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한 명의 팬이 중요하다

수년 전부터 엔터테인먼트 업계에서는 팬덤의 중요성이 강조되었다. 특히 음악에서의 팬덤 영향력은 이미 30년 전부터 검증된 사안이었다. 음반 산업이 몰락해가던 1990년대 말과 2000년 초반, 아이돌 음반은 100만장을 판매하며 팬덤을 주목했다. 그리고 2017년 이후 새삼 아이돌 팬덤은 더 넓은 영역에서 주목받기 시작했다. 지하철 광고 덕분이다.

2010년 무렵부터 팬클럽을 통해 간헐적으로 이뤄지던 지하철 아이돌 광고는 2016년, 엠넷(Mnet)의 <프로듀스 101>을 기점으로 대폭 늘어났다. 시청자 투표로 선발하는 프로그램 포맷 덕분에 팬들이 투표를 독려하고 자신의 ‘최애’의 얼굴을 알리기 위한 광고를 경쟁적으로 집행한 것이다. 

마케팅의 관점에서 이런 아이돌 팬 문화는 브랜드를 만드는데 강한 영감을 줬다. 새로운 서비스, 새로운 제품이 더욱 치열하게 경쟁하는 개인화 시대에는 특히 그랬고, 이제는 사회 전반으로 확장되고 있는 것 같다. 

팬덤: 시간의 비즈니스

배달의민족도 팬클럽이 있다. ‘배짱이(배달의민족을 짱 좋아하는 모임)’라는 팬클럽은 2016년 약 100명으로 시작된 모임이다. 아이돌 팬클럽처럼 기수별로 운영된다. 관련 퀴즈를 온라인으로 풀어야 가입할 수 있다. 지난 기수에는 400명 모집에 약 20만명(중복 응시 가능)이 지원해 경쟁률이 500대 1에 달했다. 지금은 뉴스레터를 통해 매주 배달의민족 비하인드 스토리와 푸드 에세이 등을 보내고 있다.

오뚜기는 2019년부터 ‘오뚜기해적선’이라는 계정을 팬덤 영업에 활용한다. 누구나 접속 가능한 계정이 아니라 특정 회원만 가입할 수 있는 비밀 계정이다. 팬들은 ‘갓뚜기’로 부르며 오뚜기의 비밀 공간에서 교류한다. 오직 8888명만이 가입할 수 있는데도 팬들은 가입 신청을 하고 빈 자리가 날 때까지 기다린다. 오뚜기는 2021년 사상 최대 매출을 올리며 연속 ‘2조 클럽’을 달성했다. 브랜드가 직접 운영하지는 않지만 <LG 마케팅 대신해 드립니다> 계정은 품질에 비해 마케팅이 부족한 LG전자를 대신해 소비자가 직접 마케팅 포인트를 만들어 유명해졌다. 

오뚜기나 LG전자는 자의가 아니라 타의에 의해 좋은 브랜드 이미지를 구축한 사례기도 하다. 두 기업 모두 회사와 관련 없는 일반인들이 홍보대사를 자처한 것이다. 소비자들이 브랜드에 친근함을 느끼는 것을 넘어 인격화하거나 도움을 주고 싶어하는 일이 벌어지는 것이다. 기업 입장에서 이런 사례는 비즈니스의 지속성과 확장성에 있어 놀라운 일이다. 덕분에 브랜드의 팬덤, 팬덤 기반의 비즈니스 같은 주제가 화제가 되었다. 

하지만 누구나 갖고 싶다고 해서 아무나 가질 수는 없다. 팬덤 마케팅은 자본을 쏟는다고 가능한 영역이 아니다. 여기에는 시간과 애정이 필요하다.  

할리 데이비슨은 1983년에 ‘호그(H.O.G.)’라는 글로벌 팬클럽을 갖고 있다. 이 팬클럽은 할리 데이비슨의 경영 위기 덕분에 생겼다.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할리 데이비슨은 1970년대를 지나면서 경영상 위기를 맞이한다. 모터 바이크의 트렌드가 속도와 기능을 중시하는 쪽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이 경영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할리 데이비슨도 트렌드를 쫓았지만 신모델은 모두 실패했다.

