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집에서 아무 생각 없이 칼라 블레이의 <Lawns> 라이브 영상을 틀었다. 몇 마디 채 나오지도 않았는데, 옆에서 딴짓하던 전 여친이 갑자기 몸을 벌떡 일으키며 물었다. 누가 이렇게 피아노를 광폭하게 치냐고.
저 연주의 어디가 대체 광폭한가 싶어서 황당해서 되물었더니, 아니란다. 엄청난 에너지를 몸 안에서 응축해서 손끝에 싣고 있단다. 그 뒤로 무슨 설명을 한참 더 들었는데, 그 이상은 프로 연주자들끼리 알아먹을 얘기라 기억도 안 난다.
아무튼, 칼라 블레이를 연주자로 좋아한다. 물론 본인은 자신의 정체성을 피아니스트보다는 작곡가나 밴드 마스터 쪽에 무게를 더 둔 것 같지만. 한때는 연주자로서 자신이 없어 했다는 이야기도 어디선가 들었던 것 같다. 아무튼 나는 그녀가 피아니스트로 좀 더 전면에 나선 앨범들을 더 많이 듣는다. 특히 세 번째 남편이기도 한 베이시스트 스티브 스왈로우와 함께 작업한 앨범들.
사진은 2018년 자라섬 페스티벌 공식 사진이다. 이때 칼라 블레이의 공연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봤다. 자라섬은 매년 가다가 그 해는 너무 바빠서 못 갈 뻔했는데, 칼라 블레이 트리오가 헤드라이너로 나오는 날짜에 맞춰서 간신히 갔다.
칼라 블레이는 그때 이미 여든이 넘었고, 자라섬의 날씨도 날씨인지라 공연 초반에는 진짜 저 노인네들 저러다 괜찮으시려나, 하고 걱정이 됐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실이 조금씩, 팽팽하게 당겨지는 것 같았고, 내가 추운 걸 잊을 만큼 몰입이 됐다. 역동성이라고는 없었지만, 주름이 가득한 앙상한 손으로 최소한의 음만 치면서 최적의 타이밍으로 사람을 툭, 툭 하고 건드리는 듯한 연주였다.
음악이든 뭐든, 노년의 아티스트에게 붙는 ‘관록이 느껴지는 연주’ 같은 수사는 사실 대체로 허상이라고 생각한다. 신체적인 물리력과 에너지는 인간이 어쩔 도리가 없는 것이기 때문에. 그럼에도 그날은 음악에서 타이밍이라는 게 얼마나 중요한 요소인지 새삼 실감했던 기억으로 남아 있다. 특히 스왈로우와의 호흡은 음악적으로든 인간적으로든 완벽한 신뢰 관계라는 게 눈에 고스란히 보였다.
그때 사인 받으려고 새 앨범도 샀는데, 날씨와 고령을 감안해서인지 사인회는 취소됐다. 사진 보면 알겠지만 저 손으로 사인까지 받았다면 되게 미안했을 것 같다.
성격상 추모나 애도 같은 것과는 무관하지만, 돌아가셨다는 소식에 떠오르는 기억들을 옮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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