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핀테크는 규제를 먹고 자란다.
흔히들 핀테크의 혁신을 기술의 진보로 설명하지만, Jas Shah는 오히려 기술이 아닌 규제가 핀테크 혁신의 진짜 촉매제라는 관점에서, 지난 수십 년간의 규제들을 연대기적으로 정리한다.
대표적인 사례는 다음과 같다:
- PSD1 (2007, EU): 비은행도 결제기관(PIs)으로 진입 가능케 하며 크로스보더 결제 자유화 → TransferWise(현 Wise), Adyen 같은 초기 핀테크 등장.
- PSD2 (2018, EU): API를 통한 오픈뱅킹의 법제화. TPP 등장, PFM/인증 결제/데이터 집계 서비스 급성장.
- E-Money Directive (2000/2009, EU): PayPal, Revolut 등 비은행형 e-wallet 운영 가능.
- Durbin Amendment (2010, US): 대형 은행의 카드 수수료 상한 설정 → 소형 은행 기반의 BaaS 모델 성장, Chime 등 등장.
- GDPR (2018, EU): 전 세계 데이터 보호 기준 설정 → 프라이버시 UX, 쿠키 동의 인터페이스 등 표준화.
- Bank Secrecy Act & AMLA 2020 (US), 1~6AMLD (EU): 핀테크도 AML/KYC 의무 대상 → Onfido, ComplyAdvantage 같은 인프라 스타트업 탄생.
이처럼 제도의 설계는 단순히 무언가를 억제하는 데 그치지 않고, 오히려 혁신의 트리거가 되었던 사례가 대부분이라는 점에서 규제를 시장 구조를 정의하는 도구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앞으로 핀테크의 모습을 그려나갈 새로운 규제들에는 무엇이 있을까?
- EU Accessibility Act (2025, EU): 디지털 금융 서비스의 접근성을 법제화 → Monzo, Bunq 등 접근성 기능 선도 도입. 핀테크에서 포용적 UX 설계가 차별화 요소로 부상.
- Consumer Duty (2023~, UK): 금융 상품 전 생애주기에서 소비자에게 ‘좋은 결과’를 제공할 법적 의무 → 고객 중심 UX 설계, 실시간 결과 추적 도구, 공정한 가격 책정 알고리즘 등장.
- AI Act (2026 예정, EU): 신용평가·사기 탐지 등 고위험 AI 시스템에 투명성·감사 가능성 요구 → 설명 가능한 AI(Explainable AI), AI 위험 평가 SaaS, AI 가이드라인 툴킷 개발 촉진.
- UK Smart Data Bill (2025, UK): 오픈뱅킹을 넘어 보험, 통신, 연금 등 데이터까지 범위 확장 → 크로스섹터 금융비서, 스마트 전환 서비스, 동의 관리 인프라 등 오픈파이낸스 기반 툴 생태계 성장.
- GENIUS Act (진행 중, US): 스테이블코인 발행 규제 명확화 (1:1 담보, 승인된 발행자만) → Stablecoin 발행 인프라, 준법감시 자동화, 투명한 준비금 대시보드 시장 기회.
- PSD3 (2026~2027 예정, EU): PSD2의 진화형. 오픈뱅킹을 오픈파이낸스로 확대하며 API 성능·데이터 접근·라이센스 구조까지 개편 → 연금·투자·저축 데이터 API화, 통합 금융 UI 툴킷, 개인화된 추천 시스템 출현.
우리에게 익숙한 GENIUS Act를 제외하면 크게 1) AI Act와 2) UK Smart Data Bill & PSD3가 있는 것 같은데, 전자는 AI 중에서도 Explainable AI, 즉 고객들에게 설명이 가능한 AI 모델이 눈에 띄는 것 같고, 후자의 경우에는 Open Banking → Open Everything의 트렌드가 눈에 띄는 것 같다.
(2) 은행이 되고 싶은 스테이블코인 회사들
이번 주에는 스테이블코인 회사들의 은행 인가 신청들이 눈에 띄었다. 먼저 Circle의 경우, 국가 단위 은행 인가 신청(national bank charter)을 하였고, Ripple의 경우, 주 단위 은행 인가 신청(state trust charter)을 하였다. Circle과 Ripple 모두 각각 USDC와 RLUSD라는 스테이블코인 발행사로서 은행이 됨으로써 가지는 가장 큰 장점은 더 이상 중개 은행에 의존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은행 인가를 받으면 연준 계좌(Reserve Account)를 만들 수 있고, Fedwire와 같은 인프라를 사용할 수 있게 된다. 이는 각자의 스테이블코인 발행 및 상환 과정을 더욱 빠르고, 저렴하게, 그리고 다른 은행의 도움 없이 ‘직접’ 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이 외에도 Anduril의 창업자 Palmer Luckey와 Palantir의 공동 창업자인 Joe Lonsdale이 새롭게 공개한 스테이블코인 중심의 은행인 Erebor에 대한 뉴스도 눈에 띈다. 해당 은행의 목표는 2023년에 파산한 실리콘밸리은행의 공백을 대체하기 위함이며, 그들의 은행 인가 신청서에는 ‘스테이블코인 기반 거래 및 서비스를 가장 규제에 부합하는 방식으로 운영하겠다’라는 내용이 들어가 있다고 한다.
