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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병 편지

2024년 1월 28일 tris

오밤중의 갬성편지

2025.01.29 | 조회 4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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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세일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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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키퍼 매뉴얼

바다, 항해, 세일링 요트 이야기

어쩌다 보니 오늘은 소식을 세 번이나 전하게 되네요! 이 글을 쓰는 지금 저는 북위 29도 26분, 서경 115도 35분에서 사방을 밝게 비추는 달과, 그 달빛이 떨어뜨린 빛가루가 반짝이는 까만 바다와, 종종 그 빛가루를 쓸어가며 육지 쪽으로 달리는, 못해도 주기 100미터는 돼 보이는 길고 부드러운 태평양 스웰, 그리고 핸드폰의 플레이리스트가 들려주는 음악과 함께 항해하고 있습니다.

선주는 아래 내려가 자고 있고, 저는 콕핏에서 야간 당번을 서는 중입니다. 너댓시 방향에서 불어오는 뒷바람에 제노아 하나만 펴고 항해를 하고 있습니다. 배는 딱 좋은 5노트 속도가 나는군요. 여기까지 내려오는 내내 대부분 뒷바람을 받으며 왔음에도 불구하고, 뒷바람 항해가 얼마나 편한 것인지 이제서야 처음으로 체감합니다. 이렇게 달빛과 함께 항해한 것도 처음인가 봅니다. 그동안은 달이 없을 때 항해하거나, 그보다 자주, 짙은 안개나 구름에 하늘이 덮인 완전한 암흑 속에서 항해하곤 했습니다. 보이는 빛이라고는 뱃머리 빨간색 초록색 항해등 밖에 없던 밤들이여...!

사실 오늘밤 산 제로니모 섬에서 닻 내리고 보내는 게 원래 계획이었습니다. 고작 35마일밖에 되지 않기 때문에, 아침 일찍 닻을 올리면 해 지기 전에 도착하는 데에 문제가 없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순살만 세일은 항해 시간이 짧을 경우 과도한 불확실성을 초래하는 문제가 있더군요. 게다가 오늘은 스테이세일을 이런 저런 방법으로 써 보는 실험을 하느라 시간이 더 늦어졌습니다. 제로니모 섬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을 땐 이미 노란색 저녁 햇볕이 옆에서 길게 비추고 있었죠.

문제가 있었습니다. 예상 도착시간보다 시간이 많이 늦어져 그런지, 섬 주위의 수심이 너무 낮아져 있었습니다. 섬을 빙 둘러 수심 경고가 뜨더군요. 종종 이 전자해도에 잘못된 수심 정보가 있고, 때로 이유 없이 먼 루트를 추천하는 오류를 떠올리며 이리 저리 루트를 수동으로 변경해 보았으나, 섬 주위 360도 저수심 경고가 없는 곳이 없었습니다. 아득하게 저녁 햇볕을 받는 섬은 눈 앞에 있는데 정말로 닻을 내릴 수 없는 걸까 싶긴 했지만, 그냥 지나가기로 결정했습니다. 처음 가 보는, 바다 한 가운데 외딴 섬에 아슬아슬한 시간에 가서 조바심을 안고 어둠 속에 닻을 내리는 모험을 하느니 계속해서 항해하는 편이 더 안전할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산 제로니모 섬을 지나쳐, 그냥 항해를 계속하기로 했습니다.

이제 75해리 정도 남았습니다. 지금 추세라면, 날 밝은 뒤 내일 하루 종일 세일링을 하고도 한 번 더 밤을 맞이해야할 듯 하네요. 상상만 하던 2박 3일 연속 항해를 이렇게 얼떨결에 하게 되겠군요. 호라이즌스 호에서 야간 항해 최장 기록입니다. 하지만 이런 이지 세일링이라면 거뜬할 것 같습니다.

오늘 바다도 잔잔하고 달빛이 너무 아름다워 사진 한 장 보냅니다. 밴쿠버 출항 이후, 이번 항해 통틀어서 가장 아름다운 순간이 아닌가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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