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신생아의 심장은 120번 뛴다

2023.06.30 | 조회 2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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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생아의 심장은 분당 120회를 뛴다고 한다. 성인의 정상 심박수가 높아봐야 100회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생각하면 신생아들은 태어나면서부터 무언가에 흥분해 있는 것이다. (물론 의학적으로는 그렇게 설명하지 않겠지만) 이제와서 정확히 기억을 해낼 수는 없지만 <책 읽는 라디오>도 그정도 속도로 심장이 뛰었던 것 같다. 지금이라면 한 편을 다 만들기도 전에 지쳤을 텐데, 그때는 하루에도 몇 편의 콘텐츠를 만들어 낼 수  있을 정도로 산소와 피가 온 몸에 흐르고 있었다. 그런 이유로 <책 읽는 라디오>는 태어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주 2회 방송을  제작했다. 그러고도 피가 남아서 급기야 주 3회 제작을 결심하기에 이른다. 방송을 듣는 이라곤 고작 열 명이 채 되지 않았지만, 갓 태어난 <책 읽는 라디오>는 그렇게나 뛰고 싶어했다. 

 재밌는 것은 인간의 아이는 심장을 제외한 다른 모든 것은 느리다는 점이다. 일단 신생아는 다른 동물에 비해 가장 늦게 혼자 기거나 설 수 있다. 인간이 그토록 자랑하는 뇌도 골반의 크기 때문에 작게 태어나는 편이며, 고개를 가눌 수 있는 것도 몇 달이 지나야 가능하다. 심지어 태어나고 하루 정도는 귀가 들리지 않고, 시야도 변변치 못하다. 외모는 또 어떤가. 막 태어난 신생아는 자궁에서 열 달이나 있었던 이유로 쪼글쪼글하게 태어난다. 이도 없고 지방도 없다. 머리카락도 대부분 풍성하지 못하고 몸 곳곳이 부어 있다. 그럼에도 심장은 놀랍게도 튼튼하게 뛴다. 

 <책 읽는 라디오>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방음 장치라곤 서재에 꽂힌 책이 전부였던 공간에서 헤드셋으로 녹음한 방송은 그야말로 조악하기 짝이 없었다. 그 당시에는 어떤 라디오보다 교양과 감성을 두루 갖추었다  느꼈던 대본도 지금보면 중2때 미니홈피에 남긴 글을 보는 것처럼 부끄럽다. DJ와 게스트의 목소리는 쉼없이 떨렸고, 내용과 구성도 겨우 구색을 맞춘 정도에 불과했다. 남의 아기라고 한다면 쉽게 잘생겼다 혹은 예쁘다라는 말이 나오지 않을, 그런 신생아였다. 세상 모든 첫 콘텐츠가 그렇듯이 말이다. 

 <책 읽는 라디오>의 그 첫 음성을 아직 기억한다. 파울로 코엘료의 <연금술사>를 MBC 라디오<이주연의 영화음악> 오프닝 식으로 각색한 글이었다. 내가 쓴 글을 한디제이가 읽었다. 녹음은 성연이 했고, 소은과 도연이 곁을 지켰다. 그 음성은 지금에 와서 돌이켜보면 뭐랄까. 울음처럼 들린다. 

 아이들은 태어나면서부터 울음을 터뜨릴 줄 안다. 그래서 아이의 목은 언제나 바쁘다. 소화기간이 짧은 탓에 두어 시간의 간격을 두고 젖이나 우유를 삼켜야 하고, 그것이 충족되지 않을 때나, 용변을 보았을 때, 온도가 마음에 안들 때, 피부가 가려울 때, 등등의 이유로 목청껏 울어야 한다. 그것은 단순한 투정의 의미만은 아니다. 아이들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소통의 방법이 그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가까이서 아이를 보호하는 것이 일반적인 지금보다, 과거의 세대에 더 필요한 능력이었을 것이다. 사방에 적이 가득한 세상에서 자신의 존재를 잊지 않게 하기 위해 아이들은 목놓아 울어야 했을 것이다.  

 그리고 이 울음은 성장하면서 점차 언어로 바뀐다. 그 결과 우리는 지구의 어떤 종도 해내지 못한 일. 언어를 통한 의사통을 하게 된다. 우리는 대부분 이 일을 당연히 해내기에 별 다를 것이 없다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하는 언어를 제대로 발현하기 위해서는 입과 목의 미세한 근육과 인대, 뼈, 연골이 균형있게 움직여야 한다. 뿐만 아니라 입안의 혀와 턱도 조화롭게 역할을 해야 완벽한 언어활동이 가능해진다. 입술도 키스를 위해서만 있는 기관이 아니라는 사실을 말을 할 때 비로소 깨닫게 된다. 

 <책 읽는 라디오>가 그런 어려운 과정을 거쳐 세상에 한 마디를 내던졌다는 것. 그것은 비록 완벽하지는 않을지라도 의미가 있었다.  돌이켜보면 어떻게 그것이 가능했을까? 신기할 따름이다. 그때까지 라디오라고는 듣는 것 말고는 해본적도 없는 이들이, 콘텐츠의 주제인 책도 애서가라 부르기엔 민망할 정도로만 즐기던 이들이, 어떻게 책 방송을 만들고 거짓말처럼 오프닝을 녹음할 수 있었을까.  그건 어쩌면 첫 오프닝 멘트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마크툽”

 소설 <연금술사>의 중요한 메시지 중 하나인 이 단어는 “이미 쓰여져 있다.” 정도로 해석할 수 있다. 말하자면 우리가 행하는 모든 일은 이미 쓰여져 있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을 따라 충실히 걸을 뿐이라는 사실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주변 친구들은 취업을 뽀개고 있는 시간에 방송에 담을 책 소개를 준비하고, 오프닝 멘트에 얹을 BGM을(저작권 없는 것으로) 찾느라 밤을 새고… 그런 죄책감 넘치는 시간의 방 앞에 ‘마크툽’ 세 단어를 붙여 놓으면 한결 편해졌다. 이미 쓰여져 있다는데 어찌하겠는가. 몽상가는 몽상가의 삶을 살아야지.  

 아마도 이때부터였을 것이다. 어떤 힘든 결정 후에 좋지 않은 결과가 나오면 ‘마크툽’ 세 글자를 되뇌었던 것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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