픽션일지 논픽션일지 여러분의 판단에 맡깁니다.
눈앞에 펼쳐진 풍경이 어제와 별반 다르지 않을 때,
나는 과거, 특정 시점으로 환원되곤 한다.
그 장소에 담긴 기억이 새삼스러운 이유도
어떤 사람이 특별히 간절히 떠올라서도 아니다.
단지 어떤 장면, 잠시 스쳐간 기억들에게
여전히 잘 사는지 안부라도 한 번 들어보고 싶었을 뿐.
들춰봐도 과거는 옅은 흔적으로 남아있겠지만.
나는 비좁고 기다란 균열의 공간을 통과하고 온갖 장애물들을 넘어가며, 생각의 맥을 짚고선 고이 숨겨둔 기억들을 이렇게 글로 되살려 본다. 그 누구도 관심을 가져주지 않는 황폐한 기억들에게 다정한 말로 속삭이며. 실제로 존재했는지 확실치는 않지만 그 여부를 증명해달라는 어떤 몸부림의 이야기들을 향해.
강원도 동북쪽 그리고 태백산맥 중에서도 가장 높은 하늘 꼭대기에서 군 생활을 보냈다. 계단 천 개를 오르면 정상이 안개에 가려졌다가 어느새 뾰족한 지붕과 함께 불쑥 솟아오르는 곳이었다. 그곳에서는 인간으로서 머물러도 되는지 숲의 정녕에게 허락이라도 받아야 하는 건 아닌지, 인간은 멋대로 막사를 짓고 철조망으로 선을 그어 놓곤 서로의 영역을 꿈꿨다. 주변을 둘러봐도 온통 초록뿐인 그 높고 순결한 곳에서 우린 계절의 변화를 감지하며 과거 어느 시점에 존재했을지도 모를 싸움을 어느새 잊어버렸지만...
버티는 삶, 어느 환경에서든 단지 적응해야 한다는 이론이 나에겐 가득했다. 두려움에서 벗어나겠다고 꼭 증오의 대상을 만들어야 하는 건 아니니까, 삶은 버틴다는 그 자체로서 경이롭고 숭고할 뿐이 아닌가.
그곳에선 무척 단조롭고 무미건조한 나날이 반복됐다. 그곳에 존재하는 건 숲과 바람, 겨울이면 지붕 위 1미터 넘게 쌓이는 거대한 눈 폭탄과 시커멓게 생긴 표정 잃은 남자들뿐이었다. 도망치고 싶어도 사방의 철조망이 진로를 가로막았으니 인정하기 싫어도 인정은 다만 의무이지 권리는 아니었다. 게다가 그 바람이란 것도 다른 관점으로 본다면 늘 다른 모양으로 나타났다. 남쪽에서 불어오는 낮고 따뜻한 바람, 북쪽에서 불어오는 높고 서늘한 바람, 내 자포자기에서 시작되는 검고 의지박약한 바람.
막사 한쪽 구석엔 작은방이 있었는데, 그곳에 머물며 상황 일지를 쓰거나 막사 내부의 비품의 현황을 기록하거나 소초원들에게 과자 따위를 판매하는 것이 내 중요한 일과 중 하나였다. 그런 관성적이면서도 절대 요긴하지 않은 작업에 빠지다 보면, 내 일상이 얼마나 지루한지 새삼 깨닫게 되지만, 먹고 일하고 다시 자는 걸 무한으로 반복해야만 하는 현실, 그런 하루가 언제까지 이어질지 막막하기만 한데도, 바깥 풍경이란 건 늘 기막히기만 했으니 그런 걸 특별한 자격이라고 불러도 될지 모르겠다.
