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우리의 몸은 고작 100달러면 만들 수 있다

2023.06.28 | 조회 17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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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국에 왕립화학협회라는 곳이 있다. 왠지 어마어마한 연구를 할 것 같은 이곳에서 2013년에 시도한 연구는 베네딕트 컴버배치를 만드는 비용을 계산한 것이었다. 바꿔 말하면 일반적인(베네딕트 컴버배치가 들으면 화를 내겠지만) 인간 하나를 만드는데 어떤 원소가 필요하고, 그 원소를 모두 구입하는데 얼마가 필요한지에 대한 (쓸데없는)연구다.

 일단 연구의 시작은 우리 몸을 구성하는 원소의 종류와 양을 파악하는 것이다.다행히 우리 몸은 탄소, 산소, 수소, 질소, 칼슘, 인 이라는 매우 많이 들어봤을 법한 원소들로 99퍼센트 이루어져 있다. 그중에서도 산소는 우리 몸의 61퍼센트를 차지하는데 원소 중에서 가장 값싼 원소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왕립화학협회에 따르면 우리 몸의 61퍼센트를 차지하는 산소를 구입하기 위해서는 8.90파운드면 충분하다고 한다. 9파운드도 안되는 돈으로 우리 몸의 61퍼센트를 만들어 낼 수 있다니… 놀랍고 또 허망한 일이다. 

 산소를 제외하면 이제 수소와 탄소, 질소, 칼슘, 인을 사야 한다. 이들을 모두 구입하면 총 금액은 2013년 기준으로 96,546.79파운드가 든다고 한다. 환율로 계산해보면 약 1억 5천만원 정도의 돈인데, 이 돈만 있으면 베네딕트 컴버배치를 구입할 수 있다니. (쓸데없는)호기심이 생기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지구상 최고의 과학자를 모두 모아놓고 이 돈의 수백배를 쥐어준다 하더라도 인간은 만들 수 없다. 앞서 쓸데없다고 말한 가장 큰 이유는 여기에 있다. 아무리 뛰어난 연금술사라 하더라도 그것은 불가능하다. (그들은 고작 금이나 만드는 이들이 아닌가) 인간을 만드는 것은 결국 정자와 난자의 만남을 통해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위대한 창조다. 그렇게 생각하면 우리 모두는 반 고흐나 데이비드 호크니의 작품처럼 위대한 창작자를 통해서 태어난 걸작 중의 걸작이라 말해도 무방하다. 이 주장을 반박할 수 있는 과학자가 있다면 나와서 96,546.79파운드를 어서 가져가라 말해주면 될 것이다. 

 



 팟캐스트는 물론이고 유튜브를 비롯한 모든 크리에이터들의 콘텐츠를 원소 단위로 분해한다면 사실 그리 비싸지 않을 것이다. 2010년에 태어난 <책 읽는 라디오>의 경우에는 더욱 값싸게 구성된 편이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노트북(UMPC라고 들어본 적이 있는가?)과 가끔씩 귀로 전기가 흐를 정도의 싸구려 헤드셋, 그리고 헤드셋을 감싸는 휴지 한 장이 전부였다. 다해봤자 오십만원의 채 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마저도 원래 있던 물건들을 활용한 것이었기에 <책 읽는 라디오>의 탄생에 있어 가장 큰 비용을 차지한 것은 녹음 장소까지 향하는 지하철 표값임에 분명하다.

 인간의 가장 중요한 진화 요인 중 하나로 꼽는 직립 보행은 인간의 골반을 작게 만들었다. 직립보행을 하는데 있어 너무 큰 골반은 걷기에 유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결과, 우리는 다른 동물들에 비해 엄청난 출산의 고통을 떠안아야 했다. 고통만이라면 그래도 수긍을 할텐데 출산 시 사망율도 어떤 동물보다 높은 것이 인간의 현실이다.   

