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죽음의 유예

2023.07.17 | 조회 13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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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매일 밤 병원을 나서면, 그냥 하루 일과를 끝내고 버스를 타고 귀가하는 사람들을 내가 분한 마음으로 노려보고 있음을 깨달았다. 저들은 어쩌면 저렇게 게으르게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로 자기들의 무심한 옆얼굴을 여보란 듯 보여주고 있단 말인가. 세상이 이제 이렇게 변하려는 참인데.” 

 

 소설가 줄리언 반스의 부인은 영국의 문학 에이전트 팻 캐바나였다. 소설을 쓰는 것은 특별한 사람들이 하는 거싱라 생각했기에, 소설가를 꿈꿔본 적도 없던 줄리언 반스는 팻 캐바나를 만나며 소설가가 되었다. 이런 자신과 팻의 관계를 줄리언 반스는 열기구로 표현했다.

 “이제껏 함께한 적이 없는 두 가지를 함께하게 해보라. 그들은 각각의 개체였을 때보다 더 위해다. 함께할 때 그들은 더 멀리 그리고 더 선명하게 본다.” 

풍선과 바구니. 어딜봐도 닮은 구석 하나 없는 둘을 연결하자 그것은 하늘 위로 두둥실 떠올랐다. 그리고 그것에 올라탄 이들은 더 멀리, 더 선명한 세상을 만날 수 있었다. 줄리언 반스의 삶이 그랬다. 팻이라는 닮지 않은 한 사람을 만남으로써 두 사람은 더 높이 날았고 더 멀리 바라봤다. 그것도 더 선명한 시선으로 말이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팻은 뇌종양 판정을 받는다. 그리고 37일 후, 팻은 세상을 떠나고 만다. 풍선을 잃은 바구니는 그것이 있던 자리로 돌아가야 했다. 지상으로. 추락해야 했다. 추락하는 과정 중에서 줄리언 반스는 무심한 표정으로 곁을 지나는 사람들의 표정을 보았다. 그리고 분노했다. 

 “세상이 이제 이렇게 변하려는 참인데…” 

 <책 읽는 라디오>라는 풍선을 잃은 우리의 심정도 그와 비슷할 것이다. 우리는 더없이 높이 날았다. 각각의 개체엿다면 보지도 못할 것들을 보았고, 숨 쉬지 못할 공기를 맛보았다. 하지만 중력이 존재하는 한, 우리는 언제까지 하늘을 날 수는 없을 것이란 사실을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다. 우리의 외피는 노인의 그것처럼 밀도가 감소했고, 아무리 불을 떼고 따뜻한 공기를 불어 넣어도 쉽게 추위를 느꼈다. 젊은 녀석이 우리의 열기구에 타고 있었다면 “더우니 불 좀 그만 때요!” 라고 성질을 냈을 것이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나이가 들면 우리 몸은 쉽게 추위를 느끼는 것을. 

 조금만 더, 여정을 이어갈 수는 없을까? 조금만 더 살 수는 없을까? 우리는 진동하듯 흔들리며 그것에 대해 생각했다. 방법은 있었다. 최대한 적게 먹는 생활을 하고, 회사는 그만두고, 하루에 여덟시간 꼬박 잠을 자고, 술은 줄이고, 운동은 고통스럽더라도 꾸준히 계속! 가치가 상실되지 않도록 가치있는 취미를 갖고 조금 더 유머러스한 생활을 이어가는 것. 그것이 우리가 오래살 수 있는 방법이다. 물론 이런 것을 하나도 지키지 않는다하더라도 장수한 부모님의 유전자를 받았따면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인간의 관점에서 본 생명 연장의 꿈이다. <책 읽는 라디오>는 다르다. 콘텐츠로 태어난 그는 아무리 싱겁운 식단을 유지해도, 맑은 공기를 쇠고 따스한 햇볕을 받으며 산책을 한다해도 더 오래 살 수는 없다. 

 그것을 깨닫기까지 어쩌면 너무 오랜 시간이 흘렀는지도 모른다.

 “걷는 것은 넘어지지 않으려는 노력에 의해서, 우리 몸의 생명은 죽지 않으려는 노력에 의해서 유지된다. 삶은 연기된 죽음에 불과하다.” 

 우리는 한때 가고자 하는 곳이 있어서 걸었다. 

 하지만 지금은 넘어지지 않기 위해서 걷는다. 

 우리는 한때 죽어도 좋다는 기분으로 온갖 낭떠러지로 돌진했다. 

 하지만 지금은 죽지 않으려 침대 밖을 나서지 않는다. 

 그것을 영원히 몰랐다면 좋으련만 나이가 든다는 것은, 늙는다는 것은 젊은 시절보다 더 많은 단어를 알고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가 처한 상황을 설명할 단어도 알고 있었다. 

 “이별.” 

 이제 헤어질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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