그곳에선 아무리 아름다워도, 포괄적인 아름다움을 받아들여도 아름다움의 가치를 논한다는 게 의미 없어 보였다. 우리 눈앞엔 온통 아름다운 것들 분이었으니까. 빼곡히 펼쳐진 산맥의 흐름, 인공적인 막사조차 주변 경관과 그럴싸하게 어울리게끔 조화를 이뤄줬으니까. 자연에게 포위당하는 게 말하자면 아름다움에 둘러싸이는 게 썩 나쁘진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예상하지 못한 공간을 추가로 발견했다. 막사 모퉁이를 돌아가면 - 바깥에 임시로 만든 허술하게 생긴 화장실(이라 쓰고 변소라 읽는다.)을 거쳐 돌아가면 - 사격장이라는 낡은 푯말이 붙은 빈틈이 보였는데, 어쩌면 그곳은 6/25 때 사용되었다는 사실을 강하게 인식시켜주고 있었던 것 같다. 왠지 모를 두려움과 낯선 반가움이 교차되다, 호기심이 용기로 재무장하게 되면 나는 사격장 끝을 한 번 더 지나 벼랑 쪽으로 이동했다. 그렇게 몇 번의 고비와 작은 소동이 완결되면 판자 조각으로 지은 한 평 정도의 공간이 불쑥 나타났다. 말 그대로 불쑥, 번쩍하고 번개처럼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그곳은 아무도 돌보지 않은 것처럼 어쩌면 몇 십 년 넘게 방치되어 있는 것 같았다. 얼마나 버려졌는지 보이는 거라곤 먼지와 거미줄뿐.
대충 먼지를 걷어 내자 사람이 앉을만한 너비가 생겼다. 나는 막사에서 낡은 카세트 라디오와 버려진 나무로 만든 의자를 하나 갔다 놓았다. 카세트 라디오와 테이프는 O가 소포로 보내준 물건이었다. 그날부터 가로세로 3.3미터 폭만큼의 방황이 시작됐다. 일상의 반복으로부터 탈출을 감행하려는 작은 균열이 일어나기 시작된 것이다.
노을이 이슬처럼 내리기 시작하면 나는 모두의 시선을 따돌리고 비밀의 공간을 찾았더랬다. FM 라디오 안테나를 남쪽으로 최대한 길게 뽑아놓고 마치 서울에 사는 O와의 주파수를 맞춰놓는 의식을 거행하는 것처럼, 강원도가 아닌 서울 어느 카페에 앉아서 O와 커피를 마시는 것처럼 에릭 칼멘의 ‘All by self’를 들었다. 나 혼자서, 아무도 존재하지 않는, 어느 순간 작은 판자 조각으로 만들어진 공간이라는 사실을 읻고선, 나라는 존재든 그 허물어진 공간에 가끔 지나다니는 임자 없는 고양이든, 그 고요한 공간에 속하는 모든 물체들이 부유하는 것이든, 심지어 아무 작용하지 않는 힘없는 바람이든 문제 되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혼자서 에릭 칼멘이나 데이비드 포스터의 음악을 즐겨 듣다, 구름이 짙게 끼인 어느 날 타인의 소리가 아닌 내 소리를 듣고 싶어 직접 녹음을 시도하기 시작했다. 존재에게 비로소 말을 건넨 것이다. 물론 그 존재는 그곳에 존재하지 않았고 당도한 적도 없었다. 대답이 없는 공허를 향해, 속삭이듯 그렇게 나는 근거 없는 대화를 나눈 것이었다. 60분 또는 90분이라는 숫자가 적힌 테이프를 카세트에 꽂아 놓고 생각나는 말은 무엇이든 녹음했다. ‘외로워, O가 너무 보고 싶어. 이곳에서 벗어나고 싶어’라고 말을 건네면, 어둠 속에서 어떤 존재가 ‘우리에겐 선택이 없잖아. 지금처럼 서로를 달래주자고 네 곁에서 늘 저무는 노을처럼 내 이야기를 전해줄게. 그러니 기다려, 시간이 지나가길, 어제처럼 흘러가길 기다리자고.’라고 대답하는 듯했다.
평화로웠다. 분노도 사라졌으며 시간의 유효기간도 심지어는 온갖 모양으로 포장된 열정조차 소멸됐다. 나는 흐르는 모든 감각을 완전하게 느낄 수 있었다. 그것은 내 것이 아니었지만, 어느새 내 소유물로 걸어 돌아왔다. 시간도 내 몸에 흐르는 미세한 잔물결도 모두 같은 길을 만들고 한쪽에서 반대편으로 유유하게 흘렀다. 시간은 강물처럼, 아니 저 멀리 보이는 알프스산맥 속의 엄정한 메시지처럼 끝도 없이 이어지고 어느 쪽으로든 뻗어나갔다.