 <책 읽는 라디오>를 낳은 이들은 말하자면 사회적 진화를 겪는 과정의 친구들이었다. 그들은 모두 대학생 혹은, 대학을 졸업해 사회로 나서기 직전의 이들이었다. 그들 역시 또래의 다른 친구들과 같이 현대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진화의 과정을 겪어야 했는데. 그 결과, 그들에게 요구된 ‘잘 사는 삶’의 선택지는 인간의 골반만큼이나 좁아졌다. 대기업도 불안하다고 생각했던 시기였고, 대부분 공무원을 최상의 목적으로 삼고 내달리던 시대. 그런 시대에 엉거주춤 엉덩이를 내밀고 팟캐스트라는 이름도 생소한 무언가를 낳겠다라는 생각 자체가 몽상가들(최대한 좋게 표현했을 때)의 꿈같은 이야기였다. 

 지금도 거리에서 그런 자세로 서 있는 사람을 보면 손가락질 하며 헛웃음을 짓는 것처럼, 그때 <책 읽는 라디오>를 낳으려 고군분투 뛰어다니던 우리를 본 이들이 있었다면 우리를 향해 손가락을 높이 들었을 것이다. 

 우리도 그 사실을 모르지 않았다. 하지만 <책 읽는 라디오>를 낳기로 결심한 이상, 누가 손가락질을 하더라도 탄생까지 가보아야 했다. 놀랍게도 <책 읽는 라디오>의 기획부터 첫 방송이 시작되기까지는 인간의 출산 기간인 열 달 정도의 시간이 필요했다. 그렇게 오래 걸린 이유는 <책 읽는 라디오>라는 소중한 아이에게 태교 음악을 더 들려주고 싶어서는 아니었다. 그저 사회적인 문제들(대부분 돈과 회사에 관련된 문제였다) 때문에 차일피일 미뤄졌던 것이다. 당시 <책 읽는 라디오>라는 몽상의 세계를 그나마 좋게봐준 한 기업과 콜라보를 할 예정이었다. 잘만 풀렸다면 <책 읽는 라디오>는 좋은 집에서 안락하고 편안한 유아기를 보낼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몽상가들의 꿈이 거의 그렇듯, 희망은 한 낮의 꿈처럼 사라지고, 우리는 스스로 출산을 해야 했다. 막상 지원을 해주겠다는 곳을 잃으니 의욕이 한 풀 꺾였다. 당장 쓸만한 녹음실을 구하는 것도 힘든 상황이었으니 말이다. 말하자면 병원도, 아이와 새로운 삶을 시작할 방 한 칸도 없는 상황. 그럼에도 우리는 통장을 털었고 지하철표를 샀다. 

 그리고 <책 읽는 라디오>를 낳았다. 

 



 우리의 몸은 태어나는 것만으로도 기적이라 말할 만큼 놀라운 모습을 보여준다. 일단 원자수만해도 70억에 10억을 곱하고 또 10억을 곱한 숫자만큼의 원자가 담겨 있고, 혈관을 모조리 모아 연결하면 지구를 몇 바퀴는 돌 수 있다. 더 놀라운 것은 이런 몸을 가지고 아무런 노력을 하지 않는다해도 몸은 나름의 정화작용을 거쳐 우리를 살아남게 한다. 이를 가능케 하는 인체의 신비를 밝히려면 대체 얼마만큼의 시간이 필요할까? 적어도 우리가 살아 있는 동안은 불가능할 것이다. 

 <책 읽는 라디오>가 태어났을 때, 우리는 기쁨의 크기만큼이나 거대한 걱정의 표정으로 아이를 바라봤다.  

 “지금 내가 뭘 낳은 거지? 이 아이에게 뭘 먹이지? 잠은 어떻게 재워야 하는 거지?” 

인간의 아이를 낳았을 때 할 법한 고민과 비슷한 고민들. 그런 고민을 하며 그 밤을 즐겼다. 물론 고민에 대한 속 시원한 해답은 아무도 찾지 못했다. 그건 아마도 우리가 우리 인생을 멋대로 살면서도 이렇게 별탈없이 살아남았으니, <책 읽는 라디오>도 그럴 것이라 믿었기 때문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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