이때 할리 데이비슨은 팬덤에 주목했다. 할리 데이비슨은 관리하기 까다로운 모터 바이크로 악명이 높았는데, 오히려 팬들은 바로 그 점을 사랑했다. 애지중지 다뤄야 하는 바이크에 애칭을 붙이고 자비를 들여 오랜 시간 커스터마이징하는 문화가 생긴 것이다. 할리 데이비슨은 시대의 변화를 따르는 대신 이 소수의 팬덤에 집중했다. 할리 데이비슨이 레거시의 대표 브랜드가 된 데에는 이런 시행착오가 있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아이돌이든 브랜드든 팬덤은 자발적으로 탄생한다는 것이다. 최근의 브랜드나 연예인들이 비즈니스 관점으로 팬덤에 관심을 기울이지만, 정작 팬덤은 우연히 생긴다. ‘마음’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누구든 이 마음을 해치는 행동이나 발언을 할 때 팬덤은 위기를 맞이하고, 그 위기는 역풍으로 돌아온다. 그래서 팬덤 비즈니스는 사실상 기획하거나 조직하기 거의 불가능한 영역이다. 오직 계기를 만들고,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나이키 코리아는 2021년, <우리의 힘을 믿어>라는 광고 캠페인을 시작했다. 대표 모델은 쇼트트랙 국가대표 출신인 심석희 선수다. 2020년에 그는 오랜 시간 함께 한 코치의 지속적인 성폭행 사실을 폭로하며 사회적 관심을 받았고, 그의 용기는 ‘미투’ 운동을 스포츠계 전체로 전이시켰다. 나이키의 광고 캠페인에서 심석희는 활짝 웃고 있다. “스포츠는 힘든 상황에서도 새로운 희망을 꿈꾸게 한다”는 메시지다. 나이키는 2018년, 미국 내 인종차별 반대 운동에 앞장 선 미국프로풋볼(NFL) 선수 콜린 캐퍼닉을 대표 모델로 세우기도 했다.

그런데 이런 혁신적인 캠페인이 브랜드 가치에 도움만 줬을까? 당시 기득권을 중심으로 나이키 불매운동이 대규모로 진행되었고, 주가도 큰 폭으로 하락했다. 그러나 나이키는 멈추지 않았다. 

단 한 명의 팬이 중요하다

팬덤 비즈니스의 핵심은 바로 여기에 있다. 팬을 원하는 것에 그치지 말고 어떤 팬을 원하는지 찾아서 집중해야 한다. 사실은 오랫동안 존재했던 팬덤 비즈니스가 새삼스럽게 지금 주목받는 이유는 바로 매스 미디어 시대가 끝났기 때문이다. 매스미디어와 대중이라는 개념은 19세기 산업혁명의 산물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매스미디어의 영향력이 감소되는 시대다. 대신 개인 미디어가 급부상하고 있다. 로컬이 중요해지고, 경험이 소중해지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제는 누구나 알고 있는 것,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은 관심을 끌기 어렵다. 다시 말해 대중의 시대가 끝나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역설적으로 단 한 명의 팬 혹은 고객이 중요해진다. 나에게 열광하는 단 한 명의 팬, 우리 브랜드에 집중하는 단 한 명의 고객이 비즈니스를 성사시키는 열쇠가 된다. 우리가 앞으로 만나게 될 시장은 매스 미디어가 소멸한 시장이다. 이 시장의 핵심 개념은 개인(화)이다. 개인에게는 네트워크와 바이럴이 영향을 준다. 이런 구조에서 메시지보다 경험이, 이미지보다 본질이 더 큰 가치를 가진다. 

따라서 ‘팬덤 경제’는 사후적인 것이 아니다. 오히려 처음부터 함께 고려되고 고민되어야 하는 문제다. 공감할 수 있는 스토리를 발굴하고, 그것을 정확하게 전달해야 한다. 임영웅의 메인스트림 돌파는 <미스터 트롯>이라는 프로그램을 계기로 발굴되고 확산된 결과다. 오뚜기의 가치는 오랜 시간 꾸준하게 기업 문화를 중시해 온 역사 속에서 재발견되었다. 이 이야기가 움직이는 마음이야말로 팬덤의 핵심이다. 

이때 마케팅과 브랜딩이 더욱 중요해지는 현상을 다시 고민해보게 되고, 그러다보면 이런 질문을 하게 된다. ‘앞으로의 마케팅과 브랜딩은 그럴 듯한 장식품이 아니라 본질적인 부분과 밀착되어야 하지 않을까?’ 나는 지금이야말로 이 질문을 더 깊이 파고들 때라고 본다. 엔터테인먼트 뿐 아니라 패션, 라이프스타일, 심지어 사회와 정치 영역에서도 마찬가지다. 

__________
🎯유료 멤버십 [뉴타입컬처클럽] 둘러보기

매달, 온라인 세션(w/게스트) & 오프라인 소모임 | 전용 단톡방 & 전용 자료실 | 500개 이상의 모든 뉴스레터 콘텐츠 이용 | 월 구독료 1만5천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