나는 의자에 비스듬히 몸을 걸쳐 두고 녹음한 내 음성을 낮게 흘려 두었다. 세상으로 마지막 시선을 보내는 느낌이 들 때쯤, 나는 숨을 크게 가다듬었다. 미래에 대한 두려움, 불확실함의 원인은 무엇이란 말인가. 이 막막한 공간을 벗어나면 나를 지금까지 가둬버린 속박에서 틀에서 영원히 벗어날 수 있을까. 그런 익숙한 반복들을 과연 냉정하게 물리칠 수 있을까. 그것을 넘어서야 한다는 부담감은 어떻게 되려나. 그건 버릴 대상이 아니지 않는가. 원래 내 것이 아니었던가.
아까 찾아온 새끼 고양이는 저쪽 끝에서 말없이 앉아있다 어느새 낡은 판자 하우스 내부로 슬쩍 들어왔다. 뻔뻔한 녀석. 녀석의 어미는 어디에 있을까. 녀석은 왜 지금 이곳에서, 사람이 살지 않는 이런 곳에 혼자 살고 있을까. 데스페라도, 그 순간 이글스의 데스페라도가 생각났다. 하지만 들을 수 없었다. 분명 테이프 어딘가 녹음해뒀을 텐데, 아무리 돌려보고 돌려봐도 그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뭐냐, 데스페라도처럼 생긴 녀석아. 넌 대체 무엇을 바라보는 거냐. 나일까, 반사된 녀석의 그림자일까. 아무것도 모르겠다. 도대체 무엇을 이해하려고 어떤 노력을 기울인단 말인가.
비좁은 방에서 원래 우리가 한식구였던 것처럼, 우리가 오랫동안 안면을 터온 사이라고 속삭이듯 녀석은 내가 만든 그러니까 내 범주를 맴돌았다. 보드라운 털을 군화 끝에 기대며 고개를 찰랑거리며 돌아다녔다. 군화 끈이 스르르 풀려나갔다. 다리에서 힘이 풀리며 졸림이 몰려왔다. 아득하게 따사로운 온기와 함께. 나는 그 장면을 내 인생에서 가장 서정적이며 평화로운 순간이었다고 자부한다. 그런 기억은 아마 앞으로도 찾아오지 않을 것이다. 한적하고 동떨어져 있으며, 안정적으로 고립되었던 순간. 어떤 절대적인 고독.
시간이 흐를수록 풍경은 노란빛에서 빨간빛으로 세상을 휘감았다. 조금 더 깊은 빨간빛으로 사위가 어둠에 물들며 깊은 잠에 빠져갈수록 세상의 소리들은 내 온몸의 세포 속으로의 깊이 스며들었다. 나쁜 공기는 몸에서 빠져나가고 새 공기가 몸속에 자리를 잡는 그러니까 내가 다른 몸이 되고 다시 다른 차원으로 이동된 느낌. 그런 감각은 언제나 신선했다. 내가 아닌 다른 것이 된다는 건 언제나 즐거웠다.
"이곳에선 대화가 필요 없어요. 우리는 공기로 빛으로 모든 자연적인 것들로 공감을 나눠요. 억지로 당신의 생각을 말로 치장하려고 하지 말아요. 우리에겐 언어보다 감각이 소중해요. 좁은 곳에서 무엇을 그렇게 쓰고 있나요? 아니 쓰는 게 좋아요? 즐거워요? 누구를요? 서울 어느 동네에서 함께 걸어 다닐 O를 가정했어요? O와 함께 하지 못해서 그런 경험을 함께 하지 못해서 불행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지금 어떻게 하실 건데요? 에릭의 음악을 들으면 O와 가까이 소통이라도 하게 되나요? 어떤 공통적인 음악이 존재한다면 인간은 서로 엮일 기회를 갖게 되나요?"
내 귀에서 어떤 음성, 아니 그것은 어쩌면 잡음이었을지도 모른다. 아니 잡음 축에도 끼지 못하는 오래된 전축에서 새어 나오는 찌지직 거리는 소음 정도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그 파동에 귀를 기울였고 그 파동이 너울거리는 것에 동조했다. 말하자면 나는 그 소음을 소음이 아니라고 판단한 것이다. 이 보잘것없는 어쩌면 태백산맥의 균열이 만든 지극히 우연의 산물일지도 모르는 이곳에서 나는 주파수가 변질된 치찰음을 들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모두 의미 없었다. 모든 가정법, 존재의 가치를 따지려는 나의 무브먼트, 생각의 경로에 어떤 이름을 붙일까. 그것이 우연과 우연이 겹친 하찮은 소리에 지나칠지라도 지금 이 순간 내 귀에 각인된 것은 분명하지 않은가.
