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반대말이 무엇인지 알고 있니. 기억의 반대말은 기억이야. 기억은 착란하고 망각은 찬란하지. 너는 동전의 양면을 동시에 본 적이 있니. 망각의 암각, 명암의 명망, 명망의 망명, 추억은 추악하고 기억은 거역하지.
- 한유주, 『불가능한 동화』 중에서
<아이, 토냐>는 관객에게 친절하기는 커녕, 오히려 방해하는 것처럼 보이는 영화다. 간신히 따라갔다 싶으면 예상을 벗어나서 이리저리 휘고, 끊어지고, 튀어버린다. 그러니 누구에게도 감정을 이입하기가 쉽지 않다. 전개까지 빨라서 보다 보면 짜증날 지경이다.
대체 왜 이러는 걸까.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 영화는 형식상 전기 영화지만, 토냐 하딩이라는 악명 높은 셀러브리티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토대로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주인공 혼자서 소리 높여 외치는 연대기적 서사와는 거리가 멀다. 이 영화는 토냐, 그리고 그녀를 둘러싼 실제 인물들의 증언을 재연해놓은 이야기다. 토냐의 어머니 라보나, 전 남편 제프, 제프의 절친이자 토냐의 (자칭) 경호원 션, 코치 다이의 인터뷰를 토대로 ‘이야기를 재구성’한 것이 아니라, 굳이 4:3 화면비로 ‘재연’한 인터뷰 자체를 삽입했다.
이 영화의 가장 두드러지는 특징이자 문제는 여기서 발생한다. 이들은 분명히 ‘1994년 토냐 하딩 사건’이라는 공통의 역사에 대해 증언하고 있다. 피겨 스케이팅 스타가 라이벌의 무릎을 박살내기 위해 린치를 사주한, 스포츠 역사상 전무후무한 그 사건. 그리고 그 결말은 세상 누구나 다 알고 있다. 그런데 그 과정에 이르기까지의 기억들이 미묘하게, 혹은 크게 어긋난다. 심지어 등장인물들이 갑자기 관객들을 향해 “사실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고 푸념하기도 한다.
이들이 전부 거짓말을 하는 건지, 누구도 거짓말을 하지 않는 건지는 모른다. 어쨌든 이들 모두 ‘난 정직하게 사실만 밝혔다‘고 아무리 울어도, 사실과 진실은 원래 친밀한 사이가 아니다. 타무라 유미의 만화 <미스터리라 하지 말지어다>의 대사는 여기서 참으로 적절하다. “진실은 하나가 아니에요. 두 개, 세 개도 아니고요. 진실은 사람 수만큼 존재합니다. 하지만 사실은 하나입니다. 일어난 일은.”
인간의 기억이라는 건 불완전해서 깨지거나 변색되기 쉬운 법이다. 믿고 싶은 대로 믿고 기억하고 싶은 대로 기억하는 것만큼 간단한 건 없다. 그러니 반추라는 건 과거의 시간을 지나치게 아름답거나, 그립거나, 혹은 몸서리쳐지도록 추악하게 만든다. 그리고 기억이라는 건 지극히 사적이지만 심오하게도 공공의 자산이기도 하다. 엄마의 장밋빛 과거가 딸에게는 끈적거리는 핏자국으로 남기도 한다. 희한하게도 집단적 과거라는 게 죄다 이런 식으로 적용된다. 마치 카드 한 팩처럼 한없이 뒤섞이고 또 뒤섞인다.
영화는 조각나고 이가 빠진 이런 기억들을 보완 없이, 하드보일드 소설처럼 차갑고 건조하게 늘어놓았다. 각자의 방식으로 왜곡된 기억들을 덕지덕지 붙여놓으니, 뭐 하나 말이 되는 게 없고 기이하게 웃긴다. 서로 앞뒤 안 맞는 기억들끼리 아예 새로운 부조리극 한 편을 재생산하는 셈이다. “인생이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는 격언에 이렇게 들어맞는 상황도 없다. 그러니 <아이, 토냐>가 토냐 하딩에게 면죄부를 부여한다는 비판에는 동의할 수 없다. 오히려 이 영화는 지독할 정도로 영악한, 그리고 의도적인 책임 소재 회피를 하고 있다. 저들이 뭐라고 떠들든 간에 난 들은 대로 전한 죄밖에 없다는, 그러니 그들의 말을 다 믿지 말라는.
그리고 시니컬한 관조로 가득한 이 고차원의 블랙코미디에서, 진실은 단 한 순간 스쳐 지나간다. 1991년 월드 피겨스케이팅 챔피언십에서 토냐는 미국 여자선수 최초로 트리플 악셀을 성공시켰다. 영화와 마고 로비는 이 장면을 실제 경기영상(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갈 때 나온다)과 완벽하리만치 똑같도록 공들여 옮겨 놓았다. 그녀가 아직 연기 도중임에도 터져 나오는 감격과 환희를 어쩌지 못하고 세리머니를 하는 표정, 몸짓 하나까지. 생생하게.
그러니까, 영화는 이렇게 말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적어도 이 짧은 순간의 희열이, 빈말로도 평화로웠다고는 할 수 없는 토냐의 삶에서 단 하나의 빛나는 진실이라는 걸. 누구와도 공유할 수 없는, 누구도 들여놓지 않아도 되는 영역. 우리가 삶이라는 끔찍한 맥락 속에서 모든 것이자 아무것도 아닌 자신과 마주쳐야 할 때마다, 도피처가 되는 영혼의 창고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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