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구독자 님, 생각의 숲 김혜원입니다.
오늘부터 여섯 번에 걸쳐 하나의 이야기를 드리려고 합니다. 시리즈의 이름은 '질문의 소유권'입니다. 왜 이런 이름인지는, 읽다 보면 자연스럽게 아시게 될 거예요. 먼저 한 장면에서 시작하겠습니다.
팻말 한 장이 움직인 것
2018년 8월, 스웨덴 의회 앞에 열다섯 살 아이가 혼자 앉아 있었습니다. 손에 든 것은 "기후를 위한 등교 거부"라고 쓴 팻말 한 장. 조직도, 자금도, 어른 후원자도 없었습니다.

1년 뒤 그레타 툰베리는 뉴욕 UN 기후행동정상회의 연단에 서서 세계 정상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당신들은 빈말로 내 꿈과 어린 시절을 훔쳐갔습니다."
여기서 이상한 점이 하나 있어요. 기후 데이터는 수십 년 전부터 쌓여 있었습니다. 과학자들이 훨씬 정확한 숫자로, 훨씬 오래 말해왔어요. 그런데 세계의 여론을 움직인 건 그 데이터가 아니라 이 열여섯 살의 문장이었습니다.
왜였을까요. 그가 어른들보다 말을 잘해서가 아닙니다. 그 미래를 실제로 살게 될 사람이 말했기 때문입니다. 어른은 기후위기를 관찰하고 대비합니다. 하지만 툰베리는 그 안에서 살아갈 사람이었어요. 데이터는 어른도 갖고 있습니다. 십 대만 가진 것은, 시차 없는 삶입니다.
이건 연설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소설도 정확히 같은 원리로 움직입니다. 십 대가 자기 세대의 이야기를 직접 쓰면, 그것은 '청소년물'이라는 장르가 아니라 증언이 됩니다.
사실, 아주 오래된 계보입니다
십 대가 쓴 글이 세계를 흔든 게 처음일까요? 오히려 문학사에서 가장 오래 남은 기록 몇 개가 십 대의 손에서 나왔습니다.
앤 프랑크, 13세. 1942년 6월 12일, 열세 번째 생일 선물로 일기장을 받았고 그날부터 쓰기 시작했습니다. 홀로코스트를 다룬 책은 수천 권이 있지만, 가장 널리 읽히는 문서는 어른 생존자의 회고가 아니라 은신처 소녀가 그 시간 한가운데서 쓴 현재형의 기록이에요. 그 자리는 문학적 선택이 아니라 삶 자체였습니다.

메리 셸리, 18세. 1816년 제네바 호숫가에서 『프랑켄슈타인』을 쓰기 시작해 스무 살에 익명으로 출간했습니다. '생명을 만든 자의 책임'이라는 질문을 기성 문단의 대가들이 아니라 열여덟 살이 먼저 던졌고, 흔히 그 소설을 SF의 출발점으로 부릅니다.

그리고 열여섯에 소설을 쓰기 시작해 미국 청소년문학의 풍경을 통째로 바꾼 S.E. 힌튼이 있습니다. 이 작가의 이야기는 오늘 다 풀지 않을게요. 다음 호의 주인공이거든요.
세 사람의 공통점을 '조숙한 재능'이라고 부르면, 핵심을 놓치게 됩니다. 셋이 가졌던 건 재능 이전에 어른이 접근할 수 없는 관점이었어요. 은신처의 소녀, 문단 바깥의 열여덟, 계급 갈등 한복판의 고등학생. 그 자리에는 어른이 갈 수 없습니다. 관점을 독점한 사람이 썼고, 그래서 남았습니다.
그리고 지금, 한국
여기까지는 과거의 이야기처럼 들리실 수 있어요. 그런데 이 현상은 지금, 한국에서 진행 중입니다.

백은별 작가는 열여섯 살에 첫 소설 『시한부』를 냈습니다. 출간 반년 만에 21쇄를 찍었고, 대만에 판권이 수출됐어요. 교보문고 2025 역대 베스트셀러에 선정됐고, 출간 2년이 지난 지금도 청소년 부문 베스트셀러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그리고 SNS로 독자와 직접 만나며 이야기합니다 - 출판사를 거쳐 어른의 언어로 번역되는 게 아니라, 십 대 작가가 십 대 독자에게 바로요.
한 사람의 특별한 사례가 아닙니다. 자가출판 플랫폼 부크크에서는 지난 10년간 약 3만 명이 작가가 됐고, 4만 종의 책이 나왔습니다. 출판이라는 문의 높이가 사실상 사라진 거예요. "십 대의 마음은 십 대가 잘 안다"는 공감대가 이제 책이 만들어지고 유통되는 방식까지 바꾸고 있습니다.
저는 이 흐름을 반기면서, 동시에 한 가지 질문을 마음에 담아두고 있어요. 진입장벽이 사라진 건 분명 좋은 일입니다. 그런데 퇴고와 편집이라는 관문 없이 나온 책과, 그 관문을 통과해 나온 책 사이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문이 열린 다음의 질문은 "낼 수 있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쓰는가"가 되겠지요. 이 질문은 이 시리즈가 끝날 때까지 저와 여러분이 함께 들고 갈 질문입니다.
다음 이야기 — 계속 쓰는 사람들
시리즈의 선언을 한 문장으로 적어두고 오늘을 마칠게요.
어른은 그 문제를 관찰하고, 십 대는 그 문제를 살아냅니다.
시차 없이 사는 사람만이 현재형으로 쓸 수 있습니다.
그런데요, 궁금하지 않으세요? 십 대에 쓰기 시작한 사람들 중, 지금도 계속 쓰고 있는 작가들은 누구일까요. '신동'으로 소비되고 끝나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뭐가 있었을까요.
힌트를 하나 남겨두자면 — 백은별 작가의 이야기는 『시한부』에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신작 『윤슬의 바다』가 지금 교보문고 청소년 부문 1위에 올라 있어요. 첫 책이 마지막 책이 아니었던 겁니다. 한 번 쓴 사람과 계속 쓰는 사람 사이에 무엇이 있는지, 다음 호에서 깊게 다룹니다.
오늘 심을 한 가지 생각
우리 아이가 '증언할 자격'을 가진 이야기는 무엇일까요? 기후처럼 거창하지 않아도 좋습니다. 그 아이만 서 있는 자리가 분명 하나는 있을 테니까요.
답은 메일로 보내주셔도, 마음에만 담아두셔도 좋습니다. 다음 주 목요일 아침에 다시 뵐게요.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생각의 숲에서,
김혜원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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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아영
<윤슬의 바다>도 궁금하네요... 멋진 십 대 작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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