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보도 못한 경고등을 마주할 때 드는 생각

2023.07.14 | 조회 16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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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나는 그렇게 해서 달리기 시작했다. 서른 세 살. 그것이 그 당시 나의 나이였다. 아직은 충분히 젊다.” 

 작가이자 성실한 러너로 알려진 무라카미 하루키는 서른 셋에 달리기를 시작했다. 이십대 때는 재즈와 재지한 삶에 빠져 사느라 달릴 시간이 없었을 것이다. 아무튼, 하루키는 서른 셋의 나이를 아직 달리기를 하기에 젊은 나이라 말했다. 그 말은 사실이다. 서른 셋의 성인은 노화하고 있을지언정 달리기를 하기 어려운 정도는 아니다. 하지만 같은 나이에 예수가 세상을 떠난 것을 생각해본다면 어쩌면 너무 늦어버린 것은 아닌가 싶은 나이기도 하다.  하루키도 그 사실을 모르지 않았는지 문장의 뒤에 이렇게 덧붙였다. 

 

 “그렇지만 이제 ‘청년’이라고 말할 수 없다.” 

 

 이 말은 희망과 절망을 동시에 안겨준다. 청년이 아니어도 충분히 뛸 수 있다는 사실. 그것은 우리에게 희망을 준다. 하지만 동시에 청년이 아니라는 사실은 무엇으로도 위로되지 않는 절망을 안겨준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경우에는 전자에 더 힘을 실었던 사람으로 보인다. 그는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에서 이런 말을 남긴다.

 “내가 이렇게 해서 20년 이상 계속 달릴 수 있는 것은, 결국은 달리는 일이 성격에 맞기 때문일 것이다. 적어도 그다지 고통스럽지는 않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여기서 하루키는 달리기를 하는 일이 성격에 맞다고 말한다. 이는 굉장히 적합한 단어 선택이었다. 생각해보라. 우리 몸의 심폐 능력은 이십대부터 조금씩 줄어들어 65세가 될 무렵에는 30~40퍼센트 가량 감소된다. 관절은 또 어떤가. 연골과 그 사이의 윤활액이 퇴화하면서 관절은 싸구려 변신 로보트처럼 자꾸만 삐걱거린다. 이런 상황에서 달리른 일을 젊었을 때처럼 한다는 것은 보통 고통스러운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계속 달릴 수 있는 이들은 하루키처럼 그것이 성격에 맞기 때문에 할 수 있는 것이다. 신체가 아닌 성격 말이다.

 <책 읽는 라디오>의 분명한 청년기가 지난 후에도 우리는 젊었을 때처럼 그 일을 계속했다. 숫자는 현저히 줄어 들었지만 어찌되었건 콘텐츠를 게속 만들었고, 들쭉날쭉했지만 더는 늦출 수 없다고 생각될 쯤엔 개편을 했다. 하루키가 계속해서 달릴 수 있던 것처럼 우리는 우리 성격에 맞기 때문에 <책 읽는 라디오>를 계속 만들었다.

 허나 성격에 맞는다고 해서 그것이 고통스럽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우리는 분명 통증을 느꼈다. 우리 몸이 통증을 느끼는 것은 ‘통증’이라는 것이 일을 제대로 하고 있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다. 통증이 통증답지 않게 통증을 전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아픔을 느끼지 못한 채, 감염이 되는 것도 모른 채 녹슨 못에 찔린 상처를 방치하고 있을 것이다. 우리는 통증 덕분에 아픔을 발견하고, 그것을 치료하고, 덕분에 죽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통증은 나이가 들면 들수록 더 많이 느끼게 된다. 젊은 시절에는 별다른 사고가 있는 것이 아니라면 몸의 모든 장기가 튼튼하기 때문에 통증을 느낄 일이 많지 않다. 하지만 나이가 들고 몸이 늙으면 곳곳에서 이상 신호가 들려오고, 딱히 사고르 당하거나 바이러스에 감염된 것이 아님에도 우리는 자주 아픔을 느낀다.  

 노쇠하고 있는 <책 읽는 라디오>를 만드는 일은 그것과 비슷했다. 성격에 맞아 만드는 것 자체는 계속할 수 있었지만, 몸 곳곳에서 통증이 신호를 보내왔다. 

 통증은 흔히 신체에서 느끼는 것이라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통증은 몸의 감각에서 시작할지는 몰라도 그것을 우리가 느끼기 위해서는 뇌에 정보가 전달되어야 한다. 아프다는 신호를 뇌가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그것은 아픔이 아니다. 아이러니한 것은 뇌 역시 장기이기에 나이가 들수록 퇴화하고 쪼그라드는데 통증을 느끼는 감각은 여전하는 점이다. 이것이 인체의 역설이자면 역설일텐데, 반대로 말하면 나이가 들어서까지 우리의 몸은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경고등 만큼은 반짝반짝 윤이나게 닦아놓고 있다는 말일 것이다. 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경고등. 그것이 계속 켜졌다. 익숙한 경고등이 켜질 때도 있었고 생전 처음보는 경고등이 켜질 때도 있었다.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 것인지 메뉴얼을 찾아보려 했지만, 그것을 어디에 두었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젊은 시절, 메뉴얼을 펴보는 것은 늙은이들이나 하는 것이라 생각한 적이 있다. 그때는 어떤 새로운 기계라도 몇 번 만져보면 모든 기능을 흡수할 수 있다고 믿었다. 실제로 그렇기도 했다. <책 읽는 라디오>내 가 아주 젊었을 때 낳은 것이어서 그런지, 그의 메뉴얼을 펼쳐본 기억이 없다. 그만큼 나는 <책 읽는 라디오>를 잘 안다고 생각했고, 어떤 문제가 닥치더라도 능숙하게 해결할 수 있을 것일 믿었다.

 

 그리고 실제로 그때는 별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분명한 문제로 다가왔다. 어디선가 계속 아프다고 소리를 지르고 있는데, 그 소리가 어디서 들리는 것인지 우리는 파악하지 못했다. 이것이 문제일까 싶어 조정을 하고 나면 그것은 문제가 아니었음을 깨닫는 과정이 몇 번이나 반복되었다. 때로는 정상적이었던 것을 건드리는 바람에 경고등이 하나 더 들어오기도 했다. 문제가 해결되는 것에는 요행이 없었지만 문제가 생기는 것에는 온갖 요행이 가득했다. 그럼에도 우리는 계속 <책 읽는 라디오>를 만들었다. 

 그것이 어떻게 가능했을가? 경고등이 잔뜩 들어온 차로 어떻게 횡단을 이어갈 수 있었을까? 그것은 우리 몸의 신비에 있다. 우리는 잘못된 식습관과 쓸모 없이 담배를 피고 술을 마시는 일을 반복하더라도 쉽게 망가지지 않는다. 대다수의 경우 흡연을 한다해도 6명 중 5명은 폐암에 걸리지 않는다. 통계에 따르면 우리는 일주일에 20여 번, 1년 이면 1,000번 넘게 병에 걸리는 O.X 게임을 시작하지만, 그때마다 우리 몸은 현명한 정답을 고르는 덕에 우리는 별탈 없이 살아갈 수 있었다. 

 다만, 요행이 언제까지 이어질 지, 우리는 알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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