나는 허공에 대고, 아니 그 소음이 시작된 녀석에게 반가운 대답을 보냈다. 물론 무음으로, 어떤 의심 혹은 불신을 동시에 담아서.
"대화가 필요 없다는 사실은 나도 알아, 하지만 내가 이곳에서 도모할 일들은 지극히 제한되어 있어. 너도 알다시피, 나는 여기 낡은 책상에 앉아 공상이나 하다가 라디오 주파수에 공명하다, 뭔가 느낌이 오면 끄적거리는 게 전부잖아. 물론 그 원인은 그리움이 제공했겠지. 그리움, 원망이 섞인 그리움, 어디로 닿아야 할지 공기 중에 살포하지만 유통기한이 비교적 짧은 그리움, 세상의 존재하는 모든 그리움들을 끌고 와서 저 철책선 너머, 대추나무 끝에 매달아놓고 싶은 그리움, 온통 지뢰만이 가득한 저 비무장지대 어느 땅밑에 숨겨두고 싶은 그리움. 그런 그리움은 모두 제각각이야. 너에게 개별자이듯 나에게도 그리움은 개별자로 존재해. 그러니 내가 이곳에서 어떤 의미 없는 행동을 반복하든, 그건 그 자체로서 생명력을 가지는 일이고, 내 삶을 윤색하게 만드는 일이고, 낡은 것들을 조금 덜 낡은 것으로 잉태하는 일이야. 난 지금 생명을 만들고 있다고."
"그런데요. 당신의 행동은 늘 같아요. 여기 이 장소에서뿐만 아니라 당신은 저 막사 안에서도 22번 근무지에서도 늘 같은 패턴을 유지했잖아요. 당신의 관념은 일관성 있게 O에게 향해 있었어요. 하지만 당신은 진실과 마주 앉지 않았어요. 당신은 집착하면서도 외면했던 거예요. 왜 O에게 단 한 번도 진심을 보여주지 않았어요? 왜 몇 백 킬로미터 떨어진 이곳보다 더 멀리 떨어진 사람처럼 굴었냐고요. 무엇이 당신과 O의 사이를 가로막은 거죠? 왜 당신은 철책선을 세우고 허물고 다시 만들었냐고요. 무엇을 방어하려고. 무엇을 지키려고요." 새끼 고양이치곤 꽤 많은 것을 아는 현명한 녀석처럼 말했다.
"넌 내 생각을 정확하게 꿰뚫어 보는구나. 그래, 나는 이곳에서 방어선을 구축해놓고 더 이상 물러서지 않겠다고 이 최후의 라인을 지키려고 노력했지. 이건 최종적인 결정이자, 마지막 결단이기도 했어. 어쩌면 나는 네 말대로 나를 드러내놓고 싶지 않았을 거야. 난 거부를 당하는 게 너무 싫었을지도 몰라. 거부는 오해를 불러오고 오해는 불신을 낳고 불신은 결국 장벽을 세우지 않겠어? 더군다나 이렇게 일방적이기만 한, 편지로 무엇을 도모할 수 있냔 말이야. 내 진심이 O에게 어떻게 단 한 번의 배달 사고도 없이 그대로 전달이 되겠냐고. 이 전파를 믿어? 저 주파수를 믿으라고? 차라리 네가 지금 이 순간에 보내는 주파수를 더 신뢰하겠어. 칼 세이건이 우주로 떠나보낸 보이저 2호가 보내줄지도 모를 선물 같은 메시지를 기대하겠다고." 내가 허무하게 말했다.
"그래요 이해해요. 당신에게는 본질적인 한계가 있으니까요. 그 한계는 당신이 만든 거고, 시간적, 공간적 제약 사항이 무수하게 놓여있겠죠. 머나먼 이 거리를 당장 떠올려봐도 계산해봐도 그래요. 당신에게 가능한 것이라곤 상상으로 그 거리를 단축시키는 일일뿐일 거예요. 이해한다고요, 당신의 괴로움의 깊이를 그리고 어두움의 진함을 난 알아요. 알지 못해도 안다고 대답해야 할 거예요. 이 말은 솔직하게 할 수 있어요. O와 당신의 완벽한 단절을요."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속으로 생각한다고 내 생각을 녀석에게 들키지 않는다는 게 보장되지 않을 것이 분명했을, 내 속에 가득한 그러니까 모순적인 생각들을 치워버려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생각이란 게 어디 인간의 노력으로 지워버릴 수 있는 일인가. 생각은 제멋대로 찾아와서 제멋대로 떠나가는 건방지게 생겨먹은 녀석일 뿐인데.
