 하겠다. 모든 것이 수동으로 조작되는 3.7kg의 카메라를 사용한다는 건 많은 것들을 포기한다는 의미이므로. 카메라의 크기와 모델의 편안함은 반비례한다고 했던가. 뷰 파인더 안의 장면은 필연적으로 경직된다. 굳어 있는 모델을 향해 천천히 초점을 옮기고 있다 보면 능숙한 배우에게마저 어색한 공기가 흐르기 시작한다. 게다가 수십년 된 기계장치는 오작동 역시 빈번하고,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할 수 없는 프레임 안의 빛이 어떻게 필름 위에 담겼는지는 겨우 짐작만 가능할 뿐이다. 셔터를 한 번 누를 때마다 3000-5000원이 나간다는 압박감 역시 무시할 수 없다. 그 모든 부담과 그 모든 존재감 속에서 좋은 사진이 나오는 타율은 형편없다. 당연한 일이다.

아주 거대합니다.
아주 거대합니다.
이렇게 끌어안고 사용합니다. 원래는 삼각대 위에 올려놓고 쓰는 거지만...근성으로 해결!
이렇게 끌어안고 사용합니다. 원래는 삼각대 위에 올려놓고 쓰는 거지만...근성으로 해결!

존재감이 없는 장비가 가장 좋은 장비라고 늘 말한다. 단 하나 카메라가 해야 할 일은 셔터를 눌렀을 때, 그냥 그 렌즈 앞의 장면이 담기는 것. 이건 사실 꽤 높은 허들이다. 화질적으로 따로 신경쓸 것이 없어야 하고, 쥐고 있는 것이 불편하지 않아야 하며, 기능은 언제나 신뢰성 있게 동작해야 하고, 튼튼해야 한다. 그러면서도 무겁거나 거추장스럽지 않아야 하겠지. 존재감이 드러나는 순간 카메라는 애써 무시해야 하거나 극복해야 할 존재가 된다. 자연스레 사진에 쏟을 힘은 흩어진다. 카메라를 떠받들게 되어도 문제다. 사진보다 그 장비에 걸맞은 특성을 가지는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 애쓰게 되고, 나의 의도와 나의 생각은 장비에 잡아먹힌다. 이 모든 것을 만족하는 촬영 장비는 생각보다 많지 않고, 한 줌 정도 남은 것들을 나는 좋은 장비라 부른다.

중형 필름 카메라는 거의 모든 점에서 이 조건의 반대에 있다. 하다못해 단단한 쇳덩이면 뭐하나, 비를 맞으면 안 되는데. 온 힘을 다해 존재감을 드러내는 카메라. 결코 원하지 않는 바다. 그럼에도 욕심을 부리고 싶은 촬영이 있는 날이면 나는 그걸 꾸역꾸역 가방에 넣고 가고야 만다. 땅 속으로 가라앉는 기분을 느끼며. 이 고생이 흘러가는 일련의 과정에 구체적인 기대나 합리적 예측이 있지는 않다. 애초에 이걸 산 것도 시덥잖은 이유 때문이었는걸. 온라인 강의 광고에서 민현우 작가가 이 카메라를 쓰는 영상이 나왔다. 그 자세가 참 멋있어 보였고, 사고 싶어서 일 년을 전전긍긍하다가 마음을 다잡고 데려왔다. 그냥 그와 닮고 싶었다. 기어이 그 사진을 프로필로 만들고야 말았다.

 

뭐, 물론 그것도 한두 번이지. 가져온 바가 아예 없었다면 이렇게 한참을 끌어안고 있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주 가끔 나오는 좋은 컷들이 있었다. 그건 내가 살면서 찍었던 사진들 중 가장 맘에 드는 것들이었다. 사실 그것들은 어쩌다 마주친 기적에 가깝다고 해야 할 것이다. 내가 그것들을 정확히 통제해서 찍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아직 나는 일 년 넘게 쓰고 있는 이 커다란 카메라의 조작법조차 정확하게는 알지 못한다. 애초에 우리 엄마랑 동갑이야 이거. 사진을 나름대로 오래 찍었고 장비병 기질로 인해 제법 많은 카메라와 렌즈를 써볼 수 있었다. 결과적으로 나름대로 손에 익는 장비들을 여럿 갖췄다. 카메라와 타협할 필요는 딱히 없게 된 지가 오래다. 그래서 문제다. 거기에는 우연이 끼어들어갈 자리가 없다. 나는 능숙하게 카메라를 휘둘러 내가 아는 것들을 찍는다. 프레임에는 내가 아는 것들이 담긴다. 내가 상상하고 연습한 것들은 디지털 센서에 의도대로 고스란히 저장된다. 준비를 많이 한 촬영에는 그만큼의 것들이 담긴다. 그것들이 좋다.

그리고 나는 내 역량 이상의 무언가에도 욕심이 난다. 온 마음을 다했으므로 우연성의 도움마저 받고 싶어질 때가 있다.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이 한 데 모여 알 수 없는 어딘가로 도약하기를 바랄 때. 그 때 마침내 나는 중형 카메라를 꺼내든다. 평소와는 다른 방식으로 조심스럽게 초점을 맞추고, 모든 것이 구성된 상태에서 카메라를 끌어안은 채 셔터를 누른다. 필름 한 롤에 딱 열 번. 레버를 당기면서도 내가 무엇을 찍었는지는 전혀 알 수 없다. 감광면에 어렴풋이 무엇이 남아있겠거니 하는 짐작만 할 뿐이다. 물론 내가 담은 장면은 높은 확률로 그대로 담겼을 것이다. 하지만 왜인지 나는 온전히 그 장면을 통제하지 못해서, 한 번씩 짐작도 못한 장면을 현상받을 때가 있다. 그리고 대체로 그 장면은 잊지 못할 장면이 된다. 

언젠가는 이 행위에도 익숙해져서 예측 그대로의 장면들을 담을 수 있게 될 때가 올 것이다. 이건 우주에서 온 정복 불가한 장비가 아니니까. 옛날 사람들은 다 이걸로 먹고 살았고 요새도 이걸로 먹고들 산다. 그냥 내가 아직 서투를 뿐이지. 그러나 너무 능숙해진다면 조금 슬플 것도 같다. 

어찌 되었든. 물리적으로 거대한 촬상면이 빛을 받아 만드는 이미지는 섬세하다. 필름 입자 위에 그 모든 섬세가 그려진다는 점에서 더더욱 아름답다. 크리스토퍼 놀란도 대형 아이맥스 카메라를 놓지를 못한다는데, 나 같은 게 이런 유혹을 어찌 뿌리치겠어. 작은 문제가 있다면 어차피 인스타그램에 올리면 아무도 모른다는 것 정도.

비효율에도 불구하고 헛짓거리는 계속된다. 그러므로 이건 명백한 미신이다. 잘 쓰지 못하는 걸 계속 들고 있는다고 해서 어떤 탁월이 찾아올 공산은 없다. 하지만 끝끝내 비집어 내고야 마는 것이다. 어차피 모든 이야기들은 처음에는 미신이었고, 우리는 그 안에서 살고 있으므로 자잘한 서사 하나가 추가되어도 크게 어긋나지는 않을 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나의 무거운 미신을 다시 가방에 집어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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