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버 온스테이지가 종료됐다. 나는 이 프로젝트의 초반 이 년 동안 기획위원으로 활동했는데, 오래 전이기도 하고 그때와 색깔도 바뀐 부분이 있어서, 사실 뚜렷한 소회 같은 게 있지는 않다.(성격이 원래 그렇기도 하고)
다만 내가 이 프로젝트에 얼마나 기여를 했느냐는 제쳐놓고, 나한테는 아주 유익한 공부의 기회였다는 건 확실하게 말할 수 있다. 나는 음악을 하는 사람도 아니고, 이런 콘텐츠 제작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해본 것도 거의 처음이었기 때문에. 특히 스튜디오나 야외 촬영 따라가서 어깨 너머로 보고 주워들은 것만으로도 굉장한 공부가 됐다. 또 이런 작업에서 어떤 점이 중요한지, 어떤 시행착오가 있을 수 있는지, 또 어떻게 발전하는지 등등을 목격할 수 있었다는 점도 흥미로웠다.
얼마 전 어떤 자리에서 부산에서 올라온 지 일 년 됐다는 이십 대 중반의 여성을 만났다. 어렸을 때 부산국제록페스티벌이 무료였던 시절, 음악 좋아하는 오빠 손에 끌려갔다가 검정치마에 빠졌다고 했다. 그리고 지금 자기가 좋아하는 국내 뮤지션의 거의 전부는 온스테이지를 보고 알게 됐단다. 가끔 부산에서 보수동쿨러나 세이수미 같은 밴드 보면서, 서울 사람들은 맨날 이런 공연 보겠구나 하고 막연하게 부러워했다고 한다.(꼭 그렇지도 않다는 걸 알게 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겠지만)
그래서 그녀는 온스테이지의 종료를 하늘이 무너지는 것처럼 아쉬워했다. 부산에서 태어나고 자라서 서울에 올라오기 전까지, 온스테이지는 그런 뮤지션들이 살아 움직이는 걸 볼 수 있는 유일한 통로였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 살짝 놀랐다. 조금만 생각해보면 당연히 그럴 거라고 예상할 수 있는데, 간과하고 있었구나 싶어서. 누군가에게는 내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중요한 의미가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뒤늦게 들어서.
온스테이지 기획위원 하면서 처음에 답답합을 느꼈던 부분은, 이런 좋은 음악을 하이 퀄리티 콘텐츠로 만들어서 코앞에 갖다 줘도 사람들이 왜 안 들을까 하는 것이었다. 그때만 해도 참 나이브하고 단순했던 것이다. 막상 그 자리에서 보니 온도차가 그렇게까지 클 줄은 몰랐다. 대중의 반응에 연연하지 않기로 유명한,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어느 뮤지션이, 오랜만에 음원 내고 유튜브 조회수에 충격받아 두문불출했다는 얘기가 생각난다. 그 사람도 설마 그 정도일 줄은 몰랐던 것이다.
그런데 온스테이지 기획위원 연말 결산 때 통계를 본 적이 있다. 그 즈음 탑밴드에 나왔던 게이트 플라워즈, 본격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한 옥상달빛의 영상 조회수가 어느 시점부터 급격하게 치솟아 있었다. 아, 이 작업의 중요한 의미는 마케팅이 아니라 아카이빙이구나 하는 생각을, 그때 처음 했다.
온스테이지가 출연 뮤지션의 인지도를 높이는 데 당장 무슨 파격적인 도움이 됐느냐 하면, 그건 아닌 것 같다. 온스테이지 전후가 크게 달라진 뮤지션도 물론 있지만, 대부분은 그렇지 않다. 다만 충실하게 쌓아놓으면 누군가는 언젠가 볼 것이다. 부산의 그녀처럼. 그게 당장 내일일지, 백 년 뒤에 화석이 되어서일지는 모르지만.
쌓는 것. 그리고 되도록 제대로 남기고 쌓는 것. 그게 이 시대에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인 것 같다. 정보의 병렬화가 가능해지고 기록의 지속성이 옛날과는 비교할 수 없게 된 지금, 오히려 더 해야 한다.이제는 딱히 음악과 관련된 일을 하고 있지 않고 책임감을 굳이 느끼지도 않지만, 거기에 나도 발 하나쯤 걸쳤다고 의미를 둘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소개글을 담당했던 팀 중 검정치마, 게이트 플라워즈, 잠비나이 등 인상적인 영상이 많았다. 그래도 하나를 콕 집어 말하자면 이승열이다. 출연진 일정 때문에 새벽에 촬영을 진행했다. 집요할 정도로 세세하고 꼼꼼하게 사전 준비를 하고, 카메라가 돌아가자 투 테이크 이내에 끝내버리는 프로 연주자들의 역량에 감탄했던 기억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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