갑자기 라디오에서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청각에 문제라도 생긴 건 아닐까, 싶었지만 녀석의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곧장 들리는 걸 보니 다행히 문제가 생긴 건 아닌 것 같았다. 나는 라디오를 툭툭 건드려봤다. 오래된 요법처럼 스피커를 툭툭 건드려보기도, 배터리가 문제없는지 일부러 꺼냈다 다시 끼워보기도, 그런 의미 없는 행동들을 반복했지만 라디오에서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래 맘대로 하라지. 소리가 안 들린다고 딱히 이곳이 맘에 들지 않는 건 아니니까. 오히려 강렬한 고요를 만들어줄 테니까. 그것만으로도 이 공간은 유용해지는 거니까.
녀석은 슬그머니 꼬리를 감춰버렸다. 낯선 반가움이 어색한 도망으로 바뀌자, 기다렸다는 듯이 적막이 낡은 판자 주변을 감쌌다. 나는 카세트 라디오를 들고 내가 걸어온 그 길을 따라 그대로 돌아갔다. 내가 밟은 발자국과 정반대로 마치 과거로 의식을 돌리고 싶다는 의식을 담아서.
몇 개월 동안 O에게선 아무런 소포도 심지어는 편지도 도착하지 않았다. 어쩌면 우리는 서로를 외면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애써 O와의 관계를 단절하려고 애썼던 것 같다. 왜 그때는 그래야만 했을까. 이유에는 언제나 원인이 존재할까. 나는 그럴듯하게 그때의 원인을 생각해 보지만, 왜 그런 행동 그러니까 그녀에게 간접적인 이별의 말을 암시했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이별은 그냥 이별인 것이다. 우린 언제나 동일하게 이별을 경험하게 될 테니까, 지금에 와서 그때의 후회를 돌이켜보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으랴. 그때의 O와 나는 그 후로 계속 다른 길을 걸었을 뿐인데.
막사로 돌아와 나는 작은방에 홀로 앉았다. 근무자와 교대하고 수류탄이며 K2 소총이건 모두 정위치에 놓여 있는지 확인하곤, 며칠 전에 DMZ에서 벌어진 사건을 떠올렸다. 북한 병사 한 명이 넘어와 소대에 수류탄 하나를 터뜨려 소대원 전부를 몰살시켰다는 사실, 이곳이 DMZ가 아니라는 것, 그래서 조금 더 안전할 거라는 사실이 나를 안정시켜주지는 못했다. 나는 그 사실을 소대원에게 통보해야 할 것인가, 며칠 고민했지만 그렇게 하지 않는 편이 그들의 건강에 이로울 것이라 생각했다. 때로는 모르는 게 훨씬 마음이 편하지 않는가.
작은방에 앉아 잠든 소대원들의 머릿수를 세어보고 그들이 깊은 잠에 빠졌다는 사실을 보고 나는 안심한다. 나 또한 아직까지는 안전하다. 앞으로도 아마 별다른 일이 없다면 그렇게 될 것이다. 내일이 되면 나는 또 바깥, 나만 아는 어떤 완충 지대로 이동할 것이고, 나는 그곳에서 새로운 위안을 얻겠지. 어쩌면 말은 하지 않지만 속삭이는 게 가능한 고양이 한 마리에게 의지하며.
참으로 기묘하다. 기묘한 기운은 나를 언제나 흥분시킨다. 알 수 없으니 기대하게 만든다. 삶도 그러하다. 내일을 모르니 그리고 어제를 망각할 수 있으니 나는 즐겁다. 그래 즐겁게 웃을 수 있다. 미래의 나에게 희망을 통보할 수 있다. 낡은 3.3 제곱미터의 공간에서 고장 난 카세트 라디오를 들고 불평할 수 있어서, 예측할 수 없는 혼란스러움이 찾아와줄 테니, 나는 그만큼의 불확실성 때문에 의미를 재충전할 수 있다.
내일도 녀석이 찾아와줄까? 한동안 아무 말이 없던 녀석은 오늘처럼 나에게 텔레파시를 안겨주려나. 나는 고독을 원했나. 감춰지고 싶었나. 외로워서 이야기를 나눌 대상이 필요했던가. 녀석은 나 스스로 만들어낸 개념은 아닐까. 나는 나를 완벽하게 신뢰할 수 있는가.