Erebor의 시도는 기존의 스테이블코인 x 전통금융 이니셔티브와는 사뭇 다르다. 기존 방법론은 1) 전통 은행들이 스테이블코인 사업을 확대하거나, 2) 오늘 다룬 것과 같이 스테이블코인 발행사들이 은행 인가를 신청하는 방식이었다면, Erebor는 아예 처음부터 스테이블코인을 재설계한 은행이 되겠다는 목표로 보인다. 다만, 아직 스테이블코인 중심 은행이 어떤 형태일지는 잘 모르겠다. 고객들의 예금이 스테이블코인이라면 사실상 신용 창출은 하지 못할 것인데, 은행이라고 볼 수 있을지? FDIC의 예금자 보호의 경우, 디지털 토큰 및 스테이블코인에는 적용되지 않는데 이는 어떻게 되는 것인지? 여러 가지 궁금증이 있지만, 앞으로 정보가 공개되는 대로 밝혀지지 않을까 싶다.
(3) 스테이블코인이 돈이 되려면?
a16z의 Sam Broner는 스테이블코인이 진짜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돈’이 되기 위해 다음과 같은 3가지 부분에서 보완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 통화의 단일성: 누가 발행한 스테이블코인인지와 무관하게, 언제 어디서든 서로 1:1로 교환 가능해야 한다.
- 현지 통화 정책과의 밸런싱: 스테이블코인은 신흥국에게 쉽게 달러에 접근할 수 있다는 장점으로 작용하지만, 정부 입장에서는 통화 주권과 정책 수단의 약화로 볼 수도 있다.
- 신용 창출 감소: 스테이블코인이 $2T까지 성장한다면, 기존 은행 예금에서 많은 양의 자금이 스테이블코인으로 이동하고, 이는 신용 창출 감소로 이어져 전체 경제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전 주간기록을 본 분들이라면 알겠지만, 위 3가지 문제점들은 이미 몇 번이나 언급되었던 주제인 만큼, 이제는 모두가 아는 문제이다. 다만 어떻게 해결할지가 아직도 명확하지 않은 상황이다.
통화의 단일성의 경우에는 Ubyx와 같은 스테이블코인을 위한 Clearing House(청산 레이어)를 만들려는 시도가 있고, 더 현실적인 방법으로는 은행들끼리 하나의 거대 컨소시엄을 만드는 방법이 있다. 또 다른 시도로는 아예 M0처럼, 각 스테이블코인의 담보로 되는 자산을 동일시시키는, 어쩌면 중앙은행을 벤치마킹하는 방법도 있다.
현지 통화 정책과의 밸런싱의 경우에는 로컬 스테이블코인, 그리고 달러 스테이블코인과 로컬 스테이블코인 간의 FX 시장 발전이 중요해 보인다. 이전에 다뤘던 것처럼, 이것은 Onchain FX의 일부로 볼 수 있으며, Stable Sea나 OpenFX와 같은 서비스들이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등장하고 있다. 원화 스테이블코인에 대한 논의도 이러한 관점에서 존재한다고 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신용 창출 감소의 경우에는 예금 토큰이 가장 좋은 해결책이라고 생각한다. 스테이블코인의 장점인 programmability, instant settlement, cheap fee 등은 그대로 가져가되, 기존 예금이 기록된 원장만 바뀌기 때문에 신용 창출 능력의 변화는 없다.
해당 글에서도 예금 토큰 부분이 꽤 비중 있게 다뤄지는데, 사실 예금 토큰은 통화의 단일성 문제 해결에도 동시에 기여할 수 있기 때문에 매우 매력적이라고 볼 수 있다. 물론, 준비금이 예금이 되어버리기 때문에 이자 측면에서는 강점이 없을 수 있지만, 오히려 원화와 같이 어차피 국채 이자가 크게 매력적이지 않은 통화의 경우에는 이러한 단점이 크게 부각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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