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밤 쉬어 갈 산퀸틴San Quintin 만에 도착했습니다. 광활하고 아무것도 없는 모래 만에 바람만 휭휭 부는 곳입니다. 거북이만 이전에 있는 만들은 죄다 흔들림이 심하고 바람을 막아주지 못하니 별 기대는 말라더군요. 조반니와 희진이 항해하는 레이디호크 호는 우리와 같은 루트를 내려가되 딱 한발 앞서 항해를 하고 있는데, 마치 선발대처럼 정보를 주고 있어 든든합니다.
북미에서는 수백마일을 한 번에 건너뛰며 오프쇼어 세일링을 주로 하던 레이디호크 호는, 엔세나다 이후로는 들어갈 수 있는 만이란 만에 죄다 닻을 내리며 천천히 내려갈 계획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포트브랙에서 출항했을 때처럼 함께 항해하는 느낌입니다. 가까이서 함께 항해하는 아는 배가 있다는 사실 만으로도 얼마나 좋은지요. 게다가 이렇게 바로 앞 기항지 정보까지..
순살만 세일의 현자타임 이후 다시 바람이 죽은 뒤에도 꿋꿋이 순살만 항해를 유지했습니다. 이번엔 좀더 편안해진 마음으로요. 산퀸틴 만에 가까워지자 하나 둘 보이기 시작하던 게 통발 지뢰들이 곧 지뢰밭이 되어 어쩔 수 없이 엔진을 다시 켜긴 했습니다. 그리고, 늘 그렇듯이, 세일을 접으니 그 때부터 바람이 불기 시작하더군요. 간절히 기다릴 땐 없던 바람이 급격하게 강해지더니 닻내림 포인트에 접근할 때 쯤은 좀 버거울 만한 바람으로 발전했습니다. 그 와중에 프로펠러에 해초가 걸리면서 엔진 소리가 이상해져 대경실색하기도 했구요. 깨우침은 얻었어도 트라우마는 아직 극복이 안 됐나 봅니다.
출항과 첫 구간 무사 항해, 오늘 축하해야 할 (술 마실) 핑계는 줄줄이 쏘세지지만, 내일 날 밝자마자 닻을 올려야 하므로 좀 미룹니다. 다음 목적지 쎄드로Cedros 섬까지 남은 거리는 150여 마일입니다. 여기서 35마일 남쪽에 위치한 제로니모San Jeronimo 섬까지는 해안 가까이 5-10마일 거리를 유지하며 항해할 계획입니다. 필요하면 배가 쉴 수 있는 피항지도 몇 있죠.
그러나 제로니모 섬을 지나면서부터는 상황이 달라집니다. 우리는 계속 남쪽으로 향하지만, 바하 캘리포니아의 해안선은 점점 동쪽으로 휘어들어갑니다. 이런 지형 때문에 남하할수록 육지와의 거리는 더 벌어져서, 쎄드로스 섬 근처에 이르면 해안선이 50마일 동쪽으로 후퇴합니다. 별수 없이 오프쇼어 항해가 되는거죠.
망망대해 한 가운데 배가 쉴 곳이 없으므로, 이 쉼 없는 항해 구간을 줄이기 위해 내일은 데이세일링만 하고, 육지와 멀어지기 전에 제로니모 섬에서 마지막 닻을 내릴 예정입니다. 해안선에서 멀지 않다고는 하지만 워낙 외딴 섬이라 사람도 별로 살지 않는 것 같고, 정보도 별로 없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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