아름다움은 어떻게 찾아오는가. 우리는 그것을 이론처럼 익힐 수 있을까. 30년이 훨씬 지난 지금에서야 아름다움의 정체가 무엇인지 다시 과거를 복원해내곤 그것을 크게 한 바퀴 돌아 현재로 돌아온다. 미세먼지가 가신 퇴근 무렵의 하늘도 30년이란 세월이 묻힌 하늘만큼이나 노랗게 찬연하게 빛난다. ‘아름답구나, 역시 하늘이란’
과거라는 액자에 담긴 기억에게 고요히 시선을 던진다. 그곳엔 오전에 도착했던 편지에 눈물 한 방울을 떨구었다가 다시 현실로 돌아오는 낙담이 가득했지만, 그 누구도 아닌 나를 오롯이 환기했다는 사실이 이 노랗고 빨갛게 물든 저녁을 벅차오르게 한다. 나는 높은 곳에 오르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가장 높은 곳에서 세상을 품은 사람처럼 모든 걸 본다.
이 모든 기억은 어쩌면 가공되었으리라, 단지 사실일 거라고 나는 허위 주장을 할지도 모른다. 나아가 나는 반쯤 미친 상태일지도 모른다. 넋이 나간 상태에서 어디론가 함몰된 상태에서 끄적거린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이야기가 왜곡된 것이든, 사실이라고 강하게 주장하는 말하자면 설득력이 꽤 보장된 것이든, 나는 이렇게 글을 쓸 뿐이다.
글은 내가 쓴다. 주도한다는 것은 분명히 나지만, 어느 순간 내가 아닌 다른 대상이 글을 쓰는 걸 발견한다. 나는 소름 끼치는 이런 경험을 하며 과거에 내가 우연히 발견한 그 벼랑 끝 빈틈 뒤에 숨은 낡은 판자로 지은 그 공간을 회고한다. 내가 그 안에서 얼마나 오랫동안 머물렀는지는 이제 기억할 수 없다. 너무나 오래되어서 어쩌면 몇 백 년 흐르거나, 지난 생에 내가 경험한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나는 시공간을 뛰어넘어, 그 놀라운 경험을 누군가에게 이야기하고 싶어 지극히 안달 난 것이 전부일지도 모른다. 나는 그렇게 육체와 정신을 소모해가며 옆에 놓인 커피 한 잔에 의지해가며 막막해져 버린 내 미래를 생각하며 외롭게 글을 쓴다.
하지만, 의지할 대상은 없다. 오직 나 혼자서 감당해야 한다. 기울어지고 싶어도 지금은 서 있어야 할 때다. 그래서 쓰면서 나는 과거의 내가 현재의 나에게 하고 싶었던 이야기, 영원히 망각의 무덤에 감춰졌을지도 모르는 그 이야기를 발굴한다고 믿는다. 나는 탐험자가 된다. 단지 내 것에 속했거나 내 것이 될지도 모르는 그런 이야기를 찾아 나서는 여행자의 신분으로 사는 것뿐이다.
그러니 이 글에서 당신은 어떤 기대감을 품지 않아도 된다. 당신이 만약 여기까지 읽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면 당신은 이미 내가 만든 대오에 합류한 것이다. 이 이야기는 진실일까? 허구일까? 허구와 진실이 반죽된 것일까. 허구가 존재한다면 어디까지가 허구에 해당될까? 그 결정은 당신에게 있다. 당신이 믿는 대로 믿으면 그만이다. 단지 이것은 이야기의 연속적인 흐름일 뿐이다. 바흐의 평균율 같은 흐름일 뿐이다. 눈에서 귀로 귀에서 다시 눈으로 각인되는 반복적인 작용일 뿐이다.
이 글을 완결하려고 하는데, 어디선가 저 밑바닥에서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새끼 고양이가 내 발밑을 부드럽게 감싸며 지나가는 소리, 있는 듯 없는 듯 슬쩍 나타났다가 허물어지는 소리가 나타났다가 이내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하지만 나는 놀라지 않는다.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는다. 아마도 녀석은 O에게 가끔 나타났을지도 모른다. 내 소식을 O에게 전달했을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을 하면 내 삶은 가끔 들썩거린다. 가만히 있지 못하고 소란스러워진다. 이렇게 글을 써야 한다고 낮은 주문을 외우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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