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델마와 루이스”, “내일을 향해 쏴라”의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영화에는 수많은 장면들(Scene)이 있지만 마지막 장면(Last Scene)이 주는 의미와 중요성은 여러 번 말해도 지나치지 않을 겁니다. 전형적인 예전 영화들과는 달리 별다른 결말 없이 끝나는 영화들도 많아졌지만 그래도 상업 영화에서 마지막 장면은 아직도 그 영화를 평가하는 가장 쉬우면서도 중요한 잣대로 사용됩니다.
The Last Scenes
위의 그림은 영화 “델마와 루이스”의 마지막 장면입니다. 평범한 두 여자인 델마와 루이스는 운명의 장난처럼 범죄자가 되어 경찰들에게 쫓기게 됩니다. 마지막 장면에서 둘은 자동차를 타고 낭떠러지를 아래로 두고 하늘로 비상합니다. 영원히 그 둘은 바닥으로 떨어지지 않은 채 정지된 장면으로 남아있습니다.
“리들리 스콧”감독의 명작으로 여성 버디 무비(각주 1)의 클래식으로 추앙받고 있는 작품이죠. 영화가 개봉하고 엄청난 주목을 받았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솔직히 저는 그렇게 까지 찬사를 받을 만 한지는 모르겠습니다. 수작임에는 틀림없지만요. 그래도 그 당시 그림 속의 Last Scene 만큼은 저에게도 꽤 인상 깊은 충격을 주었습니다.
영화 “델마와 루이스”는 거장 감독의 연출뿐만 아니라 “수잔 서랜든”, “지나 데이비스”라는 당대 최고의 여성 배우들과 무명시절의 “브래드 피트”의 희귀한 모습도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저에게 스톱 모션 Last Scene의 원탑은 단연 이 영화 “내일을 향해 쏴라 (Butch Cassidy And The Sundance Kid)”입니다. 어릴 때 TV에서 처음 봤던 이 영화는 어린아이의 눈에도 기존의 서부 영화들과는 뭔가 다른 느낌을 주었던 것 같습니다. TV에서 이 영화를 재방영할 때마다 매번 설레며 봤었거든요. 특히 마지막 주인공들의 정지된 장면은 아직까지도 그 여운을 생생한 기억으로 남게 해 주죠.
모든 것이 닮아있는 영화 “델마와 루이스”와 “내일을 향해 쏴라”. 사람들의 객관적인 평가는 아마 “델마와 루이스”의 손을 들어줄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내일을 향해 쏴라”를 최고라고 밖에 말할 수 없습니다. 그 이유 중 가장 큰 부분은 낭만을 느끼게 해 준다는 것입니다. “내일을 향해 쏴라”가 기존 서부영화들과 다르게 느껴지는 그 무엇이 아마도 “낭만”이라는 감정일 겁니다.
이 영화의 유명한 장면이 마지막 장면 하나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영화 주제곡들 중 최고로 손꼽히는 “Rain Drops Keep Falling on My Head”가 흘러나오는 장면 또한 잊을 수 없죠. 남자 주인공과 여자 주인공이 자전거를 타는 한가로운 모습일 뿐인데, 그 장면에서 느꼈던 엄청난 감정이 무엇인지 예전에는 잘 몰랐습니다. 지금 말로 표현할 수 있는 단어는 “낭만”이란 단어가 가장 적합할 것 같습니다. 자전거를 타는 한 장면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내일을 향해 쏴라”라는 영화 전체를 아우르는 그것이 바로 “낭만”인 것이죠.
그 낭만적인 영화의 마지막 장면으로 가장 잘 어울리는 방식은 무엇이었을 까요? 네. 주인공들이 비극으로 치닫기 전에 스톱 모션으로 박제하는 겁니다. 저는 아직도 그 미워할 수 없는 두 도둑이 살아있을 것만 같습니다. 그들이 죽었다는 것은 너무도 명확하죠. 그렇지만 시간이 정지된 마지막 장면은 우리에게 낭만을 간직한 채 영화 밖으로 나가게 해 줍니다.
낭만이 사라진 시대, 낭만이 사라진 영화들.. 낭만이 무엇인지도 가물가물합니다. "내일을 향해 쏴라", "델마와 루이스"란 영화는 스톱 모션으로 끝나는 세련되지 못한 진부한 Last Scene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캐릭터들이 살아남기를 바라는 관객들의 바람을 아주 낭만적으로 충족시켜 줍니다. 머리는 그들의 죽음을 인지하지만 가슴은 영원히 그들의 정지된 모습을 간직할 겁니다. 어떻게 보면 영화란 낭만 그 자체가 아닐까요? 그 시절 영화들이 자꾸 생각나는 이유입니다.
각주 1 버디 무비 buddy movie란 주로 동성인 사람 두 명이 패를 이루어서 일어나는 일을 담은 영화 장르를 말한다. 명칭은 친구라는 뜻의 영어 단어 버디 buddy에서 온 것이다.
의견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