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NS시대의 (팬) 커뮤니티는 '해시태그'다

0.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 팬덤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진 시대다. 덕분에 팬덤에 대한 이야기도 많이 나누고, 강의나 컨설팅을 진행할 기회도 늘었다. 그때마다 늘 하는 얘기가 있다.

1. 팬덤이란 기본적으로 커뮤니티다. 특정한 관심사를 기반으로 교감하는 사람들이란 얘기다. 그래서 팬덤을 매우 특별하거나 특이한 행태로 이해하면 오해하기 쉽다. 팬덤의 본질은 모임이고, 그 속성은 공동체다.

2. 단지 관심사만 공유한다고 공동체가 되지는 않는다. 공동체에는 특정한 정서, 바로 유대감이 흐른다. 그리고 이 유대감을 지키는 실천 방법으로는 공동체주의를 꼽을 수 있을 것 같다.

3. 사전적 의미로, 공동체주의는 자유주의에 대한 보완제다. 개인의 가치를 절대적인 선으로 여기는 자유주의적 태도을 지양하며 자기 정체성을 공동체라는 기반에서 정의하고 이해한다. 이를 위해서는 개인을 신화화하지 않고, 물적토대를 기반으로 이해하려는 노력이 중요하다. 이런 공동체주의를 기반으로 삼을 때는 관계, 윤리, 배려가 중요해진다.

4. 이런 맥락에서 다시, 공동체란 무엇인가. 내가 정의할 때는 '함께 성장하는 곳'이다. 

5. 팬덤을 커뮤니티로 이해한다면, 이 커뮤니티는 관심이나 취향을 기반으로 하되 그 안에서 공동의 이익 혹은 공동체의 지속가능성을 추구해야 한다. 이것을 공동체의 미션이라고 할 때, 구성원들의 결속력과 교감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함께 성장한다'는 것이 우선 순위에 놓일 수밖에 없다. 팬덤도 마찬가지다. 팬덤은 좋아하는 대상을 기반으로 모였지만, 그 모임의 핵심은 관계를 통한 성장에 있다. 

6. 이러한 '관계'는 두 개의 방향으로 맺어진다. 하나는 대상, 또 하나는 다른 구성원이다. 팬은 자신이 좋아하는 대상과 정서적 관계를 맺으며 성장하고, 또한 다른 팬들과 관계를 맺으며 성장한다. 따라서 기획자에게 주어진 챌린지는 바로 이 성장의 모멘텀을 어떻게 만드느냐는 것이다. 

7. 아젠다 키핑, 혹은 문제의 공유. 논의할 의제 혹은 안건이란 결국 '문제'다. 팬 커뮤니티의 운영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대상/관심사에 대한 정보일 수 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대상(혹은 운영자)이 팬들이 공유하고 있는 문제를 인식하고 있다는 점, 또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아젠다를 세팅한다는 데 있다. 하지만 아젠다 세팅보다 더 중요한 것은 아젠다 키핑이다. 문제를 정의하고, 그것을 유지해나가는 것. 이 과정에서 신뢰와 설득이 이뤄진다. 구성원들은 비로소 공동체의 일원이 되었다고 느낀다.

8. 방탄소년단과 아미의 관계가 그렇다. 아미가 '되는' 사람들은 애초에 그들의 음악이나 뮤직비디오, 혹은 가사의 메시지 등으로 모였으나 점점 질적인 변화를 경험한다. 그들이 말하는 방식, 타인에 대한 태도, 삶의 가치관 등이 질적인 변화를 일으키는 모멘텀이 된다. 그래서 방탄소년단의 팬들은 '나도 아미다'라는 선언으로 그 공동체에 속하게 된다. '선언'이라는 방식이 중요하다. 선언은 자기정체성을 정확히 인식할 때에나 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9. 우리는 커뮤니티/공동체를 특정한 공간이나 장소로 이해하곤 한다. 그래서 현실 세계에서는 물리적 공간(모임장소, 누군가의 집 등)이 필요하고, 가상공간에서도 게시판이나 홈페이지, 카페 같은 장소가 필요하다. 커뮤니티는 울타리가 쳐진 곳이다. 

10. 하지만 SNS 시대에 커뮤니티는 특정한 공간이나 장소에 국한되지 않는다. 울타리보다는 '연결된 상태'가 중요하다. 특정 URL에 접속하는 것(이동)이 아니라 내 계정에 접속한 그 상태(고정)에서 연결된다. 그걸 이어주는 것이 바로 해시태그다. SNS 시대의 커뮤니티는 도메인(www)이 아니라 해시태그(#)로 수렴된다고 할 수 있다. 

11. 해시태그가 커뮤니티의 속성을 반영한다면 문제는 키워드다. 공동의 문제가 반영된 키워드를 찾아내는 일, 그리고 그것을 선점하는 것이 SNS 시대 커뮤니티 전략의 핵심이 될 수 있다. 

12. 그러므로 팬은 만드는 것이 아니라 찾는 쪽에 가깝다. 사용자는 먼저 움직이지 않는다. 우리를 찾아오지도 않는다. 인스타그램, 트위터, 틱톡 뿐 아니라 블로그와 웹사이트 등 모든 네트워크 상에 흩어져 있다. 이러한 팬, 요컨대 어디에 있는지도 모를 동료를 찾기 위해 거듭해서 신호를 보내는 일. 나는 종종 이거야말로 '콘텐츠 비즈니스'의 본질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한다. 

13. 다시, 공동체주의. 공동체의 결속력은 문제의 재정의, 아젠다 키핑이다. 해시태그와 SNS로 대변되는 '분산된 공동체'를 연결하는 것이 바로 의제다. 방탄소년단이 아미를 호출한 것은 '정체성'이었다. 'Love Yourself'라는 메시지는 'Find Your Name'이라는 아젠다로 세팅되었고, 자신이 누군지 헤매던 사람들이 스스로를 'ARMY'로 재정의하게 도왔다. 그래서 지금, 누군가의 팬이 된다는 것은 일종의 선언이다. 나는 당신을 따르기로 결심했다. 나는 당신의 생각에 동의한다. 나는 당신과 같은 편에 있다. 혹은 당신은 나의 편에 서 있다.

14. 느슨한 연결. 공동체주의는 애초에 느슨하게 연결된 상태의 윤리다. 그 관계가 완고해지면 전체주의, 파편적으로 방치되면 자유주의가 된다. 그래서 만약, 강력한 팬 커뮤니티를 원한다면 자유로운 개인들의 결합을 어떻게 유지할 것인지, 그 과정에서 키워드를 어떻게 찾아내고, 또 어떤 개념을 선점하고, 공동체주의의 윤리를 복원할 방법을 고안할 필요가 있다. 기껏 팬덤 혹은 커뮤니티에 이렇게까지 해야할까, 의문이겠지만 적어도 이러한 문제의식은 '강력하게 지속가능한 팬/커뮤니티'의 조건 중 하나일 것이다. 이러한 정서적 링크야말로 느슨한 구조를 지탱하는 접착제다. 

15. 그리고 이 모든 일은 스마트폰의 등장으로 인한 결과다. 세계 인구의 67%가 스마트폰을 사용한다. 개인 미디어의 시대다. 덕분에 우리는 확실히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세계로 넘어가고 있다. 혹은 넘어갔다. 알다시피, 미지의 세계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에게 필요한 건 약간의 상상력과 용기다.

그러므로 관점을 바꾸거나, 바꾸는 것을 훈련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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