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간에 관한 짧은 필름

어쩔 수 없는 짠함 때문에

어떻게 안 도와줘

2023.10.13 | 조회 35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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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에 관한 짧은 이야기

아주 사적이고 디테일한 에세이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끝까지  보지 않았지만, 1화에 나오는 장면을 좋아한다. 최수연이 회전문에서 허우적거리는 우영우를 도와주는  장면. 최수연은 우영우를 보고 처음에는 그냥 지나치려 한다. 그러나 그녀는 결국 되돌아가서 문을 잡아주며  소리를 지른다.  바보냐고. 다른 문으로 나갈  모르냐고.

여기서 최수연의 행동이 착한 행동 제일 현실적인 모습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혹은 인류애의 보편적인 모습이라고해도 좋겠다. 그러려고 하는  아니라 그냥 그렇게 되는 . 이건 아마도 세계 만국 공통일 것이다. 최수연은 자폐라는 핸디캡에도 금수저 수재인 자신을 매번 앞서는 천재 우영우에게 양가적이고 복합적인 감정을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그녀는 우영우를 도와준다. 우리보다 강자인 사람을 뭐하러 도와주냐는 권민우의 비아냥에, 그녀는 짜증스럽게 대꾸한다.

저러는  보고 어떻게  도와줘요?”

인간의 선행은 의외로 스펙트럼이 많다. 결과는 같을지 몰라도 인과는 제각각이라는 뜻이다. 목적이 있어서 그러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그런  아무래도 좋은 사람도, 죄책감에 그러는 사람도 있을 터다. 최수연의 행동 원리는 여기서 어떤 것도 아닐 것이다. 가치 판단이나 의지와는 상관없이 그냥 짠한 거다. 싫은 것도 짜증 나는 것도 있으면서 뭔가 짠한 물기가 있는 . 연민이라고 좁게 정의할 수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포괄적이고 본질적인 무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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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스트 카우> 보면서 나는 최수연을 떠올렸다. 정확하게는 최수연에게 깊게 감정 이입을 했다.  영화는 분류상으로는 서부영화인데, 뒤로 가면서 점점 범죄영화의 모양새가 되어간다. 느릿느릿하고 아름다운, 착한 범죄영화. 기묘하다. ‘착한 범죄라는  세상에 있긴 한가. 그런데 관객들은 범죄의 당사자인 주인공, 쿠키와 루를 응원하게 된다. 어떻게 뜯어봐도 착한 사람들이니까. 관객들은, 아니 나를 포함한 모두라고 해도 좋겠다. 우리는 그들이 들키거나 붙잡히지 않기를 바란다. 험한 꼴을 당하거나, 죽거나, 헤어지지 않기를 은연중에 바란다.

서부의 난폭한 마초들 사이에 던져진   남자는 마치  시장에 얼떨결에 끌려나온 당나귀처럼 어리둥절해 보인다. 실제로 유태인과 중국인인 둘은 백인 주류 사회에서 태생부터 이방인이기도 하다.  시기는 자신의 것을 소유하고 그것으로 다른 것을 사고 파는,  자본주의가  창궐하던 때다. 프런티어라는 위장된 정체성으로 강탈과 폭력의 과거를 덮어버리고  위에 찬란한 문명을 쌓아올린 시대.

쿠키와 루는 마을 권력자인 대령이 가진 하나밖에 없는 젖소에서 몰래 우유를 짠다. 그것은 도저히 절도로 보이지 않는다. 그보다는 원래  땅의 일부였던 아메리칸 원주민들의 공유라는 개념에 가깝다. 쿠키와 루는 없는 형편에 서로에게 옷과 먹을 것을 나눠주고 거처를 제공하지만,  흔한 감사의 인사도, 생색도 없다. 이들에게 그런 행동은 애초에 아무것도 아닌, 너무 자연스러운 것이니까. 그저  인간이 다른 인간에게   있는 당연한 것이니까.

그러니 이들이 거대한 자본주의에 눈에 띄지도 않을 작은 균열을 냈다 한들, 어떻게 범죄자라고 말할  있을까. 타인의 사유재산을 동의 없이 절취한 죄의 낙인을 찍을  있을까. 젖을 짜면서도 짝을 잃고  타지까지 끌려온 소에게 위로의 말을 건내는 이들을, 빠르게 변해버린 세상의 질서를 이해하기엔 너무 순박한 이들을, 옆에 있는 친구와 나눌 비스켓 조각과 오두막   정도의 소박한 꿈밖에 없는 무해한 이들을, 위기의 순간에 돈보다도 친구의 무사함에 기뻐하는 이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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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는 누구나 착한 사람,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정신을 차려보면 어느새 나쁜 짓을 하고 있다. 거대하고 복잡하며 괴상한 기계처럼 기능하는 21세기의 세계에서, 이런 흐름은 바꿀  없는 벡터이자 대전제가 되어버렸다. 선량한 개인이자 사악한 조직인, 반대로 비열한 조직인이자 정의로운 개인은 의외로 드물지 않다.   있는 , 물이 흘러나온 것까지 가지는 못하지만, 역류해서 필사적으로 제자리에 머무르는  정도인지도 모른다. 그게 대부분의 평범한 인간이 처해 있는 현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쿠키와 루를 무의식 중에 응원하게 되는 거다. 인간에게 선의와 사랑이 있다고 믿고 싶어서. 최수연이 그랬던 것처럼, 분통이 터지면서도 위태로워서 두고   없기에, 회전문이라도 붙잡아주고 싶어지는 것이다. 어딘가 허점 많고 금방이라도 눈물을 쏟을 듯한 자그마하고 조심스러운 남자의 얼굴 때문에. 자신이 매일 이야기를 나누는 암소의 그것처럼 축축하고 부드러운  때문에.  어쩔  없는 짠함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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