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레터#60 |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요? / 차우진

입추가 지나고 말복도 지나자 거짓말처럼 공기가 달라졌어요. 구독자님, 이렇게 계절이 바뀌는 때가 오면 막연하지만 명확하게 내가 거대한 생태계 안에 있다는 걸 새삼 깨닫게 되는 것 같습니다. 

오늘은 밤레터 시즌5의 마지막 날이에요. 구독자님과 함께 폭염의 도시를 가로질러 여기까지 온 것 같은 기분이네요. 요즘 어떤가요? 밥은 잘 먹고 다니는 거죠?

첫 곡으로 희수의 음악을 골랐습니다. 희수의 네 번째 싱글인 "Honey Eyes"는 한국의 전통악기 소리 위에 자신이 가장 좋아한다는 두 장르, 하우스와 일렉트로 팝을 융합한 곡이래요. 사랑하는 사람을 열렬히 바라볼 때 그 눈빛에 매료된 감정을 표현한 제목이라고도 하고요. 가야금은 한국인이라는 정체성, 하우스는 그가 가장 좋아하는 장르인데 이 둘을 붙임으로서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살아가는 자신의 모습을 담고 있어요. 오늘은 온스테이지 버전으로 소개드립니다.

전 지금 어디로 가는 걸까요? / 차우진

이번 시즌 밤레터를 쓰는 동안 무척 바빴습니다. 예전에도 바빴어요. 그런데 달라진 게 있다면 전에 비해 내가 콘트롤할 수 있는 영역이 저 넓어졌다는 점, 그리고 막연하게 의도했던 무언가가 실제로 벌어지고 있다는 감각이에요. 네 그래서 솔직히 나쁘진 않습니다.

하지만 뭔가에 휩쓸린다는 기분은 지울 수가 없네요. 그래서 다시, 묻곤 합니다. 내가 진짜로 하려던 게 뭐였더라, 내가 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들이 뭐였더라 등등. 

앞서 들으신 희수의 음악은 자기 정체성을 기꺼이 끌어안는 과정이라고 생각했어요. 자신이 서 있는 자리에서 자신을 구성하는 것들을 드러내고, 나로부터 나온 그것들을 다시 재조립하는 과정이랄까요. 

사실 본인은 얼마나 난감했을까요. 이쪽과 저쪽을 오간다는 것은, 이쪽에도 저쪽에도 속하지 못한 채 부유한다는 것과 같으니까요. 그러니까 문제는 소속감이고 안정감일 겁니다. 내가 지금 어디로 가고 있나요, 라는 질문은 명백히 나는 지금 어디에 있나요, 와 같은 뜻입니다.

그런데 자기 자신을 정의하는 과정은 곧 자기 자신으로부터 찾을 수밖에 없을 거에요. 저는 그걸 계속 밖에서 찾으려고 애썼던 때가 있어요. 내가 하는 일이, 내가 만나는 사람들이, 내가 다니는 회사가, 나의 직업이, 내가 사는 동네가 나를 설명해주고 마침내 내게 안정감과 소속감을 줄 거라고요.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발을 땅에 딛은 감각, 내가 누구인지 어디에서 왔는지 이해하는 일들은 모두 나로부터 발견할 수 밖에 없으니까요. 이걸 '재발견'이라고 부릅시다. 없던 걸 만들어내는 게 아니라 있던 걸 찾아낸 것이니까요. 그래서 재발견은 다시 태어나는 것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구독자님, 저는 어디로 가고 있을까요. 휩쓸리는 것 같은 이 기분은 대체 무엇 때문입니까. 

혼잣말을 중얼거려보지만, 네 알아요. 말이 되기 전의 무의식, 몸이 기억하는 감각을 되짚어보는 것이 필요할 겁니다. 질문에 잡아먹히지 않고, 막연하지만 분명하다는 이 모순적인 감각을 소중하게 여기면서 앞으로 갑니다. 휩쓸리는 지금, 다소 막막한 기분 모두 마침내 우리를 좋은 쪽으로 인도하게 될 겁니다. 

마지막 곡은 그레이의 "베이비 돈 크라이"입니다. 염따와 함께 불렀고요. 이 노래 가사가 너무 희망적이라서 조금 놀랐어요. '다 괜찮아질 거야 / Eveything's gonna be alright / Baby don't cry / You gotta keep ya head up yeah'라니... 뻔한데 위로가 되는 그렇고 그런 노래인데 뭐야 나 그레이 좋아했네... 

오늘의 인사를 드리기 전에 공지사항이 있어요.

밤레터는 오늘의 시즌5 마지막 레터를 기점으로 당분간 휴식을 가지게 됩니다. 매주 수요일 밤 9시에 밤레터를 보낸 지 거의 1년 반이 지났어요. 그동안 티는 안 냈지만 많은 분들에게서 위로를, 도움을, 격려와 응원을 받았다는 인사를 들었습니다. 모두 기억하고 있어요. 늘 고마워하고 있어요. 덕분에 저도 매우 행복했습니다.  

수요일 밤 9시의 밤레터 대신 랜덤으로 책, 음악, 영상을 소개하는 시간을 가져보려고 합니다. 네, 언제나처럼 2주간의 휴가를 가진 뒤에 말이죠.

그동안 좀 숨을 고르면서 '막연하지만 분명한' 감각에 집중해보겠습니다. 그리고 구독자님도 그런 시간을 보내길 바랍니다.

언제나 응원하고 있어요. 생각 많고 고독한 밤, 차우진이었습니다. 

📻밤레터의 미드나잇 선곡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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