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소리반사가 우리를 지키고, 또 파괴시킨다

2023.07.05 | 조회 17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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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어렸을 때, 소위 문화의 최전선에 있다고 믿었던 그때. 같은 또래의 친구들은 CDP와 이어폰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며 점심시간을 꼬박 보내기도 했다. 

  “들어봐, 이번에 새로 나온 이어폰인데 오픈형인데다가 해상도가 엄청나. 그 왜 저번에 들었던 그 밴드 음악 있잖아. 거기에 키보드가 하나 더 사용된 걸 이 이어폰을 듣고 나서 처음 알았다니까.” 

 대강 이런 말을 하며 이어폰을 바꿔 뀌었고 즐기고 감탄했던 것 같다. 그 이어폰의 가격은 당시 벌크 제품이 23,000원 정도 했던 것 같다. 우리는 겨우 23,000원 짜리 이어폰을 가지고 해상력을 논하고 들리지 않던 악기가 들린다며 호들갑을 떨었던 것이다. 만약 그런 일이 가능했다면 그것은 이어폰의 성능 때문이 아닌, 앨범 자켓에의 곡 소개에서 악기 구성을 읽었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사 본 제일 비싼 음향 기기는 아마도 40만원 짜리 헤드폰이아니었나 싶다. 나에게는 엄청난 고가의 물건이었지만 사실 그조차 음향기기의 세계에서는 빈자들의 아이템이라 불릴 정도였던 기억이 있다. 물론 그 헤드폰은 23,000원짜리 이어폰에 비한다면 정말이지 해상력을 비롯한 모든 것이 뛰어났다. 귀가 덜 퇴화했던 그 시절에 들었다면 정마 안들리던 악기를 캐치해냈을 지도 모른다. 

 이런 음향기기들을 보면 결국, 귀라는 기관에 최대한 가까이 다가가려 하는구나, 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사실 사람의 귐나큼 소형화가 잘되어 있고 성능좋은 해상력을 자랑하는 음향기기는 없을 것이다. 아무리 덩치가 큰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귀가 헤드폰 만큼 큰 사람은 없으며, 귀의 기능을 담당하는 기관들도 어이가없을 정도로 작다. 우리가 자주 들어본 달팽이관은 달팽이보다 작은 해바라기씨 크기 정도이고, 다른 기관도 마찬가지로 작다. 

 그런 작은 기관이 하는 일은  실로 대단한 편인데, 소리를 듣는 것에만 그치지 않는다. 귀는 그 소리가 어느 방향에서 왔는지 입체적으로 파악한다. 그래서 누군가 뒤나 옆에서 우리를 부르면 고개를 돌리게 되는 것이다. 이같은 능력이 발달한 이유는 진화의 과정과 연결해볼 수 있는데, 천성적으로 몸이 약했던 우리의 조상들은 누가봐도 훌륭한 먹잇감이었다. 그랬기에 어디서 위협의 소리가 들리는지 예민하게 귀를 세울 필요가 있었고, 소리의 입체감을 파악하는 능력이 성장한 것이다. 물론 동물 중에는 인간보다 훨씬 더 먼 곳의 소리를 훨씬 더 정확하게 포착하는 이들도 있다. 모르긴 몰라도 생물들의 청각 순위를 매기면 인간은 그리 높은 순위는 아닐것이다. 상위의 청각 소유자들은 우리 인간을 보며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23,000원짜리 이어폰 수준이야.”

 하지만 실망할 필요는 없다. 인간의 귀는 잘 듣는 것 외의 특별한 기능이 탑재되어 있으니까 말이다. 예를 들면 ‘소리 반사’라는 기능을 메뉴얼을 펴고 살펴보자. 이 기능은 주변에서 너무 큰 소리가 들릴 때, 자동으로 발현된다. 우리의 귀는 너무 큰 소리가 들리면 근육이 등자뼈를 달팽이관에서 떼어놓음으로써 문제의 소지를 끊어버린다. 우리를 보호하기 위한 기능으로, 자동차로 치면 자동 브레이크 정도로 생각하면  좋을 것이다.

 콘텐츠를 만들다보면 우리는 우리 스스로를 지켜야 할 때가 있다. 너무 큰 소리에서 귀가 스스로 소리를 반사하는 것처럼. 문제는 대부분의 경우, 너무 큰 소리가 날때가 아닌, 듣기 싫은 소리가 들릴 때 소리 반사 기능이 발현된다는 점이다. 

 <책 읽는 라디오>를 만들던 초기. 무플보단 악플이라는 말이 우리 사이에 주문처럼 돌았다. 누구도 댓글이나 감상평을 남겨주지 않을 때, 콘텐츠 제작자들은 이런 주문을 외곤한다. 하지만 막상 악플이 달리면 소리 반사 기능이 발현되어 악플을 무시하게 된다. 그렇게 흘러간 악플 중에서 돌이켜보면 우리에게 도움이 될만한 의견도 상당 수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그것을 듣고 싶어하지 않았다. 머리가 큰 일곱살 짜리 어린 아이처럼 우리는 쉽게 고개를 내저었고, 자주 양손으로 귀를 막았다. 어쩌면 그것을 우리의 색깔과 철학을 지키는 방법이라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문제는 이렇게 소리 반사를 하다보니 그것이 관성이 되었다는 점이다. 딱히 악플이 아닌데도 무언가를 요구하는 의견에 “왜 그런 걸 요구하지?”라며 의도적 무시를 했다. 이것은 그렇게 자주 했던 회의 시간에도 발현이 되었는데  서로의 의견에 귀를 닫는 빈도도 점점 늘어났다. 우리 스스로가 그 사실을 깨닫지 못한 것은 아니었다. 다만 이때쯤엔 <책 읽는 라디오>와 우리 모두가 목을 가눌 줄 알고, 두 다리로 설 수 있었으며, 취향이 생기기 시작했다. 몸의 성장과 근육의 발달은 가고자 하는 방향에 방해되는 물건을 스스로 치워버릴 수 있게 해주었다. 누군가의 도움 없이 말이다. 엄마에게 부탁하지 않아도 스스로 현관문을 열 수 있는 조건의 몸을 갖추었을 때, 아이는 엄청난 자유를 느낀다. 그리고 그 자유의 의지는 곧잘 반항심으로 연결된다. 이때가 되면 소리반사 능력은 극대화되어 아예 닫힌채 살아가는 이들도 있고, 반항을 위해 일부로 기능을 꺼버리는 이들도 있다. 이런 화가나는 과정을 설명하기 위해 인간은 ‘사춘기’라는 단어를 만들었다. 

 ‘봄을 생각하는 시기’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입만 벙긋 거리던 <책 읽는 라디오>에 그런 시기가 찾아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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